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답사기 3.
마중 나온 승용차에 실려 한 20분 정도, 도로 중간 중간 <묏골 관광농원>이란 P.O.P( point of purchase)안내판이 서있어 찾아들기 쉽도록 되어 있었다.
차는 이리저리 긁히고 박힌 자국이 어지럽고 색깔도 바래 농촌에서 막 굴리는 자가용이었다.
기사양반이 어찌 무뚝뚝한지 겨우 묻는 말에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이 바쁜 철에 왜 귀찮게 하느냐는 것 같아 무안할 정도였다. 원래 경상도 사나이들이 말 수가 적고 퉁명스런 점이 많은지라 이해도 하지만, 무언가 불만이 잔뜩 끼여 있는 표정에 나도 덩달아 말 수가 적어졌다.
주인마님의 영을 받아 마지못해 마중 나온 것일까!
내가 <범초>라며 수인사를 건네도 자기 이름도 제대로 대꾸하지 않고 운전에만 열중해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다. 옷“트렁크”를 뒷자리에 싣고 운전석 옆자리에 앉았는데 영 바늘방석이다.
농원 다 와서야 <저어가(저기가) 농원입니더, 오시이니라(오시느라) 수고 많았십니데이!>
하며 처음으로 먼저 입을 떼는 것이었다.
무슨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경상도 오지사람들의 억센 고집이 배어 있는 농투성이 사람이었다.
<묏골 농원>의 정면 마당
<모놀>인을 환영하는 이동진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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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묏골 관광농원>은 함양읍 변두리인 병곡면 광평리 산자락에 널찍이“펜스”치고 돼지를 놓아먹이고 사슴도 키우고 있었다. 집 앞 마당으로 올라서자 주인장 이동진 씨, <모놀>의 개농 님이 자그마한“픽업-트럭”에다 무슨 짐을 실으며 한창 일손이 바쁘게 일하다 수인사를 건네는데 <묏골녀> 김인숙 여사가 나와 묵을“방(房)갈로”까지 안내를 해주었다. 황토방이다.
온 사방이 흙인데다 바닥에 왕골로 짠 자리를 깔았는데 아랫목은 시커멓게 타 있는 걸로 보아 지은 지가 꽤나 되어 보였다. 미리 불을 때 방바닥이 절절 끓었고 구들장 같은 돌로 덮어놓은 아궁이를 보니 타고난 나무 불토막이 벌겋게 달아 고구마 구어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이런 독채 방갈로가 작은 개울가를 따라 대 여섯 개가 늘어서 있었다.
방 크기는 두 세 사람이 잘 수 있을 정도, 대나무를 줄에 걸어 천정에 매달아 놓아 수건 두 장을 걸어 두었고 방 뒤쪽 장지문 열면 바로 세면실이 딸려 있었다.“타일”로 깨끗이 정비해 놓은 데다 귀뚜라미“보일러”로 물까지 데워 쓸 수 있어 겨울철에 와도 아무 불편이 없도록 되어 있었다.
여름철에 제격인 누각식 원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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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넘이 전 일손이 바쁠 것 같아 정식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방에서 한 시간 정도나 되었을까,
잠이 얼핏 들었다 싶은데 <개농> 님이 내려와 저녁 먹으로 오라는 전갈을 하고는 앞장을 섰다.
밖은 이미 어두워 개울가 따라 나지막한 동그란 가로등에 희미하게 불빛이 길을 비쳐 본채까지 올라가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본채 규모는 상당히 널찍해 부엌과 식당이 겸해 있고 긴“테이블”에 온갖 산채나물에다 직접 재배했다는 야들야들한 고사리나물, 돼지머리고기가 먹음직하고 벌써 대여섯 사람이 마주보고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정식 인사를 두루 돌아가며 했다.
서울 동두천에서 왔다는 송00사장 내외간, 주인장 이동진 씨, 개농 님, 함양군 운산리에서 묘목 농사를 짓는다는 하00청년과 그의 친구, 주거부정(?)의 한방도사 이00 씨, 함양 토박이로 주인장 후배라는 신00 씨 그리고 나 9명에다 가끔 주인마님이 합석해 맥주에다 소주 곁들여 저녁식사, 술판이 벌어졌다.
