족보가 주는 교훈
룻기4:18~22
2013년 12월 15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설교:
우리나라는 가문마다 족보가 있습니다. 저희 집에도 족보가 있습니다. 저는 경주 최씨 관과정공파 31대손입니다.
물론 풍랑 많은 역사 속에 살다보니 족보가 사라지고 또 형제 친척과 헤어지다 보니 족보를 잃어버리거나 알지 못하고 사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과거 신분제도가 분명했던 시절에 족보를 가질 형편이 안 된 집안이 많다보니 과장되고 조작된 족보들이 많다고 합니다. 다들 자기 집안이 양반 집안이라 하지 누가 상민이고 누가 천민 출신 집안이라고 하겠습니까?
조선시대 양반은 전 국민의 5%도 안 되었다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족보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다보면 성경에 여러 곳에 족보를 기록하고 있고 그것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신약성경에 첫 부분인 마태복음 1장입니다.
마태1:1절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라고 시작하는 곳을 보게 됩니다. 신약성경 첫 장이 족보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選民(선민)이고 그러기에 약속된 메시야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 속에서 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족보를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은 언약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가 오신다고 약속하신 것이 구약이고 그 메시아가 오셨음을 보여 주는 것이 신약입니다. 그래서 그 메시아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되심을 믿어야 하고,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보는 언약적인 시각과 구속사적인 시각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룻기 마지막 부분을 살펴봅니다.
드디어 룻이 보아스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 사이에서 때어난 아들이 오벳이고 그 오벳이 낳은 아들이 이새고 그 이새가 다윗 왕을 낳았다는 내용으로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왜 룻기 성경은 다윗왕의 족보를 기록하고 끝내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은 연약한 여인도 구원역사에 들어 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을 들어 강한 사람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救援(구원)役事(역사)는 사람의 역사가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행하신 역사인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전1:27절에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을 택하여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족보를 보면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기록된 족보에 여인이 다섯 명 등장합니다. 다말, 라합, 룻, 그리고 밧세바 그리고 마리아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마리아를 제외한 4명은 그다지 떳떳한 여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다말>은 다들 알다시피 야곱의 4째 아들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첫 아들과 둘째 아들이 다말과 결혼하자마자 자식이 없이 죽게 되자 셋째는 그 며느리에게 주지 않으려고 친정으로 보내놓고 부르지 않습니다.
결국 다말이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 유다가 지나가는 길에서 유혹을 하여 성관계를 맺고 그 사이에서 자식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태어난 사람이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그 베레스가 오늘 본문의 18절에 기록된 베레스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건은 참으로 입으로 말하기도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또한 <라합>은 여리고성 기생출신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 정탐꾼이 정탐하러 왔을 때 그들은 숨겨주어 살게 했습니다. 그때 라합은 그들과 붉은 줄 언약을 합니다. 그리고는 여리고성이 무너져 여리고 백성이 전멸 당할 때 살아남아 이스라엘 군인인 ‘살몬’과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보아스’입니다.
그러니 그 여인도 기생 출신이고 가나안 여인이기에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한 배경을 갖고 있었던 여인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룻>은 모압 족속 출신인 것은 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모압 족속이 누구냐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딸들과 함께 소돔성에서 탈출하여 동굴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그 두 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하여 큰 딸이 낳은 자식이 모압이고, 작은 딸이 동침하여 낳은 작이 암몬입니다.
그러고 그 모압 족속은 계속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괴롭혔기에 모세는 신명기에서 그 족속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선언할 정도였습니다. 신23:3절을 보세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런데도 엘리멜렉이 모압 지방으로 이주해 갔다가 아들을 모압 여인 룻과 결혼을 시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여인도 이방여인이고 구원받지 못할 여자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밧세바>도 그렇습니다. 그는 다윗의 부인이며 솔로몬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그도 그리 좋은 배경은 아닙니다. 그는 본래 다윗의 신하인 ‘우리야’ 장군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이 음욕이 발동하여 신하의 아내를 궁으로 데려와 욕을 보였고 그 후 신하를 전쟁터에 내몰아 죽게 하고 난 후 아내로 맞아 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합당치 못한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 솔로몬이 태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뭔고 하니 이렇게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여인들의 배경이 흠이 있고 약점이 있는데도 하나님은 그들의 사건과 이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인간이 이렇게 흉악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감추지 않고 다 들추어내는 것은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흠 많고 연약한 사람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위대하게 쓰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능력이 있어서인가요?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죄가 없고 깨끗해서인가요?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뭔가 하나님께 자랑할 것이 있어서인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주신 말씀은 그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2. 구원은 유대인만이 아닌 이방인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구약 성경 전반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구원은 오직 유대인만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잘못된 관념을 버리도록 성경 전체에서 이방인도 구원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성경이 룻기고 또 하나가 요나서입니다.
