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
(롬 4장 17-25절)
24년 3월 31일 주일설교
빌라도(Pontius Pilate)는 로마황제 티베리오 카이사르 치하에서 유대총독으로 임명된 군인이었다. 그가 부임한 후 예루살렘에 로마군을 주둔시키자 유대인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으며 이로 인한 민중봉기가 두 번 일어났기에 여론에 민감한 상태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를 재판하게 되었는데 군중들이 예수를 못 박으라고 소리칠 때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민란을 두려워하여 사형 집행을 허가해 주었다. 그 후 빌라도는 예수 재판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로마 황제에게 보냈는데 이 보고서가 터키의 성소피아 사원에 소장되어있다. 로마의 사가 빌레루스 파테르쿠러스의 주(註)에 의한 원명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가이사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중요한 증거를 전해주고 있는 문서다. 빌라도 보고서(A Report of Pilate)는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로마」의 황제,「디베료·가이사」
각하에게
각하께 문안드립니다.
제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최근 수년동안에 일어난 사건은 너무나 독특한 일이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의 운명까지 변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저는 사건이 일어난 대로 각하께 소상히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발생한 사건은 모든 다른 신들과는 조화될 수 없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발레리우스·플라슈스」를 계승하여 유대 총독이 된 날을 저주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부임한 이래로 제 생활은 불안과 근심의 연속이었습니다.
(중략)
유대인의 큰 축제가 다가오고 있었으며 백성의 여론은 유월절 의식에서 항상 감정을 표명하는 일반 백성의 환희에 편승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성은 그「나사렛」사람의 죽음을 시끄럽게 요구하는 소란한 군중들로 술렁이고 있었다. 제가 파견한 밀사(密使)는 성전의 금전이 군중들을 동원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고 전해 왔다.
위험은 점점 더 가중되었으며 한「로마」의 백부장은 멸시와 모욕을 당했다. 저는「시리아」의 사령관에게 편지를 보내어 100명의 보병과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기병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그는 거절하였다.
저는 반역하는 성(城)한 가운데서 얼마 되지도 않는 정병들과 함께 외톨박이가 된 것 같았으며 폭동을 진압하기에 너무 약한 탓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을 너그럽게 대해 주는 수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중략)
무자비한 핍박자들로부터 예수를 보호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헛수고로 돌아가고 저는 마침내 그 순간 예수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생각된 방법을 취하기로 하였습니다.
즉 이러한 명절에는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것이 그들의 관례였으므로 저는 예수를 자유롭게 놓아 소위 그들이 일컫는 속죄 염소로 삼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이었다. (중략)
저는 가끔 시민폭동에서 노도한 군중을 목격하여 왔으나 이번처럼 격렬한 폭동은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지옥의 모든 유령들이「예루살렘」으로 모여든 것과 같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중략)
바람결을 타고「골고다」에서 들려오는 큰 부르짖음 소리는 일찌기 인간의 귀로는 들어본 적이 없는 고통의 소리를 발하고 있었다. 검은 구름이 성전 꼭대기 위에 드리워졌으며 마치 면사포를 가리운 것처럼「예루살렘」을 덮고 있었다. 하늘과 땅에 나타난 징조들은 너무도 두려운 것이었다. (중략)
“저는「아리마데」요셉「나사렛」예수를 장사지내고 싶다. 그것을 허락해 달라고 당신 앞에 무릎 꿇었다.” “당신 소원대로 하십시오.”하고 저는 대답하였다.
동시에 저의 부관「만류스」에게 명하여 병정 몇 사람을 대동하고 매장을 감독하고 불경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며칠 후 그의 무덤은 비어 있었으며, 그의 제자들은 각처로 다니면서 예수가 자신이 말한 대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고 전파했다.
이 사건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건보다 더 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서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제 나름 조사 해 보았다.
황제께서도「헤롯」을 시켜 조사하여 보시면 저에게 잘못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제 생각은 만일 유대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듯이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손에 있다는 사실이 그를 따르는 자들이나 배척자들에 의하여 알려지고 증거된 것처럼 그 모든 사실이 그 사람의 생애와 조화되기 때문이다. 그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다.
