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을 마신다. 어머니의 눈은 테이블에만 있다. 나는 어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테이블을 본다. 테이블에는 먼저 나온 어머니의 채소수프가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채소수프를 바라고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구두에서 발을 뺀다. 물집이 생긴 듯 발가락이 아프다. 어머니와의 자리가 불편하다. 온몸의 혈관들이 팽팽하게 확장되는 느낌이다. 나는 그 느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어머니가 눈치채지 않게 조금씩 몸을 뒤튼다. 내 생각이 틀렸다. 나름대로 상상했던 어머니가 아니다. 나를 만난 어머니에겐 기쁨이나 슬픔이 없다. 또 카페 출구를 본다. 이번엔 손에 테니스 라켓을 든 운동복 차림의 두 남자가 나간다. 내 시선은 남자들을 따라간다.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한 이유를 모르겠다. 카페 안의 잡담, 웃음, 음식 냄새, 자욱한 담배연기. 모든 게 짜증이다. 목이 또 마른다. 물을 마신다. 물은 마르고 긴장된 식도를 타고 위로 내려간다. 결국 내 위는 물로 다 채워질 모양이다. 나는 아침도 먹지 못했다. 그러나 배는 고프지 않다.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다. 주문해놓은 스파게티가 나온다해도 면발하나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할 것 같다. 언제부턴가 위는 음식을 거부하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여자가 있다. 술병들이 진열된 벽면 쪽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여자의 얼굴은 정면으로 보인다. 여자는 상당히 예쁘다. 누구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여자는 담배를 피우며 손목시계를 자주 본다. 얼굴에는 초조감이 있다. 웨이터는 벌써 두 잔 째의 커피를 그녀의 테이블에 갖다 놓는다. 여자는 목이 길다. 웨딩 숍에 전시된 신부 마네킹처럼. 여자에게는 목선이 강조된 웨딩드레스가 잘 어울릴 것 같다. 웨딩드레스를 생각하니 몸이 전율한다. 나는 웨딩 숍에서 일한다. 날마다 신부들에게 눈빛 웨딩드레스를 입히며 살아간다.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본다. 어머니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나는 무색하여 어깨를 떤다. 나중에서야 내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음을 안다. 어머니의 체형은 마르고 작다. 얼굴은 갸름하다. 나는 아무래도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아홉 살 여름에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 모습을 떠올려 본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 얼굴을 일부러 잊어버리기 위해 애를 쓴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 얼굴이 점차 지워졌을 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연분홍 원피스를 입고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카페로 들어서는 어머니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를 포기할 수 없어요, 그를 돌려주세요. 나는 또 어머니를 원망하고 만다. 그가 떠난 것. 어머니 탓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그가 떠난 것을 어머니 탓으로만 돌리려 하는가. 이제 와서 어머니에게 무엇을 보상받고자 하는 걸까. 사실 나는 그간 어머니를 원망하기보다는 늘 그리워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같이 사는 모습을 자주 그렸다. 밖에서 돌아와 벨을 누르면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고 밥상을 차려주고 오랫동안 텔레비전 앞에 있는 나를 나무라는 그런 일들의 모습을. 그러나 막상 만난 어머니에게서는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본능적 모성애가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많아서인가. 주문한 스파게티는 좀체 나오지 않는다. 웨이터는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빠르게 오가느라 정신이 없다. 어머니는 앞서 나온 채소 수프에 손도 대지 않는다. 스파게티를 기다리는 일에 이골이 나려 한다. 나는 줄곧 웨이터를 응시하며 소리 없이 지껄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인간. 어머니에게로 눈을 옮긴다. 순간 바닥으로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포도색 손수건이다. 어머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땀을 흘린다. 이마와 콧등에 땀방울이 맺혀있다. 실내는 덥지 않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땀을 흘린다. 생각해보니 우리 모녀 사이에서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것 같다. 누구 탓인가. 어머니가 등을 구부려 손수건을 집으려 한다. 손수건은 어머니 발치에 있다. 손수건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는 일어난다. 손수건을 어머니에게 건네준다. 짧은 접촉. 나의 손이 어머니 손에 닿는다. 뭔가. 이토록 강렬하게 온몸을 전율시키는 것이. 어머니도 내 손의 접촉에 일순 당황한다.
