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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음의 바이러스에 맞서 싸울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난 봄 퍼지기 시작한 후로 지금까지 1만 건에 육박하는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는 감염자 수치가 140만 건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세계보건기구WHO는 훨씬 보수적으로 추산하는데 그래도 15만 1000건이다).
SIM 선교회의 간호사 낸시 라이트볼과 ‘사마리아인의 지갑’의 켄트 브랜틀리 박사가 지난 7월 아볼라 감염 확진을 받자 미국에서도 이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위기의식이 증폭했다.
라이트볼, 에콰도르와 잠비아에서 의료사역을 했던 그녀는 남편 데이비드와 함께 2013년 라이베리아로 갔다. 에볼라 감염 환자들을 돌보던 그녀는 거의 한 달 만에 자신도 에볼라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와 브랜틀리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미국으로 이송돼 개발 단계에 있던 치료제 지맵ZMapp을 투여 받았다. 두 사람은 완치됐다.
라이트볼과 데이비드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에 머물고 있다. CT 편집위원 모건 리가 그들을 만나 아프리카의 에볼라 대응 현장 이야기, 감염 이후 심경, 그들의 미국 이송을 반대했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에볼라가 발생한 라이베리아의 병원 상황은 어땠습니까? 보호 장비를 갖추지 못한 병원이 많았습니다. 간호사들은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일했습니다. 우리[SIM]는 ‘사마리아인의 지갑’과 협력하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마리아인의 지갑’이 의료현장에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수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격리구역 안에서 일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간호사들은 보호 장비를 갖추고 격리 치료실에 들어갔고, 나온 다음 소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문화가 의료현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에볼라로 가족 중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을 때나 이미 죽었을 때, 그 감염 환자와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아프리카 문화에서는 시신을 씻기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때 가장 많은 접촉이 일어나게 됩니다. 일단 한 사람이 죽으면, 바로 그 순간이 바이러스가 가장 많이 퍼지는 때입니다.
데이비드: 지역사회에서 낙인이 찍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에볼라에 감염된 가족을 격리 시설에 데려가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건 곧 사형선고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은 감염된 가족을 집에 숨겨두려고 합니다.
미디어가 서부 아프리카 사람들이 에볼라에 감염된 친구나 가족을 치료할 때 신앙의 치유력에 집착하여 의학적인 치료를 따르지 않는다는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본 적 있습니까? 데이비드: 우리도 보았습니다. 전통 치료사가 준 물을 마시거나 치료를 받으면 에볼라를 멈출 수 있다고 선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의학적 치료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다른 것들은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칠 것이라고 이해시키기가 어려웠습니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에볼라와 싸우는 일은 정말 믿음과 신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에볼라에 대한 라이베리아 교회의 대응은 어떻습니까? 많은 교회들이 에볼라 교육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여느 교회처럼 그곳 교회들에서도 주일 아침에 교인들이 서로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나눕니다. 그러나 에볼라 초기 단계부터 목회자들은 교인들과 조금 떨어져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악수는 하지 맙시다.”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왜 현지 지역 교회 목회자들은 의료기관의 충고를 따랐습니까? SIM의 ‘아프리카를 얻는 영원한 사랑’Eternal Love Winning Africa이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해 왔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신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일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병원과 협력해서 일하는 목회자들과 그들의 교회, 그리고 우리 사이에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교육할 때, 많은 경우 결국 우리가 어떤 현지 리더십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관건이 됩니다.
