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할 지는 모르지만 아무거나 하기는 싫어
목차
우선 과거를 재해석해 보자
01. 추억의 맛을 초현실적으로 소환하는 디저트 가게 - 낯선 익숙함이 날선 새로움을 만든다 [잇 달링 잇]
02. 찻집에서 별자리를 찾아보는 이유 - 소통할 줄 아는 전통 문화는 시간을 이긴다 [스미스 앤 슈]
03. 감옥에 자유를 허하면 생기는 일 - 과거의 유산은 지키면 유물, 살리면 보물 [비하인드 바]
고객 경험을 바꿔보면 어떨까?
04. 오리지널 레시피 없이 미쉐린 스타를 단 레스토랑 - 남의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편집의 기술 [인 시투]
05. 디저트를 공짜로 대접하는 디저트 가게 - 구경을 구매로 바꾸는 접객의 기본 [써니힐즈]
06. 조리 과정을 메뉴로 만든 레스토랑 - 기다림을 기대감으로 끌어올리는 방법 [원 하버 로드]
고정관념은 부수라고 있는 거야
07. 바텐더가 없는 칵테일 바 - 업의 핵심을 버리면 혁신이 생긴다 [드래프트 랜드]
08. 신장개업을 달마다 하는 레스토랑 - 임대업과 컨설팅업은 종이 한 장 차이 [테이스트 키친]
09. 마시지 않을 와인을 파는 와인 매장 - 업을 재정의하면 고객층이 달라진다 [베리 브로스 앤 러드]
미래 기술을 도입해 본다면?
10. 카페와 바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로봇팔의 힘 - 비용은 낮추고 매출은 높이는 로봇 활용의 정석 [레시오]
11. AI 스피커가 술을 팔면 달라지는 것들 - 구매의 맥락을 파악하면 고객의 지갑이 열린다 [보틀로켓 와인 앤 스피릿]
12. 로봇 레스토랑은 업그레이드 중 - 상상하는 대로 현실이 되는 로봇의 쓸모 [로봇 허]
서평자
유미숙 (국회도서관 법률번역관리과장)
서평
상사가 기획안을 가져오라고 할 때
『퇴사준비생의 도쿄』를 읽고 나서 이동진과 그의 동료들이 낸 책은 거르지 말아야지 했습니다. 우선 존댓말을 써서
글이 공손하고 쉽습니다. 그게 좋아 저도 따라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디서 봤더라 싶은 내용이 아니고 발품 팔아
눈으로 보고 느낀 것만 싣습니다. 우린 리바이벌은 싫잖아요?
여기까지만으로도 다른 책을 제치고 읽을 마음이 차오르는데, 그들의 책에는 뿌리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바로 주제 파악하는 솜씨입니다. 핵심만 꼬치에 꿰어 불맛나게 구워내는 실력파들입니다. 책장 넘기다보면 ‘뭘 이렇게나
잘 본대냐~’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실 겁니다.
시작도 디테일, 끝도 디테일
저자들은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10년 후에도 망하지 않을 사업을 예측하는 대신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가치를 찾아내 또박또박 알려줍니다. 기획사례들을 읽으며 놀라고 또 놀라는 지점은 ‘이런 곳까지나?’ 싶게 고객에
집중하는 디테일입니다. 한 레스토랑 안에는 분수대가 있답니다. 비즈니스 미팅 목적으로 찾는 고객이 많은데 민감한
이야기를 다른 테이블에서 우연히 듣게 될까봐 그랬답니다. 그 정도 디테일을 챙기는 마음이면 어떤 서비스를 기획해도
잘하지 않겠습니까?
고정관념은 부수라고 있는 거지
새로운 기획을 하는 좋은 방법은 쉽진 않아도 고정관념을 부수는 거겠지요. ‘왜 칵테일은 꼭 바텐더가 만들어야 하지?’
