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구성요소 - 머리, 가슴, 몸
당신이라는 한 개인은
세 가지 구성분자로 나뉠 수 있다.
실제로는 나눠질 수 없는 통일체지만
임시로 이해를 위해서 나눠보면
당신은,
머리(head),
가슴(heart),
몸(body),
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능(知能)은 머리의 작용이고,
본능(本能)은 몸의 작용이고,
직관(直觀)은 가슴의 작용이다.
이 셋 뒤에 당신의 존재(being)가 있다.
존재의 유일한 기능은 지켜봄(witnessing)이다.
머리는 오로지 생각만 한다.
그러기에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머리는 말로 생각하고 글로 생각하고 논리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재(reality)에 뿌리를 내리지 않아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철학적 사유가 꼬리를 물었지만,
우리에게 단 하나의 결론도 내려주지 못했다.
철학이야말로 무익함의 가장 거대한 훈련장이다.
지능(intellect)은 매우 영리해서 무수한 질문을 만들고 무수한 대답을 만든다.
그리고 그 대답에서 다시 더 많은 질문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언어의 궁전, 이론의 체계를 수도 없이 세우고 무너뜨린다.
하지만 그 모두가 허풍일 따름이다.
당신 몸은 당신의 지능을 의존할 수 없다.
살아야 하니까.
당신 몸의 가장 기본적인 작용들, 예컨대 호흡, 맥박, 소화, 혈액순환 등이
당신의 지능이 아니라 본능(instinct)
에 따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용들이 당신과 아무 상관없이
당신 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자연이 몸한테 그런 지혜를 준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당신 지능이 그것들을 관리해야 하는데,
그럼 당신은 처음부터 아예 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때로 숨 쉬는 것을 깜박 잊을 텐데,
적어도 밤에는 분명히 그럴 텐데,
잠들어 있는 동안 당신이 어떻게 숨을 쉬겠는가?
당신은 이미 많은 생각들로 혼란스럽다.
그런데 그 혼란 속에서 어떻게 당신의 혈액순환을 관리하고,
적당한 산소량을 세포들에 전달할 참인가?
먹은 음식이 제대로 소화되어 영양소로 분해되고,
그것들이 필요한 곳으로 보내지는지 아닌지 당신이 어떻게 알 것인가?
그 모든 일이, 엄청나게 많은 작용들이,
본능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당신은 필요 없다.
혼수상태로 있어도 된다.
그래도 몸은 계속 제 일을 한다.
자연은 당신 몸의 기본적인 작용을 모두 본능한테 넘겨주고,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은 따로 두었다.
그냥 살아있는 것, 그냥 존속하는 것에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 삶에 의미가 있게 하기 위하여
자연은, 당신 가슴에 직관(intuition)을 주었다.
당신의 직관에서 예술, 미학, 사랑, 우정의 가능성이 솟아난다.
이 모두가 직관이 창조해내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시장(市場)은 당신의 직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장은 당신의 사랑, 감수성 따위를 거래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단하고 세속적인 물건들을 사고판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의 가장 표피적인,
(superficial, ‘경박한’으로 옮길 수도 있음)
기능인 지능이 작용해야 한다.
당신이 시장에서, 세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지능이다.
그것은 수학이고 지리학이고 역사고 화학이다.
모든 과학과 기술공학이 인간의 지능에서 나오는 것이다.
당신의 논리, 당신의 기하학은 모두가 유용하다.
하지만 지능 자체는 눈이 멀었다.
온갖 물건을 만들어내면서 그것들이 파괴에 소용되는지 창조에 소용되는지는 영 모른다.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간의 지능이 일으킨 전쟁일 것이다.
지능은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의 주인 노릇을 한다면 그런 불행이 없다.
바로 그것이 세상의 온갖 골치 아픈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주인은 몸과 마음(mind)과 가슴,
이 셋 뒤에 숨어있다.
이 셋 뒤에 숨어있는 주인,
그것이 당신의 존재(being)다.
그런데 당신은 결코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당신의 모든 길이 밖을 향하고 있다.
당신의 모든 감각도 밖을 향한다.
당신이 이룬 모든 성취가 거기 바깥 세계에 있다.
