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원 17시집 <이슬처럼 별처럼>이 부산광역시를 비롯해 전국에서 베스트셀러 시집으로 크게 떠오르고 있다.
발문
사랑에 대한 구도자적인 순결성
권태원 17시집『이슬처럼 별처럼』
극작가 김문홍
일탈을 꿈꾸는 시인, 순응을 꿈꾸는 詩
문득 누군가가 권태원 시인의 근황을 물을 때가 있다. 그것은 이미 그의 일탈적 행동에서 오는 기행을 전제로 하고 묻는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대답은 둘 중 하나이다. 그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경우에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쉽게 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에는 기행을 일삼고 있을 것이라 지레 짐작해 버린다.
혹 어떤 사람은 그의 그러한 기행은 기질적인 것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권태원 시인이 짐짓 기행을 일삼는 것이라고 아예 단정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기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가식적인 것인지는 시인 본인의 해명을 듣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여하튼 권태원 시인은 기인임에는 틀림없다. 문인이건 문인이 아니건 그의 기행에 대해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그의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 한 번 놀란다. 사랑에 대한 목마름, 이별에 대한 흐느낌, 그리움에 대한 절절함, 그리고 삶에 대한 구도자적인 순결함의 편린들을 그의 시 속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도저히 그러한 시편들이 기행을 일삼는 그의 일상에서 건져지리라는 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그의 기행이 의도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기행을 일삼는 것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이 그가 살아내기에는 너무 벅차서 마치 미친 사람처럼 기행을 일삼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부조리한 세상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시인의 영혼이 너무 순수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권태원 시인의 기행은 순수하고 귀엽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결코 그런 기행을 빌미 삼아 타인에게 해코지하지 않는다. 비열하게 남을 속인다거나 섬짓하게 남의 뒤통수를 치는 법이 없다. 경제적으로 남을 곤경으로 내몰거나 위협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잔잔하게 돈 몇 푼을 뜯기는 일은 있어도, 그로 인해 일상이 거덜 난 적이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기행이 없는 권태원 시인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러한 기행이 그의 존재를 더 뚜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시집은 벌써 열일곱 번째이다. 1984년에 월간《심상》신인상으로 등단했고, 1987년에 첫 시집『팬지꽃으로』를 내었으니 평균 두 해 터울로 시집을 상재한 셈이다. 그렇게 보면 다작의 시인이다. 겉멋이 들어 다작인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가슴 속에 시적 열망이 충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작인 셈치고는 시편들 모두가 다 고만 고만한 시적 수준을 지니고 있기에 한편으로는 다행한 일이다.
사랑에 대한 목마름
그의 시편들은 사랑에 대한 목마름, 이별에 대한 흐느낌, 그리움에 대한 절절함, 그리고 삶에 대한 구도자적인 순결함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감정들이 원형적인 구조로 맞물려 있는데, 결국은 모두 사랑으로 귀결되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시편 하나하나에는 ‘사랑’이라는 어휘가 안 들어 있는 경우가 없다. 그러한 사랑이 결코 통속적 감정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은 그러한 사랑의 감정이 구도자적인 순결로 일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①
사랑을 잃고/측백나무 곁에 서 있었다/참새 떼가 한 장의 백지에/깨알 같은 울음을/소나기처럼 쏟아놓는다/나의 사랑은 흘러간다/참새 떼가 하늘에서 사라지듯/측백나무에는/나의 사랑이 없었다/어디로 갔을까/후두둑 후두둑/허공의 적막 풀잎에 내려 앉던 그들은 -「빈 의자」전문
②
잠들기 전에 기도하게 하소서 잠들기 전에 사랑과 희망을 기도하게 하소서 잠들기 전에 보이지 않는 예수도 만나게 하소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고통도 함께 나누게 하시고, 가난한 사람들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도 보게 하소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전문
인용된 시 ①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회화적인 구도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다. 사랑을 잃고 측백나무 곁에 서있는 나(시인)로 인해 주위의 모든 풍경들 역시 사랑의 상실감으로 일순 변해 버린다. 참새 떼들이 울음소리로 사랑의 비통함을 노래하고, 참새 떼 역시 하늘에서 사라지고 없다.
사랑은 어느새 후두둑 후두둑 빗소리가 되어 풀잎에 내려앉으며 주위는 어느새 적막감에 휩싸이고 만다. 사랑의 온기가 사라진 적막한 풍경은 시적 화자인 나의 상실의 감정과 일치되기에 이른다. 사랑 없는 세상의 적막한 풍경이 우울하고 음산한 이미지로 다가옴을 느낄 수가 있다.
인용문 ②의 시는 시적 화자인 시인의 성찰을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은 괴로운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절망을 자신의 절망으로 치환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자신에게 사랑을 달라고 갈구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 용서할 수 없는 행위를 사랑의 행위로 용서할 수 있게 참회의 기도를 하는 시인의 대속적 희생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참회의 기도문 같은 주술적인 리듬을 자아낸다.
강물은 흐를수록 깊어지고/차가운 돌은 깎일수록 고와진다/낙엽은 지는데/뜰 위에 있는 나/다시는 이별을 생각하지 말자/기울어지는 황혼에/내일 만나는 것은 내가 아니다/사랑이여, 보아라/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바위틈에 매어 놓은 목란배 한 척/그대 사는 쪽으로/노를 저어 가고 싶다 -「강가에서」전문
위의 시 역시 회화적인 이미지로 사랑의 깊이를 노래하고 있다. 사랑은 그저 얻어지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처럼 담금질되는 돌처럼 고되고 긴 연금술의 과정을 거쳐야 완성됨을 노래하고 있다. 떨어지는 낙엽, 기울어지는 황혼,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 역시 시련과 기다림을 거쳐야만 생명의 순환을 얻듯이, 담금질을 통해 얻은 사랑만이 값진 것임을 되새기고 있다.
이별에 대한 흐느낌
권태원의 시에는 사랑에 대한 목마름 뒤에는 이별에 대한 흐느낌이 이어진다. 그러한 흐느낌은 자신에게 이별을 고한 사람에 대한 원망이나 슬픔이 아니라, 사랑 뒤에는 반드시 이별이 운명처럼 뒤따라옴을 순응하는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별을 노래한 그의 시편들은 신파조의 영탄에 흐르거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아닌, 살아감에 있어서 헤어지는 것은 자연의 질서와 같다는 것을 체득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①
행복하다/내가 사랑했던 사람마다/모두 작고 보잘 것 없는/섬과 섬 사이에서 살고 있다/내 사랑의 자리는/모두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물 빠진 연못처럼, 한 때는 종횡무진/하늘바다를 다니던 물고기 물고기들/아직도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그 누구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내 사랑의 폐허, 폐허들아 -「너를 기다리는 동안」전문
②
물소리 속에서 그 여자가 울고/새소리 속에서 그 여자가 흐느끼고 있다/바람소리 속에서 그 여자 사라진다/내가 고통을 견디는 동안/고통이 그 여자를 견디는 동안/꽃그늘 아래서 내 인생이 지나가고 있다/슬픔의 힘은 고요하다/봄비 건너는 나비처럼 적막하다/새가 날았다/산이 쩌르릉 쩌르릉 울었다/그 여자가 생각날 때마다 울고 또 울었다 -「가을 밤」전문
인용문 ①의 시는 이별 뒤의 적막한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 역시 사물과 상황의 풍경을 회화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사랑이 떠나고 난 뒤의 폐허화된 적막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물이 빠진 연못, 물을 잃어버린 물고기는 하늘을 날고, 사랑을 잃어버린 시인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끝없는 자기 부정을 일삼는다. 위의 시는 사랑이 떠나고 난 마음의 쓸쓸한 폐허를 자조적으로 읊조리고 있어 섬찟한 느낌마저 자아내게 한다.
인용된 ②의 시는 사랑이 떠나고 난 뒤의 심상을 공감각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 여자와 함께 듣던 물소리, 그 여자와 같이 듣던 새소리, 사랑하던 사람과 함께 느끼던 바람의 감촉 속에서 떠나 버린 사랑의 온기를 추억하느라 안간힘을 쓴다.
그 여자가 떠나고 난 뒤의 상실감 비로소 느끼는 인생의 상실감을 뼈저리게 추억하고 있다. 그 여자가 떠나고 난 뒤에 시인은 산이 함께 우는 소리를 들으며 이별의 통한을 몸서리치게 느끼고 있다.
문을 벗어나도/이별의 문을 벗어나도/문 바깥에 문이 또 있다/나무도 기대어 울고/싶었을 것이다/텅텅 빈, 빈집들/가슴 속도 텅 비고/새들도 날아가 버렸다/모든 빛은 제 몸을 태운 것이다/오늘 하루도 천둥 치듯/벼락 내리듯 살아왔다/어느새 오이처럼 늙고/토란잎처럼 시들었다 -「꽃이 핀다」전문
위에 인용된 시는 시의 제목과 내용이 역설적으로 병치되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의 상실감을 텅 빈 사물의 모습과 자연 풍경으로 환치하여 노래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충일되어 있었는데 떠나고 나니 모두 텅 비어 버렸다.
나무도 외로워 기대어 울고, 집과 시인의 가슴도 텅 비어 버렸고, 생생하게 제 빛깔과 몸을 자랑하던 사물들도 제 빛을 잃어버린 채 시들어 있다. 그런데도 시인은 ‘꽃이 핀다’라고 역설적인 제목을 붙인 것은 떠난 사랑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간절한 염원을 꽃이 피는 환상으로 대체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움에 대한 절절함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시인의 가슴 속에 앙금으로 남는다. 그리움은 상실감과 그에 따른 절망을 극복하는 하나의 심리적 기제가 된다. 그것이 없다면 시인은 폐허가 된 마음의 밭을 어떻게 추스릴 힘이 없어진다.
①
지도에도 없는 집/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빛의 사서함 앞에서/말할 수 없는 애인을 기다린다/어쩌면 당신은 우리에게 온/배롱나무인지도 모른다/당신이 없어도 바람이 한없이 청량해서/나른하게 눈을 감았습니다/당신은 그냥 물이 아니라 헤엄치는 물/당신은 그냥 땅이 아니라/무작정 기어가는 땅/말할 수 없는 사랑/한없이 서럽고 오래오래/봄날은 온다 바보야, 바보야 -「말할 수 없는 사랑」전문
②
하루하루 눈물방울로 꽃을 피우는 사글세방 우리집이 얼음덩이 속에 사는 에스키모보다는 조금은 더 행복할 거라고 딸애는 잠 못 드는 밤이면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 때로는 거지 옷 입은 개그맨과 신데렐라 공주가 함께 출연하는 흑백텔레비전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아빠는 “바본가 보다 바본가 보다”며 까르르 놀려대더니 딸애는 빨간 풍선을 불며 완월동 천마산 뒤쪽으로 가버렸습니다 세모꼴 다섯모꼴의 찌그러진 별들과 나뭇잎과 흙, 볏짚으로 쏘아올린 꼭 갖고 싶은 꿈속의 한평반짜리 우리 집, 그리고 딸애를 낳자마자 하늘나라로 인간소풍을 떠나버린 몇 년째 돌아오지 않는 엄마의 젖가슴과 또 이런 것들이 꽃바구니에 가득 그려진 풍선을 하나 들고 심심한 아홀 살 딸애가 떠나버린 자리에는 딸애 얼굴 같은 팬지꽃 한 송이가 저 혼자 피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막걸리 파는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으로 -「팬지꽃으로」
위 인용된 시 ① 속에 등장하는 당신은 사랑하다 떠나 버린 여자라기보다는 시인의 가난한 삶 속으로 들어온 구원의 신인지도 모른다. ‘빛의 사서함 앞에서’ 감히 말할 수 없는 애인은 현실 속의 사람이 아니라, 빛으로 현현하는 구원의 신일 수 있다. 시인은 그런 존재를 배롱나무라고 생각한다.
배롱나무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 우리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지만, 그 꽃을 피워내는 줄기와 몸체는 닳고 닳아 하얗게 뼈가 드러나는 고통을 감수하고 꽃을 피워낸 것이다. 그래서 빛으로 온 그분은 헤엄치는 물이고 기어가는 땅일 수 있는 것이다.
인용된 시 ②는 시인의 가난하고 외로운 일상을 그리고 있다. 엄마를 잃어버린 딸애는 흑백텔레비전을 보고 풍선놀이를 하면서 시인과 함께 무료하고 외로운 일상을 견뎌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새 딸은 자라 시인의 곁을 떠나 버리고 시인은 홀로 남아 절절한 그리움을 토해낸다. 그리움을 토해낸 그 자리에 팬지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구도자적인 순결함
사랑에 대한 목마름, 이별에 대한 흐느낌, 그리움에 대한 절절함 끝에 시인이 도달한 것은 구도자적인 순결함으로서의 평정심이다. 시인의 가슴 속에 회오리치는 감정의 격류를 결국 잠재우는 것은 구도자적인 순결함에서 오는 마음의 깊이와 넓이에 대한 깨달음이다.
①
사월 초파일/동래산성 범어사/연등 하나 켜져 있다/관음전 불 꺼지고/부처는 그대로 앉아 있다/당신 없는 결혼기념일/누구보다 먼저 피어난다는/복수초를 본다/또 하나의 이름/벙어리 부처를 만난다/돌아서라 돌아서면/문 열 사람도 없는데/입춘대길 붓글씨만/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네
-「범어사 부처」전문
②
마음 그릇 하나 세우는데/큰 뜰이 필요하다/섬과 섬 사이에서/연잎 밥 한 그릇 녹이는 사이/쌀 한 톨에 하루가 지나간다/사람과 사람의 그림자 사이에서/주소 하나 다는 데 큰 벽이 필요 없다 -「공일당」전문
인용된 ①의 시는 시인이 찾아간 범어사의 사월 초파일의 풍경을 읇고 있다. 찾아간 산사의 풍경은 고즈넉하기 그지 없다. 그 고요함 속에서 시인은 행복을 상징하는 복수초 꽃을 보며 곁에 없는 아내를 문득 그리워한다. 그런데도 산사의 모든 것은 원래의 그 자리에 그대로 들어앉은 채 시인의 그리움을 눈여겨 보지 않는다.
시인은 문득 속세의 덧없는 그리움을 지우고 산사의 고즈넉함에 자신을 맡긴다. 시인이 찾은 구도의 공간에서는 속세에서 느끼는 한 순간의 생각도 덧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고요함과 평정심 그 자체가 곧 행복임을 투명한 풍경이 말없이 깨달음을 준다.
인용된 ②의 시 역시 구도의 공간인 ‘공일당’의 고즈넉함을 통해 속세의 부질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속세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영원이 이곳 구도의 공간에서는 그저 한 순간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결국 시인이 속세에서 치루었던 사랑에 대한 목마름, 이별에 대한 흐느낌, 절절한 그리움은 이곳 구도의 공간에서는 그저 한 순간의 부질없는 뜬 구름임을 깨닫게 한다.
시인이 넘어야 할 벽
권태원 시의 궁극은 사랑이다. 그런데 그의 사랑은 아가페적이고 관념적이다. 그가 노래하는 사랑, 이별, 그리움은 정태적이고 식물적이다. 그러나 사랑의 본질은 그런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소 동물적이기도 하고 피 터지는 격렬함도 있다. 앞으로 시인이 극복해야 할 것은 관념적이고 정태적인 사랑을 뛰어넘어 보다 극적이고 동적인 사랑의 다른 모습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권태원의 모든 시는 하나하나의 시편들이 두루 엇비슷하여, 이 시편 속의 사랑이나 저 시편 속의 사랑이나 크게 차별성이 없이 두루뭉술하게 엮이어 각 시편마다 뚜렷한 이미지의 개성이 보이지 않는 흠결이 있다.
그리고 시상을 전개하는 화법 역시 거의 모든 시편이 엇비슷하다. 흡사 기도문을 읊듯, 누군가에게 조곤조곤 속삭이듯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시적 소재나 주제에 맞는 화법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한 각 시편마다 시적 상상력에 방점을 찍을 빛나고 눈부신 비유나 이미지가 없어 시를 읽고 난 뒤의 감동의 파도가 쉽게 허물어져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시인 권태원의 시는 기행을 일삼는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한 편 한 편의 들끓는 시적 감정을 구도자적인 순수함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편들은 마치 그의 기행이 거짓이라도 되는 것처럼 진실하고 순수하고 깨끗하다. 그렇다. 그는 오늘도 어느 거리를 거닐며 기행을 일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기행 틈틈이 눈을 밝히며 세속의 거리에서 빛나는 시적 소재를 건져내고 있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속된 세상에서 속되지 않기 위해 짐짓 기행을 일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거리에서 그를 만나거든 피하지 말고 그의 손을 맞잡고 그윽하게 그의 눈을 바라볼 일이다. 그것이 곧 권태원 시인에 대한 최고 최상의 예우인지도 모른다.
