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의 음식은 푸짐하다. 어느 식당엘 가도 나올 땐 허리 끈이 거북하다. ‘2% 부족’의 빡빡함에 익숙한 도시인에겐 더욱 그렇다. 계산을 할 땐 어안이 벙벙해지도 한다. 빠뜨린 거 없는 지 꼼꼼히 챙겨보라고 채근할 정도다.
틀린 게 없다는 답에 빙그레 입가에 미소가 돈다. 그 정도로 저렴하다. 곳간에 인심난다는 말이 딱 맞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그와 맞닿은 바다가 군산의 곳간인 셈이다.
“군산의 맛은 바다에서 시작합니다. 군산의 ‘맛자랑 삼총사’라고 하는 음식이 모두 해산물이기 때문이죠. 두툼하게 썰어내는 생선회, 짜지 않고 달달한 꽃게장. 단백하고 매콤한 아귀찜이 바로 맛 삼총사입니다.” 군산토박이 박은주(40ㆍ군산시 조촌동)씨의 설명이다.
여기에 생선 매운탕까지 더해지면 맛 사형제가 된단다. 일반 주부답지 않게 군산의 맛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음식 만드는 데 깐깐하기로 소문난 친정어머니의 덕이란다. 남들이 찾아내지 못하는 맛도 척척 맞춰내는 민감한 미각에 음식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다.
건설업을 하는 남편이 손님 접대할 때 대동할 정도란다. 그에게 ‘빠뜨리고 가면 평생 후회할 군산의 맛집’을 소개받았다.
■ 한주옥
군산의 백반집이나 한정식집에선 박씨가 말하는 ‘군산 맛 사형제’ 중 두 가지 이상은 맛볼 수 있단다. 그러나 이집은 단돈 1만원으로 사형제의 만남이 해결된다. 한상차림으로 나오는데 실속 없는 찬이 한 가지도 없다. 생선회 재료는 광어. 살점 두께가 서울의 두 배다. 매운탕 재료는 살을 발라낸 서덜이 아니다. 우럭을 토막 쳐 끓여냈다. 꽃게장은 한 마리를 네 토막 내 일인분에 한 토막씩 준다. 국물이 그대로 떠먹어도 좋을 정도로 간간하다. 아귀찜에는 살점이 넉넉해 서로 눈치 볼 필요 없다. 일인용 솥밥에 박대구이ㆍ갈치조림ㆍ멍게 회ㆍ생미역ㆍ꽈리고추볶음 등 다른 반찬도 10여 가지에 달한다. 영화동 여성회관 옆. 063-445-6139.
■ 군산횟집
군산에선 상상조차 어려운 8층짜리 큰 건물의 식당이다. 한꺼번에 1000명이나 받을 수 있단다. 믿거나 말거나 단일 식당으론 국내 최대 규모란다. 군산에서 회를 팔기 때문에 가능했지 아니면 벌써 망했을지도 모른단다. 해망동 수산물종합센터와 마주보고 있어 수시로 해산물을 갖다 쓴다고 할 정도로 신선한 횟감을 자랑으로 삼는 곳이다. 창가에 앉으면 눈은 군산 앞바다의 풍광을 즐기고, 입은 그 바다 속의 해산물을 즐긴다. 멍게ㆍ꽃게무침ㆍ조개탕ㆍ광어ㆍ도미ㆍ숭어회 등 매운탕까지 이어지는 메뉴를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다. 10만원(4인분)상을 주문하면 다섯 명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063-442-1114.
■ 압강옥
초록 들판 가운데 자리한 음식점. 한적한 전원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귀한 손님을 접대하기에 제격이다. 놋그릇을 쓸 정도로 정갈하고 깔끔하게 상을 차려낸다. 들꽃을 상위로 옮겨놓을 정도로 센스도 있다. 평안도에서 피난 내려온 시어머니의 고향음식‘우복 쟁반’을 며느리ㆍ아들로 이어가며 3대째 50년 넘게 끓여내고 있다. 우복 쟁반은 쇠고기의 뱃살부위를 쟁반 같은 그릇에 끓인 것. 이북식에 전라도 맛이 가미됐지만 전북지역 실향민에겐 인기란다. 12년 전 사정동으로 옮겨오면서 시작한 쫄복 튀김은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고. 갓 튀겨낸 바삭한 튀김옷 속에 씹는 맛이 넉넉한 복의 살점이 감미롭다. 홍어무침ㆍ꽃게무침 등 밑반찬도 차분한 맛이다. 어복쟁반 1만5000원, 쫄복 튀김 3만원. 063-452-2777.