왜 하나님이 요나서를 기록해 주셨을까요? 요나 선지자가 왜 니느웨로 가지 않으려 했을까요? 니느웨가 자기들을 힘들게 했단 나라의 首都(수도)이기에 가기 싫기도 했지만 요나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이방인이 구원받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선민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을 쳤던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요나가 가는 길을 막으시고 꺾으셔서 니느웨로 가게 하셨고 결국은 니느웨로 가게 해서 사흘 길 도시를 하루길만 외쳤는데도 그 백성들이 회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욘3:3절 이하를 보세요.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것은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고자 하면 누구든지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이 유대인인 사도들과 계속해서 싸우신 내용도 이것입니다. 분명 주님은 성령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복음과 성령을 받고도 가지 않았습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안가니 핍박자를 들어서 예루살렘 교회를 박살내시고 강제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결국 핍박을 피해 흩어진 유대인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어쩔 수 없이 가서 전하는데 거기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뭡니까?
8장에서는 이방인인 에디오피아 내시도 믿게 하고
9장에서는 핍박자인 사울도 믿게 하고
10장에서는 이방인인 로마군인 고넬료도 믿게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흑인종, 황인종, 백인종, 다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자 세 사람 중에 가장 힘들게 설득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그는 로마군대 백부장 고넬료에게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말 한마디에 순종하고 간 것이 아닙니다. 환상 가운데 부정한 짐승이 담긴 보자기 환상을 세 번씩이나 보여주었고 잡아먹으라 했습니다.
왜 세 번씩이나 보여주셨을까요? 한번 두 번 가지고는 안갈 것 같으니 세 번 보여주면서 잡아먹으라 했던 것입니다. 그제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고넬료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도 이방지역에는 안가기에 바나바를 통해 이방 지역인 안디옥에 안디옥 교회를 세워 핍박자 사울을 변화시켜 이방 선교를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방인도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믿나요? 우리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아직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복음을 들고 찾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것이 룻기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방인으로 구원에 소망이 없었던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신 은혜 감사하며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많은 사람에게 이 복음 들고 찾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구속사는 픽션(Fiction)이 아닌 논픽션(Nonfiction)이라는 것입니다.
소설에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기록한 것은 픽션(Fiction)이라 합니다. 우리나라에 유명한 소설은 대부분이 픽션입니다. 춘향전도 픽션이고 홍길동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임꺽정도 소설입니다. Fiction, 즉 虛構(허구)란 말입니다.
그런데 남원에 가면 춘향이를 실존 인물로 여기고 있고 여러 가지 기념물을 세워놓았습니다. 저희 고향인 충북 괴산 출신인 홍명희라는 사람이 쓴 소설 ‘林巨正(임거정)’도 소설인데 괴산에 가면 임꺽정을 실존 인물인 것처럼 관광 상품화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픽션입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나 장희빈, 그리고 이순신 장군들의 이야기는 논픽션(Nonfiction)입니다. 허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습니다.
성경이 픽션이 아닌 논픽션, 즉 사실 기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그들의 행적이 분명하게 기록되었다는 것이 허구가 아닌 실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인류 구원 역사는 허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사람들이 꾸며낸 옛날이야기나 소설처럼 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이나 사건들을 믿을 수 없다며 소설처럼 여기려 합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홍해 도하사건입니다. 홍해 물이 갈라져 2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건너 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픽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면 그것이 픽션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실존 인물인 것을 믿습니까?
실제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난 분인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룻기의 이야기가 실존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낳고, 낳고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족보로 새 인물의 출생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 목적이 뭘까요? 하나님 나라와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룻기 저자는 그 오벳과 이새를 기록하고 그 후손으로 다윗이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끝을 맺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누군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왕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 것을 알리기 위해 다윗의 조상 베레스로부터 시작하여 다윗까지 열 명의 이름이 열거된 족보를 기록하는 것으로 끝을 맺은 것입니다.
룻이 살던 시대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사사시대입니다.
그래서 수시로 주변 국가들에게 약탈을 당하면서 약소국의 비참함을 반복적으로 경험해야 했던 시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들을 통해 나라의 위기를 넘기고 평안을 회복하곤 했습니다. 그러기에 룻기 저자는 하나님께서 보아스라는 인물을 통해 허물어져 가는 거정을 회복하셨듯이 허물어져 가는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해 다윗 왕을 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멘?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성경은 픽션 소설이 아닙니다. 실제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성경을 보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시고, 그 믿음으로 구원의 감격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를 통해,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세워질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구원역사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통성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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