한 순간이라도 그와 함께 짐짓 기행을 일삼아 볼 일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희열을 맛보게 될 수도 있기에 말이다. 타고난 천재시인 권태원도 벌써 70을 눈앞에 바라보고 있다. 세월 참 빠르다.
2018년 봄, 수문재에서
* 김문홍 문학박사·소설가·극작가·연극평론가·동화작가
현 부산공연사연구소 소장
詩를 쓰면서
살아가다보면
아름다움은 마침내 우리들 생의 뿌리다
가난과 진실이야말로 우리들의 詩다
밤이 깊어갈수록 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리는데
별빛 하나가 어두운 우리들의 길을 밝힌다
아 아,
누가 이 땅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던가
촛불도 꺼져가는 빈 방에서
詩를 쓰면서
나는 슬픔의 꽃나무, 눈물의 꽃나무를 혼자 키운다
세상을 바로 알기 위하여
행복과 희망을 새롭게 만들기 위하여
오늘밤에도 만난다
그대들의 별을
그대들의 눈물 섞인 아침이슬을
공일당空日堂
마음 그릇 하나 세우는 데
큰 뜰이 필요하다
섬과 섬 사이에서
연잎밥 한 그릇 녹이는 사이
쌀 한 톨에 하루가 지나간다
사람과 사람의 그림자 사이에서
주소 하나 다는 데 큰 벽이 필요 없다
새
산을 하나 가졌으면 한다
뻐꾸기 몇 놈도 키우고 싶다
아무것도 없어도
나에게는 詩가 있다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
사랑한다는 것을 노래하고 싶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한 마리 새가 되어 노래하고 싶다
눈 오는 날 너에게 가고 싶다
비 오는 날 너에게 말하고 싶다
초승달
중앙성당 성모상 아래 누가
촛불 하나 들고 간다
아무도 없다
너는 오지 않고
꽃은 피지 않고
기도할 시간은 남아 있다
당신은 떠나고
까치 한 마리 창밖에서
아침을 울다 간다
나는 누구인가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날 때와 죽을 때를
아무도 모른다
내가 너에게로 가는 거리와
네가 나에게로 오는 거리도
나는 모른다
나에겐 집이 없다
나에겐 사랑이 없다
사랑하라
기도하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울지마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용서하라, 자신이 좋아하는 詩처럼
보이는 모든 것을 믿지 않는 것처럼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생의 계단
사랑하라
지워라
버려라
놓아버려라
나의 것이든
당신 자신의 것이든
모든 꽃이 시들듯이
감나무 곁에서
바람이 분다
어두워지는 시간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산이 산을 벗어버리고 싶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리라
한 번쯤은 죽음을 생각한다
잠시 앉았다 온 곳에서
씨앗들이 묻어왔다
그대로 살아 보기로 한다
돌이 되어 잘 살고 싶다
빈 집
혼자 남았다
아직 다 내려놓지 못했다
아직 다 버리지 못했다
오늘은 하얀 산국이 피었다
누군가 소나무 숲에 있다
이제는 아무도 슬픔이라 말하지 않는다
들판을 지나온 바람이
대청마루에 누웠다 가곤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적막이 남아 있다
빈집에 꽃이 피었다
나무는 나의 스승이었다
물 빛
너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날 밤, 나는
날아다니는 물고기가 되었다
울음소리에 잠이 깬다
누군가 죽었다
언젠가 내게도 뿌리내리고
싶은 곳이 있었다
내 고통은 그곳에서 샘물처럼 올라온다
꽃처럼 씨앗처럼
싸우지 않을 수 없을 때
깨우침은 온다
매화나무도 외롭고 나도 쓸쓸하다
매화는 매화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고요하였다
노을 앞에서
사랑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나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도
사랑의 한 나무에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봄이 되어도 꽃이 붉지를 않고
비를 맞고도 풀이 싱싱하지를 않는다
살다 보면 스스로 작은 울음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서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어서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희망이 되어
모두들 어디로 가려는가
다대포에서
사랑을 잃고 가슴속에
피눈물을 깊이 묻는다
비로소 너는 두껍고 낡은
깃털들을 벗어 던진다
서로 다른 너무 먼 길을 돌아
부질없는 밤까지 왔다
살아오면서
너는 너무 많은 것을 버렸나보다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어쩌랴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랴
눈부시게 아름다운 꼿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빛나는 잎만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물 줄 모르는 첫사랑의 상처를
누더기에 감춘 채 살아왔다
세상의 돌과 흙에 짓눌린 뿌리로 살아왔다
벙어리 부처
사월 초파일
동래산성 범어사
연등 하나 켜져 있다
관음전 불 꺼지고
부처는 그대로 앉아 있다
당신 없는 결혼기념일
누구보다 먼저 피어난다는
복수초를 본다
또 하나의 이름
벙어리 부처를 만난다
돌아서라 돌아서면
문 열 사람도 없는데
입춘대길 붓글씨만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네
못난 꽃
상처 없이 어쩌랴
봄이 오는가
상처도 없이
어찌 깊은 사랑을 할 수 있으랴
사는 일이 참 쓸쓸해서 고맙다
외롭지 않고 어찌 詩人일 수 있으랴
반쯤 저문 달 혼자 바라본다
내가 처음 눈을 열어
세상을 보았을 때 꽃밭이 있었다
너는 봄비가 좋다고 했고
나는 바람이 좋다고 했다
오늘도 운명처럼 바람은 분다
왜 어디에도 없는가, 나의 사랑은
너에게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많은 들꽃 중에
한 송이 꽃일 뿐인
너를 더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무야 이 넓은 세상에서
내게 기대야 하는 이 시간을 용서해다오
별 하나가 따라온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시간에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나무들이 바람에 서서 흔들리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돌려보내고
빗속에 혼자 돌아가고 있는
내 평생의 꽃잎을 생각했다
촛불예수
詩 쓰지 마라
몸 아프지 않고서야
어찌 詩를 쓰랴
꽃을 볼 것이 아니라
꽃을 떠받치는 꽃기둥
꽃의 심지를 보세요
나도 그만
저 별에 돌아가 눕고 싶다
꽃 피는 날보다
꽃 지는 날이 더 쓸쓸했던 날이 있었다
낙 화
나의 사랑은
이슬처럼 별처럼 아름답다
내 소중한 나를 다 버려도
사랑의 상처는 너무 오래 남는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사랑의 길
사랑은 사람을 다스린다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지만
나는 나의 사랑을 보내지 않았다
너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맹세하는데도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만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도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오늘도 못 만나서 아프다
오늘 하루도 못 잊어서 슬프다
그래도 사랑한다 친구야
너만을 사랑한다 친구야
고 백
오늘 하루를
사람답게 살게 해 주십시오
비록 지금 현재 가진 것이 없더라도
모든 것 버리고도 더 풍부하게 살 수 있도록
가난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소서
사랑과 희망으로 살게 해 주소서
얼마나 더 기도해야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사랑도 죽음마저도
들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소서
연리지 생각
당신은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다
당신을 다시 사랑할 수만 있다면
한 번에 한 사람씩
하루 종일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님
침묵 속에서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세요
예수님은 말없이 듣고 계실 뿐,
잠언이 없는 시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깨달았더라면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 없이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려고 하면
어떤 것도 무소유해야 한다
작은 기도
사랑이 필요한 곳에는
제가 달려가겠습니다
누구에게든지 가서
나무가 되고 새소리
물소리로 흐르겠습니다
기도할 때
내 마음은 바다로 갑니다
기도할 때 내 마음은 숲으로 갑니다
사계절 내내 당신의 소나무처럼
착하고 푸르게 살아가겠습니다
기도할 때
내 마음은 집 보는 햇살이 됩니다
이제는 행복한 별이 되어
진달래꽃으로 웃으면서
노래하고 싶습니다
하루에 한 번 만이라도
하루에 한 번 만이라도
당신을 마주보고 싶다
하루에 한 번 만이라도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다
길을 걸으면
할 일 없이
길을 거닐다 보면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당신에게 가고 싶다
하루에 한 번 만이라도
하루에 한 번 만이라도
해운대
때때로 삶이 까닭도 없이 서러워지거나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에는
해운대 동백꽃을 말없이 바라보아라
세상에 내어줄 것이 많아서
갈매기들이 인생의 모래밭을 날고 있다
삶은 늘 슬프지만 그래도 살아야한다고
밤새도록 파도소리는 나를 지우려고 달려온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해운대에 가고 싶다
늘 가슴 한 쪽이 비어 있는 사람들은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별이 되는데
밤바다를 보지 않은 사람하고는
인생의 슬픔을 이야기하지 말아라
봄날 제비꽃이 인간의 바다를 열고 있는데
여기에 무엇을 더 채워야 행복하겠느냐
무엇을 더 잃어야 사랑을 다시 시작하겠느냐
용두산공원
밤새도록 첫 눈이 내립니다
산모롱이 한 굽이 한 굽이 돌고 돌아 둥근 보름달을 만나러 갑니다
산새가 다시 울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잠깐 눈발이 그쳐 있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당신이 자꾸만 보고 싶습니다
그립다는 건 풀잎들이 슬쩍슬쩍 등을 밀어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뒷걸음치는 꽁지가 하얀 노루꿈을 꾸었습니다
오후내내 당신은 속이 빈 나무처럼 서 있었습니다
산미나리를 한아름 껴안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세상이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사랑한다는 건 하늘에 누군가 있어 외로워지거나
저 홀로 울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대의 몸에서 어느새 연꽃이 피고 있습니다
시냇물은 빠르게 움직이고 구름은 말없이
엉킬 여유도 없이 있는 그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나는 너무 너무 아팠습니다
길을 걸으면
길을 걸으면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면
눈물이 난다, 그저 눈물만 난다
보이지 않는 하늘
갈 곳도 없고
같이 갈 사람도 없다
어제까지 따라 다니던
햇빛 한 움큼마저
나를 떠난 오늘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나
누구를 만나야 하나
살아 갈수록
나의 별은
안으로 안으로 떨어지는데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면
미안해진다, 자꾸 미안해진다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기도하게 하소서 잠들기 전에 사랑과 희망을 기도하게 하소서 잠들기 전에 보이지 않는 예수도 만나게 하소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고통도 함께 나누게 하시고 가난한 사람들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도 보게 하소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나는 그대의 쓸쓸한 그림자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슬픔의 힘으로 눈물의 힘으로 당신을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가까이 혹은 멀리서 아직도 내 핏자욱 자욱 속에 꿈틀거리는 마지막 남은 뜨거운 그리움 하나로 당신을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어쩌다 어쩌다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보다는 깨끗한 티슈 한 장과 같은 당신의 삶 속에서, 촉촉히 적셔오는 가을비 작설차 향기 속에서 나는 늘 그대의 쓸쓸한 그림자이고 싶습니다 쓸쓸한 그림자이고 싶습니다
고 독
나를 완전히 비우지 않고
어떻게 당신 안으로 갈 수 있습니까
어둠 속에서도 별들은 보이지 않고
외로운 사람들은 첫 눈으로 내리는데
어떻게 하면 당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는 일과 죽는 일은 슬픈 것이라고 하는데
나를 완전히 버리지 않고
어떻게 당신을 만날 수 있습니까
눈 물
당신을 부르면
당신이 아닌
모든 것들이 떠오릅니다
길 아닌 길들
말 아닌 말들
그래도 목이 말라
다시 한 번 당신을 부르면
당신 말씀이 아닌
모든 것들이 사라집니다
내 안에 있는
용서 아닌 용서
사랑 아닌 사랑
간이역에서
잘 가라
사랑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이별도 인간적인 것이다
우리 헤어져도 울지 말자
다시 만나자고 약속도 하지 말자
당신은 처음으로 내가 사랑한 사람이었다
첫 눈이 내리는 간이역에서 만나
함박눈이 내리는 강가에서 헤어지던 날
갈 길은 멀고 눈사람도 없는 겨울 밤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똑 같지 않느냐
만나야 할 때에 헤어지고
그래도 사는 날까지 살아보겠다고
서러울수록 새 봄을 기다린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성당의 새벽미사 종소리가 멀리 울려퍼지기 전에
미리 쓰는 유서
스님,
죽음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육신은
내가 잠시 걸친 옷일 뿐인 걸요
더 이상 늙지 않을
영원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깊고 맑은 말은 향기로 남는다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이별 노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사랑을 잃고 나는 우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우리들의 분노도 솟아오르네
슬픔이거나 이별이거나 한恨이거나
사랑의 잔을 마시고 싶다
목이 마르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고 싶다
연 꽃
먼 곳 수평선 푸른 마루에 눕고 싶다
물속까지 들어오는 여린 별처럼 살다 갔으면
물비늘처럼 그대 눈빛에 잠시 어리다 갔으면
당신과 함께 흔들리는 배로 잠시 흘러갔으면
들국화
사랑한다, 말을 아껴야지
용서한다, 참고 참고 기다려야지
용서한다, 그대 떠난 자리
용서한다, 들국화가 피었다
혼자 속삭이는 말
돌아서서 지우는 눈물 한 방울
금정산
물소리 속에서 그 여자가 울고
새소리 속에서 그 여자가 흐느끼고 있다
바람소리 속에서 그 여자가 사라진다
내가 고통을 견디는 동안
고통이 그 여자를 견디는 동안
꽃그늘 아래서 내 인생이 지나가고 있다
슬픔의 힘은 고요하다
봄비 건너는 나비처럼 적막하다
새가 날았다
금정산이 쩌르릉 쩌르릉 울었다
그 여자가 생각날 때마다 울고 또 울었다
더 늦기 전에
내 안의 또 하나
나를 찾아보라
고요하게 앉으면
주의 깊게 마음을 바라보면
지혜와 어리석음이
모두 마음 안에 보인다
그대가 문을 열었으면
그대가 닫아라
무덤과 무덤 사이를 거닐면서
묘비명을 읽어 보라
주의 깊게 읽으면
맑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죽은 자들이 나의 참된 스승이다
영혼을 바라본다
그 안에는 별들이 빛나고 있다
사진가 김탁돈
그대 마음 안에
한 여자가 있네
그 여자의 마음속에
그대는 없네
나 이제 당신을
미워하지 않으리라
눈이 그치고
다시는 비치지 않을 듯싶던
집 보는 햇살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는지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는지
당신은 사막의 별
나는 바람, 그리고 모래
당신은 종이배
나는 반달, 그리고 분꽃
옹기골 조경희
바다의 문이 열리면
거기 동굴이 있다
박달나무 숲과 하늘과 햇빛
깊고 깊은 바다의 동굴이여
영원한 바다의 침묵 속에
고래의 등 쪽에
삼미터나 되는 깊은 상처
밍크고래 한 마리
장생포 어판장에 온다
고래는 그물에 걸린 채 죽고
참돌고래 다섯 마리가
수면 위로 날아오르고 있다
* 부산시 중구 중앙동 쭈꾸미마을 010-5628-7852
시인 강문출
말향고래들이 헤어쳐 가는
남해 바다
파도 소리 선연하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대곡천
물을 거슬러 가면 거기
고래가 산다 돌에 새겨진 고래들이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울고 있다
포경선 달려가고
작살포가 발사된다
고래가 흘린 피 소금물에 섞인다
부평시장 ‘경진사’
오늘까지 잘 살았습니다
당신이 떠난 뒤에도 미처 몰랐습니다
조그만 두 눈에서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낌없이 당신이 주고 간 사랑의 에너지
혼자서 기도할 수도 없어
눈 감고 입 다물고 있었습니다
더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어제가 되어버린 오늘까지
* 부산시 중구 부평시장 경진사 010-8544-8898
메멘토 모리
풍경소리 아름다와라
매화차도 향기로와라
메멘토 모리
형제여, 우리가 죽음을 기억합시다
