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급하게 달려나가고 이제 집무실에 홀로 있게 된 방종구는 눈을 감았고,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전 떠올랐던 장면이 그의 머리 속에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오라버니, 내 아기예요. 이쁘죠?"
수련이는 말하면서 가슴에 안겨 있던 아기포대를 방종구에게 넘긴다.
방종구는 동생이 안겨주는 아기를 안고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고, 파란 눈에 금발을 하고 있는 아기가 방실 방실 웃으면서 말한다.
"삼촌, 안녕하세요."
방종구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파란 눈에 금발을 한 조카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돼. 수련이 신랑은 나를 대신해서 이 청방을 지휘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돼."
방종구가 중얼거릴 때 쟁반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집무실 안으로 양려군이 들어서고 있었다.
"종구 오라버니, 수련이하고 의논도 안하고 마음대로 신랑감을 정할 생각인가요?"
어쩐지 차갑게 느껴지는 어조로 양려군이 탁자 위에 쟁반을 올려놓으며 물어왔다.
"양매, 일단 수련이 신랑감이 될만한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지, 시집가라고 한 건 아니라구. 일단 만나보고 수련이 맘에 들어야겠지."
차를 따르는 양려군을 바라보며 방종구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상은 남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여자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신분이 뛰어나도 제약이 심한 세상이었다. 무림 쪽의 여인들은 그런 면에 있어서 제약을 덜 받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제약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수련을 정략결혼의 제물로 삼으려 한다는 생각에 심통이 났던 양수련은 방종구의 대답을 듣고 얼굴을 풀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정략결혼은 아니로군요."
"당연하지. 수련이에게 시달릴 생각은 없다구. 그 끔찍한 성격에 내가 정략 결혼을 강요하면 이 백초당을 몽땅 폐허로 만들고도 남지---."
아무리 자신의 누이동생이지만 극성맞은 데가 있는 수련의 성격을 알고 있는 방종구는 진저리를 치며 입을 열었다.
"종구 오라버니, 그런 일은 은밀하게 조사하는 것이 났지 않았을까요?"
"왜?"
"조금 전에 종구 오라버니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다 자신과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내세우려고 혈안이 되어서 움직이던데요. 중원제일의 부와 힘을 가진 청방의 방주라는 자리--,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널려 있어요."
"이 청방의 방주라는 자리가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니요. 그 만큼의 능력이 없으면 내가 밀어준다 해도 앉을 수 없소. 암중에서 청방을 돕고 있는 가문들과 세력들이 납득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럼----, 조건이 까다롭네요. 수련이의 마음에도 들어야 하고 청방의 업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세상은 넓으니 어딘가에 그런 인물이 있긴 있을 거요."
방종구는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용케 지금까지 버텨 왔지만 불안했다. 홍방은 비록 사라졌지만 홍방을 암중에서 지배하고 있던 운룡회의 무리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이대로 자신이 죽는다면 그가 이끌고 키워 온 청방과 백초당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이 뻔했다. 자신이 죽기 전에 누이동생의 남편감을 찾아내고 청방을 지휘할 능력을 갖춘 자도 찾아내야 했다.
북경이라 불리는 장소에 소구가 도착한 것은 숭산을 떠난 지 삼일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자금성의 뒤쪽에 있는 만세산 정상에 서서 소구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북경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처량한 풀피리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누나들은 알아서 집으로 잘 돌아갔겠지?"
소구는 조카를 만나는 일을 잠시 미루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관부의 일에 더 이상 개입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앞으로의 일은 죽던지 살던지 오로지 조카의 몫이었다. 화련 누나의 부탁으로 청의 황제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자신이 배우고 익힌 힘은 관부의 일에 써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을 정리한 소구는 자금성의 비밀통로를 통해 다시 황제의 침실 밑에 있는 밀실로 들어갔다.
밀실 안의 탁자 위에는 식기는 했지만 꽤 많은 음식이 놓여 있었다.
"녀석, 미리 알아서 음식을 챙겨 놓은 모양이로구나."
소구는 흐뭇한 미소를 흘리면서 탁자 앞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소년 황제 현엽이 밀실 안으로 들어온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밀실 안으로 들어선 황제는 얼굴에 반색을 띠고 탁자 앞으로 달려 왔다.
"숙부님, 오셨네요!"
"그래, 그 동안 잘 있었느냐?"
입가로 닭다리를 가져가며 소구는 그렇게 인사하고, 현엽은 바로 탁자 건너편에 앉아서 숙부인 소구가 식사를 끝마치기를 기다렸다.
식탁 위의 음식을 절반쯤 먹고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으면서 소구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나를 부른 것이냐?"
"이것 때문에 숙부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렇게 말을 더듬으면서 현엽이 꺼낸 것은 오배의 집에서 발견된 하나의 비밀문서였다.
"이게 무엇이냐?"
"숙부님, 오삼계라는 자에 대해 아세요?"
"오삼계? 그 평서왕이라 불리는 매국노말이냐?"
