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금토드라마 ‘금수저’가 11월 12일 끝났다. 9월 23일 시청률 5.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로 시작한 16부작 ‘금수저’를 본 것은 오랜만에 승자의 기쁨을 누린 전작 ‘빅마우스’ 영향 때문이다. 마침 같은날 시작한 SBS 금토드라마가 ‘천원짜리 변호사’인 것도 한몫했다. ‘왜 오수재인가’ 후속 드라마가 또다시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것에 실망해서랄까.
‘금수저’의 최고 시청률은 7.8%(9회)다. 최종회 시청률은 6%에 그쳤다. 전작 ‘빅마우스’보다 훨씬 못한 인기다. 보통 평일드라마보다 높게 나오는 시청률의 금토드라마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다만, 육성재(비투비)ㆍ정채연(아이오아이)ㆍ연우(모모랜드) 등 아이돌 가수들이 여러 명 나오는 드라마치곤 비교적 양호한 시청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9회서 찍은 최고 시청률 7.8%조차 어부지리 성격이 짙다. 9회는 변신한 태용이 미국에서 돌아와 확 달라진 10년후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것보다 경쟁작 ‘천원짜리 변호사’가 결방(정확히 말하면 스페셜 방송)한 덕분으로 보여서다. 결방 다음날 ‘천원짜리 변호사’가 방송되니 ‘금수저’ 시청률이 5.6%로 추락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반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를 통한 ‘금수저’의 인기는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OSEN(2022.10.27.)에 따르면 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의 디즈니+TV쇼 부문에서 일본ㆍ인도네시아ㆍ싱가포르 3개국 순위가 1위다. 한국ㆍ홍콩 2위, 대만에선 3위에 올랐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첫 방송 이후 한 달 넘게 1위를 차지한 인기 드라마 ‘금수저’다.
HD3(본명 성현동) 작가의 네이버웹툰을 원작으로 한 ‘금수저’는 가난뱅이 이철(최대철) 아들로 학폭에 시달리던 고3 이승천(육성재)이 금수저를 통해 재벌 황현도(최원영)를 아버지로 둔 황태용(이종원)과 신분을 바꾼 채 살아가는 비현실적 이야기다. 그런 삶은 고3 시절로 그치지 않고 10년이 지난 후까지도 계속된다.
그러니까 성인이 된 후에도 바꿔치기 삶이 계속되는 것이다. 14회에서 나주희(정채연)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극중 주인공중 한 명이 그럴진대 그걸 지켜보는 시청자들이야 오죽할까! 헷갈리거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같은 동갑 친구 집에서 금수저로 밥을 세 번 먹으면 부모가 바뀐다”는 마법 때문이 아니다.
우선 얼굴은 그대로인 채 이승천이 황태용, 황태용이 이승천으로 변하곤 하는 게 헷갈린다. 참신한 소재인 건 인정하면서도 금수저 마법이 이승천과 황태용에게만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게 또 다른 헷갈림을 준다. 오여진(연우)에 이어 황현도가 금수저로 신분을 바꿔 재벌 회장이자 악독한 빌런으로 살고 있는 게 그것이다.
하긴 이런 헷갈림은 애당초 ‘금수저’에 대한 어떤 기대감을 갖고 본방사수한 시청자들에겐 별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앞에서 잠깐 말한 것외에 내가 ‘금수저’를 애써 챙겨본 것은 신분 바꾸기를 통한 가난한 자들의 애환과 ‘가진 것들’의 온갖 비리 등 뒤틀림을 까발기는 블랙코미디쯤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수저’는 그런 기대감을 여지없이 배신한 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가령 이철의 사고 부상에 이어 끝내 죽임을 당하는걸 본 태용이로 변한 승천의 반성과 후회 따위가 그렇다. 가난뱅이 아들에서 벗어나고자 한 자신의 잘못으로 아버지가 다치고 죽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승천을 보노라면 이 드라마의 주제가 무엇인지 또다시 헷갈린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MBC ‘금수저’ 같은 경우에도 신분이 바뀌는 ‘왕자와 거지’ㆍ‘옹고집전’ 등 진가쟁주(眞假爭主ㆍ주인의 자리를 두고 진짜와 가짜가 다툰다.)의 설화 형식이 현대적으로 변형된 것이다. 회귀 서사도 리얼리즘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대중의 욕망이나 의식이 투영된 대중 서사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한국일보, 2022.11.2.)고 말한다.