우리 육신의 나이는 있지만
영혼의 나이는 없으리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늘 새롭게, 늘 푸르게
당신 안에 있으면
당신 안에 있으면
가진 것이 없어도 좋습니다
당신 안에 있으면
바보가 되어도 좋습니다
당신 안에 있으면
할 말이 없어도 좋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도
사랑하면 보이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들리지 않는 것도
사랑하면 들리는 것입니다
이슬처럼 별처럼
혼자 사는 사람은 아름답다
꿈 가까이 별 가까이
모여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눈물 가까이 슬픔 가까이
젖어 사는 사람은 평화롭다
가난 가까이 고통 가까이
함께 사는 사람은 자유롭다
눈은 내리는데
산천초목 위에
눈은 내리는데
외로운 사람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구절초
내가 살면서 당신 곁을 떠난다면
당신이 살면서 내 곁을 떠난다면
우리 서로 별이 되어 새벽마다 만나자
내가 죽어서 다시 당신 곁으로 간다면
당신이 죽어서 다시 내 곁으로 온다면
우리 서로 물이 되어 꿈길에서 만나자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다
때로는 당신 잠 속에서 맑게 고이다가
때로는 당신 꿈꾸는 장미 속에서
남 몰래 떠돌아다닌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사랑도
우리들의 추억도 입맞춤도
흐르고 흐르면 물방울이다
그래 그래
나는 너의 눈물 같은 그림이다
아아,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다
때로는 바람으로
때로는 새처럼
아아,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다
그림자
물체로 빛을 가로막아 그림자놀이를 합니다 그림자는 쥐, 고양이, 아기 사슴이 됩니다 그러다가 딸애는 벽에 흰 종이를 오려 붙이고 손가락으로 집 나간 강아지의 얼굴을 만들어 봅니다 햇빛이 가려지면 나타나는 그림자, 그림자가 몸에서 떨어지게 하려고 딸애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철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땅에서 공을 튕겨도 봅니다 빛을 받지 못하는 딸애와 나는 고독의 절망의 슬픔의 그림자입니다 전깃불을 두 개 켜면 그림자도 두 개가 됩니다 어느 것이 기쁨과 슬픔일까요 희망과 절망일까요 이별과 만남의 한 쪽 그림자를 없애는 것이 모든 것을 포기한 우리집의 숙제랍니다
팬지꽃으로
하루하루 눈물방울로 꽃을 피우는 삭월세방 우리집이 얼음덩이 속에 사는 에스키모보다는 조금은 더 행복할거라고 딸애는 잠 못 드는 밤이면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 때로는 거지 옷 입은 개그맨과 신데렐라 공주가 함께 출연하는 흑백텔레비전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아빠는 “바본가 보다 바본가 보다”며 까르르 놀려대더니 딸애는 빨간 풍선을 불며 완월동 천마산 뒤쪽으로 가버렸습니다 세모꼴 다섯모꼴의 찌그러진 별들과 나뭇잎과 흙, 볏짚으로 쏘아올린 꼭 갖고 싶은 꿈속의 세평반짜리 우리 집, 그리고 딸애를 낳자마자 하늘나라로 인간소풍을 떠나버린 돌아오지 않는 엄마의 젖가슴과 또 이런 것들이 꽃바구니에 가득 그려진 풍선을 하나 들고 심심한 아홉 살 딸애가 떠나버린 자리에는 딸애 얼굴 같은 팬지꽃 한 송이가 저 혼자 피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막걸리 파는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으로
아내는
아침마다 상큼한 희망처럼 내 가슴의 바다를 날아 오릅니다 내가 춥고 내가 피곤할 때마다 깨끗한 소주 한 잔이 되어 내 언 몸을 적셔주기도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내 詩의 쓸쓸한 섬이 되어 푸른 갈매기의 눈빛이 되어, 내 지나온 날들의 상처를 비 온 뒤의 천마산처럼 푸르게 푸르게 물보라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열예닐곱 수녀의 장밋빛 첫사랑 나의 아내는 시골 성당의 새벽 종소리로 내 마음 하늘을 펼쳐 보이는 오오 나의 섬, 나의 별
별
너는 혼자였지 언제나 혼자였었지
심심하면 새벽하늘에서 슬쩍 내려와
너와 나는 이 세상에서
무척이나 할 일이 없는 너와 나는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죽어가는 참새 다리나 마구 뜯었었지
오늘처럼 이렇게 춥고 배고픈 겨울 저녁
너와 나는 빈 갈대처럼 붉은 노을 속에서
속으로 속으로 울고 있었지
청바지에 빨간 티셔츠를 받쳐 입고서
깡소주 몇 잔을 비우더니 세상 속으로
꿈길 속으로 휘적 휘적 걸어가고 있었지
그제서야 세상은 다시 어두워지더군
아,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더니
나를 보고 차라리 죽기라도 하지
사람들은 술만 취하면
한 오백년 아흐, 한 오백년을
청승스럽게도 잘도 불러대는구나
흐음 나쁜 놈들, 여태껏 나는
눈물 젖은 빵과 詩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 혼자 나 혼자서 여기까지 떠밀려 왔지
파도처럼 울면서 울면서
내 生의 바다에 난파선이 되어
몇 개의 바다를 지나서
물새의
한 쪽 날개 끝으로 기우는 바다
아이들은 그 바다를
도화지에 그리고 있다
가장
큰 바다는
조개껍질 속에
저 혼자
웅크리고 있다
서 시
첫 눈이 내리면
별을 바라보자
별들의 눈물을 바라보자
첫 눈이 내리면소리를 듣자
자기의 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자
첫 눈이 내리면 침묵하자
그리고 시인이 되자
첫 눈이 내리면 다 버리자
자기의 거짓이 안 보일 때까지
전통다원 차마당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끊어졌던 꾀꼬리 소리
더욱 새롭네
연못 그늘에 불 켜고 둘러앉아
차 달여 마시세안
개가 맑게 피어 자욱히 얼어버리네
차 달여 시객을 대접하는 데
무슨 약이냐 묻는 스님 어여쁘다
해는 서쪽으로 기우는 데
비는 동쪽에서 내린다
시객詩客과 다인茶人이 한 배를 타고
시원한 강바람이 밤을 삭인다
시냇물 좔좔 흘러 바위에 부딪치고
다연茶緣이 얽혀 가늘게 숲을 뚫는다
산사의 구름과 안개가
여기 놀게 하는구나
영천의 물이 우유보다 더 좋은 걸
한 봉지의 용정茶를 달여 볼까 하노라
좋은 곳에서 좋은 詩 마시니참선하는 경지로다
* 부산시 부산진구 영광도서 위 051-808-2865
금정산 부전선원
깊은 숲은 비 오지 않아도
비취색으로 옷이 젖는다
절이 구름 속에 파묻혀
속객俗客이 드문데
별들이 새벽에 흩어져
다시 숲에 저녁이 찾아드네
삼시三時로 차를 나눈다
차 마시고 나자 쇠복소리 간간히 들려온다
다로茶爐가 온돌에 얹혀 있는데
누가 내 집을 가난하다고 탓하리오
차를 마신 끝에 서로 외로운 마음을 털어놓는다
푸른 물 흰 구름이 깊은 것만을 알았노라
명경지수 같은 마음으로
차약으로 가래를 삭히고
귀한 벗 하안거夏安居에 모여드니
차 생활의 설계 또한 감미롭다
*부산시 동래구 아시아드대로 231번길 27. 010-3052-5078 금정산 부전선원 안국 스님
대각사
찬란한 그 봄도 다 두고 가야지
단풍도 다 내려놓고 가야지
아무 노래도 부를 수가 없다
꽃이 피면 뭐 하노 언젠가는 다 지고 말 것을
꽃이 또 지면 뭐 하노 언젠가는 다시 피어날 것을
온 몸에 꿀벌같이 잉잉거리던
세상에게 미안하다 사랑해서 미안하다
고통도 절망도 다 지나가는데
사랑이 가만히 서 있다
꽃 필 때 지운 편지를
꽃 질 때 다시 생각한다
꽃 타는 마음에 상처가 나리니
상처 받은 그대를 껴안기에
나는 너무 작다 멀리 있는 사랑이여
아무도 아프지 않은데
밤새도록 혼자 아파하며
누군가의 마음속에 촛불 하나 켜 놓자
아무것도 가질 수 없기에 누군가를 용서하자
상수리나무 사이로 별 하나 반짝인다
* 부산 중구 광복중앙로 15. 051-245-8781
물 위의 집
차 달이는 아궁이에 연기 처음 일고
향로에는 불이 아직도 따뜻하다
검은 구름에 햇살 많이 새어나오고
창틈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오른다
촛불 심지 지르며
기울어진 평상도 꿈에 들기는 넉넉하다
차 달이는 연기 나는 곳에 학이 날고
약 절구 두드리는 때 그름이 머뭇거리네
차 달이는 누런 잎새 그대는 아는가
詩 쓰다 숨어 삶이 누설될까 두렵네
무쇠 주전자에 차 달여
나그네를 대접하려
질화로에 불 지펴 향을 사르도다
단풍 물든 가을에
무엇으로 맑은 수심 위로하나
맛 좋은 새 차가
옥사발에 가득하네
바보 시인
오늘 하루도 천둥 치듯
벼락 내리듯 살아왔습니다
가끔은 나도
산을 하나 사고 싶습니다
뻐꾸기 몇 놈도 키우고
시냇물도 흐르게 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깊은 산 속에서
그대가 나의 뿌리였을 때
그때마다 나는 착한 보리밥이 되어
그대를 감싸안고 싶었습니다
흰나비가 소매도 걷지 않고
봄비 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시인 성창경
내 애인은 연약하나
길을 걷는다
내 첫사랑은 외로우나
길 위의 길을 버리지 못한다
세한도歲寒圖 속으로
물새 한 마리
날아와 앉아 있을까
내가 가는 길 앞에
누군가 오고 있다
완월동
삶이
내게 말을 걸었다
첫 눈이 내린다
첫 사랑이 내려온다
모두가
순간의 꽃이다
단풍나무 옆에
상수리나무 옆에
내 애인도 있다
모두 모두 무죄이다
첫사랑 반달
아프다
내가 사랑했던 연인들마다
모두 떠나버리고
이제는 모두 폐허다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꽃핀 자리마다 왔던 사람들
모두 부서진 채 하나 둘 떠나고 없다
몸이 슬프다
버림조차 받고
사랑의 詩를 쓸 수 있을까
부질 없는 부질 없는 나의 詩처럼
낮에 나온 반달처럼
물 빠진 연못처럼
나의 첫사랑
소주병은 저 혼자 울고 있네
시 인
못통 속의 못이
모두 구부러져 있다
살이 말라가고
흰 뼈만 남는다
외로워서
바닷바람에 말 걸고
너무 보고파서
혼자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꽃을 밟은 상처
아직도 아프다
빈 상자
희망 없이도
책은 잘 읽힌다
텅 빈 관의 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한다
사랑 없어도
여자와 만난다
비둘기 꿈을 꿀 때마다
무죄를 기다리며
연애를 한다
빈 상자는 가능하다
중심을 비워 둔 채
나는 빈 상자일 수 있다
카페 '음악에'
내려놓고 텅 비어라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 그대여
지금 들고 가는 것 너무 많구나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는
밤이 되면 무엇이든 잠재우신다
저녁에는 어두워지는 법
모두 모두 비우고
지우는 연습을 하라 그대여
미안하다 연락을 끊고 지내서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다
다시 너를 보고 싶다
* 부산시 중구 대각사 뒤 010-2899-6378
DJ 정병호
사랑 노래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 한다
진정 진정 잊어버려야 한다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가랑잎 같은 손에
별을 하나씩 나누어 주어야 한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
나의 가슴은 그대의 밤을
지키는 등불이 되고 싶다
사랑한다고 용서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가난하기 때문에 너를 버려야 하는가
삶의 비밀
강물은 흐를수록 깊어지고
차가운 돌은 꺾일수록 고와진다
낙엽은 지는데
뜰 위에 있는 나
다시는 이별을 생각하지 말자
기울어지는 황혼에
내일 만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사랑이여, 보아라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바위틈에 매어 놓은 목란배 한 척
그대 사는 쪽으로
노를 저어 가고 싶다
이별 노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사랑을 잃고 나는 우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우리들의 분노도 솟아오르네
슬픔이거나 이별이거나 한恨이거나
사랑의 잔을 마시고 싶다
목이 마르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고 싶다
나는 오래 걷는다
아무도 오지 않는 빈 방에 앉아
부처처럼 꽃잎 지는 나를 보았다
무엇인가 작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보았다
자루는 무엇을 담아도
슬픈 무게로 남아 있다
봄날이 오면 동백과 동백 사이
동박새 한 마리가 울고 간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화엄경華嚴經은
후두둑 후두둑 여름 우레를 따라갔을까
국숫집
꽃도 새도
내 목숨도 서서히
무너지고 싶은 곳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 간다
예수는 한 나무 아래
오래 머물지 않았는데
나는 홀로 의자에 앉는다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가랑잎이 지는데
그대가 나를 받아준다
가을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가을에는 하늘도 바닥이 있다
슬픈 샘이 하나 있다
법구경
문을 벗어나도
이별의 문을 벗어나도
문 바깥에 문이 또 있다
나무도 기대어 울고
싶었을 것이다
텅텅 빈, 빈 집들
가슴 속도 텅 비고
새들도 날아가버렸다
모든 빛은 제 몸을 태운 것이다
오늘 하루도 천둥 치듯
벼락 내리듯 살아왔다
어느새 오이처럼 늙고
토란잎처럼 시들었다
빈 의자
사랑을 잃고
측백나무 곁에 서 있었다
참새 떼가 한 장의 백지에
깨알 같은 울음을
소나기처럼 쏟아놓는다
나의 사랑은 흘러간다
참새 떼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측백나무에는
나의 사랑이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후두둑 후두둑
허공의 적막풀잎에 내려 앉던 그들은
사 랑
헤어졌다
만났다
다시
헤어졌다
울퉁불퉁한
뼈 같은 그대여
네가
내 손을
잡아주었구나
첫 눈
네가 그리운 날은 혼자 울었다
울다가 울다가 잠이 들었다
네가 정말 보고 싶은 날은
詩를 썼다 음악을 들었다
네가 정말 하루 종일 생각나는 날은
꽃을 보듯 너만을 바라보았다
그리움
바람 부는 날에도
너가 보고 싶다고 물 위에 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오늘도 나는 기다렸다
네 눈 속에서는
언제나 촛불이 타오른다
네 몸에선
늘 난초꽃 향기가 난다, 물빛
너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당신은
아직 모르고 있다
입 속에 남아 있는 말
꽃이 되고
향기가 되고
노래가 되고 싶다
나에게
너는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좋다
부르신 교회
하루 종일 집 보는 햇살이라도
그대 앞에 있게 해 다오
생각하지 말자고
다시는 생각하지 말자고
살다 보면
눈물 날 일도
많고 많지만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그대 생각 내게 머물므로
나의 세상은
빛나는 사랑이 되네
그 사람 하나가
세상의
전부일 때도 있었습니다
* 부산시 중구 용두산공원 중앙성당 앞
빈 병
봄날이 오면 누이야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종이 거울을 들여다보자
하도 네가 안 보여서
하루에도 몇 번씩
둥근 거울을 들여다본다
울지 마라
꽃이 없는 빈 병이 아름답다
이 세상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부산 송도
일찍 꽃피우려고
앞서 가지 마라
꽃은 제 향기로 몸을 버틴다
오랜만에 바닷가에 오니
바다처럼 하루 종일
당신생각만 난다
바다와 같이 당신도
나만 사랑해 주세요
행 복
사랑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너를 향해 기도한다
당신 가슴 안에는
태풍 몇 개
당신 얼굴 안에는
천둥 몇 개
당신 영혼 안에는
벼락 몇 개
사랑한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민주공원
아버지는 죽어서 동산을 가졌다
땅 속 깊은 어둠 속에서 뿌리들이
잠에서 깨어나듯이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어 있는 민주공원
푸르고 푸른 무덤이 저 들판에 서 있다
어머니,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잇는 싸리빗질 소리
책상에 낙동강 강물을 올려놓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를 만나는 시간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도 갈 수 있는 길
당신에게로 가는 문처럼
밤새 오륙도에서 떠밀려와
해안을 씻어내는 당신에게
얼음 정원을 선물하는
추억의 방 민주공원
제주 통나무펜션 담향
죽어서도 꽃이 된 당신은
신새벽마다 가오리연 한 채로
내게로 가까이 온다
주전자섬이 보이는 방
제비는 언제부터 빈 집이 된 처마에
매달려 잠을 자는지
단풍 고운 복병산 너머
가을밤 귀뚜라미 울음소리
하루 종일 詩가 써지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는 詩
반지하의 창에 어른거리던 저녁 빛이
작고 구부정한 어머니의 등에
실루엣으로 남아 있다
* 제주시 한림읍 동명3길 58. 064-796-1142
기도가 사랑이 된다
사랑을 잃고
세상의 모든 사랑詩를 읽는다
내가 먼저 사랑해야 사랑받는다
누구나 사랑 한번쯤은 해봤으리라
사랑은 음악과 눈물과
詩로 내게 온다
다시 한 번 만나고 싶고
끝없이 사랑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한다
힘들고 슬픈 일들이
다 녹아내리는 기분이 사랑이다
천년의 바람
지도에도 없는 집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빛의 사서함 앞에서
오지 않는 애인을 기다린다
어쩌면 당신은 우리에게 온
배롱나무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없어도 바람이 청량해서
나른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당신은 그냥 물이 아니라 헤엄치는 물
당신은 그냥 땅이 아니라
무작정 기어가는 땅
말할 수 없는 사랑
한없이 서럽고 오래 오래
봄날은 온다 바보야, 바보야
우담바라
누구나 사랑 한번쯤은
손으로 마음으로 입술로 해본다
사랑이 끝나고 나면
누구나 생각날 때마다 울게 된다
외로워하지 마라
슬픔의 힘으로 눈물의 힘으로
사랑의 빛이 되리라
오후 여섯 시
배롱나무 아래에 서면
나의 사랑은 가장 길어진다
사랑이라는 눈물의 뼈
쓸쓸해서 머나먼
이별이라는 말할 수 없는 애인
태종대에서
그리운 예수도
보고 싶은 부처도
언제나 좋은 세상
평생 행복한 인생이길 소망한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우리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
행복의 우물이 흐르고 있다
사랑하기 전보다