라는 고정관념을 파고 들면, 칵테일을 미리 만들어놓고 맥주처럼 탭에서 따라 마시는, 듣도 보도 못한 칵테일바가 만들
어지는 거죠. 인건비가 줄어드니 술값이 싸집니다. 칵테일 이름이 어렵다면 번호와 색깔로 칵테일을 구분하면 쉬워집
니다. 무슨 맛인지 몰라서 주문을 못하겠네 싶으면 탭에서 조금씩 따라서 맛보고 주문하면 되겠네요. 이렇게 싸고 빠르
고 쉬운 칵테일바가 있다면 저라도 퇴근길에 들르겠습니다.
사는 게 아니고 고용하는 거라구
맥도날드가 밀크셰이크 구매율을 높이기 위해 분석하는 방식도 새롭습니다. “생활에서 발생하는 어떤 일 때문에
고객이 밀크셰이크를 고용하는가?” 묻습니다. 음료수 한 잔 주문하는 게 고용...이라구요?
소비자들은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용하여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을 대신하도록 시키는
것이랍니다. 그러니 고객이 제품을 고용하는 목적을 연구해야 고객이 그 제품을 사야만 하는 이유를 더 명확히 제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고객은 제가 만드는 서비스를 사서 대체 무슨 일을 시키고 싶으셨던 걸까요. 그걸 알면 알수록 더 말 잘 듣는
서비스를 만들어 드릴 수 있을 텐데요.
공간에 강약을 주는 팁
도서관 열람실에는 주류 매장 ‘보틀 로켓’의 사례를 추천합니다. 와인의 경우에는 선물용인지, 세 번째 데이트용인지
구매하는 목적에 따라, 혹은 어울리는 음식에 따라 매장 추천 코너를 만들어 눈길 가게 진열합니다. 그러려면 공간도
품도 많이 들겠지요.
대신 위스키는 평범한 진열대에 평범하게 세워놓고 인공지능 스피커가 적당한 술을 추천하도록 합니다. 아무래도
공간이 적게 들고 고객들에겐 색다른 경험도 되겠지요.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술이 있는 진열대는 고객이 바로 찾을
수 있도록 반짝반짝 불이 들어온다니 디테일의 끝은 어디까지일까요.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저자들이 가라사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하늘 아래 새로운 비법은 없답니다. 하지만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거나, 이런 뻔한 방법으로도 뻔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낸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으니 이 책이 재미있어지는
거지요. ‘나는 누구,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하지만 뜬구름 잡는 생각들만 이어질 때 이 책을 펼치면 해답이 지상으로
내려와 있는 경험을 하게 되실 겁니다.
퍼즐 맞추기
저자들의 전작인 『퇴사준비생~』 시리즈는 도시별로 사례를 엮다가 이 책은 업종별로 분석했다지만 큰 차이는
없습니다. 호텔이든 식당이든 도서관이든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은 비슷하니까요. 자신이 하는
업을 재해석해보고, 고객 경험을 바꿔보고, 고정관념은 부수고, 미래 기술을 도입하고. 책에서야 다양한 방법과
사례를 꼼꼼하게 분석해 일러주지만, 막상 내 업을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끗을 찾아내는 건 독자의
몫입니다.
글은 예의 바르고 사진도 많지만 책장은 쉽게 넘어가질 않습니다. 고객들은 왜 우리 서비스를 고용하는지, 내가
하고 있는 ‘업’을 어떻게 재정의해야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고객이 불편한 지점을 어디까지 디테
일하게 개선할 수 있을지 상상하고 퍼즐을 맞춰가며 읽게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 읽으면 열 개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두 번째 읽으면 또 다른 열 개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책 취향은 입맛이랑 비교도 안될 만큼 미묘하고 섬세해서 어디 가서 섣불리 책 들이밀며 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생각의 물구나무를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이동진과 그 동료들이 발품 팔아 지은 책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세스 고단의 한마디도요.
“사람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관계, 이야기, 마법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