그는 바다를 잠들게 하고 폭풍을 멈추게 하고 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은전을 얻어낼 수 있었다. 만일 모든 유대인들이 증거 하는 것처럼 그가 했다는 많은 일들을 그가 할 수 있었다면 그를 대적하게 했던 그의 모든 주장은 사실일 수 밖에 없다고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는 범죄함으로, 어떤 법을 어김으로써 또 누구를 그릇되게 함으로써 비난을 산 적은 없었다. 이 모든 사실은 그를 지지하였던 사람 뿐 아니라 그를 대항하였던 수많은 사람들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십자가 옆에서「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나는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각하여,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 「안티파터」가 제게 관한 여러가지 가혹한 평을 했다고 들었으므로 황제께서 사건의 전모를 아신 후 제가 취한 행동에 대하여 바른 판단을 내려주시도록 자세히 쓰느라고 많은 애를 썼다.
각하의 건승(健勝)을 빕니다. 저는 각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입니다.
본디오 빌라도
현재 J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은 예루살렘 성묘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교회의 실질적 출발점은 십자가가 아니라 부활이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보여 주듯,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에 대한 모든 기대를 끝장내는 절망이었다(눅 24:21). 물론 예수를 반대하던 이들은 그것이 마땅한 귀결이라 여겼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어떤 생각의 변화가 아니라 부활이라는 실제 사건이었다.
절망한 제자들을 예수의 증인으로 변화시킨 것은 문득 얻게 된 어떤 신학적 깨달음이 아니라 부활의 충격, 곧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와의 맞닥뜨림이었다. 이 만남 속에서 그들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고, 이 부활의 빛 아래서 그들은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당연 초대 교회 최대의 화두는 부활이었다.
사도들은 무엇보다도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는 자들이었고(행 1:22) 부활로 인해 당시의 권력자들로부터 박해받았다(행 4장)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일종의 신학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행하신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눅 1:1).
그리고 그 사건의 절정은 바로 예수의 부활이었다. “그가 과연 부활하셨다!”는 외침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자신의 사역이나 신자들의 믿음이나 그 모든 것이 허망한 것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한다(고전 15:14).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이든,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신자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고전 5:17).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의 속죄조차도 무의미한 낭설일 수밖에 없다. 복음은 분명 “십자가의 도”로 요약할 수 있지만, 실상 그 십자가의 메시지를 복음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부활이기 때문이다.
<Jesus Christ Superstar>뮤지컬은 성경에 없지만, J께서 부활하실 것을 믿지 못해 배반했던 가룟 유다가 뒤늦게 후회하며 울부짖는 대사. 가룟 유다의 혼령이 나와 구슬피 울며 “Why didn't you tell me?” 계속 “Why didn't you tell me?” 슬피운다. “죽은 후 부활하실 줄 왜 내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말씀하셨더라면 내가 미쳤다고 J을 팔겠습니까?”라는 의미.
X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데(할례가 아니라) 믿음이 의로움의 수단인 이유?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바울은 롬 4장 믿음의 전형인 A에게 눈을 돌린다. G은 A에게 수많은 자손을 약속했고, “A은 G을 믿었고, 그것이(=그 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3, 9절) 바울은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 진술이 실제로 대단히 놀라운 장면을 묘사함에 주목한다.
사실 A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믿음(18절)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약속, 그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는 약속이 주어지던 시점은 인간적으로는 그 약속의 실현이 불가능한 시점이었다. 약속을 들을 당시, A이 직면한 현실은 “백세나 되어 죽어 버린 자신의 몸과 죽어 버린 사라의 태”뿐이었다[19절. 개역의 (죽은 것) “같음” 표현은 원문에 없는 첨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의 믿음은 약해지지 않았고(19절) 그는 자식을 주시겠다는 G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다(20절) 오히려 믿음으로 더 강해졌다. 곧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한” 것(21절).
이처럼 A은 G께는 죽은 자기 몸과 죽은 사라의 태로부터 생명이 태어나게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고 G은 그의 바로 이 믿음을 의로 여겨 주셨다(22절; 3, 9절) 이 믿음이 G을 향한 믿음의 핵심이다. 바울의 말처럼, A이 믿었던 G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다(4:17) G을 믿음은 생명의 창조주이심을,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만들어 낼 분임을 믿음이, 생명과 부활의 G을 믿는 A을 의롭게 했던 믿음이었다.
바울이 A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G을 믿어 의롭게 된 A의 이야기는 장차 동일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우리를 위한 것이다. 믿음이 동일 한 것은 우리 또한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이기 때문이다(롬 4:24) 자기와 사라의 몸을 다시 살려 아들을 태어나게 하실 분을 믿은 A의 믿음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믿는 우리의 믿음은 동일하다. 모두가 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G을 향한 믿음이다. 한마디로 부활 신앙을 발휘하는 정황은 다르지만, 부활의 G을 향한 믿음의 표현은 같다. 바울은 우리가 이 믿음, 곧 생명과 부활의 G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한다.