사랑할 때는 사랑에 더 열중하자
설령 사랑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사랑할 때는 정말 행복했다고 생각하자
아득하면 되리라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은
노래가 아니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사랑을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다
단 한 번에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내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사랑은 나보다도 잘 알고 있다
시인의 도서관
민주공원에 들어서면
중앙도서관이다
숲 속의 도서관
책 속의 책
책 밖의 책이 더 많다
잡힐 듯 아쉬운 듯 살아 있구나
몸도 마음도 쉬며 배불리 얻어 가는
시인의 도서관
세상의 모든 빛인가 그늘인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행복하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마다
모두 작고 보잘 것 없는
섬과 섬 사이에서 살고 있다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물 빠진 연못처럼
하늘바다를 다니던 물고기 물고기들
아직도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내 사랑의 폐허, 폐허들아
미룡사
사랑 한가운데에는
사랑이 없네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그대가 있다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미워하지도 않았다
낮에 나온 별자리를 보면
내가 너무 작아진 것을 느낀다
여러 번 살아서 좋은 나무들처럼
날마다 늙고 병들어가는
이 어두운 생의 통로
다시 빠져 나갈 수 있을까
* 부산시 영도구 동삼남로 11. 051-404-2100
주지 정각 스님
사랑의 말뚝
이별은 왜 독인가
절망은 어찌하여 부드럽게 오는가
사랑을 잃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대는
박해 받는 순교자 같다
다시 보면 은사시나무로
새로 태어나고 싶은 물소리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의 이름일 뿐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로 살고 있을 뿐
새벽하늘에 혼자 빛나는 별 하나
지상에 내려와서
자기의 뿌리를 걷지 않으리라
한 여자의 풍경
나의 사랑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도하지 않아도 온다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너의 발자국 따라
아주 먼데서
너는 나에게 오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희망이 있는
절망을 생각하는 동안
민주라는 이름으로
자유라는 풀잎으로
숨결 더운 사랑으로
늙은 낱말들을 통해
어느새 내 사랑은 내 곁에 와 있다
오직 한 사람
헤어진다
내가 사랑을
시작했던 그 자리다
모두 모두 사라진다
꽃이 지고
나에게 왔던 사람들
물 빠진 연못 같다
이제는 아름다운 것
기다리는 것도 부질없다
누군가 아직도 나를 보고 있다
그런 아름다운 폐허
폐허들을 견딜 수 있으리라
그 사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을 때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죽은 나무라고 했을 때
그는 아니라고 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빈 배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라
이미 나는 그곳에 없다
내 무덤 옆에서
잠들지 마라
나는 수천 개의 바람이다
아무도 나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이다
풀잎이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이다
난 이미 거기에 없다
만약에
만일 네가 꿈을 갖지 않는다면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삼분간이 있다면
이제 우리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살아 있는 동안은
오래 오래 행복하여라
잠시 후면 너는 사랑이
기대는 것이 아니고
함께 있는 것이라는 걸 알리라
수천 개의 바람과 더불어
너는 더 많은 걸 배우게 되리라
사람아 사람아
내가 먼저
자꾸 그리고 많이 웃자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내가 먼저
사람이 되자
그리운 예수
보고 싶은 부처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내가 먼저
행복하자
언제나 좋은 세상 만들자
푸조나무 그늘 아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서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자
여행은 힘과 사랑을 선물하네
사랑하는 그대, 그대여
나는 하루 하루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수천 개의 바람으로 사라지리라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당신이여
슬픔의 치료제는 웃음이다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걸
푸조나무 그늘 아래서 배운다
기타 치는 시인처럼
당신이 내 곁에 있으면
겨울에도 춥지 않습니다
하얀 눈 내리는 날
미련 없이 무너져 내리는
당신으로부터 아름답게
이별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당신은 사막에서도
나를 살게 하셨습니다
너무 많이 사랑해서
너무 많이 외로워서
혼자 피었습니다
혼자서 사라지는 할미꽃처럼
피 묻은 세월의 가시들을
견딜 힘도 주셨습니다
당신 앞에만 서면
당신 앞에만 서면
사랑합니다라는 나의 말도
낡은 구두처럼 닳고 닳아갑니다
참사랑에 눈뜨는 법을
죽어서야 사는 법을
당신 앞에만 서면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당신의 별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은 기도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당신 앞에만 서면
새로운 강물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같은 강물로 흐르게 하소서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물소리에 귀를 모으자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 순간의 살아 있음이다
이 가을에 나는
또 길을 찾아 떠나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그 어떤 들꽃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어느새 산이 된다
소나무
큰 거울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다
우리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다
우리가 산을 찾는 것은
그 산에 푸른 젊음이 있어
우리에게 손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
그런 산에 돌아가 살고 싶다
나무처럼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단순하고 담백하고 무심하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명 상
모든 것은
있을 자리에 있어야
살아서 숨쉰다
밖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만물이 살아서 움트는 이 봄철에
안에서 꽃 피어나라
흘러가는 강물을
강둑 위에서 묵묵히 바라보듯이
그저 지켜볼 뿐이다
명상은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고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나무다
언제나 나를 지켜보는 산이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아득한 세월을 두고
나를 낱낱이 지켜보는 산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틀에 갇히지 말고
살 때와 죽을 때를 알고 있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
질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
현자賢者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드름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한없이 작아지고 작아지면서
꿈꾸며 깊이 끌어안고 싶다
배롱나무 사이로
멧새들이 가지를 떠난다
둘 다 맞고 둘 다 틀릴 수 있다
풍경 소리 귓전을 두드린다
낮달도 서산마루를 막 넘어가고
누군가 가까이 다가온다
나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바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고래박물관
여기에 오면 보이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 것들이 잘 들린다
귀가 맑아지고 눈이 밝아진다
우렁 우렁찬 그대의 목소리도 만난다
설화가 아니라, 풍문이 아니라
만져지고 손끝에 닿는다
힘센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천지신명을 만나던 곳
숲을 일구고 장수를 기원하는 사람들
저기 저 반구대가 보이네
상서로운 짐승 거북을 닮은
산등성이 벼랑에 암각화를 새긴다
그때 그 모습대로 고래 한 마리 보이네
삼천만 년 전쯤 육지의 고래가
바다로 옮겨 갔다고 한다 고래는 그 바다에서
원시 그대로의 생명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말향고래
우리 사는 동네 아파트 어딘가에
고래 몇 마리 묻혀 있다
수염고래와
대왕고래
흙 속에 묻혀 있다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에이허브 선장이
바다에서 만난 말향고래
당신이라는 말은
당신이라는 말은
참 슬프고도 아름답다
당신이라는 주향酒香은
참으로 영롱한 그 빛깔
당신이라는 사람은 참 소중하다
당신이라는 향기는
어느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북소리같다
당신이라는 말은 참 봄날 같다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술잔이 비는 만큼
당신도 늙어 가네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아픔을 이겨내고
절망을 극복하고
실패를 성공하고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는 인간의
나무가 청춘이다
아직도
희망이 있으니까
우리는
아직도 청춘이다
오지 않는 편지
사랑하는 일보다 헤어지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는 일이 더욱 더 어렵습니다
눈물처럼 첫 눈 내리는 기차역에서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대를 기다리면 무엇합니까
오늘 하루만이라도
사랑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겨울이 되어도 더 이상 내리지 않는 눈처럼
실패한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내가 왜 사랑에 실패했는지 반성합니다
태풍이 지나간 바다를 바라보며
아직도 내가 왜 사랑의 나그네인가를
하얀 갈매기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 대
내 그대의 별이 되어
외로운 사람에게 가고 싶다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
가슴에 파도소리 넘치고 사네
내 그대의 꽃이 되어
가난한 사람에게 가고 싶네
그대를 부르다 못해
매일 밤 가슴에 등불 하나 밝히고 사네
눈 물
당신을 부르면
당신이 아닌
모든 것들이 떠오릅니다
길 아닌 길들
말 아닌 말들
그래도 목이 말라
다시 한 번 당신을 부르면
당신 말씀이 아닌
모든 것들이 사라집니다
내 안에 있는
용서 아닌 용서
사랑 아닌 사랑
판화가 강동석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살아갈수록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세상 싸움의 한 가운데에서
나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가슴 속의 별들을 헤아려보고 싶다
당신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리울 때마다
나도 들꽃으로 피어서
당신의 기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달맞이꽃
누군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밤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죄 지은 사람들을 위하여
오늘 하루도 울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하여
가슴 속에 등불 하나 밝혔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저녁별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오늘밤에도 별 하나가 빛나고 있습니다
만 행
사랑은 공기처럼 가볍게
저마다 독특한 꽃망울 하나씩
가슴에 넣고 다니네
찰랑 찰랑 윤기 나는 머리카락처럼
봄날이 오면
여자가 남자보다
남자가 여자보다
봄바람처럼 변신하는 것일까
삼천리금수강산 허리 둘러 둘러
목련 개나리 벚꽃이 흐드러지게 바람에 날리고
해운대 동백섬에는
공산명월이 구름에서 뛰어 내리네
보름달 얼굴 사이로
고운 최치원 선생은
보이차 한 잔을 비우시며
다산 정약용 선생을 만나러 가시는구나
천년 사랑, 동백섬 같은
해운대 동백섬에는 어딜 가나 동백이 있다
동백이 없는 섬은 동백을 심는다
목마를 때
해운대 바다는 물이 아니다
사랑하는 여자의 젖가슴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바다로 떠난 사내의 돌아오지 않는 눈물이다
해운대 동백꽃은
고독이 밀려 와도 울지 않는다
노래하지도 않는다
하늘이여 해운대 바다 앞에서 울고 싶어라
죄 지은 날은 혼자서 울기에 참으로
좋은 섬이다 동백섬이다
오륙도
오륙도에 가면
하늘은 불을 끄고
바다는 파도 이불을 덮어 버린다
늘씬한 알몸인 바다는
밤새도록 잠이 들지 못한다
나는 내일 오륙도 고향으로 가야하는 데
오륙도는 함께 떠나지 못한다
오오, 그리운 오륙도여
우리,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서 살자
바다가 없으면 산을 하나 무너뜨려
바다 하나 만들어 버리자
바다가 보이지 않으면
그래 그래 우리 비처럼 음악처럼
이 세상 바다에 다시 오자
그러다가 그러다가 詩人이 되어
혼자 있어요 때로는 뻐꾸기 울음소리로 만나거나 흐르는 물방울로 남몰래 헤어지거나 나 혼자 풀잎으로 울고 있어요 그렁 그렁 사랑이 막막해질 때, 그렁 그렁 당신의 별이 어둑 어둑한 밤에 내게 다가올 때, 어느 어느 날 몇 시간쯤은 어둠은 어둠 홀로, 슬픔은 슬픔 홀로 갈대숲 어디에 누워 있을까 이 땅의 가을비 몇 음절로 당신 외로움의 핏자욱 자욱 그리다가 오늘은 이별 쓰레기를 버리겠어요 가시내 가시내 입술에 터지는 첫 눈송이로 사랑 사랑이라 적어 놓고, 누구 누구의 깊은 눈동자 속에 처음 쓴 편지는 감추어 놓고 섬과 섬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의 그림자 사이에서 이제는 울지 않아요 빛 가운데로 혼자 걸어가면
당신이 아니시면
당신이 아니시면
홀로 잠들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니시면
홀로 당신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니시면
가을 하늘 단풍 향기에 취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니시면
겨울 들녘 새벽 눈보라를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니시면
끝끝내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니시면
부끄러운 나의 詩마저도 쓸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니시면
죽어서 무엇이 될까, 죽어서 무엇이 될까
아무도 없는 들에서
아무도 없는 들에서
새가 날았다
바람이 분다
바람보다 빠르게
새가 날았다
아무도 없는 들에 서면
더 그리운 얼굴
바람이 분다
바람보다
빠르게
새가 날았다
빈 방에 누워
비가 온다
빈 방에 돌아와 누우면
희미한 삶이 보인다
부끄럽게 부끄럽게 사라진다
어제와 오늘의 그림자
비 오는 날에는
살아있는 그대 멀리 가는 옷자락
부질없이 부질없이 보여온다
비가 온다
등나무 아래로
등꽃이 파랗게 떨어진다
딸애의 어항
아홉 살 딸애는 시내나 연못에서 사는 생물들을 채집하여 어항을 꾸밉니다 일년 내내 햇빛 한 번 들어오지 않는 곰팡이 방에 사는 딸애는 햇빛이 모여 사는 새희망유치원 창가에 어항을 둡니다 어쩌다 어쩌다가 햇빛이 강할 때에는 정치 경제 사회면이 찢겨져 나간 땅바닥에 뒹구는 신문지로 어항 위를 가려줍니다 아홉 살 딸애는 물벼룩 실지렁이 깻묵가루 같은 것을 식사 때마다 먹고 남지 않을 정도로 넣어주지만 물 속 생명들은 라면 부스러기를 딸애처럼 하루에 한 번씩만 먹었습니다
풀 꽃
당신이 내 곁에 있으면
겨울에도 춥지 않습니다
하얀 눈 내리는 날
미련 없이 무너져 내리는
당신으로부터 아름답게
이별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당신은 사막에서도
나를 살게 하셨습니다
너무 많이 사랑해서
너무 많이 외로워서
혼자서 피었다
혼자서 사라지는 풀꽃처럼
피 묻은 세월의 가시들을
견딜 힘도 주셨습니다
운주기행雲住奇行
나, 사랑 없이도 밥을 먹을 줄 안다
나, 소설책보다는 시집이 더 좋다
나, 너의 소식을 오래 오래 기다리고 있다
눈앞에 없는 사람아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여행을 하다 보면 꼭 한 번은 울게 된다
저수지
어디로 가는가
지금, 여기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어제도 오늘도
달라진 데도 없고
길게 길게 꼬리를 끄는
어쩐지, 그 소리만 들으면
눈물 아롱 아롱
보고 싶고 그리운
울 엄마
너는 물의 아이가 되어라
물이 하늘을
비출 만큼 투명하다
물이 어디서든
유연하게 변하듯이
물이 모든 살아있는 것에
생명을 주듯이
일생의 순간 순간을
물처럼 살아나가자
어머니
어둠이 먼 산을 지워버린다
그대가 그리워서 잠 못 드는 밤
징징징 먼 하늘도 금이 가리라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하러 갔을 때
