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의 발전과정 SHI / 중공업/해양
三星重工業(株)
삼성그룹이 조선업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1973년 5월에 삼성과 IHI의 회장간에 조선사업의 합작 추진에 관한 협의가 있은 이후이다. 동 년 7월 13일에 조선프로젝트팀이 구성되었으며, 조선소 건설 입지를 통영군 광도면 안정리로 잠정 확정하고 8월 30일 IHI와 사업 타당성 검토를 위한 용역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어 동 사는 사업계획서와 제3 대단위조선소 실수요자 선정신청서를 상공부에 제출, 실수요자로 선정됨에 따라 1974년 5월에는 정부로부터 IHI와 합작회사 설립인가를 받아 동 년 8월 5일 납입자본금 10억 원에 삼성 75%, IHI 25%의 합작비율로삼성중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삼성이 건설을 계획한 조선소는 길이 550m, 폭 92m, 깊이 13m규모의 건조도크와 350톤의 goliath crane 등 최대 건조 능력 100만DWT급의 세계적 규모였으며, 연간 27만DWT급 유조선 4척을 건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73년 10월 예기치 못했던 중동전쟁의 발발로 인한 오일쇼크로 부득이 조선소의 착공을 잠정 연기하기로 결정하면서 사업목적을 변경하여 우선 육상플랜트부문에 진출하기로 결정, 1976년 12월부터 창원에 대단위 플랜트설비 및 기계공장 1단계 공사를 착공하였다.
그 후 세계조선업계 동향을 주시하다가 1977년 4월에 우진조선을 전격 인수하여 조선사업을 재개하였다. 우진조선은 원래 정부가 1973년 9월 거제도를 조선공업단지로 지정하고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에 따라 경남 거제군 신현면 장평리 소재 공업단지에 10만 톤 급 규모의 선박 건조도크를 건설하여 연간 10만 톤 급 선박 4척의 건조를 목표로 1974년 3월 15일 설립된 고려조선주식회사의 후신이었다.
고려조선은 설립 당해연도 7월에 일본 하코다테도크사 및 마루베니사와 각각 59%(고려원양), 30%(하코다테), 15%(마루베니) 비율로 합작을 맺어 회사 체제를 보강하고 하코다테와 기술협력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이어 11월 30일에는 현대건설(주)와 조선소 건설공사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12월 2일 竹島조선소 착공식을 가졌다.
그러나 오일쇼크의 영향을 감안하여 1975년 4월에 조선소 건설계획을 제1기와 제2기로 나누어 시공하기로 수정했다. 제1기공사는 도크의 폭과 깊이 등을 원안대로 10만 톤 급 규모로 하되 길이를 축소하여 초기에는 시황이 좋은 파나막스급 및 스에즈막스급의 선박건조에 주력하며, 제2기에는 도크의 길이를 당초 계획인 340m로 늘려 10만GT급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한편 1976년 8월 7일 정부의 제32차 경제장관간담회에서 고려조선의 조선소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원을 차관에서 탈피, 국민투자기금에서의 융자액과 자본금을 증액하고 외자재는 외자대부로, 현금차관계획은 중장기설비금융과 같은 산업합리화자금으로 지원키로 결의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자세를 보임에 따라 1976년 9월 1일 제27차 이사회에서 시설 규모를 일부 축소하기로 결의하는 한편 외국인 합작투자 계약내용을 수정하여 당초 하코다테의 지분을 15%로 하향 조정하고 (주)진로를 새로운 주주로 맞음에 따라 주식지분은 고려원양 35%, 진로 35%, 하코다테 15%, 마루베니 15%로 변경되고 자본금도 48억원에서 54억원으로 증액됐다. 이어 1977년 2월 23일에는 고려원양의 지분 35%를 진로가 전량 인수하고 상호를 우진조선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불황의 장기화로 자금 사정이 계속 악화되면서 건설계획도 계속 차질을 빚게 되어 우진조선은 새로운 경영권자를 찾게 되었고 1977년 4월에 공사 예상소요자금 185억 원 중 90억 원이 투입되어 전체 공정의 50% 정도가 진척된 상태의 우진조선을 삼성그룹에서 인수하였다.