부활의 G을 믿어 의롭게 된다면, 부활 없는 칭의란 존재할 수 없다. 칭의를 죄 용서와 동일시하고, 이를 전적으로 십자가의 효과로 간주하는 통상적인 경향과 달리, 바울은 칭의가 십자가뿐 아니라 부활 또한 필요로 하다고 역설한다. G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예수 우리 주”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죽음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물론 십자가 죽음이 죄 용서 위해, 부활이 칭의를 위해 필요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죄 용서와 칭의가 나누어질 수 없듯, 십자가와 부활도 그러하다. 바울이 말은 우리의 칭의에는 십자가뿐 아니라 부활 또한 필요해서 G을 향한 믿음에는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의 사랑뿐 아니라 부활에서 증명된 그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포함된다. 바로 이 능력이 우리 믿음을 다른 모든 인간적인 수단들과 구별해 주는 차별성이다.
히서에서는 A과 사라의 믿음을 재조명한다. 믿음으로 사라는 불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임신할 능력을 얻었다. “약속하신 분은 신실한 분이라 여겼기 때문”이다(히11:11) 이 믿음의 결과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 많은 후손이” 태어났다(히11:12 "(죽은 자와) “같은” 원문에 없는 첨가다) 아들을 약속한 분은 믿을 만한 분. 곧 약속대로 죽은 태에서 생명을 창조할 수 있음을 믿음으로써 잉태할 능력을 얻었다.
이삭을 바친 A도 이삭의 죽음은 약속의 끝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A은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다(히11:17)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는 것은 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G의 약속이 계속될 것을 믿었다. 이삭은 죽는데 이삭을 통해 A의 자손들이 생겨날 것 약속은 이루어질 것이다. A이 그렇게 믿었다면 그의 속내는 분명하다. 곧 “그가 G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다”(히11:19a) 이삭이 죽고 되살아난 것은 아니지만, A의 믿음은 그는 사실상 죽고 부활한 것이나 다름없다. 즉, 그는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았다”(히11:19b) 바울이 이삭 탄생의 약속을 믿은 A에게서 부활 신앙을 보았다면, 히브리서는 이삭을 바치는 행동에서 동일한 부활 신앙을 보았다.
부활하신 예수와의 마주침에서 바울은 A의 죽은 몸에서 이삭이 나게 하신 G, 골짜기의 ‘아주 마른’ 뼈들을 엄청난 군대로 살아나게 하신 에스겔의 G을 경험했다(겔 37장) 복음은 바로 이 부활의 G에 관한 이야기다. G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은 그 생명의 G이 다시금 우리를 찾아와 우리와 세계를 새롭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성취다. 바울이 G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 공연한 말이 아니다(롬 8: 11; 고후 4:14; 갈 1:1)
바울을 비롯한 신약의 저자들은 구원에 대한 소망을 품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 현재 고난의 세월을 인내한다(롬 8:17~18) 소망의 핵심은 “몸의 속량” 곧 우리 몸의 부활이었다(롬 8:23)
현재의 썩을 몸으로는 썩지 않을 나라를 상속할 수 없다(고전 15:50) 그러기에 우리는 이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할 것을 고대한다. 지금 썩을 아담의 몸을 입었던 것처럼, 장차 썩지 않을 몸, 곧 부활하신 X의 몸을 입을 것(고전 15:49, 51~54; 고후 5:1~5) 부활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것을 “참고 기다린다”(롬 8:24~25) 물론 우리는 믿는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실” 믿음(고후 4:14)
가이드 포스트(Guidepost)에 실린 ‘나의 끝은 G의 시작입니다’라는 킬링거(Killinger) 부인의 간증. 이혼한 지 1년 되던 어느 날 그녀는 친구, 가족, 경제생활 등 모든 것이 먹구름에 싸여 죽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우연히 책장에서 딸의 초등학교 3학년 때 과제물을 발견했다. 8페이지인데 매 페이지마다 한 살부터 여덟 살 때까지의 사진을 한 장씩 붙이고 자기의 삶을 설명한 과제물이었다. 맨 마지막 페이지에 End(끝)라고 적혀 있었는데 딸의 글씨 옆에 담임 선생님의 ‘Your beginning’(너의 시작이다) 글씨가 End(끝)라는 글씨를 내리누르듯이 크게 적혀 있었다. 바로 이 부분이 킬링거 부인이 새출 발하게 된 동기였다.