비둘기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대는
마지막 한 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내 인생의 절벽이 되어 버렸다
오늘 밤에도 그대를 꿈꾸었다
길 잃은 짐승처럼 나는 울고 있었다
머나먼 별들이 바람에 펄럭거린다
아, 우리들 生의 아득한 바다에
그대와 나는 작은 섬이었다
멀고도 가까운 그대 그냥 모두 잊어버릴 때까지
가다가 돌아서고 돌아서다 가버린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자꾸만 그리워지는 그대 그대여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먼 길을 돌아서 오고 있는가
개망초꽃
돌아보지 마라 가랑비가 그칠 때까지
죽어서 더 그리운 그대 바람이여
비로소 홀로 일어서는 맑은 영혼이여
누구나 가는 길
그대 그리움에 하늘도 내려앉는다
진실로 진실로 가난한 자
이슬처럼 별처럼 자꾸만 하늘 냄새가 난다
우리들의 길은 어디서 끝이 나는가
풀 하나가, 참 쓸쓸하다
풀벌레가 울고 있다
이 길의 끝에 그대가 있다내
슬픈 영혼이 무너지는
숲 하나를 그대에게 주고 싶다
나의 등 뒤에 누군가가 서 있다
나를 그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사랑하는 이여,별에서도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
참 외로운 개망초꽃 눈동자처럼
두레박 명상
우물은 얼마나 고요하고 깊으면
이슬처럼 별처럼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을까
소금은 얼마나 용서가 깊으면
마음 깊이 눈물을 감추고 있을까
돌아보지 마라 가랑비가 그칠 때까지
별은 얼마나 고뇌에 차면 그토록
얼음처럼 차갑게 푸르게 살아갈까
나는 너의 긴 속눈썹이 되고 싶어
삶에 지쳤을 때는
너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
내 상처 받은 일에 대해
고백하지는 않으리라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 몸 속에 들어 있는 혼
가볍긴 해도 그건 별빛이 아니야
나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사이가 없는 그 곳으로
얼음꽃
작은 가람에 처량한 가을비 오는데
오직 처마에 기대
차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발우鉢盂에 담은 어린
채소잎 껍질 벗었는데
앉아서 평온하니 평상 하나에 족하다
조용히 소나무길
거닐며 스스로 즐거워하네
물 한 병과 한 솥의 차로
갈증 나면 끌고 와 손수 끓이고
옳고 그름과 슬픔과 즐거움 모두 잊었네
눈 속에 보배처럼
훌륭한 다객이 있다면
차를 달여 두드리며
나를 위하여 부르세요
그대가 그대를 대접하며
행식하라 입산하라
구덕산
마음에 벼린
절벽을 세워 두듯
가난한 시인이여
내가 나를 부르듯
저 깊은 구덕산
대나무를 외롭게 불러
내 곁에 세워 두고 싶어라
누군가 세워 놓았던 수많은
인생의 병풍들이 쓰러진다
염주알 같은 눈으로 나를 보면서
저문 길 소를 몰고
파란만장한
生의 굴을 지나간다
그대 내 바람이 되어
- 목칠공예 대한민국명장 김규영
애인과 헤어져 별을 본다
별들이 뜨겁다
사랑하면 별들도 뜨겁다
그대 내 영혼의 별이 되어
꽃으로 피어나라
그대를 지우고 싶다
지우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은
돌 속에 처음부터
부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도 머리도 무게를 더할 때
애인에게 가고 싶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소중한 당신
마음이 슬플 때는 혼자 가세요
말없이 말없이 들여다보면
당신에게선 아련한 오렌지 향기
폭풍우 치는 밤
집 앞에서 너는 문을 두드린다
보리밥을 먹다가
바로 앞 당신 생각으로
밥알 몇 개를 흘렸다
천지간에 온통 꽃이다
아, 생각만 해도
참 소중한 당신
애 인
이제 육십 중반부터는
삶을 죽음이라
죽음을 삶이라 말하자
햇빛 별빛 달빛이 그리우면
슬그머니 이 땅을 누비다가
산산이 조각내어 하늘을 날기도 하자
꽃들 앞에선 가진 것을 버리자
꽃들 앞에선 있는 것을 다 비우자
우리 서로 함께 가자
들꽃의 몸으로 바람의 가슴으로
이별은 별 끝에 있고
그리움은 달빛 끝에서 온다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못하는 고독이 있다
저 산 아래 슬쓸히 서 있는 사람아
별빛이 닿지 못하는 것들이 꽃이 된다
미타선원 가는 길
그리움이 뭐길래
노릇파릇 봄꽃이 핀다
환장하겠다
봄비가 내린다
바람은 모두 젖어 있지만
사람들은 마음의 감옥 안에 있다
시작인가 끝인가, 끝인가 시작인가
용두산에 올라 가만히 바라보면
태산도 티끌들의 세상이다
햇살이 좋아 별빛 달빛이 좋아
하림 스님의 눈물 속에 강물이 흐른다
초파일은 노래하는 날
초파일은 껴안는 달 한라에서 백두까지
부산 영도에서 세상 끝까지
더 붉은 사랑
마침내 더불어 큰 산 이루었네
운지 김기민
꽃, 피어 있으면 그뿐인가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꽃, 지고 말면 그뿐인가
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찬바람이 불면
모든 이의 가슴속에 피어라
후두득후두둑
소리만 남기는 비 그치면
물먹은 동양화처럼 하늘 아래 누워보아라
눈을 감으며
산을 올라보아라
눈을 뜨면서
산을 내려오너라
부산공간화랑
잊어버리자 잊어버리자고
우산도 버리고
그대와 처음 만나던
전통다원 차마당으로 간다
알몸으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세상의 몸을 껴안는다
더러는 하늘을 쳐다보고
더러는 별을 쳐다보고
구부러진 세상 가까스로 견디며
흐느끼고 살아간다
흰 동백 붉은 동백
그대의 붉은 마음 찾아서
노을 되어 수평선으로 기다린다
하 산
떠나는 것들과
돌아올 것들 사이에서
눈물도 가난도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꽃아 꽃아
이제 나는 너로부터 떠난다
지금 여기 그 자리에서
그냥 그냥 피어 있거라
이 세상 끝날까지
오늘은 내가
산을 내려오고 싶다
꽃에게
미움도 없이 사랑도 없이
한없이 걸었다
수많은 아기별들 어깨에 걸치고
아무도 없는
아무도 오지 않는 길을
수없이 걸었다
밤새도록 울면서
오늘 내가 한 일이 무엇인지
내일은 또 누구를 만나야하는지
묵상하고 기도했다
살다 살다 짜증나면
한바탕 회오리춤판 벌이며
그리움도 눈물 한방울도 벗어버리고
산천초목 꿈틀꿈틀 춤을 추리라
홀로 있으면
저 푸른 하늘을
홀로 있을 때 바라보자
나를 버릴 때
어지러운 세상 버릴 수 있다
홀로 있을 때
나는 이승과 저승의 자리를
좁혀주는 노래가 되었다
너와 나, 우리들 사이를
좁혀주는 피아노가 되었다
궂은 날 개인 날
가리지 않는 노래를 불렀다
홀로 있을 때
달이 뜬다 반달이 뜬다
우리 단풍물 든 목소리로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가을 품에 안겨보자
오늘은 내가
누구 한 사람
나를 보지 않는다
저승이 따로 있나
이승이 따로 있나
고백을 해도 속삭여봐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골목까지 얼굴 내민
붉은 장미꽃 한 송이
내 몸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왜 모를까
더는 오를 수 없거든
그냥 두고 그냥 두고
하늘까지 오르리
한 방울의 눈물
꽃피면 돌아오리라
길고 먼 길을 따라
석양 따라 떠난
나의 연인아
들판에 홀로 서서
땅 한번 굽어보고
하늘 한번 쳐다보며
오간 데 없는 나의 사랑아
이슬처럼
별처럼
밤새껏 울고 울어서
한 방울의 눈물
한 방울의 보석을
만들 수만 있다면
행복산책
사람들은 누구나 해질녘이면
이승이 그리워 노을 하나씩
머리에 이고 돌아간다
외로운 사람아
우리 함께
바람의 몸으로 가자
가난한 사람아
우리 함께
들꽃의 몸으로 가자 다
시 피어날 때는
아픈 흔들림으로
다시 질 때에는
다소곳한 몸짓으로
울지 말고 웃어보자
미안해 사랑아
저문 산 아래 외롭게
서 있는 사람아
사람마다 누구나 가슴 속에
산 하나 가지고 산다
너와 나의 이별은
언제나 먼 데서 온다
어젯밤엔 그대 창문 앞까지 갔다
불빛 속으로 눈송이 송이처럼
한없이 울고 싶었다
사는 일이 힘들고 외로워도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내 가슴에 詩가 오는 것이다
나의 상처를
그리움으로 바꾸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내 영혼에 음악이 흐르는 것이다
나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아직도 남아 있는 상처를
한꺼번에 만나는 것이다
그 산에 다시 갈 수 있을까
미루나무와
미루나무 사이
꽃길 있네
그래 그래
꽃길만 걸어라
미루나무 옆에
상수리나무 있네
재가 되어서야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
신 새벽
첫 닭 우는 소리
부처님도 듣고 있겠지
순간의 꽃
세상 밖은 우짖는 비바람 소리
세상 안은
천장 가득히 박쥐들의 묵언소리
이런 날
무슨 사랑이 필요한가
무슨 미움이 필요한가
올라갈 때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내려올 때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삶이 자꾸
사랑을 잃고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한다
봄비 촉촉히 내리는 날
누가 오시나보다
한 두번 내다 본다
오늘 하루도 다 가고 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구나
■해설
비범(非凡), 그 한없는 순수에 대한 사랑
권태원 15시집「하늘지우개」
김경복(문학평론가·경남대 교수)
시인의 운명과 견자로서의 삶
시인 권태원의 시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서두를 의문으로 시작하는 것은 그만큼 그의 시를 말하는 것이 어렵고, 망설여지고, 심지어 꺼려지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먹는 것은 그의 시가 매우 고도의 조직성을 띠어서 매우 어렵다거나 낯설다는 등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실상 그의 시는 그의 삶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의외로 쉽게 다가온다.
그의 시를 말하는 데에 주저하는 까닭은 시가 시인의 삶을 반영하여 나온다는 일반적 전제를 수용한 상태에서 그의 기이(奇異)한 삶을 생각할 때, 다시 말해 그의 보통 사람과 다른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시를 말할 때, 오직 시만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다른 시인들의 시도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권태원 시인의 시는 특히 더 시인의 삶과 연관성 있는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그것은 보통 시인들보다 그의 삶이 말 그대로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인奇人 시인 권태원’이라고 일반 사람들이 말할 때 이는 권 시인이 일반적 삶의 형태를 살아가는 인물이 아님을 드러내준다. 이 글을 쓰는 필자가 아는 범위에서도 그의 삶은 평범치 않다. 일반 사람들이 갖는 일상성의 남다른 점은 차치해 두고라도 가끔 보이는 광인 같은 모습은 흥미롭다 못해 섬뜩한 어떤 두려움을 준다.
무엇이 저 사람의 내면을 휘몰아쳐 아무런 부끄러움도 모르는 채 그야말로 미친 듯이, 아니 사실상 미쳐 돌아다니게 하는가? 그러면서 시인은, 시인이라면, 어쩌면 저 정도의 광증은 있어도 괜찮을지도 몰라 하며 관찰자인 사람들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실제 권 시인이 가끔 일반 사람들에게나 문인들에게 보였던 괴이한 행적 속에서 그가 부끄러움이나 일말의 망설임 같은 것을 느꼈는지, 아니면 정말 아무런 걸림도 없이 대자유를 느끼며 행동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러한 기이한 행동, 남들이 일상적 눈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적 관계나 처신은 분명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므로 기인으로 불렸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때문에 특이한 사람으로서 권 시인의 전기적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의 시를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내내 필자는 망설이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생각해보면 작품론을 쓰는 이 순간 그의 생애를 시시콜콜 다 들어가며, 그리고 그것을 일일이 적시하며 시적 내용을 해설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너무 기계적인 해석이거나 손쉬운 판단에 멈출 가능성이 크다.
그가 기이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남보다 좀 더 시에 미쳐 살았기 때문임을 인정한다면, 그의 전기적 정보를 자세히 몰라도 어느 정도 그의 시적 특이성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시인으로 살기 위해 저런 광기어린 삶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그의 시적 특이성이 될 테니 말이다.
때문에 그의 시 앞에서 시인의 생애가 보여주는 괴상함에 너무 주눅 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가 주는 울림에 집중해도 역으로 그 시 안에 배어있는 시인의 특이성 또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독법은 시인을 이해하여 시를 이해하기보다 시를 이해하여 시인을 이해하는 것으로 나아가자.
그 점에서 하나의 배경지식으로 광기의 시인으로 알려졌던 저 유명한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이었던 랭보의 몇 마디 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괴물적인 영혼을 추구했던 랭보는 그의 시집『지옥에서 보낸 한철』에서 “나는 매우 고약한 미치광이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친구에게 보낸「견자見者의 편지」에서 시인은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치광이와 견자는 서로 관련된 것을 뜻하는데, 이때 말하는 견자는 사랑, 괴로움, 광기의 모든 형태, 모든 독소를 스스로 찾아 자기 속에 흡수하여 그 정수만을 보려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랭보의 전체적 맥락을 고려하면 ‘견자’는 현상적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참된 본질을 꿰뚫어보는 사람이란 의미를 갖는데, 결국 미치광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가리킨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비유적 의미이기는 하지만 시인은 독을 삼킨 존재라는 점이다. 독을 삼킨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고통에 발광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고통의 몸부림이 일상적 사람에게는 광기, 즉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랭보는 이 몸부림의 상태, 즉 환각 상태에서 현상 너머의 어떤 존재의 본질을 볼 수 있는 견자가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본다면 권태원 시인의 행로로 볼 때 권 시인은 일찍부터 제 내면에 독을 삼키고 고통의 화신, 견자로서의 시인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었는지 모른다. 그가 본능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다음 시는 그런 점에서 운명에의 수긍이자 비탄이다.
혼자 살아요 때로는 뻐꾸기 울음소리로 만나거나 흐르는 물방울로 남몰래 헤어지거나 나 혼자 풀잎으로 울고 있어요 그렁그렁 사랑이 막막해질 때, 그렁그렁 당신의 별이 어둑어둑한 밤에 내게 다가올 때, 어느 어느 날 몇 시간쯤은 어둠은 어둠 홀로, 슬픔은 슬픔 홀로 갈대숲 어디에 누워 있을까 이 땅의 가을비 몇 음절로 당신 외로움의 핏자욱 자욱 그리다가 오늘은 이별 쓰레기를 버리겠어요 가시내 가시내 입술에 터지는 첫 눈송이로 사랑 사랑이라 적어 놓고, 누구누구의 깊은 눈동자 속에 처음 쓴 편지는 감추어 놓고 섬과 섬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의 그림자 사이에서 이제는 울지 않아요 빛 가운데로 혼자 걸어가면
-「그러다가 그러다가 시인이 되어」
이 시에 보이는 시적 화자는 어떻게 생각해보면 전형적인 랭보의 견자에 가깝다. 홀로 외로움과 슬픔의 상태에 절절히 빠져 드는 것은 일상적 상태에서 벗어나 환각상태로 들어가기 위함이다. 그래서 “이 땅의 가을비 몇 음절로 당신 외로움의 핏자욱 자욱 그리다”나, “가시내가시내 입술에 터지는 첫 눈송이로 사랑 사랑이라 적어 놓”는 일은 이성적 사유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환상적 형상성으로 환각상태의 모습이다.
그런 상태로의 진입이 가능해지자 시적 화자는 현실적 처지의 외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 존재의 본질, 이 시에서는 그것이 “이제는 울지 않아요 빛 가운데로 혼자 걸어가”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곧 빛 가운데에 홀로 걸어가는 영성적 자아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견자로서 현상적 존재의 외로움과 슬픔 너머에 환한 빛을 내고 있는 자신의 영적 자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에 나타난 발견은 일상적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점에서 깨달음과 상통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에서 말하는 시인은 슬픔 속에서 빛의 자아를 획득하는 존재, 즉 랭보의 견자에 해당하는 존재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시의 묘미는 제목의 어법에서 발생한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시인이 되어’라는 말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로 표현된 말은 권 시인이 시인이 되기까지 거쳤던 파란만장한 삶이 얼마나 신산고초로 얼룩졌는가 하는 점을 암시해준다.