"네, 한족의 입장에서도 매국노이지만 청의 입장에서 보면 충신이죠."
"그자가 왜?"
"그자가 오배와 결탁해서 반란을 획책하려 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도와 주실거죠?"
현엽은 조심스럽게 물어왔지만 소구는 품에서 전에 받았던 어사패를 꺼내들고 있었다.
"이건 이제 필요없으니 돌려주마. 이제부터는 온전히 너의 일이다. 무림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관부의 일에 무림인이 개입한 일은 없었다. 난 이것을 돌려주고 너와 나의 인연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려 온 것이다."
담담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지만 소구의 그 말속에는 차가운 한기가 담겨 있었다. 소구의 말을 듣고 흠칫 몸을 떨던 소년 황제는 소구의 안색을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방금 소구가 한 말 속에서 현엽에게 모자의 인연을 잊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은 현엽은 입술을 깨물고 대답했다.
"모자(母子)의 인연은 천륜(天倫)입니다. 비록 그것을 밝힐 수 없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고 곁에 모시지도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못난 자식이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그 인연을 어찌 끊고 지내라 하시는 겁니까? 천륜은 끊어질래야 끊어질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을 밝힐 수 없어 세상을 속이고 있을지라도 그분이 저의 어머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숙부님의 조카인 사실 또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악한 것! 말은 번지르게 한다만 너의 마음속에 가족이라는 개념보다는 너의 황제라는 자리와 권력을 지키고 싶은 욕망이 우선하고 있지 않느냐?! 네 말처럼 네 어미가 편안히 살 수 있기를 바란다면 더 이상 네 어미를 이용하려 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구의 몸은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지고 소년 황제는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숙부님!"
밀실 안에는 이제 소년 황제 현엽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적막한 밀실 안에 홀로 남겨진 현엽은 털썩 의자에 앉아서 빈 천장만 응시했다.
한참이 흘러 새벽이 되었을 때 밀실 안으로 황후가 들어섰다.
"황상----."
황후의 나직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린 어린 황제는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그분이 나를 버리셨소."
"황상--, 황상의 곁에는 제가 있어요. 황상이 황제가 되는 그 순간부터 저는 언제나 황상의 곁에 있었어요. 그러니 외로워하지 마세요."
"그렇구려. 내 곁에 당신이 있었구려."
대답하면서 황후를 꼭 껴안은 소년 황제는 온 몸을 뒤덮고 있는 차가운 한기에서 그제서야 벗어나기 시작했다.
백초당으로 돌아온 화련에게는 근보를 훈련시키는 일이 있었지만, 수련에게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었다. 모두가 바쁘게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을 때, 그녀 혼자 아무 일도 없었기에 그녀는 심심했다.
가을의 달밤은 고즈넉하니 조용하고 후원 정자에 그린 듯이 앉아 있는 그녀는 이 조용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금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처음 시작은 잔잔하고 조용한 곡조로 금 소리가 백초당의 후원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낮에 방화련의 그림을 그리고 밤이 되어서 그림을 챙겨 후원으로 나온 조기라르디니라는 이름의 서양인 화가는 후원에 앉아서 금을 타는 동양의 미녀를 바라보았다.
'저런 모습을 보면 동양인들이 말하는 선녀가 따로 없구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서양인 화가는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한없이 처연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서 슬퍼 보였다.
처량한 음색이 백초당의 밤하늘로 울려 퍼지는 그 시간에 소구는 백초당의 대문을 넘어서고 있었다.
"수련 누나가 금을 연주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화련 누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걸음을 옮기는 소구의 입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방씨 집안의 형제자매들 중 지금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한 원수는 종적을 감추어 행방을 찾을 길 없고, 장남 종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는 상태였다. 소구는 이십년이라는 세월을 도둑맞았고, 화련은 남편과 아들을 세상이 뺐어갔다. 수련은 수련대로 악기를 벗삼아 날마다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형제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옮기는 소구의 발걸음은 형이 머물고 있는 건물로 가고 있었다.
누나들이 살고 있는 거처를 지나 형의 거처로 가는 소구의 발걸음은 문득 멈추워졌다.
화련 누나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소구의 귀에 들려 왔던 것이다.
"-----
부모님의 은혜는 강산보다 무거우니
진실로 보답하기 어렵네
자식의 고통도 대신하고자 하시고
멀리 길 떠난다고 하면 돌아다니며
밤에 잠자리가 추울까 마음 쓰시네
자식들이 잠시 괴로움을 겪어도
어머니의 마음은 오랫동안 쓰리네----."
화련 누나의 목소리는 잠시 동안 멈추어 졌다.
소구는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문에 비쳐진 화련누나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방 안에 불상을 갖다 놓았는지 벽을 보고 무릎을 끓고 앉아 있는 자세로 있는 화련 누나의 입에서는 계속 부모은중경의 계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모님의 은혜는 깊고 무거우니
언제나 은애하고 어여삐 여기시네.
앉으나 서나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으나
항상 마음으로 함께 하시네.