8세 된 아이의 이야기가 끝이 될 수 없듯이 마흔 된 자기도 끝이 아니라고 깨닫게 된 것.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는 결코 끝이 없다. 8세 딸아이가 자신의 숙제에 ‘끝’이라고 썼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고 시작인 것처럼 마흔 살이지만 ‘내 삶은 이제 시작’ 부활의 믿음 킬링거 부인은 다시 시작했다. 끝은 내 생각이지, G에게는 시작이다. 부활을 믿는 자는 결코 헛된 생활이 아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낙심할 이유가 없다. 지금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링컨이 젊었을 때 변호사 시절 주의회 의원에 출마했으나 낙방했다. 다시 하원의원에 출마했으나 역시 낙방. 몇 번 낙방하자 링컨은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링컨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까운 친구들은 링컨이 자살할지 우려하며 지켜보았다. 그런데 낙선하던 날 링컨은 머리를 깎고 목욕을 했다. 좋은 일이 있는 것처럼 좋은 식당에 가서 밝은 모습으로 식사했다. 링컨의 자서전을 보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재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심정이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고 절망하던 중 성경을 읽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
이 일 후 링컨은 재기에 성공한다. 그 뒤의 일을 “나는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부활하신 J을 만났고 부활하신 J이 함께 계신 것을 믿고 용기를 가지고 공화당에 입당 열심히 뛰어 대통령후보 지명받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부활의 영과 함께 하는 삶
몸의 부활은 미래이지만, 그 부활의 영은 지금 우리 속에 내재 역사한다(엡 1:19~23) 바울은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X인이 되었다는 말은 부활하신 X의 영, 곧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삶을 다스린다는 말과 같다.(롬 8:11)
이 성령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고, 인도하심 속에서 몸의 부활을 향한 여정을 이어 간다. 부활의 소망은 그 부활을 얻기에 합당한 삶을 요구한다. 그래서 예수를 다시 살리신 G의 영은 지금 우리의 삶을 다스려 우리로 몸의 부활에 이르게 한다. 성경이 끊임없이 경고하는 것처럼,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고 인간적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길. 반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이 몸의 부활, 곧 영생을 향한 유일한 통로다(롬 8:13; 갈 6:8) 베드로전서처럼, G은 X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이로써 우리는 ‘살아 있는 소망’, 곧 구원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되었다(벧전 1:3~5).
존 스토트(John Stott), <J이 이끄시는 삶>(Life in Christ) 중
“우리는 어떻게 X처럼 살까? 거룩해지는 길은 J처럼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예수가 오셔서 사는 것. 성령은 X 중심의 영이다. 진정한 X인이 되기위하여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이다. 날마다 끊임없이 예수께 나아가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그때 성령께서 X를 계시하시고, 우리 안에 X의 형상을 이루실 것이다.”
바울의 복음에서 새로운 삶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십자가와 죽음의 이야기와 얽힌다. X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고후 5:14). 그가 이처럼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고후 5:15)이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X안에 있는 자들은 “새로운 피조물” 곧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고후 5:17).
십자가가 바울의 죽음과 결합 X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갈 2:20) 이 죽음의 결과는 ‘G을 향해 사는’ 것(갈 2:19)
곧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G의 아들” 곧 십자가에 달리신 X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갈 2:20) 바울은 X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이를 통해 바울과 세상은 서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갈 6:14) 그 결과는 ‘새로운 창조’(갈 6:15) 성령의 인도 따라 성령의 열매 맺는 새로운 삶(갈 5:16~26).
우리는 X의 피, 곧 그의 죽음을 통해 대속적인 죄의 용서를 경험한다(롬 3:24~25) 그의 죽음은 또한 믿음으로 그 안으로 세례를 받은 자들의 죽음을 의미(롬 6:3~4a) 하지만 이 죽음은 드라마의 한 삽화다.
그의 죽음 자체가 새로운 삶의 논리 속에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4).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을 더욱 사랑하라>(Finding Calcutta)의 저자 메리 포플린(Mary Poplin)교수는 40대 초반에 예수를 만났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r까 고민하다가 인도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가 일하는 현장으로 떠난다. 테레사의 사랑 선교회가 사회사업 센터가 아니라 복음으로 살아가는 곳이라 도전받은 것.
