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 1861(철종 12)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중 한성 5부 지도. 만라고개에서 뻗어내린 산(언덕?) 줄기가 효창공원(효창묘)에서 서쪽으로 꺾여 내려오다가 한강 못 미쳐 멈춘 나즈막한 산이 용산(79m)이고, 용산 아래 만초천은 복개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용산 미8군기지 영내에 300여미터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용산 전자상가 도로가 만초천의 복개로 이루어졌고, 이 만초천이 한강과 만나서 <용산강>이란 이름이 생겼다.
현재 서울 지도에서 찾아보면 성심여고 북쪽, 용산성당, 원효초등학교 근방이 된다. 옛날 세창고개라 부르던 구릉은 지금 행정구역 단위로 세창로 8길오 이어진 듯하다 1900년 경인선이 개통되고 현재 위치에 용산역이 생기는 것을 계기로 <용산>이란 산 이름은 잊혀지고 용산역 근처가 용산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미8군기지 안에 있는 둔지산(위의 경조5부도 참조)이 용산으로 잘못 소개되는 경우도 있다.
총독 관저는 1939년에 청와대(경무대)로 옮겨 갔다. 광복 후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경무대에서 중앙청 대통령 집무실로 출퇴근했다. 6.25 사변으로 부산으로 피란했던 이 대통령은 경무대로 다시 돌아왔으나 중앙청 대텅령 집무실이 불타 없어져 경무대가 대통령 관저 겸 집무실의 역할을 했다. 4.19 혁명이후 2대 대통령 윤보선 박사는 경무대를 청와대로 이름을 바꿨다. 1968년까지는 청와대주변 접근이 비교적 자유로웠으나 1968. 1. 21일 김신조 사건 이후 경비가 삼업해지고 일반인 접근이 통제되었다. |
첫댓글 용산이 있긴 있었군요.
조선 시대 서북쪽이 용산방(坊)동남쪽이 둔지방이었던 것 같습니다.
용산방 서북쪽이 서강방, 둔지방 동쪽이 한강방, 한강방에서 더 나가면 두모방
두모방은 지금 계시는 금호동 일대인 듯합니다.
지금 용산역이 생기면서 신용산이란 명칭도 생겼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