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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의 기암괴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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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우리나라 바닷가에 인접한 산중에 가장 아름답고 영험한 산은 남해 금산이
아닐까?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 하여 '소금강'이라 불리는 금산은 기암괴석이 산 전체를 두르고 있으며 감탄이 절로난다. 더구나 태조 이성계가
금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었다니 더욱 신비하게 느껴진다.
금산 일출
새벽 6시에 눈이
떠진다. 어제 유자동동주를 마시고 뻗었다. 술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금산의 기가 좋은 건지 오히려 정신이 맑아진다. 어쨌든 전자로 착각한 나는
유자동동주 예찬론자가 되었다.
해변길을 따라 버스는 산으로 올라간다. 캄캄한 차창이지만 마음 속으로 바다를 상상해본다. 어느덧
북곡저수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곳부터 산을 오를 수 있지만 시간을 아낄 겸 셔틀버스를 탔다. (왕복 2천원) 거의 8부 능선까지
올라간다.
그곳 주차장에서 금산 정상까지는 20여분 정도 발품을 팔아야 한다. 퇴장하려는 하얀 달과 등장하려는 붉은 해가 서로의
영역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는 법. 하얀달은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진다.
그 힘겨룸을 이
곳 금산 하늘에서 바라보니 더욱 산이 좋아보인다. 힐끗 보이는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킨다. 정말 멋지구먼.
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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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대에서 본 금산의 일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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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드디어 금산에서 제일 높은 곳인 망대에 오른다. 금산 38경 중 제1경이
이 망대다. 이곳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 금산의 자태와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저 황홀감에 빠지면 그만이다. 주말이면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이곳 일출을 본다. 3대가 좋은 일을 해야 이곳 일출을 본다는데 벌써부터 여명이 하늘을 노랗게 수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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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바위의 러브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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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병을 풀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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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숙종 임금 때 전라남도 돌산에 사는 청년이 남해로 머슴을 살러왔다. 주인은 자태가
빼어난 과수댁이었다. 돌쇠는 주인마님의 빼어난 자태에 반하여 애간장을 태우다가 그만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약도 없는 병이
상사병인지라 청년은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과수댁은 사람이 없는 금산으로 돌쇠를 불러내었다. 금산의 벼랑에서
돌쇠는 소원대로 상사를 풀게 되었고,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상사바위라 불렀다. / 이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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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대는 고려때부터 사용했던 봉수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여수에서 온 봉화
연기가 이곳을 거쳐 창선면 '대방산 봉수대'를 거쳐 진주로 연결된다. 진주에서 다시한양 목멱산 봉수대까지 연결된다. 그러니까 남해부터 한양까지의
전달 시간은 4시간 30분 정도. 당시로서는 참으로 빠른 통신수단이다. 지금이야 핸드폰 한 방에 세상이 연결되지만.
한때는 봉수꾼만
40명이 있어 3교대로 돌렸다고 하니 이 봉화가 얼마나 중요한 연락 수단인지 보여준다. 평소에는 한 개의 연기를, 적이 나타났을 때는 2개 등등
그 위급함에 따라 갯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어 시계가 제로일 경우 어떻게 할까? "관원이 말타고
달려가서 다음 봉수대 관원에게 귓속말로 얘기한다. 하하하."
망대 오르는 길에 군인 초소가 외롭게 산을 지키고 있다. (봉수꾼들의
후예들이 여태까지 금산을 지키고 있구먼.)
문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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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선생님의 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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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망대 옆에는 장화처럼 생긴
'문장암'이 보인다. 일명 '명필바위'라고 불리운다.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주세붕 선생이 전국을 다니며 풍류를 즐기다가 남해에
있는 금산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는다.
금산의 쌍홍문을 통하여 이곳 정상까지 올라와 보니 과연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신비로운 전설이 가득함에 감탄하여 바위에다 ' 由虹門 上錦山'(홍문이 있으므로 금산에 오르다)이라는 글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이런 글씨가
새겨져 문장암이라고 했구나. 글씨에 힘이 실려있다. 한참을 가다보니 금산이 신성한 산임을 말해주듯 단군 성전도 자리 잡고 있다.
상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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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바위에서 소원일 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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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금산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다. 절벽이 앞으로 톡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병풍을 이루고 있는 금산의 기암절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신이 만든 오묘한 작품을 이런 걸 두고 말하는구나. 고개를 돌려 시선을
앞에 두면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선경이 펼쳐진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상주해수욕장과 그림같은 송정 해수욕장이 한 눈에 보이고, 저 멀리 미조항이
아늑하게 쉬고 있다. 서쪽으로는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그 한을 삭이고 있다.
"앞은 해금강이요. 뒤는
만물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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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는 상주해수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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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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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암..돼지 두 마리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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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사자암, 돼지처럼 생긴 저두암, 코끼리 바위의 모습에 찬탄을 해보고
원효, 의상대사가 좌선했던 자리인 '좌선대'도 보았다 사람이 앉아 있도록 홈이 패어졌다고 한다.