송 사장 내외는 이제 갓 60대로 접어든다며 사업 접고 귀농할 심산으로 전국을 돌며 농사일을 견문한다면서 이곳엘 한방도사 이00 씨 소개로 찾게 되었다고 했고, 이00 씨는 오래 전부터 주인장 이동진 씨와는 막역하게 지나는 사이라 했다. 이00 씨(앞으로 이한방이라 표기함)는 알고 보니 나이가 나와 갑장인데다 대구상고를 나온 예천이 고향인 사람이다. 그러니 자연 제일 연장인데다 나와는 죽이 잘 맞아 금세 술자리가 화기애애해 지고 얼마안가 이 한방과 나는 말까지 놓게 되었다.
귀농 준비 중인 송사장 내외와(농원 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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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사장 내외는 이한방 신봉자였다.
이한방이 예천에서 땅속에 5곡을 묻어 발효시킨 식초가 만병 예방약초라 했다.
내가 대구서 고등학교까지 다녔으니 한 치 건너면 서로 아는 사람이름도 나오고. . . 자연 이한방과는 옛 얘기에서부터 한방에다 주변 유명인사들 험담까지 벼라 별 진소리 헛소리 주거니 받거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개농> 님 입심 또한 대단해 웃음 그칠 새가 없는데다 젊은 축들은 우리 얘기에 호기심이 동해선지 자리 뜰 줄을 몰랐다. 주인장 이동진 씨는 과묵한 편이어서 별 말없이 빙그레 미소 짓는 모습이 듬직했다.
미소로 화답하는 이동진, 그의 미소에서 세월을 초월한 달관이 스치는 것 같아 문득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가 떠 올랐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 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신경림.
온 천지 돌고 돌다 이런 심정으로 고향 땅 함양에 정착한 것이 아닐까!
이곳에 터 잡은 게 1991년이라 했으니 거의 20년 다 되어 가는 것이다.
이젠 이미 50대 후반, 그동안 이 터전 일구느라 고생이 막심했을 것이다.
개농 님과는 함양 초등학교 때부터 동기간으로 평생 죽마고우, 개농 님이 반은 서울 반은 이곳을 오 다니며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 같았다.
<개농>이란 “닉”이 <농사를 연다!(開農)>는 뜻이냐고 물었더니, 펄쩍 뛰며 <개판 농사>의 약어라 했다.
농사 지어봐야 먹고 살기도 힘들어 <개판 농사>란 역설로 “닉”을 정했다는 것이다.
그 <개판 농사>를 언젠가는 <살판 농사>로 바꾸어야 할 텐데, 이 FTA 시대에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농사꾼들에게는 말로만 해서는 귀 뒷등으로 들을 뿐,
농사지어 돈 벌고 잘 사는 모습을 실제 보여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시범이 <묏골농원>이 되어야 한다고!
개농님과 함께 잔“방(房)갈로”(황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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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방은 날보고 양말 벗으라 하고는 발바닥 용천혈을 바짝 눌러보고는 아직 기가 살아 펄펄 하다면서도 양기가 좀 부족하니 자기가 만든 식초를 장복하면 밤 생활이 즐거울 거라나!
아무래도 오곡식초를 주문해야 될 것 같다.
요즈음 무슨 흑초다 감식초다 해서 일본에서까지 수입식초가 들어오고 있는데 그게 다 쓰레기 같은 죽은 식품이라 하니 믿어야 할지, 웃고 넘겨야 할지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송 사장 내외는 오곡식초로 건강 좋아지고 특히 양기에 좋다고 맞장구를 쳐대니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송 사장은 이미 강원도 화천 파로호 근처에다 농사지을 땅 5천여 평을 사 두었다고 하니,
조만간 사업 정리하고 귀농할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우리 모두 초면이지만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일까, 이렇게 눙치고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는 소주를 두어 병이나 마셨을 게다!
*** 흐르는 것이 물 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구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술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나는 애송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마지막으로 읊고 가까스로 자리를 파하고 개농 님과 함께 방갈로에 와보니 핸드폰 전지가 다 떨어져 새까맣게 죽어 있어 시간을 알 수가 없었다.
밤 12가 넘었을 게다.
방이 뜨거워 윗목에다 자릴 깔고 누우니 술기운이 확 더 돌아, 나나 개농 모두 금방 잠에 곯아 떨어졌다.