남쪽 도시의 작은 마을.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가 사는 곳에 왔다. 한번도 와 본적이 없는 마을이다. 인도에는 사람이 드물다. 차도에도 차들의 소음이 나지 않는다. 조용하다. 푸른 들판과 산은 있는 그대로다. 이런 한적한 곳에 카페가 있다. 카페가 생긴 건 아마도 마을 중앙에 있는 호수 때문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호수 이편 저편에 전원주택의 목조 건물들도 눈에 띈다. 호수는 카페지점에서 이 백 미터쯤 거리에 있다. 낚시꾼들은 미끼를 호수에 던지고 형광비늘의 물고기들을 기다린다. 여기저기에 흔히 있는 풍경이 아니다. 평온한 마을이다. 어머니는 이곳에서 19년 동안 저 무화과나무 아래의 남자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여름이다. 어머니가 떠나고 내가 남겨진 여름. 그리고 또 그가 떠났던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나는 사람들의 여름. 창 밖에 어머니의 남자가 있다. 남자는 화장실에서 가까운 자리에 우리를 안내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어머니가 왜 이곳에 왔으며 눈을 어떻게 잃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남자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호수 쪽을 향해 무화과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 남자. 남자는 내게 가벼운 눈인사만 했다. 평범한 인상의 얼굴이었다. 남자를 보자 갑자기 분노가 솟았다. 어쩌면 남자 때문에 어머니가 떠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남자 흰 셔츠의 등을 바라본다. 등이 정말 하얗다. 셔츠 속의 남자 등이 햇빛에 타는 듯하다. 나는 정말 남자가 햇빛에 타는 상상을 하다가 어떤 소리리듬에 깜짝 놀란다. 어머니의 휴대폰 소리다. 알았어요. 외모만큼이나 단조로운 어머니 목소리. 어머니가 휴대폰을 가방에 넣는다.
어머니의 채소 수프가 겔 상태가 될 즈음 웨이터가 스파게티를 가져온다. 어깨 폭이 넓은 웨이터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네 변의 길이가 같은 흰 사각형 냅킨을 내 코앞에서 펼친다. 스파게티 접시를 살며시 내려놓는다. 웨이터의 행위들은 기계적이다. 스파게티에 나의 음울한 시선이 떨구어진다. 올리브 오일에 촉촉하게 버무려진 면발들 위에 치즈와 파슬리 가루가 뿌려져 있다. 웨이터가 카운터로 돌아간다.
“먹자.”
어머니가 말한다. 채소 수프가 어머니 입 속으로 들어간다. 붉은 색 파란 색으로 잘게 썰어지고 다져진 갖가지 채소들이 느리고 권태롭게. 수프 묻은 피망이 가슴으로 흐른다. 어머니는 수프가 가슴으로 흐르는 줄도 모르고 수저질을 한다. 나는 의자를 당긴다. 냅킨 한 장을 냅킨 통에서 뽑는다. 어머니 가슴을 닦아주려다 그만둔다. 스파게티를 포크에 감아 입에 넣는다. 이물감이다. 철사나 종이 조각 같은. 어렵사리 면발을 삼킨다. 토할 것만 같다.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은 걸 겨우 참는다. 스파게티를 포크에 또 감는다.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는 묵묵히 채소수프를 먹고 있다. 아까보다는 수저질이 덜 서툴다. 그러나 맛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다. 나는 면발 감아진 포크를 입안에 넣는다. 그를 포기 할 수 없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생일날 그는 여기 없다.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갔다. 가방을 챙기면서 당분간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당분간이 지났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와의 동거기간은 삼년간이었다.
“이제 그만 끝내고 싶어.”
“뭘?”
“그냥 살아보는 거. 너랑 결혼하고 싶단 말이야.”
“기다려.”