늙은 어머니가 백세가 되어도
팔십된 자식을 항상 걱정해주시네.
이 생명 다한 후에야
그 은혜가 그칠 줄을 알아야 하네."
열번째 계송을 외운 후 침묵하던 방화련은 한참이 흘러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후--우, 내 자식 귀한 것을 알게 된 후에야 부모님 은혜를 알게 되었구나---. 그 때 어머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남편도 잃고 자식도 뺏겼으니 저승에 가면 무슨 낯으로 부모님을 뵌단 말인가--, 아----."
탄식을 토하며 중얼거리는 화련 누나의 말을 들으면서 소구는 잠시동안 생각에 잠겼다.
'화련 누나에게는 나중에 이야기해야겠는걸---, 현엽과 누나는 더 이상 관계가 지속되면 안돼. 자금성에서 온 자들도 한시라도 빨리 북경으로 돌려보내야 돼. 누나가 딴 생각 못하도록. 지금은----, 복수를 생각할 때야.'
소구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다시 형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련 누나 역시 부모님의 복수를 생각하고 있기에 부모은중경을 외우며 마음을 달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방종구는 문으로 걸어 들어오는 막내 동생을 보자마자 말문을 열었다.
"자금성의 일은 모두 잘 처리했더구나."
"응."
"소구야, 넌 의술을 배워둔 것이 있니?"
"갑자기 왠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형?"
"후---, 내 몸을 봐라."
소구는 형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몸의 절반이 화상으로 뒤덮여 있고 몸의 절반이 피고름으로 물든 붕대를 매고 있는 상태였다.
"어떠냐?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럭저럭 지금까지 잘 살아 왔잖아?"
"이젠 한계다. 나도 좀 쉬고 싶어. 그러나---."
소구는 형의 앞으로 다가가 탁자에 앉아서 침상에 누워서 말하는 형을 바라보았다.
"아직 부모님의 원한을 갚지 못했다. 너도 이 말을 알 것이다. 부모님을 죽인 자와는 한 하늘을 이고 살지 말라는 것을----."
"우리 형제에게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라면 나도 알고 있어. 그리고 나 또한 그 운룡회라는 무리를 결코 살려둘 생각이 없어."
소구는 이를 갈며 대답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소구 역시 마음속에 원한의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너 혼자서는 안된다. 그자들에게는 세력과 재력이 있다. 너는 독불장군이다. 뒤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네가 아무리 강해도 그들의 암수에 당할 것이다."
"형이 받쳐주면 되잖아?"
"좀 전에도 말했다시피 난 한계다. 벌써 오늘만 해도 두 번이나 혼절했다. 이대로 내가 죽는 다면 부모님이 우리에게 물려주신 이 백초당을 그자들이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너와 화련이 수련이는 천하를 쫓겨다니면서 살게 될지도 모르지---. 세상일은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도 이해하고 있느냐?"
방종구의 말을 들으면서 소구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죽기 전에 준비를 해야한다. 그래서 이번에 청방의 힘으로 수련이의 신랑감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다."
"---?"
"그들 운룡회와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무력과 재력의 싸움은 우리가 멸망하던 그들이 멸망하던 계속 이어질 테고--,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 이어지겠지."
"형, 자꾸 죽는다는 불길한 말은 하지마. 정각 사부님이 돌아오시면 형의 상처가 아무리 심해도 살려 놓을 수 있을 거라구."
방종구는 씁쓸한 미소를 흘리면서 말했다.
"소구야, 내가 누구냐? 중원 천하에서 가장 거대한 정보망을 가지고 있는 청방의 방주다. 네 사부인 정각 대사의 의술이라면 날 살려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내가 안 찾아보았겠느냐?"
"그럼---?"
"찾고 찾고 또 찾았다. 그러나 네 사부의 종적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도 모르게 운룡회의 무리들이 네 사부를 어딘가에 죽여 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를 종합해보면 네 사부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소구는 형의 말을 들으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머리 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그래서--, 난 내가 죽은 후의 일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수련 누나의 신랑이야?"
"무력이 필요한 일에는 네가 있으니 해결되었지만, 내가 죽은 후에 청방을 지휘할 사람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다. 네가 청방의 운영까지 같이 맡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넌 무공은 뛰어날지 몰라도 상술과 사람을 움직이는--, 조직을 움직이는데 적합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침울한 얼굴로 그렇게 말을 끝낸 방종구는 입을 다물었다.
방소구 역시 입을 다물고 죽어 가는 형을 슬픈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슬퍼하지 마라. 사람이 나고 죽는 일은 하늘의 이치니--, 이런 몸을 이끌고도 십년을 넘게 살았으면 많이 산 셈이지. 그리고 수련이가 혼인하는 모습을 보기 전에는 어떻게든 살 테니---. 너도 피곤할 테니 그만 가서 쉬도록 해라."
소구는 서글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소구의 귀에 웩웩거리며 피를 토하는 형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소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형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에 방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것이다. 뒤돌아 서서 죽어 가는 형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소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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