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다대포는 사진가들에게 바다풍경을 찍기위한 곳으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특히 이곳은 사막과 같은 모래사장과 잔잔한 남해바다의 경치가 잘 어울려 이색적인 소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석양의 모습또한 아름다워 순천만과 함께 해질녘 풍경사진을 담기 위한 사진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다대포는 출사지로도 유명하지만 지리적인 의미도 중요해 경상좌도 7진(부산.다대.서평.포이.개운.두모.서행)의 하나로 국방상의 요새지로 중시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곳은 선인들의 무공을 알려주는 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1740년 간행된 <동래부지>에 의하면, '다대리는 관문으로부터 30리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경상남도동래군가호안(1904)>에 의하면, 다대동은 108호의 호수가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돼 조선후기 이후 군사적 기지등의 관계로 보아 상당히 큰 촌락을 형성하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1914년 동래군 사하면이었다가 1942년 부산부 구역확장에 따라 다시 부산부에 편입됐습니다.
다대포는 우리나라의 역사기록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일본서기의 신공황후 섭정 5년기의 다다라노쪼와 계체기에 나오는 다대라원 그리고 추고기에 나오는 다다라 등이 상고시대부터 다대진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의 다대포와 일치되는 지명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일설에는 낙동강 주류가 불아미, 가락, 명호로 흐르는 줄기였다고 보는데서 다대포에서 대저에 이르는 일대를 다대진으로 표현했을지 모른다고 하고 또 일설에는 다대진은 지금의 다대포가 장림포라고 하기도 하는데 모두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나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또 일본서기 계체 23년조에는 이사부가 군사 천명을 이끌고 다다라원에 머물면서 웅촌등 4촌에 내주한 왜병을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다다라는 다대포의 원래명칭입니다. 이렇듯 다대포는 역사시대 초기에서부터 일본 측의 사서에 자주나오는 것으로 보아 한일 통교상의 중요 요지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주요 볼거리로는 물운대, 다대포객사, 정운공 순의비, 윤공단 등이 있습니다. 낙동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물운대는 지형적 특성으로 안개와 구름이 자주 생겨 운치있는 풍경을 연출하며, 조선시대의 객사 건축물인 다대포객사는 마을의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망배를 드리던 곳으로 사신의 숙소로 이용되기도 한 곳입니다. 또, 정운공 순의비와 윤공단에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바친 옛 선열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대포 앞바다는 남해바다의 특성상 수심이 얕고 모래가 곱습니다. 바닷가에서 주로 촬영되는 일출, 일몰 사진 외에도 모래사장을 소재로한 사진이 다대포에서 많이 촬영되는 것 역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물이 들어오고 빠짐에 따라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래사장을 찍어보는 것도 다대포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서해 왜목마을이 서해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부산 다대포는 일출명소인 해운대와 상반되는 남해의 일몰명소입니다. 수심이 얕은 해수욕장은 가족단위 피서지로도 그만이며, 바다와 노을, 모래가 만나는 사진을 담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올 여름 피서철에 대비해 미리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