86세의 마더 데레사는 캘커타에서 2개월간 봉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떠나는 메리에게 “J과 사랑에 빠지세요” 이어서 “우리는 먼 곳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기가 훨씬 쉽지요. 내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당신의 자리인 가정과 일터에 J의 사랑을 가져 오세요. 그곳이 바로 J을 위한 사랑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당신에게 보고자 하는 눈이 있다면 세계 도처에서 캘커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당신의 캘커타를 찾아보세요.” 메리는 자신의 고향 텍사스로 돌아왔고 세속적 가치관으로 가득 찬 자신의 일터인 대학 캠퍼스가 캘커타임을 발견한다. 상처받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씻어주고 그들의 손을 J의 사랑으로 잡아 주기로 결심하였다. 그녀의 눈이 밝아진 것. 살아계신 J을 보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기다리는 영혼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팻 윌리엄스(Pat Williams)는 <권력의 역설>(The Paradox of Power) 책에서 X인(Christian)이름을 지닌 인물을 소개하였다. 2차대전 당시 덴마크의 국왕‘크리스천X (10세)’ 덴마크 국민은 그를“인격의 사람, 용기와 원칙의 사람”으로 기억.크리스천 10세 국왕은 매일 아침 마차를 타고 경호원도 없이 코펜하겐 거리를 지나갔다. 백성들을 믿었기에 언제든지 가까이 나와 인사하도록 한 것. 1940년 독일 나치가 덴마크를 점령하였다. 크리스천10세는 덴마크인의 정신과 기상 그리고 국왕을 억누를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나치 치하에도 매일 아침 마차 타고 코펜하겐 거리를 행진하였다. 그의 행진은 덴마크인들에게 저항(resistance)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한번은 왕이 코펜하겐의 공공건물에 나치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목격하고 독일군 사령관을 찾아가 깃발을 내리라고 말했다. “깃발은 계속 휘날릴 것.
내가 깃발을 걸도록 명령했다.당신의 요구를 거절합니다.”하자 왕이 “나는 당신에게 깃발을 내리도록 명령한다.만일 그것을 제거 않으면 덴마크의 병사가 올라가 깃발을 제거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는 총살될 것이다”라고 사령관이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렇게 못할 것이다.그 병사는 곧 나,크리스천 왕일 것이다.
”결국 나치 깃발은 치워졌다.그 후 히틀러는 유럽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노란 별이 부착된 완장을 차도록 명령했다.유대인을 식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크리스천10세 국왕은“모든 덴마크 국민은 하나이다”라며 왕족들에게 다윗의 노란 별이 부착된 완장을 차라고 명령했다.다음날 코펜하겐의 시민들은 팔에 다윗의 별이 새겨진 완장을 차고 다녔다. 나치는 덴마크에 사는 8천명의 유대인들을 체포 강제수용소로 보내기로 했다. 정보가 국왕에게 전해지자 저항단체들을 동원하여 7천5백명의 유대인들을 스웨덴으로 도피시켰다.
나머지5백명의 유대인들은 나치에 붙잡혀 체코슬로바키아 격리수용소에 수용됐다.국왕의 중재에도 불구 75명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유대 인구의90%를 구하였다.그 일로 덴마크 국왕은 나치에게 대가를 치러야 했다.
1943년에 감옥에 갇혔지만
1945년 독일의 패전으로 왕은 풀려났다.옥중생활로 건강이 나빠진 왕은2년 만에 죽었으나 크리스찬10세의 행동은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여주는 위대한 삶.크리스천 이름에 걸맞게 살았다.X인은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18C 덴마크는 영국과 독일과의 두 차례의 전쟁으로 척박하고 협소한 농토, 나무 한그루 자라지 못하는 광활한 황무지만 남겨졌다. 희망 잃은 국민들은 퇴폐적 향락과 도박, 싸움질을 일삼고, 정신적으로 타락하며 병 들었다.
당시 구룬트비(Nikolai Grundtvig)목사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 목사고시를 치렀다. ‘덴마크 교회 지도자들이여 회개하라’는 제목으로 설교 시험관들이 건방지다는 이유로 작은 섬으로 발령 내었다. 구룬트비는 교회를 개혁하고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섰지만 결국 신경쇠약에 걸려 잠을 못자고 헛소리까지 하며 폐인 직전까지 이르렀지만 구룬투비는 G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도하는 그에게 성령의 바람이 불어왔다. 자복하며 눈물로 부르짖을 때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게 되었다.