나는 내게 고정된 그의 갈색 눈동자를 보았다. 그가 내 눈을 피했다. 그러더니 피우던 담배를 신경질 적으로 비벼 꺼버렸다. 나는 그때 그가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불안감은 곧 나도 제어할 수 없는 집착으로 이어졌다. 그와 정사를 하면서 등줄기에 푸른빛 흔적을 남겼다. 아침에 일어나 빗질하면서 빠지는 그의 머리카락 숫자도 세었다. 물론 그가 눈치 채지 못하는 집착들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집착하면 할수록 불안의 폭은 더 넓어졌다. 마늘을 찧다가 검지 손톱에 피멍을 들게 하고 금방 끓은 물을 유리병에 담다가 유리병을 박살냈다. 그리고는 잠이 들면 아침까지 잡다한 꿈들을 꾸었다. 그 중에서도 자주 꾸는 꿈은 내가 웨딩 숍의 마네킹이 되는 꿈이었다. 마네킹이 된 나에게는 어떤 웨딩드레스도 입혀지지 않았다. 마네킹은 조용히 서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들을 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그런 얼마 후 그에게 가족이 나타났다. 아내와 딸이었다. 그들이 등장했을 때의 충격은, 날렵한 작살이, 물고기 몸통을 관통하는 경우와 같은 거였다. 그와 살면서도 미국에 가족이 있을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어쩌면 일부러 의심을 하지 않으려 했는지도 몰랐다.
“주스공장으로 가는 레몬 트럭이 딸을 날렸다는 거야. 세상에 이런 일이…. 잠만 계속 쉬지 않고 잔대. 벌써 쉰 다섯 시간이 지났대.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정말 미안해.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면 돌아올게. 아니 네 생일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 아침까지는 오겠어. 꼭 돌아와서 너에게 스파게티 만들어 줄게.”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나에게 되풀이 물으며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장막을 쳤다.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소음도 없었다. 몸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날이 갈수록 나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몸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내가 죽어 가는 냄새였다.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공복의 고통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먹고싶음의 욕구는 남아있는 법인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게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떠올려보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네가 좋아. 난 이대로 소멸할거야.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날 더 깊이 안아 줘.”
“넌 너무 오래 있었어.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야.”
“나가지 않을 거야. 이곳 말고 다른 곳은 몰라. 나는 처음부터 이곳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 실수였어. 밖으로 나갔던 것이.”
“넌 나가야 해. 너를 더 이상 안고 있을 수 없어.”
“안돼. 밖은 너무 무서워. 무섭다고. 그곳엔 아무도 없어.”
“누군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나가.”
“아니야. 아무도 없어.”
“당장 나가. 당장.”
나를 내모는 정체 모를 어떤 소리의 단호함에 너무도 놀라 눈을 번쩍 떴다. 하얀 천장이 보였다. 주위를 돌러보았다. 창문이 있는 벽이 있고 나와 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병원이었다. 많은 양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이 든 나를 경비원이 병원으로 옮겼던 것이다.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본 경비원이 아파트 키를 주면서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것이 아니요, 라고 말했다. 경비원은 내가 자살을 시도한 걸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경비원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죽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잠이 오지 않아 다른 날보다 좀 더 많은 양의 수면제를 먹었을 뿐인데 불행히도 깨어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의 신발들을 닦았다. 웨딩 숍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그의 신발들을 구둣솔로 닦는 거였다. 그의 신발들 모양은 다양했다. 앞코가 둔탁한 와일드한 신발. 깔창에 녹차 성분이 들어간 신발. 겉이 딱딱한 볼품없는 신발. 부드러운 신발. 그는 신발들을 모았다. 신지도 않은 신발들이 많은데도 그는 툭하면 신발을 사 들고 왔다. 그의 직업은 관광가이드였다. 국내의 외국인 관광객을 인솔하는 일이었다. 많이 걷는 일을 하자면 질이 좋고 편한 신발이 필요했다. 그가 자주 신발을 사다 놓을 때 난 처음엔 직업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알고 보니 취미였다. 은행에 가다가도 도서관에 가다가도 눈에 띄는 신발이 있으면 사 가지고 와서 오픈 신발 수납장에 진열해 놓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직업을 바꾼다면 신발 공장에서 일생동안 일할 거야, 신발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즐거워져.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그의 신발들을 보고 있으면 왜인지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의 신발들을 발에 꿰어 보았다. 사이즈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거짓말처럼 딱 맞은 것도 있었다. 그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그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사진 앞에 서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침을 삼켰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물론 그가 떠난 후부터였다. 침을 삼키며 수화기를 들었을 때 거기서 들려온 목소리는 나를 아연케 했다.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그는 그쪽한테 돌아오겠다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남편은 분명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절대로. 우리가 헤어져 살았던 건 어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제가 부모를 따라 먼저 미국으로 들어왔던 것뿐입니다. …댁이 모르고 있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남편을 사랑한다는 겁니다. 남편도 가족을 사랑하구요. 그럼 이만.”