지능은 이 세상에서 쓸모가 있는 물건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교육기관들이 당신의 가슴을 외면하고,
당신의 에너지를 머리에만 집중시키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가슴은 골치 아픈 문제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가슴은 논리에 대하여 도무지 아는 게 없다.
가슴에는 전혀 다른 센터가 있다.
직관(直觀)이 그것이다.
그것은 사랑을 안다.
하지만 사랑은 이 세상에서 유용한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안다.
그러나 시장에서 아름다움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
- 화가, 시인, 음악가, 무용인, 배우 등 - 은 모두가 엉뚱하다.
도무지 ‘합리’라는 걸 모른다.
그들은 위대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위대한 사랑을 하지만,
머리가 지배하는 세상에는 전혀 어울리지 못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예술가들은 사회에서, 따돌림 당하거나 ,
조금 미쳤거나, 아니면 머리에서 나사 하나쯤 빠진 사람으로 대접받을 것이다.
아무도 자녀들이 음악가, 배우, 화가, 무용수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모두들 자식들이 의사, 엔지니어, 과학자, 교수가 되기를 바란다.
그들에게는 높은 연봉이 보장되어 있으니까.
그림, 시, 음악, 춤…
이런 것들은 위험하다.
자칫하면 길거리에서 피리나 부는 신세로 전락되기 십상이다.
그동안 가슴(heart)이 무시당해왔다.
그러니까 내 말은 여성이 무시당해왔다는 얘기다.
가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에서는 여성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
성장할 기회가 머리에 제공되는 만큼 가슴에도 제공되지 않는 한,
여성해방은 그림의 떡이다.
여성은 가슴이고 남성은 머리다.
차이가 뚜렷하다.
본능과 자연은 제 나름의 손을 지니고 있다.
본능을 억제할 때마다 당신은 왜곡되고 타락한다.
모든 종교가 그 짓을 해왔다.
몸의 본능을 억제하지 않는 종교가 거의 없다.
몸에 무슨 죄가 있는가?
몸은 무고하다.
절대 무고하다.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는다.
당신이 당신 몸을 생겨난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몸이 당신한테 굉장한 선물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신 가슴을 도와주고 고무할 것이다.
당신 지성(intelligence)을 더 예민하게 해줄 것이다.
머리를 위한 영양소가 몸에서 오고 가슴을 위한 영양소도 몸에서 오기 때문이다.
당신 머리와 당신 가슴과 당신 몸이 하나의 완벽한 심포니를 이루면,
그러면 당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서로 다투니까,
바로 그 지능과 본능과 직관의 다툼 속에서 당신의 소중한 인생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머리와 가슴과 몸으로 아름다운 조화(調和, harmony)를 이루어낸다.
그 조화 속에서 한 인간 생명의 근원이자 중심인 영혼(the soul)이 계시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황홀함이다.
인간뿐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 그보다 더한 무엇이 있을 수 없다.
나는 어떤 것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부조화(不調和)에 반대할 뿐이다.
그리고 당신 머리가 가장 조화롭지 못한 상황을 빚어내기 때문에,
당신이 당신 머리를 제 자리에 두었으면 하고 바랄 따름이다.
그것은 당신의 주인이 아니다,
당신 종이다.
종으로서는 매우 유익하고 쓸모 있는 훌륭한 종이다.
더블린의 한 우유 배달부가 방금 배달을 마쳤다.
말과 마차를 선술집 바깥마당에 세워두고 한 잔 마시러 들어갔다.
한 시간쯤 잘 마시고 기분 좋게 나와 보니 자기 말에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게 아닌가?
화가 나서 선술집 안으로 들어가 소리치기를,
“어느 놈이 내 말에 색칠을 했느냐?”
키가 2미터쯤 돼 보이는 아일랜드 거인이 일어서더니 그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내가 그랬다. 그래서 뭐가 잘못되었나?”
우유 배달부가 이를 드러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기를,
“아, 예, 뭐 그냥, 페인트가 잘 말랐더라고요.”
....^^
지능은 분명 유익한 물건이다.
많은 도움을 준다.
당신에게 지능이 꼭 필요한 그런 때가 물론 있다.
하지만 종으로서 필요한 거다,
주인으로서는 아니다.
- 오쇼 라즈니쉬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