산장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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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 아스라이 걸쳐져 있는 산장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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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선경의 미몽 속에 빠져나와 산장여관이라는 곳에서 아침을 먹는다. 산장이면
산장이지 왜 여관이란 이름까지 덧붙였을까? 주인장이 산길을 오르내리며 지게로 찬거리를 날랐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반찬뿐 아니라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그랬더니 이곳에서 손수 만든 약주 한 병을 선물로 준다. 금산의 기가 이 술병에 담겨졌나보다. 그 걸죽한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쌍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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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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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금산 38경 중 제일의 절경을 자랑한다. 옛날 석가세존이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쌍홍문의 오른쪽으로 나갔다는 전설이 담긴 곳이다. 쌍굴이 어찌나 아름답게 뚫렸는지 그저 신비로울 따름이다. 그 옆에 송악이란 나무가 바위를
타고 올라간다. 고창 선운사에서 본 송악을 이곳에서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굴 위쪽에 구멍이 파여져 있는데 그곳에 돌을 얹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금산 보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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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 해수관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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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대한민국 불자치고 남해 보리암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곳이 터가 좋고 기도발이 좋기 때문이다. 신라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이지만 이렇다할 문화재는 삼층석탑이
전부다.
그렇다면 근래에 보리암에 인파가 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해수관음보살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관음보살상, 강화도 보문사 관음보살상과 더불어 근래 최고의 명물이 되었다. 불가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바닷가에 상주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바닷가 쪽에 이렇게 관음성지가 몰려 있게 된 것이다.
더구나 바닷가에 몰려 있는 관음성지는 그 지리적 특성 탓에 저절로 일출이나
일몰 명소로도 소문이 났고, 그런 멋진 터와 풍광이 기도의 효험을 높혀줄 것이다.
보리암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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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난리를 일으키는 보리암 삼층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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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가야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왕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모셔와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는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말해주는 획기적 사건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탑의 모양이나 형식은 고려초기의 양식을 띠고
있어 그걸 반증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탑도 영험이 있어 나침반을 가지고 가서 기단석 위에 올려 놓으면 자기 난리가 일어난다고
한다. 아직까지 그 불가사의한 일에 현대과학은 원인규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비바람 이기고 천년을 견디어낸 우직함이 그저
고맙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하산한다. 정상쪽은 바위산이지만 내려올수록 활엽수가 가득 차 있다. 주차장에서 남해의 향내가 가득한
유자차 한 잔을 시켰다. 어찌나 유자를 많이 넣어주었는지 컵의 70%가 유자다. 국물을 마시면서 남해인의 넉넉한 정도 함께 음미한다. 유자
건더기는 술 안주로도 사용했다. 하하하.
창선연육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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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3월 개통 예정인 창선연육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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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영화 <투루라이즈> 장면 중에 긴박한 추격신이 나오는데 바로
섬을 연결한 다리에서 펼쳐진다. 나는 그 추격신보다 그 멋진 다리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조만간 이런 멋진 다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창선연육교. 남해대교가 이 땅에 세워진 지 딱 30년째가 되는 2003년 봄에 그 역사적인 개통을 눈 앞에 두고 있다.
1995년에 착공했으니 8년만에 그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물로 기대되는 '창선연육교'는 남해 창선도와
삼천포를 연결하는 다리다. 4개의 섬을 5개의 다리를 연결한 것이다. 5개의 다리 모두가 다른 공법으로 만들어져 제 각각의 개성을 뽐낸다.
육지와 섬만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최초로 섬과 섬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수에서 남해까지 연육교도 계획중에 있다.
그렇다면 보성-고흥-순천-여수-남해-삼천포-고성-통영-거제까지 한려수도 벨트가 형성된다. 바다가 반이고 육지가 반인 도로를 달린다고
상상해보라.
남해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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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밭..남해 곳곡에 펼쳐져 있어 겨울에도 초록빛을 선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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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대한민국에서 제일 크다는 후박나무가 외롭게 바다를 보고 있다. 남해사람은
스스로 반골기질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한나라당 터밭에서 무소속 군수까지를 낼 수 있는 있는 고집도 가지고 있다. 혹시 예전에 이곳이
유배섬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째튼 후박나무를 바라보면 남해 남자의 강한 기질이 드러난다. 파도와 싸워 이긴 굵은 힘줄이라고
할까?
그 옆엔 초록색 마늘밭이 즐비하다. 겨울에도 초록색 들녘이 펼쳐져 있어 계절을 착각하기 쉽다. 이 마늘밭이야말로 남해
여인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바지런함이 남해를 풍요의 땅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1인당 소득이 높고, 높은 진학률이 그걸 반증한다.
요새는 중국산 마늘 덕분에 타격이 크다고 하던데.
원시어업 죽방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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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어업죽방렴..이곳에 고기가 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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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삼동, 창선면 지족마을 사이를 흐르는 지족해협은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다. 이곳에 참나무 말목 'v자' 모양으로 300여개를 갯벌에 박고 그물을 입힌다. 썰물이 되면 이곳에 멸치, 꽁치 그리고 개불 등이 한아름
걸린다. 물이 빠지면 하루 두 차례 뜰채로 생선을 퍼내면 끝난다. 이렇게 편하게 고기 잡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획물의 질도 최상이다.