그의 아내였다. 그보다는 그의 아내를 증오했다. 아내가 죽어버렸으면 했다. 나는 그의 앨범이나 수첩을 뒤졌다.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이 없는 그의 아내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그의 완벽한 위선에 나는 몸을 떨었다.
음식을 통 먹지 못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평상시에 위염을 앓아 병원에 가본 일이 없는데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음식만 들어가면 위가 울렁거리고 쓰렸다. 혹시 위암 증세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긴 했지만 그를 기다렸다. 생태 지느러미를 제거하고 호박과 무와 버섯을 깍둑깍둑 도톰하게 썰어 생태맑은 장국을 끓였다. 여름이라 음식은 금방 상했다. 싱크대 하수구로 음식을 쏟아 부었다. 위장은 내가 정성껏 들여보내는 음식과 집요하게 맞섰다. 그의 아내가 전화를 하고 나서 이틀이 지났다. 그때 장어구이를 하고 있었다. 또 전화가 왔다.
“뭔가 잘못 알고 계시는 것 같군요. 그는 돌아옵니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나 역시 그를 사랑합니다.”
여자가 반격할 틈도 주지 않고 전화를 딱, 끊고 나니 사위가 필요이상으로 조용했다. 어느 순간 신발수납장으로 시선이 갔다. 그의 부재가 온몸으로 달려들었다. 배가 고파왔다. 아니 극심한 허기였다. 가장 먼저 먹고 싶은 것이 소금과 무를 넣어서 끓인 시원한 콩나물국이었다. 정신없이 콩나물국을 먹고 나니 피곤이 밀려왔다. 노파 마냥 벽에 기대앉아 있는데 몸에서 이상한 징후가 일어났다. 구토였다. 음식물을 모두 바닥에 고스란히 쏟아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구토는 계속되었다.
“키는 1㎝이고 몸무게는 25g입니다. 자, 이 화살표를 따라가세요. 이 까만 부분이 머립니다. 아직은 머리에 눈과 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만 얼마 안 있으면 얼굴로 이동하고 물갈퀴 모양의 손과 발도 생길 겁니다. 이 소리 들리시죠? 잘 들어보세요. 심장박동소리입니다. 아주 힘찹니다. 수건으로 배의 초음파 젤 닦으시고 옷 입으시고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런데 보험카드 상으론 미혼이던데…낳을 겁니까?”
초음파 진단 침대에서 일어난 나를 보고 남자 의사가 말했다. 나도 미처 몰랐던 임신이었다. 나는 산부진찰기록카드에 무엇인가를 볼펜으로 쓰는 의사 얼굴을 보았다. 순간 의사의 입술에 미소가 살짝 비쳤다 사라졌다. 의사는 내 자궁에 고무흡입기를 15분에서 20분만 갖다대면 일반 임산부환자 스물 명쯤의 자궁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수입을 얻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나는 다음 진찰날짜에 약혼자와 같이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18층 베란다에 섰다. 아스팔트 바닥을 내려다보며 독백했다. 그를 포기할 수 없어.