참고로 <묏골농원>의
홈페이지 : www.mkck.co.kr, 전화 055-963-9033, 핸드폰 011-864-8143 이동진, 김인숙
사시장철 어느 때나 전화예약하고 찾아들면 이렇게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가 있을 것이다.
밭두렁 논두렁 길 걷는 재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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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땅은 상림 말고도 산수 경개 좋은 곳이 많다.
여름 한 철 용추계곡은 피서지로선 천하제일이다.
나는 몇 해 전 이곳에 와 물보라가 빗줄기와 뒤섞여 날리는 가운데 우산을 받쳐 들고,
천지간에 폭포소리만 들리는 가운데서 참선을 하는 수도승마냥 한참이나 앉아,
<적수천석(滴水穿石,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의 영겁의 시간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불가에서 말하는 <착>을 놓을 수 없는 생각들로 머리가 오히려 복잡했었다.
가족을 다 팽개치고 혼자 성불하는 동안에(대부분 성불도 하지 못하겠지만),
남겨진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연로하신 부모를 놔두고 출가하면 그 부모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출가의 경우에는 불교종단에서라도 그 딸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불도를 잘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큰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폭포경내 바로 앞에 <용추사 일주문>이 서있는데 특이하다.
문 양쪽 기둥이 원래 그 자리에 서 있던 용트림하는 고목 두 그루터기 위에 팔작지붕을 얹어 만든 문이다 (지금 현재도 그런지는 확인을 못했지만). 일주문에는 <덕유산 장수사 조계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보기 드물게 활짝 핀 자목련(서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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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의 대자연에는 많은 전설들이 살아 숨 쉬는 곳이 많다. 순서 없이 기록해 본다.
** <매바위와 매산나 소> :
시퍼런 소의 건너 편 암벽위에서 길 쪽을 날카롭게 주시하는 매의 형상을 닮은 바위가 있다.
이를 <매바위>라 부르는데 무학 대사가 처음 찾아낸 바위라 한다.
무학 대사와 태조 이성계와의 절친한 사이를 시기한 정도전의 계략으로 무학 대사가 되레 쫓기는 처지가 되어 어디든 몸을 숨길 데를 찾아 나섰는데, 우연히 이 계곡을 들리게 되었다.
헤집고 들어 갈수록 점입가경이라 탄복해 마지않으면서 이 소 앞에 당도했을 때,
무학 대사의 머리 위를 나르던 새 한마리가 갑자기 풀숲으로 숨으며 맥을 못 추는 것이었다.
대사가 연유를 퍼뜩 알아차리고 주위를 살피니, 역시 대사의 눈에 엄청 큰 매가 눈에 띄었다.
매가 골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면 이 골짝 어딘가에 길지(吉地)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이렇게 찾아진 곳이 바로 현재의 <은신암>터다.
그 큰 매가 바로 바위였고, 그리고 무학 대사가 몸을 숨긴 곳이 은신암이 되었다.
<매산나 소>의 <매산나>의 유래는 지나는 행인들이 이 매바위를 향해 <매산나(매가 살았나)>하고 외치는 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즉 <매 살았나!>하고 고함을 치면, 암벽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메아리가 <매삿다!>
즉 <매가 살았다!>라는 대답으로 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암벽 밑의 깊고 넓은 소를 <매산나 소>라 부르게 되었다.
**<꺽지 소> :
이 소의 좌측은 황석산, 우측은 기백산의 양대 명산의 정기가 어우러진 곳이다.
양 계곡의 물이 합수되어 소의 규모가 넓고 깊다.
항상 물결이 세차게 소용돌이 쳐 근접하기조차 두려울 정도이다.
이 소에 집체만한 크기의 꺽지(=꺽저기)가 살았는데, 간간이 나타나 인근에 풀을 뜯고 있는 황소를 한입에 삼키곤 해서, 이 근처에는 소를 놓아먹이지 못하게 하였다고 전해오는 소이다.
**<용소> :
이 소 위쪽 바위의 형상이 용이 승천하는 형상을 닮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용의 머리가 잘린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곳의 용이 승천하게 되면 이 고을에서 멀리는 중국까지 다스리게 되는 아주 귀한 인물이 난다는 소문이 중국의 조정에까지 퍼지게 되었는데, 급기야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터져 구원군 대장으로 급파되는 이여송에게 조선의 남녘에 있는 장수 골을 찾아가 승천(昇天)하려는 용의 목을 치라는 밀령을 내렸다.