아프리카인들이 서구인들에게 갖고 있는 불신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데이비드: 그것은 아마 2003년에야 끝난 15년간의 내전이라는 라이베리아의 현대사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신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서구에서 많은 지원과 많은 돈이 들어오고 있었지만-그리고 돈은 언제나 유혹입니다-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까지 그것이 닿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감염됐다는 사실과 그리고 많은 동료들이 죽었지만 당신은 살았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어떤 영적 씨름을 했습니까? 진짜 씨름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과 왜 주님께서 나를 살려두시고 아프리카인 형제자매들 중에서 일부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크시고, 우리는 그분의 마음을 모르고, 우리가 그분을 틀에 가두어 “이것이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이고 하셔서는 안 되는 일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말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두셨습니다. 그리고 에볼라에서 살아남은 많은 아프리카인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이것도 암이나 다른 질병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살아남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나는 주님께서 하시는 일과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볼라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우리에게 심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도움을 주게 될 백신과 세럼을 계발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질병으로부터 고통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게 대해서도 우리가 더욱 많이 알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감염된 후에 하나님께 “왜”라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 왜” 또는 “왜”라고 질문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내게 큰 평화를 주셨다는 것은 압니다. 어두움의 시간이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라이베리아에 있던 우리 모두는 브랜틀리 박사님과 내가 진짜 싸움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영적인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너무 너무 어두운 날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또한 그 어두움 속에서, 주님께서는 내 마음에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평화를 다시 가져다 주셨습니다.
내가 질문한 것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에볼라에 감염됐지?” 답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예방조치들을 취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혀 새로운 의학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애볼라 바이러스의 생존기간은 얼마나 되지? 어디서 우리가 에볼라에 감염됐지?
몇 주 동안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를 받으면서 이런 신학적 주제들에 대한 생각이 더욱 깊어진 것인가요? 나는 항상 안전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두 손과 걸음 안에 두신다는 신뢰가 있었습니다. 내가 에볼라에 감염되기 전에 이미 나는 그리스도의 평화의 방법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에볼라에 감염되고 나서] 내가 주님과 맺고 있는 관계는 더욱 깊어졌고 주님께서 통제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은 일어나고 있던 일을 통제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날수를 세고 계십니다.
에볼라가 이미 수개월 전부터 퍼져나갔는데, 지맵 백신을 서구 의료인에게 투여 하는 것의 윤리성에 대한 다소 거친 토론이 미국에서 있었습니다. 이 논쟁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지맵에 관해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맵이 실험 단계에 있는 약이고, 인간에게는 한 번도 시험을 한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와 아프리카의 형제자매들에게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약을 아프리카인 형제자매들에게 투여했을 때 파생될 문제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지맵을 투여 받고 켄트와 제가 모두 죽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런 문제들에는 쉬운 답이란 없습니다.
이 약을 투여 받았을 때 우리에게 나쁜 결과가 생길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전혀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우리는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많은 윤리적 질문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왜 우리의 아프리카 형제자매들이 아니라 우리가 이 약을 투여 받았지?” 누구도 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마리아인의 지갑과 SIM이 라이베리아에 보건 인프라의 상당 부분을 제공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이베리아인 의료인이 많지 않다면, 에볼라와 싸우는 것이 더 어려울까요? 우리 병원에는 서구인 의사 다섯 명이 있었지만 라이베리아인 의사 7~8명도 함께 일했습니다. ELWA에 대한 신뢰가 확실하게 있지만, 최근 기니에서 일어난 의료인 공격 사건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의 다른 지역과 이 나라의 다른 지방에서도 일부 외국 의료인에 대한 신뢰가 부족합니다.
당신과 브랜틀리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것에 반대하는 미국인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땠습니까? 여기 미국에서조차도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격리된 용기에 넣어서 개인 보호 장비를 갖춘 사람들이 이송하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모든 사전 예방 조치도 취해졌습니다. 나는 에모리 병원의 브루스 리드너 박사가 한 말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일부이다.”
두 분의 미국 이송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화가 나거나 좌절감이 들지는 않았습니까?
라이베리아로 돌아갈 생각이신가요? 2014년에는 아니지만, 아마도 2015년에는 거기에 가 있을 겁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보고 싶고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염병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나는 에볼라 바리어스에 대해 매우 진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방조치를 더욱 철저하게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에볼라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라이베리아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라이베리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곳입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의 서부 아프리카 형제자매들과 그들이 겪고 있는 것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우리는 현지 라이베리아 교회에 가서 그들과 사귀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었습니다. 우리는 ELWA 종합시설 안에 있었는데, 거기에는 병원뿐만 아니라 라디오방송국과 학교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교회도 있는데, 우리는 그 교회에 다니지 않고 지역 사회에 있는 라이베리아 교회에 다녔고, 그래서 그 지역사회 사람들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사람들의 생명을 위한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알게 해주는 영적인 전투 가운데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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