때문에 저 반복에 숨어있는 말뜻은 그 어떤 삶을 산다 해도 결국 제 내면에 이는 독의 불로 인해 시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다시 말해 천형天刑을 맞닥뜨리게 되었다는 고백일 것이다. 그렇지만 시적 화자가 문맥을 통해 드러내는 ‘시인’은 궁극의 지향점으로 설정되는 것 같아 애절하면서도 자랑스러운 느낌을 준다.
화자와 권 시인에게 공히 ‘시인’은 슬프면서도 찬란함을 가지는 역설적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다. 일상적 현실이나 가치로 볼 때는 낙오하거나 패배함으로써 슬픈 존재이지만 정신적 차원에서 볼 때는 그 지상의 고통으로 인해 오히려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됨으로써 찬란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권태원 시인에게 시인은 지고한 존재가 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작품에서 간취할 수 있는 시와 시인에 대한 생각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해와 달 같이 살고 있으면
나는 詩人이 된다
-「작은 소망」
詩 한 편만 가슴에
품고 살아도
나는 이미 부처가 된다
-「5월」
詩가 오는 새벽엔
새소리 물소리에
나뭇잎이 놀란다
-「사랑굿」
위 세 편의 시는 시와 시인이 권태원 시인에게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가를 잘 보여준다. 「작은 소망」에서 ‘시인’은 “해와 달 같이 사”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제 스스로 시인으로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 시는 시인의 삶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우주적 삶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지를 드러내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기 때문에「5월」에서 “詩 한 편만 가슴에/ 품고 살아도/ 나는 이미 부처가 된다”는 언명은 소망 끝에 가질 법한 자연스러운 신념이다. 시의 지고성이 일상적 현실 속의 시인의 삶을 정화하여 지고한 존재로 끌어올린다는 생각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사랑굿」은 시의 기능을 통해 시적 가치의 절대성을 보여준다. 즉 “詩가 오는 새벽엔/ 새소리 물소리에/ 나뭇잎이 놀란다”는 표현은 시의 기능을 암시하는 것인데, 이 구절이 뜻하는 바는 시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정신적으로 감응하고 소통하여 모든 존재의 존재성이 깨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인식은 꽤 깊은 철학적 진리를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귄태원 시인은 견자로서의 시인의 특성을 본능적으로 자각하고 동시에 이를 획득함으로써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의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시인은 사물을 통해 이 세계의 현상 너머의 본질을 살피며, 그것을 통해 진정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란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구도의 수행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거기서 시는 바로 구도의 방편이자 매개체가 된다. 그런 점에서 권 시인의 작품 속에서 시에 대한 어떤 작품은 너무 기능적 속성이 도식화되어 단순한 것이 눈에 띄고 있다.
가령 “하루에도/ 수백 수의 詩를 지어// 물에 띄워 보내면/ 세상 시름을 달랠 수 있을까”(「詩여 詩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단순한 탄식이나 푸념에 그치는 경향도 있지만 깊은 사색의 끝에 시와 시인에 대한 의미의 추구와 획득은 자신의 존재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가 시인으로서의 천명을 슬픔이면서 황홀함의 존재로 잘 인식하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살아가다보면
아름다움은 마침내 우리들 생의 뿌리다
가난과 진실이야말로 우리들의 詩다
밤이 깊어갈수록 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리는데
별빛 하나가 어두운 우리들의 길을 밝힌다
아 아,
누가 이 땅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던가
촛불도 꺼져가는 빈 방에서
시를 쓰면서
나는 슬픔의 꽃나무, 눈물의 꽃나무를 혼자 키운다
세상을 바로 알기 위하여
행복과 희망을 새롭게 만들기 위하여
오늘밤에도 만난다
그대들의 별을,
그대들의 눈물 섞인 아침이슬을
-「詩를 쓰면서」
이 詩는 시인으로서의 삶이 결코 누추하거나 비루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그가 “살아가다보면/ 아름다움은 마침내 우리들 생의 뿌리다/ 가난과 진실이야말로 우리들의 詩다”라고 말했을 때 이는 현실 속에서 현실 밖에 있는 어떤 생의 진리를 터득했다는 증명일 것이다. 마치 깨달은 선사가 자기의 깨달음을 게송偈頌으로 읊어 증명하듯이 권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을 통해 이를 입증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아름다움’이 생의 뿌리이고, ‘가난과 진실’이 시와 같은 지고한 가치라는 것이다. 그에게 시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임을 우리가 앞에서 봤던 것인 만큼 가난과 진실이 바로 그와 같은 지고한 가치가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 관점에서 아름다움이나 진실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그런 대로 인정할 수 있는데, ‘가난’이 가치 있다는 말은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다. 이 말은 세속적 관점에서 보자면 틀린 말이지만, 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역설로 진실을 담고 있다. 역설은 형식 논리로는 모순이지만 내용 논리로는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 기법이다.
실제 권 시인은 앞에서 시인 자체를 역설적 존재로 보고 있었고, 시인으로서 삶 자체를 현실적 고통을 통한 초월의 의미를 획득하는 존재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 점에서 가난이 시가 되는 이치는 가난이 일상적 현실 속에서는 고통과 슬픔이지만 그러한 고통과 슬픔이 영적 자아의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됨으로써 지고한 가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역으로 시는 바로 가난한 영혼을 위해 존재하고 그러한 영혼을 키워가는 데에 시의 본질적 기능이 놓여있다는 말과 통한다.
이는 그가 “詩를 쓰면서/ 나는 슬픔의 꽃나무, 눈물의 꽃나무를 혼자 키운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엿볼 수 있다. 시를 쓰는 것이 슬픔과 눈물을 키우는 것이라면 이는 일상적 논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 된다. 그러나 그 이면의 역설에 의해 참다운 영적 존재를 키우는 것으로 납득한다면 이는 참된 경구가 된다.
시인의 운명을 자각하고 일상적 현실의 삶이 가지는 일면성과 무의미함에 동조하지 않을 때, 시인은 역설적 존재로서 견자로서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때의 시인의 모습은 현실적 존재자들의 눈 속에는 당연히 광인狂人, 아니면 기인奇人으로 치부될 것은 분명하다. 권태원 시인이 시인을 그 삶의 목표로 설정해두고 있는 한 이러한 점은 필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일상의 증발과 한없는 순수
그렇다고 모든 시인들이 다 그와 같은 광증과 기이한 행동들로 일관한다는 말은 아니다. 시인 중의 시인, 즉 삶과 존재의 본질에 육박하고 그것으로 인해 예술적 영혼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인만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권태원 시인은 기인으로서의 시인 이전에 타고난 시인, 천상天上 시인이다.
시인으로서 가질 법한 중요한 자질을 다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언어에 대한 예리한 감각, 세속적 욕망으로부터의 초연함, 존재의 본질에 대한 끈질긴 탐구 등을 일차적으로 이러한 자질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 자신에 대한 허심탄회한 성찰과 진솔한 자기 고백이 그러한 한 자질이 아닐까 싶다. 다음 시가 바로 그러한 면모를 보여준다.
밤새도록 첫 눈이 내립니다
산모롱이 한 굽이 한 굽이 돌고 돌아
둥근 보름달을 만나러 갑니다
산새가 다시 울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잠깐 눈발이 그쳐 있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당신이 자꾸만 보고 싶습니다
그립다는 건 풀잎들이 슬쩍슬쩍
등을 밀어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뒷걸음치는
꽁지가 하얀 노루꿈을 꾸었습니다
오후 내내 당신은 속이 빈 나무처럼 서 있었습니다
산미나리를 한 아름 껴안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세상이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사랑한다는 건 하늘에 누군가 있어
외로워지거나 저 홀로 울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대의 몸에서 어느새 연꽃이 피고 있습니다
시냇물은 빠르게 움직이고 구름은 말없이
엉킬 여유도 없이 있는 그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나는 너무너무 아팠습니다
-「용두산공원」
참으로 아름답고 처연한 작품이다. 아름다워 처연하고, 처연하여 아름답다. 시적 화자는 고요히 모든 세계가 저물고, 지나가고, 피고, 그치고 하는 등의 자연 현상을 지켜보고 있다. 정밀함 속에 모든 자연적 현상이 돌고 돌아가는데, 시적 화자의 가장 절실한 대상이라 할 수 있는 그대가 부재해 있음으로 인한 슬픔이 작품 전체를 물들이고 있다.
가령 “당신과 나 사이에 잠깐 눈발이 그쳐 있”다거나,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당신이 자꾸만 보고 싶”다거나, “오후 내내 당신은 속이 빈 나무처럼 서 있었”다거나 하는 표현은 내 삶의 의미를 채워주는 대상의 부재로 말미암은 상실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상실감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오늘 하루도 뒷걸음치는/ 꽁지가 하얀 노루꿈을 꾸”고, “오늘 하루도 나는 너무너무 아프”게 지내고 있다고 그 깊은 하염없음과 아픔을 토로하게 된다.
자연적 현상들이 상당히 몽환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 시는 역설적이게도 제목은 매우 사실적인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용두산공원」의 제목은 더할 것 없이 일상적 현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시적 내용은 환상적이면서 처연한 날들의 흐름을 지시하고 있다. 제목과 시적 내용과의 이런 거리감 또한 시인의 의도가 아닐까?
역설은 지시 기호와 지시 대상과의 불일치에서도 발생한다. 부산에 있는 ‘용두산공원’이 지시하고 있는 일상적 의미는 놀이공원이거나 도시의 시끌벅적한 불빛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시적 내용은 고요하고 은은한, 어쩌면 백색의 병실 같은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불일치의 시적 구성은 무슨 까닭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비록 번화한 ‘용두산공원’에 시적 화자가 있을지라도 이미 그의 내면은 임의 상실을 통해 슬픔과 처연함에 물들여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쓴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다른 해석을 붙이더라도 이 해석의 큰 범위를 넘지 않으리라 보인다.
그렇지만 이 시에서 가장 마음이 울린 부분은 “오늘 하루도 나는 너무너무 아팠습니다”의 구절이다. 이 표현은 시적 화자가 자신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진솔한 자기 인식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시적 화자는 ‘오늘 하루도’라는 부사어를 사용함으로써 늘 아파하는 자신을 객관화해 보고 있고, 그리고 아픔의 정도가 약한 것이 아니라 ‘너무너무’라는 강조 부사어를 씀으로써 그 아픔이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심한 아픔임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저, 아픔이란 무엇인가? 병이란 무료하고 무의미한 일상에 균열을 내는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아픔이란 일상적 현실에 의해 경직되고 타성화된 육체와 정신에 자극을 가함으로써 새롭게 깨어나는 행위가 된다. 즉 고통의 비명을 내지름은 이때까지의 일상적 현실 속에서 미처 알지 못하던 새로운 사실의 눈뜸, 다시 말해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차원 높은 인식의 획득이다.
니체도 질병은 인식의 수단이며 인식을 낚는 낚싯바늘로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용두산공원이라는 제목이 갖는 일상성과 평면성에 대비하여 내 삶의 고통과 그로 인한 존재의 인식 내지 각인의 거리감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아픈 영혼을 지닌 존재들의 삶의 방식을 권태원 시인은 자신의 주된 시적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일상적 현실 속의 복잡한 문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눈길로 볼 때 허황되거나 단순의 극치로 여겨질지도 모르는 양상이다. 권태원 시인의 이번 시집을 채우는 대부분의 시들이 바로 그와 같은 양상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일관된 특징을 표출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다.
눈보다 희고
별보다 영롱하게
맑고 아름답게 살아가야지
꽃보다 찬란하고
눈물보다 깨끗하게
짧고 푸르게 살아가야지
날이 저물어도
산이 깊어가도
나의 삶 속에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슬처럼 별처럼 살아가야지
-「삶」
살아있는 동안에는
스스로 고요하고 스스로 아름다와야지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을 바라보아야지
햇빛과 입 맞추며 하느님의 말씀도 들어야지
사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아야지
내 안에 깊은 우물 하나 파 놓아야지
-「그대에게」
사랑하는 동안에는
한 편의 詩처럼 향기로워야지
드릴수록 허전하지만 모든 걸 드려야지
들꽃처럼 피어서 당신을 기다려야지
-「사랑하는 동안에는」
이 시들이 갖는 아름다움과 고고함은 어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삶을 다짐하는 두 편의 시는 가장 고고하고 순수한 삶을 살기를 소망하고 있다.「삶」에서 시적 화자는 “눈보다 희고/ 별보다 영롱하게/ 맑고 아름답게 살아가야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자연물을 활용하여 그것들보다 더 순수하고 아름답게 살게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그대에게」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단적인 예로 “한 편의 시처럼 향기로워야지”는 앞의 시가 갖는 의미에 기대어 그의 간절한 바람이자 현실적 삶의 숙원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들의 공통점은 바람만 있지 현실적 삶의 모습이 구체화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권태원 시인의 시적 현상의 하나가 바로 일상적 현실의 자기 모습이 구체화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굳이 있다면 방황과 방랑의 정서가 거기에 해당할 따름이요, 이 시집에서 하나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들자면 ‘사진 찍기’와 관련된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그 작품들도 자신의 이야기라기보다 친구라 할 수 있는「사진가 김탁돈」의 형상화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권 시인의 시는 역사적 현실이나 자신의 현실적 삶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는 반영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매우 사실성이 부족한 작품으로 여길 수 있다.(그의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현실적 삶의 모습을 일부 보여주는 작품은 첫 시집에 수록했다가 이번 시집에 재수록한「팬지꽃으로」의 정도다. 이 시에는 그의 현실적 가난과 가족 해체의 문제가 암시적으로나마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시간적 관점에서나 그의 시작 내용의 측면에서 예외로 언급해야할 것 같다. 대다수의 작품은 가난과 아픔으로 인한 방황과 방랑의 슬픔, 그리고 그에 따른 다짐과 기원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상적 현실의 세부적 내용이 부족하고, 그런 측면에서 구체적 자기 모습을 그의 주된 관심으로 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일상적 현실의 증발, 그리고 그와 관련되어 관념적 세계로의 경사가 권태원 시의 주된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관점에 따라 비판을 받을 여지가 많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 권태원이라는 사람은 시인으로 살기를 염원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견자로서의 시인은 현실적 삶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본인이 부정하는 현실의 무잡하고 속악한 모습을 자세히 쓰는 것 자체가 그의 세계관으로 볼 때는 자가당착적이다. 어쩌면 광기, 즉 신기神氣에 물든 사람은 현실의 속악함 너머의 절대적 진공 상태를 바라본다.