생일날 아침. 그는 오지 않았다. 휴대폰 번호도 결번으로 나왔다. 나는 벽에 걸린 그의 사진을 북북 찢으며 칼날처럼 날카롭게 지껄였다. 개자식, 차라리 급성뇌염으로나 죽어버리지. 분노하는 순간, 나를 강렬하게 지나가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 무엇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생각에 빠졌다. 어쩌자고 어머니인가.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렀다. 당장 어머니를 만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근원에의 그리움인가, 라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했다. 무엇에 이끌린 듯 전화번호만 들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어머니를 만나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후의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난 어머니를 평생 찾아가지 않을 작정을 했었다. 어머니와 연락을 취한 건 꼭 두 번이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이고 또 한번은 그를 만나 살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연락 할 때마다 상당히 불편해 했다.
어머니와 연결이 된 건 읍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어머니는 지도상으로 읍에서 삼 십분 걸리는 거리에 살고 있었다. 먼저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남자였다. 십중팔구 어머니의 남편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남자에게서 건네 받은 어머니는 다짜고짜 돌아가, 제발 부탁이야, 했다. 나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나는 운전대를 손으로 탕, 치며 이렇게 말했다. 돌아갈 수 없어요, 어머니가 사는 곳에 이미 와버렸단 말이예욧. 어머니는 침묵하고 수화기를 한참동안 들고 있다가 참으로 충격전인 이야기를 했다. 난 너를 볼 수 없단다.
나는 면 종류를 좋아한다. 특히 스파게티를 잘 먹는다. 생일이 돌아오면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게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었다. 냉장고에는 내 생일 상에 오를 스파게티 재료가 준비되어 있다. 국수. 올리브. 토마토 소스. 양파. 파슬리. 스파게티를 먹기 시작한다. 역시 위가 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포크를 테이블에 놓지 않는다. 위가 계속 음식을 거부하면 아이는 굶어 죽을 지도 모른다. 아이가 죽는다? 상상도 안 해 본 일이다. 떠난 뒤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은 그. 그는 알까. 자신의 아이가 음식을 거부하고 있다는 걸.
“음식을 통 먹지 못하는구나.”
“네. 어머니.”
“….”
“이렇게 올 줄 몰랐다.”
어머니가 내게 걸어오는 말의 횟수는 점점 많아진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하다. 얼굴엔 자애로운 빛이 있다. 눈을 본다. 어머니는 여전히 눈을 똑바로 들지 않는다. 나는 비로소 온몸이 저려오는 긴장감에서 풀려난다. 문득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은 마음까지 인다.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힘이 이것이었을까.
웨이터가 다가온다. 웨이터가 가져온 찻잔에 눈을 둔다. 저희 사장님이 직접 만든 감잎차입니다, 라고 친절을 적당히 가공한 웨이터가 돌아간다. 감잎 차에 은은한 향기가 있다. 나는 몇 번이고 감잎 차의 맑은 향기를 맡아본다.
“마시자꾸나.”
“향기가 좋아요.”
어머니가 둥근 찻잔을 어루만진다. 나는 차를 마신다. 차를 마시다 멈칫한다. 한번쯤은 들은 듯한 멜로디가 들려온 때문이다. 어머니의 전화다. 나의 눈은 순식간에 남자에게로 날아간다. 날아간 내 시선은 남자의 흰 셔츠 등에 박힌다. 왜 자꾸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는 거야. 어머니가 가만히 일어서서 화장실 쪽으로 몸을 돌린다. 화장실은 우리가 앉아 있는 곳에서 아주 가깝다. 어머니는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손으로 양편 탁자를 집는다. 불안하다. 이제야 남자가 화장실이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아준 이유를 알 것 같다. 남자의 얼굴을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가 없는 틈을 이용해 그의 휴대폰 번호를 누른다.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이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 주십시오. 그의 휴대폰 번호는 어제와 똑같이 결번으로 나온다.