1977년 4월 22일 삼성은 임시 주주총회에서 우진조선의 인수 절차를 마무리짓고 상호를 삼성조선주식회사로 변경하였으며, 동 년 9월 8일 하코다테와 마루베니가 소유하고 있던 주식지분 인수도 추진하여 100% 소유권을 확보하고 삼성조선의 독자적인 새 건설계획을 수립해 나갔다. 당초 185억 원 규모로 설정된 우진조선의 기본 계획을 600억 원 규모로 확대하되, 세계 조선업계의 장단기 전망을 고려하여 추진 단계를 1, 2기로 나누고, 제1기에는 당초 계획을 보완, 마무리하는 방향으로, 제2기에는 대폭적으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기본계획을 세워 조선소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1978년 10월에 건조도크의 구축 공사가 완료되고 1979년 8월 31일 1, 2호크레인의 설치 작업이 동시에 완성됨에 따라 길이 240m 폭 46m, 깊이 11m, 선박건조능력 6만5천톤 규모의 1호 도크가 기능을 발휘하게 되었으며, 1979년 12월 말까지 연간 최대 건조 능력 15만 톤 규모인 제1기 공사의 모든 설비의 설치공사가 완료되었다.
한편 동 사는 1977년 출범 당시 1기 건설 공사를 1978년에 완공하고 곧바로 2기 확장 공사에 들어가 1980년 말까지 완료하기로 계획했었으나 때마침 제2차 오일쇼크 및 국내 정치사회적 격변으로 최악의 불황과 세계 조선경기의 계속된 부진으로 계획은 연기되었다.
이후 1980년 3월 10일 제2도크 신설을 중심으로 한 거제조선소 2기 확장 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곧바로 시설계획팀을 조직, 1981년 5월 15일 제2도크 건설을 위한 매립 공사를 시작으로 의장공장, 선각공장 증축 및 각종 부대시설 공사가 진행되었다. 건설 공사가 1983년 2월 10일 완료됨으로써 이 회사의 조선부문은 최대선 건조능력 25만DWT, 연간 건조 능력 45만GT의 시설 능력에 3,300명의 종업원을 고용하는 조선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을 뿐 아니라 생산 규모의 적정화를 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1982년 10월 19일 삼성의 중공업계열 3사인 삼성중공업, 삼성조선, 대성중공업은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하여 통합키로 결의하였으며, 통합 형태는 삼성중공업이 삼성조선과 대성중공업을 흡수 합병하는 형태를 취하기로 하고 1983년 1월 1일을 기하여 삼성중공업주식회사로 단일체제가 되었으며, 동 년 8월 16일에는 한국중공업 창원 중장비공장의 매각 공개 입찰에서 낙찰 업체로 결정되어 동년 8월 29일 양수도 계약을 체결하였다.
동 사는 1992년~1993년 중에 LNG선, 초고속선 등 고부가가치의 개발을 완료하는 한편 세계 조선시황의 호전에 대응하기 위해 제3도크의 건설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1994년 초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제3도크의 건설을 이룩하기 위해 당초 1, 2기로 나누어 1995년까지 완료키로 했던 계획을 수정하여 1994년 10월 말에 길이 640m, 폭 97.5m, 깊이 12.7m의 도크를 완공함으로써 VLCC건조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동 사는 1996년 12월 처음으로 138,000㎥ 급 LNG선을 수주했으며 1997년 구조합리화 차원에서 상용차사업부문을 삼성상용차㈜에 매각했으며 동 년 12월 원활한 자재 조달을 위해 중국 영파에 선박블록생산공장을 준공했다.
1998년 7월 1일 중장비 사업을 스웨덴의 볼보사에 영업양도, 동 년 7월 15일 지게차사업을 미국 클라크사에 영업양도, 1999년 12월 발전설비 사업과 선박용 엔진사업을 각각 한국중공업㈜와 HSD엔진㈜에 이관해 조선해양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또한 2000년 3월 디지털 컨트롤 시스템사업에 진출했으며 동 년 10월 9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 선형 개발을 완료했고 2001년 3월 OHSAS18001국제 인증을 취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