'죽방멸치'란 말도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이란다.
지족의 수산물이 맛있는 이유는 우선 물살이 세서 고기가 힘이 있고, 고기에 그물이
닿지 않아 상처가 없고, 멸치를 잡자마자 바로 옆에 있는 가마솥에 끓이기 때문에 신선도가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긴 순순히 잡힌 고기가 강제로
잡힌 고기보다 맛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 맛의 원천은 결국 자연에 거스르지 않은 방법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특히 난
개불이란 해산물을 좋아하는데 다른 곳과 달리 이곳 개불의 쫄깃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글을 쓰면서도 침이 꿀꺽
넘어간다.
물건리 방조어부림 (천연기념물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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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리방조어부림..물고기를 부르는 숲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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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물건리라는 지명도 특이한데 '방조어부림'의 뜻이 뭘까? 계속해서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가이드가 가르쳐준다. 고기떼를 부르는 숲이란다. 나무들이 고기떼를 부른다 함은 녹색을 좋아하는 고기들의 습성과 관련이 있단다.
녹색의 나무잎들이 햇빛에 반사되면 그걸 보고 고기들이 몰린다고 한다.
나무를 심으면 바람도 막아주고 어부들이 휴식도 취하고 거기다가
고기까지 몰려온다니. 얼마나 이 숲이 중요한가? 남해에는 이런 숲이 무진장 많다. 선조의 지혜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미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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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들어온 물고기를 담고 있는 아낙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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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물건리에서 미조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나온다. 남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인 '물미해안관광도로'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 옆은 푸른바다가 넘실거리고 끊임없이 섬들이 이어진다. 이곳 절경에 취해 한눈 팔다가는
바로 천길 낭떠러지가 기다린다. 남녀가 이곳에 드라이브 오면 그 경치에 취해 웬만한 여자는 흠뻑 넘어간다는 가이드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도 아내를 데리고 와서 시도해볼까?
미조(彌助)항처럼 아름다운 항구가 또 있을까? 미륵이 도왔으니 그 풍광이 오죽하겠는가?
미조항은 멸치와 삼치, 갈치 등이 많이 잡히는 남해 수산업의 전진기지다. 빨간 등대를 가로질러 어선들은 부지런히 고기를 실어나르고 있다.
꿈틀거리는 삶의 현장. 내가 미조항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곳에서 난 갈치회의 진수를 맛보았다. 꿀꺽
상주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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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앞이 상주해수욕장이고 저 멀리 보이는 산이 금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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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내가 국민학교 3학년때 이곳 해변에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어찌하여
27년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예전의 동화같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맞다... 한폭의 수채화야."
동해안 해수욕장은
거의가 일직선이고 서해안 해수욕장도 휘기는 했지만 이렇게 휘어지진 않았다. 항아리 모양에 앞에는 섬들이 점점이 놓여 있어 항아리에 뚜껑까지 갖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 지형세 덕분에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바다밑은 완만하다.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와 송림은 푸른 바다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이런 천혜의 환경 덕분에 송림은 '인부림'이 된다. 인부림이 뭐냐고? 사람을 부르는 소나무. 여름 성수기때는
상주해수욕장에 올려면 남해대교부터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
사랑의 유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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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해수욕장에서 출발하는 사랑의 유람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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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원 |
| 남해가 섬이지만 남해대교가 있어 섬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상주해수욕장 옆에 있는 '러브크루저호'에 탑승해보라. 바다 한 가운데서 바라본 상주해수욕장과 금산의 기암괴석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까
보리암에서 바라본 남해에 넋이 빠졌는데. 밑에서 바라본 금산은 이름 그대로 비단을 두른 모습이다.
항아리 같은 상주해수욕장을
벗어나면 섬의 리아스식 해안의 면목을 보여준다. 돌섬, 서포 김만중 선생의 유배지 노도, 석가세존이 다녀갔다는 세존도, 용왕이 승천하여
만들어졌다는 비룡계곡, 거북 동굴, 쌍용굴을 거치면 남해 최고의 섬 세존도가 나온다. 불가의 전설적 성지로 섬을 돌며기도를 하면 소원성취한다는
석가세존의 신비를 간직한 남해의 최남단 섬이다. 러브크루저호는 400여명이 탑승하는 호화 유람선이다.
남해를
떠나며...
1박2일 동안 남해일정을 마쳤다. 일부만 보았는데도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비단 풍광과 유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넉넉한 남해인에 마음 씀씀이에 감명 받았던 모양이다. 서울로 돌아와 한동안 남해의 정취가 아른거려 그걸 떨치려고 애를 썼다.
그럴수록 그리움만 쌓여간다. 상사바위의 머슴이 바로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사랑을 피하지 말고 적극 수용하자. 그래서 적극적으로
남해를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부실하지만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남해군 사랑 (http://cafe.daum.net/nam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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