창 밖. 하얀 자갈 마당에 예비 신랑신부가 있다. 그들은 웨딩포토를 하고 있다. 자갈자갈. 그들의 빌 밑에서 하얀 자갈소리가 난다. 방금까지도 없었던 그들은 언제 왔을까. 감나무의 남자는 신랑신부에게 관심이 없다. 어머니와 계속 통화중이다. 신부와 신랑은 사진기사 앞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둘이서 팔을 뻗어 포개기도 한다. 그들이 취하는 포즈가 다양하다. 사진기사는 그들을 서서 찍고, 앉아서 찍고, 등을 구부리고 찍고 또 위치를 바꿔 찍는다. 그들의 존재는 어둠 속의 반딧불처럼 돋보인다. 그들의 포즈처럼 시시각각 형태가 변하는 하늘의 구름이 정지하듯 흘러간다.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카페 사람들의 눈은 그들을 언제까지고 따라다닌다. 신부 웨딩드레스 빛깔은 아이보리색인데 가슴 선을 살렸다. 신부는 가슴이 빈약하다.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혀본 신부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거울도 보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거울을 보았는데 그 거울 면이 균일하지 못해 어머니 모습이 찌그러졌던지. 가슴 중앙께에 식사 중 흘린 수프가 그대로 있다. 아, 그렇다. 어머니는 소경이다. 나는 잠시 어머니가 소경이었음을 잊고 만다.
“어머니에게 연분홍이 참 잘 어울려요.”
어머니 가슴 중앙께로 휴지 든 손을 가져가 흘린 수프를 닦는다. 어머니가 나를 올려다본다. 흰자위와 적당한 검은 동공. 의안은 움직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나를 응시하듯 정면으로 보고 있다. 나는 황폐한 어머니 눈을 더 이상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찻잔으로 내리고 만다.
“어쩌다 눈을….”
“사고였다.”
“너를 떠난 지 얼마 안돼서.”
내 나이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떠났다.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놀이터 안쪽 바깥쪽. 그리고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나무 벤치. 햇빛만 가득했다. 여름이 한창인 정오쯤이었다. 햇빛으로 뜨거워진 모래를 들여다보는 얼굴을 머리카락이 전부 가려버렸다. 할아버지와 집에 왔을 땐 어머니는 없었다. 아버진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있는 여자와 재혼했다. 처음엔 나는 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이었다. 현관에 들어서려는데 방에서 아버지와 새어머니 소리가 들렸다. 거실에는 새어머니가 데리고 온 여자아이가 도넛을 먹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도넛 그릇을 들고 얼른 제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제 곧 있으면 아이가 생겨나요. 그러면 나는 세 명의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구요. 아버님한테 데려다 줘요.”
“아버지인 내가 있는데 어떻게 아이를 아버님한테 보내겠다고 그래.”
“그럼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어요. 우리 그만 살아요. 당신 이거 알아요. 그 아이가 얼마나 차가운지 말이예요. 그 아이 눈만 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친다구요.”
나는 집을 나왔다. 그리고 먼길을 걸어 할아버지 집에 왔다. 그 후로 나는 새어머니를 할아버지 장례식 치를 때 딱 한번 보았다. 가끔 아버지만 집에 들려서 내게 미안하구나, 라는 말만 던지고 가버렸다. 어머니가 있는 곳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어머니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있는 곳을 알게 된 것은 할아버지가 죽기 몇 분전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스무 살을 넘겼을 때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 경마에 빠져 있던 아버지가 집을 다녀갔다. 그때도 아버지는 나를 보고 미안하다는 말을 던졌다. 아버지가 나가자 할아버지가 내 얼굴을 한참을 쳐다보더니 나를 가만히 불러 아가, 백회 쪽에서 귀밑으로 뭔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드는구나,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흰눈 내리는 12월이었다. 거리는 온통 흰눈이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온 할아버지가 또 나를 불렀다. 할아버지는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나를 떨리는 손으로 가까이 오게 하더니 내 손에 반으로 접힌 종이를 쥐어주며 내 어미의 연락처란다, 라고 힘겹게 말했다. 나는 숨을 멈추고 할아버지의 입에서 말이 계속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입에서는 더 이상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사인은 고혈압성 뇌출혈이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아버지 도움 없이도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재산을 내게 남겨주고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처음으로 어머니와 연락이 되었다.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어.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저 남자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바랐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니? 너랑 함께 사는 거였다. 몰랐었다. 네 아버지가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듣고 싶지 않아요.”