몰래 숨어든 이여송이 단칼에 목을 치니 용의 몸에서 나오는 피가 골짝 전체를 물들였고,
머리 잘린 용이 꿈틀거리는 요동으로 장수 골 전체가 흔들렸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중국 명에 대한 사대주의적인 발상으로, 왜적을 몰아낸데 대한 고마움을 "립-서비스"<말로 하는 공치사>한 전설이라 생각된다)
****<상사바위와 상사폭포> :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면, 한 마리의 백사가 절벽에 붙어 절규하는 듯한 형상을 보이는데,
그 폭포 바위 위쪽에 백련암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이곳에서 정진 중이던 한 수도승과 한 여인의 사연이 전설로 전해오고 있다. 여인은 수도승을 매우 사랑하였으나 정진중인 수도승과는 살아생전에는 사랑을 이루지 못할 것을 한탄하며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이를 가엾게 여긴 산신령이 여인을 환생시켜 낮에는 뱀이 되고,
밤에만 사람이 되어 수도승과 사랑을 불태우게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미처 닭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사랑을 나누던 중, 여인은 서서히 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수도승은 그 자리에서 혼절해 바위로 변했고, 여인은 산신령께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라며 자신이 물줄기가 되어서 밤이나 낮이나 바위가 된 수도승을 끌어안을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 폭포수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훗날, 이 바위를 상사바위 그리고 긴 물줄기를 상사폭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계곡 따라 남덕유산 쪽에서 죽 내려오다 보면, <물 삼거리>라는 꽤나 넓은 터가 나오고 이곳에 상점, 식당, 모텔, 여관들이 밀집되어 있고, 여기서 용추폭포까지 올라가는 버스가 한 시간 간격으로 있다.
둘레길 소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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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에. . . .)
첫댓글 장사설의 범초님 글. 그날 같이하신 밤이 생생합니다.머라 함양땅 인연을 이어가신다고 하셨어니 하시라도 오시길 기다리겠습니다
개농님, 초면이지만 10년지기 이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코 골며 한 방에서 잠까지 잤으니, 그아니 인연이 아니겠소! 개농님과 <묏골 이동진>님과의 우정이 언젠가는 빛을 발할 것이오!
동지 긴 밤 끊어질듯 이어지는 옛 이야기처럼 구수한 사람사는 이야기며 함양의 속살 깊은 이야기까지 계속될 범초님의 글 기다립니다.
청한님의 열성에 이 연재가 몇 편 더 길어질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옛일을 글로 회상한다는 게 자칫 주관에 빠져들어 사실을 왜곡시킬 수도 있는 일이라 조심스럽기도 하네요! 하기야 과거는 재해석되기 마련이기도 하지요, 역사라는 게!
범초님 둘레기 후기.....숙연히...배우고 느끼면서......즐감하고 갑니다..^^
"아르츠"님 둘레길에서 반가웠는데, 제방에서 이렇게 또 만나니 이젠 구면이네요!
언젠가 저도 답사에 참여하게되면 범초님을 뵐수있겠지요...써내려 오신 글을 읽으면서 숙연해지기도 하고 즐겁기도하고 ,,,많이 느끼고 잘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제 글쓴 심정을 잘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저히가 작년에 갔었던 함양 거창답사때 들었던 재미잇는 전설도 있고 서로 통하는 분들의 화기애한 자리도 보고 즐거운 기행문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이번 <모놀>답사 본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서두가 길어져 미안한 감이 듭니다만 범초의 지리산 언저리 이야기를 좀 읽고나서 <모놀>을 보는 재미도 괜찮을 것입니다.
범초님이 마침 도착한 시간이 저희들이 바쁜 시간이여서 손님에게 등한시 하지나 않았나해서 이글을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이 쓰이네요...
원 별 말씀을! 너무 감사했습니다. <묏골녀>의 화장발! 에 이 범초 깜짝 놀랐소이다! 저녁식사 술 한잔 하며 즐거웠던 시간은 평생 추억이 될 것입니다!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는 저도 한참 좋아하였던 詩이지요^^
정희성, 요즈음 잘 나가고 있어요! 신경림 시인 강연 청탁 들어오면 모두 희성이에게 대신 가라고하니까요. 저번 일요일에도 범초에게 술 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