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 酒談
목포 동초등학교 후문께 지금은 4차선 신작로가 뚫렸지만, 예전에사 국도1번지라곤 해도 조붓한 삼거리길가에 스레트지붕이 납작한 주막이 있었다.
엄조형과 그집에 들어서는 초저녁이면 으례 우리는 첫손님, 삐긋이 웃기만 하는 주모는 동글고 포동한 얼굴에 심성이 곱고 아담한 분이었다. 안주를 마련해 술 한 상을 차려주고는 티비를 보러 안방에 들어가버리기 일쑤였다. 쓰잘데라곤 없는 이야기 보따리에 주석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줄 이미 아는 터,
미주알 고주알 허허거리다가 술병이 비면 주모 부르기가 미안하여 빈 병만 쌓아놓은 채 진열장겸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어 잔을 채우며 두런두런.....가까운 곳에 내가 다니던 행남자기 산정공장이 있어 엄조형 외에도 생연형, 재환형, 병두 아우 등등 종종 술을 즐겼던 주막, 일어설 무렵이면 비몽사몽 초저녁잠에 겨운 주모를 깨워 술값산수를 시키곤 했다.
악동들! 함게 흑조시인회원으로 목포문인협회 회원이기도 했던 엄조형과 사흘이 머다하고 마시던 술은 일차에서 끝나는 법이 없는 이차 삼차, 주당열차였다. 낯익은 이가 끼어들면 더욱 흥이 부풀어 형님 동생 칙칙폭폭.....
언덕배기 위의 포장마차 건강주점을 거쳐 자정 가까울 무렵이면 언덕길 수퍼 바닥에 라면박스를 깔고 앉아 노닥거리기를 계속하였으나 무슨 재미난 이야기들을 그리 했던지 헐렁바지에 벙거지 쓰고 부산히 오락가락하던 차프린의 무성영화만 같다.
대취했던 날의 그 다음날이면 주머니엔 라이터가 여럿 들어있곤 했다. 어느날의 삼거리 주막에서는 이 라이터 도벽에 대한 힐난을 견디지 못해 색갈도 어여쁜 새 라이터 한 줌을 사다가 하나씩 나눠주고서야 입막음을 한적도 있다.
문방구점을 경영하느라 요즘은 두분불출하신다는 엄조형님, 새해 음복 한잔은 하셨나요? 주야장강 그술 좀 아꼈다가 두고 두고 마셨으면 좀 좋아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
이삿짐의 강아지처럼
주막 하나를 데리고 다녔다
이 고을 저 마을
말뚝 닮은 술벗과 호박 같은
주모를 데불면 세상은 늘 견딜만 했다
남들이 나이를 먹을 때
놀을 마시고 잃어버린 배냇짓을 파닥거렸다
안녕, 내 청춘의 가버린 나날이여
임자 잃은 주막거리 위에
오늘은 놀이 탄다
파르르 별이 떨고 못다한 내 사랑이 탄다
- 자작시 '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