처음으로 듣는 나의 태생. 나도 모르게 경악을 한다.
“들어다오. 언젠가 너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어머니의 시선이 내 얼굴에 있다. 어머니는 또 땀을 흘리고 있다.
“그 때 나는 종합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였는데 그분이 갓난아이를 안고 나를 찾아왔더구나. 너를 가진 나는 식물인간 환자에게 산소흡입기를 씌우고 있었지. 중환자실은 외인 출입금지구역인데 그곳까지 들어와서는 울면서 말하는 거야. 제발 부탁이니 남편을 잊어주세요, 남편 없이는 나와 우리 아이 아무 것도 안돼요, 이렇게 말이다.”
어머니가 손수건을 이마로 가져간다.
“나중에 알았다. 그분이 심한 우울증에 오랫동안 시달리다 아이와 함께 자살 한 것을. 죄책감에 시달렸다.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저 남자와 도망치듯 이곳으로 내려왔다. 저 남자는 내가 근무했던 병원의 환자수송요원이지. 남자는 이곳에 와서도 운전을 했다. 어느 날은 네 생각으로 너무 울고 있으니까 저 남자가 나를 차에 태워 네가 사는 곳으로 데리고 가더구나. 그날 따라 비가 몹시 내렸다. 10m 앞을 볼 수가 없었어. 봉고차와 충돌 한 거야. 다른 곳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데 눈만 박살이 났어. …그때부터 너를 잊기로 했다. 너에게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다. 19년만에 너를 앞에 놓고도 쉽게 말을 할 수도 없었던 건 너무 떨리기도 했지만 너와 눈이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다.”
어머니의 입술이 떨린다. 어머니는 차를 몇 모금 마시며 숨을 고른다.
“나를 이해해 달라고는 않겠다.”
우리 모녀는 서로의 눈을 쳐다본다.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어쩔 수 없어서 낳은 게 아니었다. 사랑했다. 사랑했기 때문에 너를 낳았다. 이것만은 너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어. …너에게 해야 할말을 해주고 나니 마음이 이렇게 편하구나. 이젠 너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오래 머물 수가 없구나. 잘 가거라.”
어머니의 삶을 이어받다니. 얼굴로 열이 오른다.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어머니가 출구로 나간다. 의자가 빈다. 잠시 후 웨이터가 어머니의 찻잔과 수프접시를 가져가 버린다. 어머니는 카페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끝없이 이어진 길을 따라 걷고 있다. 걷고 있지만 걷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어머니 걸음이, 문득 두고 온 물건이 생각난 듯 정지한다. 나는 어머니와 남자 뒷모습을 지켜본다. 그들 위로 투명하지만 가슴 울리는 휑한 햇살이 내리고, 부드럽지만 빙하기 같은 들바람이 지나간다. 생각했던 것처럼 어머니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다시 걷는다.
운명이란 무엇인가. 모른다. 그럼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것도 모른다. 나는 이곳으로 무엇에 이끌린 듯 와서 어머니에게 운명적인 사랑이란 말을 들었다. 아랫배에 손을 댄다. 아이가 들어있다는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아이는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먹다 남은 스파게티를 본다. 스파게티는 먹을 수 없을 만큼 불어있다. 여전히 식욕은 없다. 창 밖을 본다. 이미 어머니는 가고 없다. 휴대폰을 본다. 휴대폰에 사진이 붙어 있다. 우리는 웃고 있다. 그와 내가 최초로 만나서 동침한 후 거리의 즉석 포토 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의 휴대폰에도 이와 똑같은 사진이 붙어있다. 나는 사진을 떼어내지 않는다. 내 휴대폰에 입력된 그의 결번 번호도 지우지 않는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삶에 직면한다. 그가 영원히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는 내게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말한 이것이 사랑인가. 태어날 아이의 맑은 입술과 검은 눈동자가 떠오른다. 스파게티에 소스를 친다. 비빈다. 벌써부터 위가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개의치 않고 스파게티를 먹는다.
