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를 넘어 이제는 ‘세계 최고’의 교회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 최대의 교회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단순히 숫자상으로 그러할 뿐 아니라
우리 교회가 한 세대 여 동안
세계의 교회와 기독교인, 신학자들에게 끼친 영향이란
일일이 예로 들 수 없을 정도다.
‘이곳에 오면’
우리의 황량하던 마음이 위로 받고,
고통과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올 힘을 얻고,
도저히 믿기지 않은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는
기적들을 경험하곤 했다.
어디 그뿐인가. 나 개인은 비록 보잘 것 없지만,
내 영이 고향 삼아 숨쉬는 이곳은 어느 누구에게 내놔도 버젓한,
머나먼 나라 사람들이 성지순례 오듯 목놓아 기다리다 찾아와 보고 싶어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바로 그곳이었다.
이 즈음에서 혹 우리가 관습에 젖어, 너무 안락하여, 너무 완전하여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상황이 되지는 않을까 한번 생각해 봄직하다.
먼저 예배 드리는 우리의 마음 자세는 어떠한가 생각해 보자.
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였을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신령과 진정의 마음이 먼저였을까.
정말로 소외된 자, 연약한 자,
힘없고 못나고 가난한 자가 이곳에 와서
위로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었는가,
아니면 이곳에서 더 소외됨을 느꼈을까.
그리고 우리의 몸가짐은 어떠했을까.
깨끗하고 단정한 의복이었는가,
혹 슬리퍼 질질 끌고 오고, 패션입네 하고
성소에서 모자를 쓴 채, 껌을 질겅질겅 씹고,
연인 혹은 부부와 사랑놀음에 준하는 자세는 아니었는가.
독일처럼 기독교가 거의 죽었다고 생각되는 곳에서도
“예배는 몹시 경건하고 사랑이 넘치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하나 먼저 와서 안쪽 자리부터 앉았는가,
새치기하지는 않았는가, 먼저 인사했는가,
작은 일 하나라도 교회의 유익을 위해 절약했는가.
지구를 살리고 환경을 살리는 일에 동참했는가.
“우리 교회가,
주일 날 하루 버리는 종이컵, 커피, 물, 녹차 만 아껴도
개척교회 하나 넉넉히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끝으로 우리는 어른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죽만 먹는 어린 애의 마음에서 이제는 벗어나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
어른은 남을 배려할 줄 알며,
상대의 잘못에 사랑의 조언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풍부히 가질 수 있다고 믿는 풍요의 심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의 폭발적 팽창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많은 어른들은 이런 얘기도 종종 하며 회한에 젖는다고 한다.
교회의 음악이 꼭 그렇게 요란해야만 하는가라고.
이제 ‘세계 최대’라는 외형의 컴플렉스를 넘어
‘세계 최고’의 교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캠페인이라도 벌여봄이 어떨까.
순복음 가족지 사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