그가 “눈물 가까이 슬픔 가까이/ 젖어 사는 사람은 평화롭다// 가난 가까이 고통 가까이/ 함께 사는 사람은 자유롭다”(「이슬처럼 별처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세속적 사람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없는 순수의 공간을 향해 나아가는 의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설령 그의 시에 다소 그의 현실적 처지가 구체화되어 나타난다고 해도 이는 보다 순수한 영적 세계로의 진입을 위한 실마리 내지 도약대 정도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실성 여부의 판단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음 작품이 이를 잘 보여준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아름답다
삭월 셋방 우리 집에는
천 개의 바람이 놀러온다
빈 방
빈 잔
숲속의 마을에는
빛과 소리의 궁전
집이 없어도
월급이 없어도
외로운 사람들은
아름답다
비둘기호 밤 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평화롭다
내 인생 아직도
안개꽃으로 흔들리고 있다
-「간이역」
이 시의 시적 화자가 현실적 처지로 보여지는 “삭월 셋방 우리 집에는/ 천 개의 바람이 놀러온다”고 노래했을 때, 또 “집이 없어도/ 월급이 없어도”라고 표현했을 때, 감상의 측면에서 독자에게 가난으로 인한 약간의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 있지만, 사회적 구조로 인한 모순에 대한 인식이나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분노의 감정을 가지게끔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가난이 “빛과 소리의 궁전”으로 미화되거나, “외로운 사람들은/ 아름답다”처럼 완미한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받침대와 같은 것으로 전화(轉化)됨으로써 역설적 현상이 된다. 그렇다. 그런 점에서 권태원 시인에게 현실은, 특히 그의 정신적 지향이 갖는 필연적 현상으로서 현실적 가난은 보다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한 ‘전화’의 계기다. 이것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세속적 일상성이 양적 가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라면 권 시인이 추구하는 영적 대상이 바로 질적 가치로 표상된다는 점에서 양적 가치가 질적 가치로 바뀌는 ‘전화’, 다시 말해 일상적 현실이 한없는 순수로 승화되는 ‘전화’라는 이름에 걸맞는 현상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은 결국 일상의 증발이 한없는 순수로 나아가는 표징이 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보통의 시인들은 이 점을 두려워한다. 일상성 내지 구체성의 상실은 보통의 시에서는 큰 약점이다. 그러나 현상 너머의 진리를 꿰뚫고자 하는 견자의 시 경우에는 상징과 암시로, 다시 말해 환상적 형상성으로 인간의 진실을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시적 특이성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일상성의 증발이 권 시인의 작품에서는 약점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한없는 순수로 추동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시인 못지않게 시 역시 기이하고 황홀한 양상을 보여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사랑, 그 존재의 성화聖化에 대한 기도
한없는 순수라는 것은 절대적 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되기도 하겠지만 현실적 공간으로 돌아오면 존재할 수 없는 추상이 된다. 시라는 것은 아무리 견자의 삶을 추구하는 징표로서 가능한다고 할지라도 현실의 토대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표출이다.
그 점에서 권태원 시에서 견자의 삶은 한없는 순수를 지향하기 위해 일상적 현실에서 그가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시는 상당수 된다. 사랑을 드러내는 시일수록 삶의 간곡함과 진정성이 절절히 배어나는 형상으로 제시된다. 다음 시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사랑은
자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사랑은 서로의 결핍을 채운다
알지도 못하고
알려지지도 않고
그냥 흩어져 있는 것들끼리
무관심하게 있을 수 있는 관계
꽃이 피어 있다
나도 한 때는 당신을 위한 바람이었다
그대도 한 때는
나를 위한 별이었다
生은 무엇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내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다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는 것을 나는 배운다
-「꽃씨 편지」
이 시는 존재 자체가 사랑의 형식임을 말해주고 있다. 즉 “사랑은/ 자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사랑은 서로의 결핍을 채운다”는 전제 아래 “알지도 못하고/ 알려지지도 않고/ 그냥 흩어져 있는 것들끼리/ 무관심하게 있을 수 있는 관계” 자체가 사랑의 형식임을 말해준다. 그것은 “나도 한 때는/ 당신을 위한 바람이었다// 그대도 한 때는/ 나를 위한 별이었다”에서 볼 수 있다.
나와 당신의 관계는 마치 나와 바람의 관계, 나와 별의 관계처럼 무심하게 서로 존재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됨으로써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사랑으로 현현한다. 때문에 이것은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는 것을 나는 배운다”에서 볼 수 있듯이 싸우고 안 싸우고 하는 문제로 그 속성이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내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는가 하는 관계의 문제로 귀착됨을 말해준다.
관계는 존재의 토대이자 형식의 문제다. 그 점에서 이 시는 존재의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나와 관계있는 대상들이 서로 결핍을 채워주는 관계로 공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논리는 여타 일반적 사랑의 논리와는 그 층위를 달리한다. 아낌없는 헌신이나 대상과의 전면적 동일시로 흔히 사랑의 속성을 말하는 것에 비해, 자신의 존재성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 자신의 상태에 부족한 무엇인가를 채울 수 있는 관계로 모든 타자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된다는 논리는 낯설고 기이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권태원 시인이 바라는 사랑은 강렬한 소유욕에 기반한 완전한 동일시의 상태는 아니다. 그것이기보다는 자신의 결핍의 충족을 통한 순수성의 고양에 더 무게중심이 놓여 있다. 다음 시들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아름답다는 것은
그만큼 깨끗하다는 것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첫눈처럼 맑고 정직하다
맨 처음 당신을 껴안았을 때
알지 못한 희열에 몸을 떨었다
첫 날 첫 만남 첫 약속처럼
아직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첫 눈」
슬픔은 방황하는
우리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사랑은 그런 것인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인가
우리 삶에
깊은 생채기만 남긴 채
눈 오는 날엔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
-「서로 사랑한다는 건」
이 시들은 권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의 속성들을 알게 해준다.「첫눈」에서 사랑은 “첫눈처럼 맑고 정직한” 것으로 표상된다. “첫날 첫만남 첫약속처럼/ 아직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여기에 덧붙여 볼 때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사랑을 맑고 정직한 것, 또는 때 묻지 않은 처음의 상태, 즉 사물의 순수 본연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당신은 나에게 바로 이런 맑고 정직함, 또는 순수함이 결핍되었을 때 이를 채워주는 관계로 존재한다. 그러기에 나는 “아직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라고 고백할 수가 있는 것이다.「서로 사랑한다는 건」에서 “슬픔은 방황하는/ 우리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다”는 언명은 결핍의 새로운 관계성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슬픔마저도 사랑의 형식이 된다는 논리의 비약을 보여준다.
즉 당신으로 인한 슬픔은 나에게 결핍된 그 무엇을 채워주는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사랑이 된다는 것이다. 시의 내용면에서 볼 때, 즉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의 내용으로 유추해 볼 때 슬픔은 내 마음의 본질을 일깨우고 그 순수성을 유지하는 계기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점에서 슬픔을 주는 당신이 나에게 마음의 정체성과 그 지향점을 일깨워주는 관계로 존재한다면 이는 지고한 사랑의 형식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랑의 논리는 물론 역설이다.
이 시에서 강조되어 할 점은 ‘첫’이라는 접두사로 형상화된 사랑의 속성이자 기능이다. 그가 다른 시에서도 “내가 세상에 태어나/ 그대를 처음 사랑한 시절// 처음사랑/ 사랑 중에서도 처음이었던 사랑”(「천년사랑」)을 노래할 때 사랑의 본질은 훼손되지 않은 순수성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세속적 차원의 사랑 노래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는 대목이다. 변치 않는 사랑이 아니라, 처음의 순수했던 상태로의 회귀나 고양 등이 바로 사랑임을 명백히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타락한 영혼이 다시 순수한 영혼으로 정화되어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임을 말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 점에서 권시인의 사랑은 이 지상의 사람을 비롯한 모든 사물들이 원래의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차원에서 해명하자면 오늘의 존재의 속성이 사물화되거나 속악화되어 신성함을 상실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권태원 시인 그 자신이 오늘의 산업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와 불화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이를 실감으로 제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일상적 현실의 물질주의에 시인은 패배하지만 그 패배로 인하여 그 의식의 순수성은 지고한 상태로 고양된다.
영적 성스러움으로 고양된 시인의 영혼은 자본주의적 가치에 물들인 사람들에게는 기이한 광태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오늘의 우리 현실에 결핍된 것이 그 무엇인지를 정확히 겨냥해 드러낸다. 바로 순수한 영혼의 상실이 우리의 병리적 현상임을 시인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증명해 보이면서 그것을 극복할 하나의 방식으로 사랑의 형식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노래하는 권태원 시인의 시는 오늘의 물질주의에 포획된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무慰撫하고 그들의 고통에 귀기울여주는 깊은 생명적 차원의 연대다. 상품화와 사물화로 치달아 존재의 본질로서 영성을 상실해가는 후기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의 성스러움을 불러일으켜 세우려는 기도인 것이다.
그가 그의 시적 실천으로 추구하는 한없는 순수에의 지향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사랑의 갈망은 더 없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자 견자인 시인으로서의 제 운명에의 눈뜸이다. 그렇기에 그의 일상적 삶 속에서 비범(非凡)해 보이는 광태 내지 기행(奇行)은 무죄다. 그것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천상의 진리를 찾기 위한 분투노력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범이 평범으로부터 홀대받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일상을 벗어나 초월을 지향하는 차원에서 비범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쓸쓸해지기 쉬운 가을 저녁, 낯선 거리를 헤매고 있을 권태원 시인의 건필과 영광을 기원한다.
국제신문 박창희 대기자의 색깔있는 인터뷰 2016. 5. 23
시인 권태원의 '아침편지'
매일 원고지 70장 글 쓰기…
기인이라 불려도 詩는 나의 운명
시인은 무엇으로 사나. 시를 먹고 산다! 시를 쓰고 시집을 내며 시를 무기로 전쟁과도 같은 오늘을 건너간다. 그렇게 찾아가는 내일은 고달프다. 시는, 일용할 양식은커녕 시내버스 차비조차 건네주지 않는다. 그래도 시를 써야 하는 건 어떤 숙명적 이끌림 때문이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매일 '아침편지'를 쓰고 있는 권태원 시인은 "비록 눈물 젖은 빵을 먹지만 시는 포기할 수 없는 일용할 양식"이라고 말했다. 그가 쓰는 '아침편지'는 2016년 5월 5,100회를 넘겼다.
시인 권태원(66)은 목숨을 걸고 시를 쓴다고 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그의 신조다. 그런 각오로 그는 매일 '아침편지'를 쓰고 있다. 2003년 5월말 출항해 이달초 레터 넘버가 5100회를 기록했다. 아침편지는 세상을 향한 사랑의 두드림이자 조용한 기도다. 편지는 곧잘 시로 둔갑한다. 그의 시엔 눈물이 반되, 사랑이 반되 엉겨 있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기인(奇人) 권태원, 그는 왜 시에 목숨을 걸었던가.
13년째 쓴 아침편지 5100회 돌파
전세계 170만 명 홈피 들러 탐독
보상 없어도 세상과 소통 통로
# 매일 원고지 70매씩 써
-13년째 '아침편지'를 쓰고 있다. 언제 쓰는 건가?
"난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1시면 일어나 책상에 앉는다. 그때부터 한 2시간 정도 집중해서 아침편지를 쓴다. 시와 소설도 같이 쓴다. 매일 200자 원고지 70매 이상을 쓴다. 마치 고장난 시계처럼 습관이 되었다."
-글감과 주제는 어디서 얻나?
"기본적으로 세상 돌아가는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 책을 읽다, 시를 쓰다 문득 착상이 떠오르면 자료를 찾고 골격을 잡는다. 소재는 신앙과 종교 문학 영화 예술 스포츠 사진 등 아주 다양하다."
-어디가면 볼 수 있나.
"내 홈페이지(www.mariasarang.net/kwontw)에 올린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온라인 소식통인 '마리아 사랑넷' 속에 '당신 안에 있으면'이란 별도의 방이 구축돼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괜찮은 사이트라고 추천한 적도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나.
"국내에 약 2만5000명, 전 세계적으로 약 170만 명이 보는 것으로 안다."
-왜 쓰는가. 어떤 보상이 있는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쓴다. 특별한 보상도 없다. 글쓰기는 나의 외로움과 살아가는 상처에 대한 기록문학이다. 내 글을 읽어주는 아름다운 동반자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 아니냐."
-'아름다운 동반자'란 말이 인상적이다.
"거의 매일 방문해 댓글을 남기는 분도 있다. 내가 배우는 게 많다. 만나거나 통화하지 않아도 몇 줄의 글을 통해 동질감과 짜릿한 감동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권태원이 만난 사람' 코너도 있던데, 그동안 몇 명을 만났나?
"한 330명 쯤 될 거다. 대부분은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스님, 배우 안성기, 국제구호전문가 한비야 씨 등이 기억난다. 국제시장, 자갈치시장의 민초들도 많이 만났다."
# 시에 미쳐 산 시간
-주변에선 당신을 기인(奇人) 시인, 시에 미친 시인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다. 한때 천상병, 중광, 이외수를 문화계 3대 기인이라 불렀는데, 이제 내가 들어가야 할 것 같다.(웃음) 기인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를 밝고 재미있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 만큼 더 겸손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눈물로 사랑으로 시 써내려가
배고픔보다 글 안 써질 때 우울
참되고 쉽게 읽히는 게 좋은 시
-눈물로 시를 쓰고 시집을 낸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총 14권의 시집을 냈다. 13번째 시집인 '그리운 예수 보고 싶은 부처'(태원)는 내 삶이 72시간 남았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썼다. 벼랑 끝에 서보니 답은 시더라. 2013년 국제시장 근처에서 교통사고를 당했고, 고혈압과 당뇨 등으로 겹고통을 겪던 때였다.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받은 200만 원으로 시집을 냈다. 주변에선 이상하게 보던데 난 행복했다."
-그때 쓴 시 한 구절을 듣고 싶다.
"그대를 기다리다가/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순다//기도하다가 죽어버리자/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너를 기다렸다//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자/용서할 수 없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용서하자…. '부치지 않는 편지'라는 시 일부다. 그때는 솔직히 영혼의 백혈구와 적혈구를 총동원해 시를 썼다."
-시에 목숨을 걸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듯하다.
"시만 쓰지 않았다면 미치지도 않고, 이렇게 살지도 않았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미쳐 있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내가 살지 않았나 싶다. 시는 나의 구세주다."
# 다시 부르는 사랑의 노래
-시집들을 보니 '사랑'을 다룬 시들이 많다. 왜 사랑인가?
"사랑이야말로 불멸의 가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거다. 보이지 않는 것도 사랑하면 비로소 보인다. 들리지 않는 것도 사랑하면 비로소 들린다. 그 사랑을 찾고 싶었던 거다."
-시에 자주 등장하는 '사랑하는 여자'는 누구인가?
"내 첫사랑이다.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의 딸애를 세상에 남겨두고 일찍 삶을 마감한 여자다."(권 시인은 눈시울을 붉히다 끝내 눈물을 훔쳤다.)
-많은 시를 쓴 것 같다. 어떤 게 좋은 시라고 보나?
"지금까지 내가 쓴 시가 대략 3600편 정도다. 습작까지 더하면 9000편이 넘는다. 거짓 없고 쉽게 읽히는 것이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좋은 시는 맑고 고운 새소리를 낸다."
-늘 시가 잘 쓰여지진 않을 텐데.
"난 빛이 있으면 사진을 찍고, 빛이 없으면 시를 쓴다. 배 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시가 안 써지면 우울해진다. 그럴 땐 울기도 한다. 울다 보면 시가 나온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을 자주 쓰는데….
"미치지 않고 얻어지는 게 있던가. 삶을 아름답게 하는 건 진·선·미(眞善美)인데, 나는 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거짓없는 참됨이 휴머니즘 아닌가. 자기 투쟁을 통해 정진해야 닿을 수 있다. 미치지 않고는 닿지 않는다."
-최근 새로운 화두 하나를 얻었다고 들었다.
"대호쾌활(大好快活)이다.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베풀면 우리네 삶과 세상이 쾌활해진다는 의미다. 눈앞에 보이는 돈, 명예, 권력, 욕망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예수는 서른 한 살에 세상을 구원하려 했다는데, 난 뭘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시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 믿는다."
-올해 어떤 계획이 있는가?
"곧 또 한권의 시집이 나온다. 목숨이 있는 한 시를 쓸 것이다. '시와 카툰의 만남 시화전'을 준비 중이고, 노래인생 50년을 결산하는 '권태원의 빅쇼'와 다문화 원조가수 헤라와 함께 '2인 리사이틀'도 계획 중이다.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아름답게, 시처럼 살고 싶다."
# 걷는 게 일상인 시인…사진·악기연주·무술 등 다재다능
■ 인터뷰 언저리
권태원 시인이 박창희 대기자와 인터뷰 중 밝게 웃고 있다. 연제구 거제동 부산교대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약속을 했는데, 권 시인은 1시간 가까이 늦게 도착했다. 중간에 전화가 왔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국제시장 쪽에서 걸어서 가느라…." 숨이 찬 모습이다. 빨리 걸었는데 1시간 20분쯤 걸렸다고 했다. 걸은 이유가 썰렁하다. "아이고,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기인(奇人) 시인 권태원과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걷는 게 일상이고 취미라고 했다. 서울~부산 간 영남대로를 한 열 번쯤 걸었고, 웬만한 거리는 무조건 걷는단다. 그러면서 팔뚝과 장단지를 보여준다. 나이가 믿기지 않게 근육질이 야무지다. 프란치스코란 세례명으로 성당에 나가지만 그는 곧잘 승복을 입고 다닌다. 머리도 빡빡 밀어 스님 같다. 종교간 화합·소통을 위한 권태원 식의 퍼포먼스다.