◆ 당선소감 - 김진숙
2001년의 12월의 끝자락. 밖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고 이제 3살난 아들은 내가 블록으로 만들어준 바닷속에서 고기를 끌어올렸다 다시 잠기게 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생기있는 아이 얼굴을 보며 별로 보람있는 일도 없이 또 한해가 가고 있다는 아쉬움에 잠기고 있었을 때 신문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당선입니다’. 나는 속으로 들은 말을 중얼거려보았다. ‘당선입니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지. 그랬다. 잡히지도 않고 보이지 않는 것과 매일매일 싸우다 접하게 되는 희열. 그것은 황량한 사막에서 푸른 나무를 찾아 그 향기를 맡는 것과 같은 거였다. 소설이 뭔가를 점차 알아가고 있는 딸아이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걸까.
이 소설을 쓸 무렵은 7, 8월이었다. 내게는 올 여름이 어느 해보다도 덥고 길었다. 크게 의지했던 아버님이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계셨고 사랑하는 친구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뜨는 여름이었다. 나는 그 슬픔이 황급히 물러가기를 바라며 소설을 쓰고 또 쓰면서 이겨냈던 것 같다. 나도 남들처럼 웃고 수다떨며 무심히 삶의 중심을 가로질러 가고 싶다 느끼다가도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사이에 소설 속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도 무엇을 어떻게 쓸까, 로 가득찬 머릿속.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항상 시작하는 마음으로 소설에 대해 고민하는 여자가 되려한다. 좌절 할 때마다 글을 쓰도록 힘이 되어준 남편과 광주대 문창과 교수님, 그리고 문순태 선생님 또 소설을 사랑하는 자투리 문학회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또 부족한 글을 심사해주신 박범신, 최수철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심사평
최종심에는 모두 열여섯 편의 작품이 올라왔다. 비교적 모두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는데, 그 중에 우리는 특히 다섯 편의 소설에 주목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중의 어느 한 작품에 선뜻 낙점을 하지 못했다. 각기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장점이 작품 전체를 충분히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 탓이다. 아마도 응모자들 자신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확보하는 동시에 개성적인 목소리를 발하는 일의 지난함을 새삼스레 절감했으리라 생각된다.
'옥상 위의 까마귀'(원채연)와 '비루한 인생'(윤희)은 우리 삶의 의미적인 단면을 포착하여 인상적인 광경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행이 내내 첫 영감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탓에, 이를테면 씨를 뿌리고 싹은 틔웠으나 꽃은 피우지 못한, 그 결과 열매를 맺는 데 이르지 못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금줄'(김지현)은 응모작들 중에서 문장력과 구성력에서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중요한 고비에서의 개연성의 부족, 그리고 특히 세상에 대한 참신한 시각 혹은 새로운 해석의 부재가 큰 아쉬움을 남겼다.
거기에 비해 '탱고는 혼자 추지 못한다'(조민형)는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한, 이른바 시학적인 소설이다. 실제로 여러 편의 시를 활용하고 있는 이 독창적인 작품은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의 상황 제시가 동어반복적이라는 점과 극적인 결말 처리에서 설득력이 약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동거남녀'(김진숙)는 어찌 보면 다른 네 편의 소설들이 각기 가지고 있는 장점을 넘어설 만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미덕은 소설의 중요한 요건들을 두루 갖추고서, 그 은근한 힘으로 범박함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섬세하고 안정된 문장과 단아하면서도 점진적인 얼개 위에서 인물들의 갈등을 어루만지고 풀어나가려는 노력을 통해, 소설이 우리 삶에서 발휘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차분한 탐색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제 막 출발점을 확보한 것이므로 앞으로 지속적인 정진이 요구된다는 말을 사족으로나마 덧붙이고 싶다. 〈심사위원 박범신·최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