■ 옹고집
폐교가 음식점으로 화려한 변신을 한 곳. 나포면 서포리 옛 서광초등학교 자리엔 수백 개의 커다란 항아리와 구수한 된장 냄새가 폴폴 풍겨난다. 칠판 등 교실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려 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온 듯하다. 주 메뉴는 돼지고기 쌈밥(6000원). 상추ㆍ치커리ㆍ겨자 잎 등 쌈 채소 5가지에 콩나물에 묵은지 볶음 등 시골 밥상이 펼쳐진다. 상의 복판에 자리 잡은 된장찌개는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호박과 보리를 넣어 특허까지 받은 별미 호박보리된장이 주재료란다. 점심엔 주부들의 동창회나 동기모임, 주말엔 가족 나들이 손님이 많다. 50명 내외의 동창 모임인 경우엔 교실 한 곳을 따로 내주기도 한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칠판의 낙서 구경은 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잔디가 깔린 운동장에 마음껏 뛰놀 수 있다. 063-453-8883.
■ 한일옥
다소 거친 듯한 주인 할머니의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한 숭늉처럼 다가오는 집. 전날 과한 술을 마셨거나 밤샘 현장에서 힘겹게 보낸 군산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쓰린 속을 풀고, 아픈 마음을 다독이고, 지친 몸을 달래주는 해장메뉴가 대부분이다. 맑은 국물의 무국(4500원)이 단연 인기 으뜸이다. 아침을 여는 쇠고기무국은 어제까지의 근심을 훌훌 떨쳐버릴 정도로 깔끔한 맛이다. 된장과 청국장을 섞은 국물에 끓인 시래깃국(4000원)은 은은한 고린내도 매력적이지만 부드러운 시래기의 질감이 최고다. 고춧가루를 넣고 끓인 콩나물국밥(3500원)은 인근 전주 맛에 견줄 만하다. 반찬으로 나온 시래기무침과 젓갈이 듬뿍 들어간 배추김치는 “추가”가 기본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3시부터 오후 10시. 중앙사거리 부근. 063-446-5491.
■ 이성당
군산에 숨어있는 한국 빵집의 역사관과 같은 곳. 1945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빵집이다. 60년을 넘게 이어온 군산시민들의 사랑으로 전국 체인망을 자랑하는 굴지의 베이커리 체인점도 이성당 근처엔 얼씬도 못한다고. 인기 메뉴는 할아버지ㆍ아버지 등 윗세대들이 즐겨 먹던 야채빵(1000원)과 앙금빵(900원). 소보루빵(800원)ㆍ버터빵(800원) 등. 빵집이 아닌 베이커리에선 쉽게 맛보기 어려운 빵들이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피자ㆍ샌드위치ㆍ햄버거 등의 코너도 개설했지만 단골 신세대들도 “이성당의 매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옛날 빵”이라고 할 정도다. 생딸기를 올린 듯한 팥빙수(3500원)의 경험도 빠뜨리기 어려운 맛이다.
옛 군산시청 앞에 위치. 063-445-2772.
■ 쌍용반점
도선장 도로변에 위치한 중국 음식점. 바다의 도시인 군산의 중국집답게 조개가 듬뿍 들어간 짬뽕으로 소문난 곳이다. 이것저것 해물을 넣는 대신 동죽과 바지락 등 제철 조개를 넉넉히 넣어 끓인다. 짬뽕을 주문하면 커다란 그릇도 함께 나오는데 발라 먹은 조개껍질을 버리는 그릇이다. 1ㆍ2층을 합쳐도 식탁이 1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아 식사 시간엔 줄 설 각오를 해야 한다. 063-443-1259.
■ 기타 먹거리 정보
해망동 수산물 종합센터엔 인근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꽃게ㆍ갈치가 가득하다. 한동안 보기 힘들던 국내산 홍어도 제법 눈에 띤다. 활꽃게가 1㎏에 1만~1만5000원이란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절반 값이다. 얼른 묵직한 놈으로 5마리를 골라 저울에 올렸다. 눈금이 1.8㎏를 가리킨다. 한 마리 더 얹어 2만원만 내란다. 아이스박스에 얼음까지 채워 포장해준다. 참고로 요맘땐 암게보다 수게가 살이 알차고 맛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