권 시인은 다재다능한 재주꾼이다. 주업은 시인(글쟁이)이지만, CNN뉴스라는 인터넷신문을 내고,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한다. 사진 실력은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주최한 대회에서 대통령상(1975년)을 받았을 정도로 수준급이다.
기타 드럼 대금 단소 등 다루는 악기가 열 가지 넘고, 노래지도, 웃음지도, 문학지도, 시낭송, 건강박수, 레크레이션 등 각종 자격증이 80여 개에 이른다. 무술도 태권도 합기도 쿵푸 봉술 등 도합 36단에 이를 정도로 초고수다. 그런가하면 통역이 가능할 정도로 영어와 일어에도 능통하다. 가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의 기인이다.
그러나 그의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는 누구도 걷어주지 못하고 있다. 조실부모하고 어릴 때 고아로 법당에 버려졌고, 아내를 잃고 유랑을 하며 삶의 끈을 시에 대고 간신히 살아온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강동수 작가의 현대일보 등단작 '몽유시인을 위한 변명'(1994년)의 주인공이 바로 권 시인이다. 슬픔과 눈물을 사랑으로 찍어내는 그는 어쩌면 시인 이상의 시인이다.
국제신문 조봉권 기자
권태원 시인 '집 안에 시가 있다' 펴내
사람과 일상서 느낀 소회 담아
권태원 시인이 열네 번째 시집 '집 안에 시가 있다'(푸른별)를 냈다.
1987년 첫 시집 '팬지꽃으로'을 낸 뒤로 그는 농부처럼 꾸준히 쓰고 시집을 엮었다. 2010년부터는 1년에 한 권 이상 펴냈다.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제목은 마리아사랑(www.mariasarang.net/kwontw). 여기서 그는 '권태원 프란치스코'이다. 가톨릭 사이트와 생활성가 등 정보도 따로 모아놓았다.
권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 '집 안에 시가 있다'는 제목 느낌대로 생활 가까운 곳에서 시를 찾아 가져오고, 사람에 관한 시도 썼다.
'지상의 모든 먼지처럼/ 인생의 강물은 빨리 흐른다/ 소나기 몇 차례 지나가면/ 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사랑하는 일보다 / 죽는 일이 더 큰 일이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사랑해야 하리라…'('너는 어디에도 없다' 중) 그는 다스러운 느낌이 날 정도로 사랑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과 후회와 다짐을 풀어낸다.
'아내는 나를 믿는다/우리 집의 벙어리 예수처럼/내일은 방세를 낼 것이라 믿으며/내일은 보리쌀을 사오리라 믿는다…사랑하는 우리 예수님/아이들이 숙제나 할/삭월세 방이라도 마련해주세요/아빠의 가난한 시가/밤마다 아이들의 꿈길을 열 수 있도록…'.('벙어리 예수' 중)
이번에 출간된 권 시인의 시집 안에는 '시인 조창용' '한국무용가 최은희 교수' 등 살면서 만난 사람에 관한 시도 많이 실었다.
부산일보 윤여진 기자 2016. 11. 8
부산은 시적 감성의 보고
권태원 15번째 시집 '하늘지우개'
'눈이 내리어//길 지워지고//내가 지워지고//지워지고 지워지고//눈도 지워지고//길도 지워지고//하느님도 지워지고//나도 또 지워지고.'('하늘지우개'전문)
분명 시집인데 그 흔한 목차도 없다. 작가의 말도 생략된 시집에는 무려 126편이 꾹꾹 눌러 담겼다. 권태원(66) 시인이 15번째 시집 <하늘지우개>(도서출판 지평)를 냈다.
재주가 방대한 그는 싱어송라이터, 광고기획자 등으로도 뛰는 '멀티 플레이어'다. 수년간 병마와 싸웠고 "이번 시집 역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만들었다"고 했다.
권 시인에게 부산은 시적 감성의 보고인 듯하다. '부산역', '감천문화마을', '국제시장', '용두산공원', '부산공간화랑', '복병산' 등 익숙한 장소들이 시 제목이 되어 아련한 추억과 낯선 감성의 장소로 승화된다.
가톨릭 신자로서 종교가 삶의 버팀목이라던 시인답게 하느님을 향한 사랑('첫눈')을 은근히 나타내기도 하고,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죄 지은 날은') 호소하기도 한다. 10일 오후 6시 30분 부산 중구 중앙동 용문에서 출판기념회 및 시화전을 연다.
부산일보 김영한 기자
13시집 <그리운 예수 보고 싶은 부처>
매일 70장씩 써낸 '기인 시인'의 절규
"시만 쓰지 않았다면 미치지도 않고, 이렇게 살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원고지 70장씩 매일 글을 쓴다는 시인은 또 어렵사리 돈 200만 원을 구해 시집을 냈다. 열세 번째 시집 '그리운 예수 보고 싶은 부처'를 상재한 권태원 시인이다.
'가다가 물이 있으면 그대로 흘러가보자/가다가 불을 만나면 파도처럼 춤추어보자'.('사랑법' 중) 시인은 '기인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이제는 조금은 다른 말들이 나온다.
"이 몸 거처할 원룸이라도 얻고 싶습니다" 같은. 영혼의 백혈구와 적혈구를 총동원해 쓴 시를 담았다는 시집을 낸 시인의 이유다. 시인은 올해 두 차례 교통사고를 당했고 고혈압 당뇨 등으로 아프다고 했다. 그는 안정을 원하는 듯했다.
권태원 시인 열세 번째 시집
"어렵게 200만 원 구해 출간"
불편한 몸 누일, 그 몸과 함께 금수강산 떠돌던 마음 놓을 곳 말이다. 외로워 사랑 찾던 그는 이번 시집에도 사랑의 시편들을 담았다. 하지만 사랑 찾아 헤매던 몸과 마음은 이제 새 삶을 꿈꾸는 희망으로, 나아가 용서로 가 닿고 있다.
'그대를 기다리다가/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순다//기도하다가 죽어버리자/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너를 기다렸다//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자/용서할 수 없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용서하자'.('부치지 않는 편지' 중)
"사창가에서 국밥 나르고 깡패들에게 뒤지게 맞았다"던, 질곡 속에 산 시인에게 종교는 유일한 의지처였다. '미안하다/그대를 사랑해서 정말 행복하다/눈물 속에 절 한 채/지었다가 부수었다'('애인에게' 중)고 스스로 위로하고, '내일은 홀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촛불' 중) 기도하고 있다. 다만, '자비'의 다른 말을 '사랑'으로 아는 시인에게 예수와 부처는 다르지 않을 뿐이다.
'완월동 불이문' 연작시 13편, '이태석 신부' 연작시 12편 등 연작시를 담았다는 점이 이 시집의 특징이기도 하다. "연작시에서 자신의 시작 30년을 결산하듯, 성과 속의 원초적 절규"를 내지르고 있다는 게 서재홍 동서차문화 소장의 평가다. 시인이 시집을 낸 이유는 또 있다. '가난하고 병들고 묶여 있는 외로운 영혼들에게 널리 읽혀지기를 바란다'고 편지 썼던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뒤늦은 답장이기도 하다.
영원한 고통속의 사랑, 한 순례자의 기록
권태원 시집 '그리운 예수 보고 싶은 부처'
김성춘(시인)
1
부산의 권태원 시인이 13번째 시집을 낸다고 우편으로 두툼한 원고를 보내 왔다. 나는 그와 만났던 옛날을 떠 올리며 그의 순수한 사랑과 삶의 고뇌가 묻어 있는 그의 시집 원고를 천천히 읽어 나간다.
우리가 만났던 그 풋풋했던 시절, 그 오래 된 희미한 몇 캇트의 추억들 떠 올리며. 나는 애잔한 흐느낌이 섞인 듯한 그의 사랑시편들, 목에 무엇이 걸리는 듯한 시들을 읽어 나간다. 권태원은 섬세한 감성을 가진 천부적인 시인이다. 그와 나는 박목월 시인이 심혈을 기울여 경영했던 시 전문지 월간지 '심상'의 선후배로 만났다.
그러나 그간 우리 둘의 만남은 뜸했다. 그는 부산에서, 나는 울산에서 그리고 지금은 경주에서 오랜 세월을 서로의 생업에 쫓기며 서로를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노래에도 운동에도 그림에도 사진에도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멀티 플레이의 시인이다. 특히 사진 예술과 문학 부문에서의 수많은 수상 경력이 그의 화려한 인생의 편력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살아 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은 우리, 이제는 그도 한 우물을 파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리라.
2
시는 세계와 사물의 본질을 깨우치게 해주고 우리들 스스로의 존재에 근거를 마련해 준다. 시에는 울림이 있어야 한다. 독자의 가슴을 때리는 그 무엇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시를 좋은 시라고 한다. 자신의 체험을 거짓 없이 진실하게 표현하되 시적인 언어로 잘 형상화되었을 때 독자들은 감동을 한다.
권태원의 시들은 어떤 부분은 다소 감상적이다 싶을 정도의 아쉬운 부분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시의 진정성과 밀도를 가진 시들이 더 많아 보인다. 얼핏 보면 비슷비슷한 사랑노래의 동어반복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편마다 이미지의 변주를 시도하고 있고, 시가 긴 호흡 속에서도 시적 긴장을 잃지 않고 있어 신뢰감을 준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시란 무엇인가?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실패한 사랑은 왜 실패한 사랑인가? 권태원 시인은 자신의 삶과 시속에서 오늘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질문한다. 권태원 시의 근저에는 고독과 슬픔, 외로움과 사랑의 고통이 아프게 함께 존재 하고 있다. 그의 시속에는 한마디로 사랑을 노래한 메시지들, 상처받은 인간의 탄식하는 듯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그의 좋은 시 한편을 보자.
해 뜨기 전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떠났다
세상의 아침은 다시 오지 않고
적막강산에 어둠이 내려온다
바위는 모래가 되어
내가 사랑했던 여인은 없어지고
사랑의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내 이름이 없어진다
배가 고프다" (중략)
사랑이 끝난 뒤에도
나는 사랑을 몰랐다
새들도 어두워지면
나무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누더기가 되어도 돌아갈 줄 모른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밤하늘의 별이 보인다 (중략)
내가 사랑에 실패한 까닭은 무엇인가
눈은 내리는데
산천초목 위에 눈은 내리는데
나는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가.
-'사랑이 끝난 뒤'
시 속 화자는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사랑을 몰랐다고 고백하고 있다. 해 뜨기 전,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떠나고, 나는 "배가 고프다"고 상처 입은 사랑을, 가난한 시인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새들도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가는데 시인은 돌아갈 집이 없다(나는 누더기가 되어도 돌아갈 줄 모른다)고 탄식 한다
그리고 이 시에서 중요한 건, "누더기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밤하늘의 별이 보인다"라는 진술이다. 아픈 깨달음이다. 그렇다. 마음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사물의 본질은 보인다. 또 화자는 내가 사랑에 실패한 까닭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왜 자신의 사랑이 실패한 사랑이라고 탄식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그렇듯, 세상에 완벽한 사랑이란 없다.
3
기다리지 않아도 첫눈은 내린다
바라보지 않아도 동백꽃은 핀다
사람이 걸어간 길보다
더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사랑할 때는 누구나 별이 되고
사랑할 때는 사랑을 모른다
- 애인에게
첫눈내리는 백양산을 오른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 있는가
오늘도 너를 만나기 위해
당신의 눈물로 술을 마시고
이대로 서서 죽어
그대의 바다로 가리라
- 잎새에게
내일은 홀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 촛 불
시 속의 화자는 너를 만나기 위해 당신의 눈물로 술을 마시고 이대로 서서 죽어 ‘그대의 바다’로 가겠다고 한다. ‘당신의 눈물로 술을 마시다니!’ 맑고 곧은 사랑의 옹호자인 시인의 결연한 의지를 본다.
4
무엇보다 이번 시집의 무게와 특색을 주는 시편들은 ‘고 이태석 신부’를 기리는 <이태석 신부 선종 3주기 헌시> 연작 시편들이다. 대상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1>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온 몸으로 더불어 하는 것이다 (생략)
<3>
손끝에 발가락 끝에 물집이 생겼다
누구인가 흑인 영가를 구슬프게 부르고 있다
내 마음의 틈이 툭툭 꽃망울로 터지는
고통의 피
설욕의 눈물방울들
우리함께 길 위의 길이라도 만들며 가자 (생략)
<9>
날이 흐리고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살아 있는 동안
꿈이 있는 사람은 나무가 된다
숨을 쉬고 있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은 별이 된다 (생략)
<10>
어제의 톤즈보다는
오늘의 톤즈가 더 행복하고
오늘의 톤즈보다는
내일의 톤즈가 더 아름다운 노래여 (생략)
아시다시피 고 이태석 신부는 척박한 이 땅에 구원의 천사 같은 이미지로 왔다 간 영원한 희망의 상징이다 그가 뿌려 놓은 고결한 사랑의 메시지는 지금도 지구 곳곳에 살아서 가난한 이웃들에게 죽어서도 구원의 손길을 부활시켜 주고 있다. 한 알의 위대한 썩지 않는 밀알의 신비!를 우리는 보고 있다. 권 시인은 위대한 자비와 평화를 심어주고 간 이태석 신부의 신앙의 이 기적 앞에서, 그 신비를 묵상하면서 아름다운 서정시로 형상화 시키고 있다.
5
‘완월동 불이문’ 연작시는 삶의 애환과 그리고 인간적인 살 냄새가 나는 권태원의 시들 중에서 좀 특이한 시편들이다. 도시속의 인간 군상들, 남성과 여성 속에 숨은 은밀한 욕망과 허위의식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시편들이다
<1>
진눈깨비 흩날린다
건물과 사무실 사이의 사내들은
토끼눈처럼 충혈된 컴퓨터를 다시 켜고
서류봉투 층계마다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생략)
<2>
살아 있는 육체는 슬프지만
개인적인 불행일 뿐 그대들의 탓은 아니다
새장의 새들도 외로우니까 서로 노래하고 있다 (생략)
<5>
아직은 잠이 들면 안 된다
더러는 살아남아서 똑바로 고백해야 한다 (생략)
<7>
마지막 섹스를 마치고 사랑을 잃은
벌레들이 지하철 속으로 기어들어 가고 있다 (생략)
완월동의 막장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슬픈 육체들, 창녀들과 남성들의 욕망과 삶의 가면을 가식 없이 노래하고 있다. 살아있는 육체는 슬프지만 개인적인 불행일 뿐 그들만의 탓이 아니라고 시적 화자는 연민의 정을 갖고 노래한다.
“마지막 섹스를 마치고
사랑을 잃은 벌레들이
지하철 속으로 기어들어 가고 있다”
하루하루 충혈된 눈으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비애와 순수한 사랑의 상실감이 보이는 듯, 슬픈 초상화를 보는 듯, 절묘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 외 <순례자의 노래> 시편들과 <서포 김만중의 유배시편> 등, 권태원 시인의 시적 감각은 그 진폭이 넓고 또한 사유도 깊다.
6
권태원의 <그리운 예수 보고 싶은 부처> 시집에는 한 시인의 생에 대한 진실된 고뇌와 순수한 사랑을 향한 고통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의 시에는 논리보다는 예사롭지 않은 감성의 반짝임이 들어있다. 그것들은 어떤 때는 독자의 목에 꺼꺼롭게 걸리기도 하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 독특한 경험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는 기사도 설명문도 아니다. 느낌과 체험과 상상으로 짜 올린 언어로 만든 영혼의 그릇이다. 이제 권 시인은 더 잃을 것도 더 무서울 것도 없이 더 자유로운 영혼으로 시를 살 것이다. 그의 열세 번째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주님의 은총 속에서 그의 시심이 더욱 견고해지고 신앙심도 더 깊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축배를 높이 든다.
김성춘 약력
부산 출생
1974년 '심상' 제1회 신인상 등단
시집 '물소리 천사' 외 11권
시선집 '나는 가끔 빨간 입술이고 싶다'
바움문학상, 최계락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수상
현)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
권태원 시간여행자. 태원선원
010-2624-8440
ktw7519@daum.net
www.mariasarang.net/kwont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