천국의 존재를 확신하면서 이 땅이 아닌 천국을 사모하게 되었다. 신경쇠약과 불면증을 이기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바뀐 구룬트비 통해 덴마크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 ‘G 사랑, 이웃 사랑, 나라사랑’을 국민들에게 외쳤다. 청년들이 변하고 사회가 변한 결과 덴마크는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 덴마크 국민들은 구룬트비 목사를 국부로 생각하여 곳곳에 그룬트비의 동상을 세웠다.
<팀 켈러의 고통에 답하다>책에 미국의 ‘조지아나’라는 여인의 이야기.
‘2011년 5월 막내딸 제인이 사고 당했다. 의자 위에 놀다 의자가 뒤로 넘어지면서 마룻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 소아 전문 간호사였던 내가 보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사고 3일후 소아과를 찾아가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엑스레이 결과 두개골 골절, CT촬영까지 했지만 다행히 다른 합병증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증세가 없는 것에 감사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일주일 후 난데없이 형사들과 아동학대예방센터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병원의 한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만 보고 아무런 추가 증거 없이 아동학대신고 한 것. 사고난 제인은 이제 막 돌이 지난 아기였다. 나는 세 딸의 양육권까지 모두 박탈당했다. 병원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쏟아지는 정서적인 공격을 받고, 어린이를 돌보는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법률적 변호와 자문, 의료비, 상담료 등 엄청난 재정부담에 시달렸다. 경찰조사, 법원 심리, 탄원, 청문 등의 절차를 거쳐 재판이 진행. 매순간 감정의 기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왜 G 께서 이런 일을 겪게 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G을 원망해보았지만, 의지할 분도 G 밖에 없었다. 네 번의 심리 끝에 재판장은 증거부족으로 사건을 완전 종결시켰다. 1년 만에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G께 감사했다. 그럼에도 상처는 남았다. 어린 딸들은 사건의 파장으로 무척 힘들어했다. 나와 남편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기쁨과 상처가 공존했다.
우리 부부는 판결이후 병원 관계자와 만나려고 노력했다. 거듭된 노력끝에 판결이 난 후 1년 만에 병원장과 신고한 의사와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가족이 겪은 고통과 충격을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말을 마치자 병원장과 의사는 ‘큰 어려움을 드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만남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면서 나는 나를 고발했던 의사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는데 그를 안아주는 순간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강력한 치유와 화해가 찾아왔다. 그 이후 G은 나의 시각을 기적처첨 바꾸어 주셨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을까? 고의든 아니든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 줬을까?, 교만에 사로잡혀 행동 판단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의사와 다르다고 할까? 마주한 의사의 모습에서 나의 흠을 보게하셨다. 용서는 나를 자유하게 했고, 삶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조선의 정세는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웠다. 당시 국제 사회는 조선을 ‘소망 없는 은둔의 땅’으로 보았다. 그러나 황무지이기 때문에 더욱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미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있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였다. 그들은 순교의 각오로 파송을 자원했다.
1885년 4월5일 부활절.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단순한 입항이 아니었다. 이 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순간. 그렇게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조선 땅을 밟았다. 황무지에 소망의 빛이 비치는 순간. 아펜젤러는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서 이 날의 감동을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G의 자녀로,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신학자 떼이야르 드 샤르뎅(Teilhard de Chardin) “교회는 부활을 근거로 역사의 한복판에 현존하는 X의 몸이요, X를 만나는 곳이요, 신앙이 사는 곳이다.”
언제나 즐거움과 기쁨으로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꽃장수 할머니 어느 날 단골 손님이 할머니에게 언제나 즐거워 하시는 것을 보니 할머니는 걱정 근심이 전혀 없으신가봐요.
천만에요. 걱정 근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내게도 고통, 짜증나는 걱정거리가 생긴다.
그런데 어떻게 매일 즐겁게 사실 수 있어요? 나는 ‘3일의 비밀’을 가지고 산답니다.
3일의 비밀이요? 그게 뭡니까?
'3일의 비밀이란, 문제가 생길 때마다 G께 그 문제를 해결하시도록 맡겨버리고 3일을 기다린다오. J이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그 문제가 해결에 3일이면 족하다오. 때론 숫자대로 3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주님의 부활 원리는 늘 동일하다. 그래서 나에게 어떤 암흑 같은 고난이 와도 3일 후면 언제나 광명이 찾아옴을 알기에 사는 게 늘 즐겁지요.(민찬기목사제공)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