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국민학교 4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큰다’라는 노래가 어울렸다.
우리 육상부는 구박이 심할수록 서로를 의지하며 똘똘 뭉쳐 쑥쑥 자랐다.
여름방학이 되자 오전, 오후 운동을 하면서 중간에 보충수업 시간을 가졌다.
점심 식사 후 두 시간씩 보충수업을 지도하고, 오후 세 시에는 운동이다.
한 여름 뙤약볕에서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굵은 땀을 흘리면서도 연신 “화이팅” 외치면서 뛰고 또, 뛰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 나가는 아이들이 기특하기만 했다. 우리는 일요일, 방학, 추석날도 없이 연중무휴의 스케쥴을 소화해 나갔다. 벽지의 작은 학교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추석날은 오전은 차례를 지내고, 오후에만 운동을 했다.
내가 제일 먼저 학교 운동장에 나가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학교 운동장에서는 멀리 떨어진 자연부락에서 논둑길을 걸어오는 아이들 모습이 잘 보였다.
먼 산 고개를 넘어 오는 가소지 아이들의 모습이 먼저 보인다. 십리가 떨어진 제일 먼 동네, 큰 산을 두 개나 넘어와야 하는 가소지 아이들이 언제나 일등이었다. 아직도 이십 분은 더 걸어야 학교에 도착할 그들이 오는 모습이 얼마나 예뻐 보이던지.... 시간이 되면 모든 육상부원들이 한 사람 빠짐없이 모두 모였다. 추석날 놀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 없겠지만 그들에게는 육상이 먼저였다.
정신력이 그만큼 강해졌지. 불평하는 아이 하나 없이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 해 10월, 아산군 소년체전 평가전으로 육상대회가 열렸다.
대회 장소는 온양여중 운동장이었다. 대회가 가까워 오면서 내 자신이 초조해졌다. 쌍룡에서 육상을 지도해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었지만. 그보다 훨씬 적은 벽지학교에서, 운동을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시합 한 번 나가보지 못한 아이들을 데리고.... 사실 자신이 없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성적이 나쁘면 결과는 뻔했다. 육상부 해체지.
교장선생님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끌어 온 육상부, “여기서 해 봤자지. 이 번 시합이 끝나면 육상부 해체 해” 하고 벼르고 계신 그 분과 동조하는 선생님들의 비웃음을 견뎌낼 명분이 없어진다.
단지 하나 믿는 것은 ‘지성이면 감천’ 하나 밖에 없었다.
드디어 시합날이다. 잠 못 자 충혈 된 눈으로 아이들과 버스에 올랐다.
다행히 아이들은 긴장함이 없이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즐거워한다.
‘그래, 한 번 즐겨 보자. 너희들이 그동안 해온 그대로만 하거라.’
온양 역 앞에서 버스에서 내려 60명의 아이들이 두 줄로 걸어서 온양여중에 들어섰다. ‘과연 여기가 사지냐 ? 축복의 땅이냐 ?’
“애들아. 그동안 수고 많았다. 여러분들이 흘린 땀의 보답을 여기서 받아보자. 시합이라고 절대 긴장하지 말고, 학교에서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뛰어 보자. 더 잘할려고 하지도 말고 연습하던 만큼만 한다고 생각하면 돼.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아무런 걱정 하지 말고.... 알았지 ? 화이팅” “화이팅” 목소리가 움추러 들었다. 막상 시합장에서 다른 학교 선수들은 보니까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가 문제구나. 아이들이 얼어붙었다. 긴장을 풀어 주어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 같은 가운데 시합은 시작 되고 여자부 100m 예선부터 출발했다. 희주가 단연 1등이 아닌가 ? “야, 희주가 일등이야” 아이들이 놀라더니 그때부터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이젠 됐다’ 내 마음도 가라앉았다.
그 뒤로 이 종목, 저 종목 예선에서 1등이고 최소한 3등까지는 간다.
이제부터는 결승이다. 극도로 긴장이 되더라. 아이들도 함께....
첫 출전은 희주. “땅” 소리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월등히 1등이다.
“만세” 희주 엄마가 울면서 만세를 부른다. 희주도 따라서 운다. 금방 남자 100m가 출발한다. 거기서도 우리 창열이가 1등을 하는 게 아닌가 ?
아이들이 모두 신이 나서 사기충천이다. 장거리에서도 모두 우승. 이게 웬 일인가 ? 시합이 다 끝난 후 결과는 절반의 금메달이 우리 거다. 다른 종목에서도 은메달, 동메달까지는 전원이 입상했고....
물론 남자부, 여자부 종합 우승이 모두 우리 차지다, 이럴 수가....
우승기가 두 개나 된다.
아이들이 모두 운다. 나도 눈물이 흐르더라. 누가 보던 말던 울어 버렸다.
그 극심했던 반대와 구박, 우유 한 컵을 안 주던 학교, 개구리 잡아 먹이던 일, 돼지뼈 삶던 일, 선생님들 술안주 남은 것 냄비 채 들어다 한 숟갈씩 떠 먹이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통쾌하기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벽지의 소규모 학교 동덕의 종합우승은 아산군 전체의 센세이션이었다.
시합에 참가한 선생님들이 축하의 인사를 해 댄다. 연신 고개를 꾸벅이느라 경황이 없었다. 우승기 두 개를 앞세우고 온양 역까지 퍼레이드를 한 후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교장선생님 앞에 우승기 두 개를 내 보였는데 아무런 소리도 없이 노려보기만 하신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없으셨다.
‘육상부 해체하라는 소리는 안 하시니 다행이지. 우리 아이들이 하면 된다를 깨달았을 테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아이들을 돌려보낸 후 풀리는 긴장감에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웃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기동창 친구의 전화가 왔다.
“건표야. 축하한다. 정말 수고했다. 근데 나 큰일 났다” “뭔 큰일인데....”
“그동안은 우리 교장선생님이 육상부를 지도하라고 권하셔도,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 어려워요 했는데 우리보다 훨씬 작은 동덕에서 우승까지 했으니 앞으론 뭐라고 말씀을 드린다니 ?”
그 후 아산군민체육대회가 열렸다. 면 대항 시합에는 초등학교부 남녀 계주종목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우리가 월등히 우승을 했지.
탕정면민들과 함께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늘 탕정면이 일 등을 한 게 동덕학교 계주밖에 없었어” 모두들 한 마디씩 하더라.
그때부터 탕정면에서 조금씩 관심을 가져 주시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