이어 윤 교수는 “(회귀 서사의 원류인) 웹툰ㆍ웹소설의 주요 소비층이 10ㆍ20대라고 했을 때 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것들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 좌절감, 무기력 같은 현실 인식이 이런 회귀 모티브를 소비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앞의 한국일보)고 말한다. 그렇다면 태용이가 된 승천의 반성과 후회는 잘못된 핀트인 셈이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금수저’가 전반적으론 진정한 행복과 정말 소중한 것이 가족이라는 걸 깨닫게 하는 드라마이긴 하다. 그것이 돈이 없어 학폭에 시달리면서도 주먹 한 번 휘두르지 못한 승천의 태용으로의 변신을 통한 것이라는 게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아쉬움과 함께 불편하다는 얘기다. 오히려 태용이 승천으로 사는 결말에선 재벌(부자) 편들기가 묻어나지 않는가?
이와는 별도로 가난의 참상이 너무 작위적으로 극대화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가령 차 수리비 1억 원 요구에 그냥 당하고마는 서민군상 이철네 가족을 들 수 있다. 여진으로부터 그 돈을 받아 갚곤 온가족이 그 집에서 종살이하듯 하는 것도 그렇다.
그런 승천의 엄마 진선혜(한채아)가 “재벌회장이면 다야? 가서 박살내겠다”고 나서려는 건 좀 생뚱맞게 보인다. 태용이 집에 가선 서영신(손여은) 자해소동을 말린 데 이어 연필 부러뜨리고 그 값으로 5천만 원짜리 수표를 내놓는다. 현도에게 “당신이 왜 그렇게 가난해 보일까”라 비아냥거리기까지 하는 선혜의 모습에서도 통쾌한 반전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점은 부자 묘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재벌이라 해도 고 3 아들 방에 양복이며 시계 등이 수도 없이 있는 게 그렇다. 태용이 한 달 용돈이 무려 8천만 원이라는 데에선 진짜로 그런 재벌 집도 있나 하는 의문과 함께 궁금증이 생긴다.
또 하나 아쉬운 건 키스신이 너무 잦은 것과 그것이 너무 억지스럽다는 점이다. 가령 고3끼리 돌발 키스에 이어 바퀴벌레 보고 놀라 엎어지며 야릇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장면이 그렇다. 1~3회의 그걸로 모자랐는지 중반부에서 승천이 된 태용은 주희와 시도 때도 없이 키스질이다. 7회에서 그런데, 그나마 반찬 집어먹던 입술인데도 그런 흔적이 전혀 없는 억지 장면이다.
승천이 된 태용은 여진과 호텔 침대로까지 간다. 둘은 진한 키스를 나눈다. 이어지는 침대신에선 승천이 된 태용이 여진의 목에 키스를 퍼붓는다. “방송 직후 시청자들은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해당 신이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애정신 치고 수위가 높아 깜짝 놀랐다”(뉴스엔, 2022.11.1.)고 한다. 13회에선 두 번이나 키스신이 나오는데, 극 흐름상 꼭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3년후 박장군(김강민)의 여진과 결혼한 모습이 꼭 필요한 결말인지도 의문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고3시절 학폭의 주인공이던 박장군이 어떤 벌도 받지 않고 묻힌 셈의 결혼이라서다. 여진의 “그 비슨(빚은→비즌) 천천히 갚을게”(7회) 따위 발음상 오류도 거슬린다. 단, 승천이나 현도는 ‘비지(빚이)’라 발음하는 걸 보아 배우 개인의 문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