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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문학> 시사 강연
교육의 위기와 어린이 문학의 대응
김진경
오늘 주요하게 드릴 이야기는 굉장히 심각한데 아무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일단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제일 마지막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90년대 초중반부터 아이들이 세 번 정도 질적으로 크게 변화했습니다. 그런데 아동 문학도, 공교육도 이 세 번의 변화를 놓쳤고, 이제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양상에 달해 있습니다.
저희 집사람이 중학교 교사입니다. 어느 날 재미난 농담을 들었다고 해 준 이야기가 있는데, 인문학자들이 새로운 인류를 발견했답니다. 호모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중딩 사피엔스’가 있다고.(좌중 웃음)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학교에서는 사실상 수업이 안 됩니다. 제가 2000년대에 복직했을 때 수업을 듣는 애는 십 퍼센트 정도?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는지 이야기해 보지요.
왕따, 학교 폭력이 처음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게 90년대 초중반입니다. 그런가 보다 하던 중 94, 5년에 전교조 해직 교사 1,500명이 복직했어요. 이 선생님들이 원래 애들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는데 한 달 뒤에 만나 보니 다들 죽을상이었습니다. 가까운 복직 교사들 중 몇몇은 정신과 치료도 받았습니다. 80년대 말에 그렇게 친했던 아이들과 지금 아이들이 질적으로 너무 달랐던 것이지요.
자,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교육이라는 게 최종적으로는 교사와 아이들 간의 애정 관계에서 완성되는 것인데 이게 끊겨 있다는 거니까. 왜 이렇게 되었나 고민하다가, 이 정도 지경이면 교육학적 논문이 있겠거니 싶어서 찾아봤는데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데 이 변화와 아이들이 몸으로 자기를 표현하기 시작한 시기가 같았어요. 일례로 머리 염색. 이런 아이들이 많아지니까 이 문화를 인정해야 하는지, 금지해야 하는지 고민했었습니다. 그리고 저 문화를 추적해 보면 이 변화의 원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자료가 없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로, 우리 누님이 80년대에 조카딸 둘과 미국에 이민을 갔습니다. 90년대 중반 처음으로 귀국했는데 염색하고 코 뚫은 애들이 조카라고 들어왔어요. 애들이 왜 깡패가 되었냐고 하니까, 아니라고 이 아이들은 모범생이라서 문신도 안 한다고 합디다. (좌중 웃음)
그래서 문신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공부를 하려고 보니 또 없어서 대신 한자 공부를 했습니다. 文章(문장)이라는 단어를 고한자로 보면, 누워 있는 사람의 가슴에 문신을 새기는 모양입니다. “章(장)”이 문신칼 모양이에요. 높은 제사장이 사람이 죽었을 때 문신을 새기는 종교 의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를 통해 피가 흘러나오게 해야만 영혼이 몸을 빠져나와 승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5,000년 전에 문신이란 신성한 행위였지요. 그러나 3,000년 전쯤부터 문신에 대한 의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첩(妾)”이라는 한자는 여자 위에 문신칼이 있는 모양입니다. 전쟁에서 여자 포로를 데려와서 노예로 만들며 문신을 새긴 것이지요. 이때부터 문신이 노예와 범죄자의 표식이 되었습니다. “재상 재(宰)” 자를 보면 집 안에 문신칼을 갖고 있는 대단한 권력자로 표현됩니다.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우리 세대까지 내려옵니다. 문신은 조직 폭력배의 표식이잖아요. 고대에서부터 산업화 세대까지 자기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게 아주 부정적이었던 겁니다.
이게 지금 세대에 와서 바뀌기 시작했어요. 요즘 애들이 문신까진 안 해도 헤나는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근 3,000년 만에 일어난 변화인 거지요. 자기 몸을 가지고 자기를 표현한다는 것은 인식이 어떻게 달라지는 걸 뜻하지요? 문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시대에는 몸의 지위는 낮고 이성의 지위가 높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어쩌다가 이성과 자게 되면 결혼해야 한다 생각했거든요. 결혼하면 계속 같이 살아야 하고. 몸보다 이성이 중요했던 세대인 거지요.
근데 자기 몸으로 표현하는 걸 긍정적으로 보는 세대는 사고에 있어서 몸의 지위가 우리보다 대단히 높습니다. 지금 아이들의 사고는 이렇습니다. 결혼관도 아주 다르고 몸의 욕구도 굉장히 중요하게 봅니다. 결혼했는데 몸의 욕구가 안 맞으면 쉽게 이혼하고 약속은 중요하지 않아졌지요.
농경 사회는 인간의 몸을 통제하는 게 아주 중요했던 시대입니다. 산업화 시대도 마찬가지지요. 임금을 조금 주고 많이 부려 먹는 게 부 축적의 핵심적 요소니까. 이런 시대에는 몸의 지위를 낮추는 게 유리해요. 육체노동자 비하하고. 인간의 육체 노동력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높았던 시대인 거지요. 또 신화시대에는 자연이 중요했고. 인간의 몸은 미약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 기반 사회입니다. 이제는 육체노동을 통제할 필요가 적어졌어요. 중요한 건 두뇌의 노동이고 육체노동은 외국인 노동자 몫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이런 사회적 변화에 따라 의식 구조가 변화한 거지요. 이 과정에서 당연히 학교 시스템과 충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학교야말로 우리의 의식 구조를 가장 잘 제도화한 결과거든요. 학교가 설립되는 근거가 뭡니까? 국민이 자녀 교육의 권한을 국가에 이임하면 국가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학교에 이임한 것이고 또 이것을 행사하는 것이 교사 아닙니까.
학교와 교사에게 있는 교육권이라는 것은 이성적 권리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몸의 욕구지요. 몸을 통제하는 체제를 그대로 제도화한 게 학교거든요. 우리 세대는 학교에 적응을 잘했어요. 같은 의식 구조이니까. 교사의 권리도 쉽게 인정하고 교과서도 성경처럼 받들고. 그런데 지금 아이들에게는 아닐 거 아니에요. 이런 권위도 잘 안 받아들이는 거예요. 뭔데, 학교가? 이렇게 되는 거지요. 제가 굉장히 충격 받았던 게, 아이들 청소 시간에 쓰레기통 보러 갔더니 교과서를 발기발기 찢어서 넣어 놨어요. 우리 때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지요. 아이들의 의식 구조가 이렇게나 바뀐 것입니다.
제가 해직되기 전에는 고교에 한 반에 6, 70명 있었습니다. 70명 앉아 있는 이 아이들 원래는 다루기 쉬웠거든요. 그럴듯한 말 한마디 하면 다들 반짝반짝해요. 의식 구조가 나랑 같으니까. 그런데 복직해서 서른 명 앞에서는 대책이 없었어요. 좋은 소리를 해도 썰렁하고. 인정을 안 해 줘요. 지금 아이들은 몸으로 느끼는 게 중요하니까. 이제는 소통하려면 스킨십도 필요하고 서른 명 아이 하나하나 생각해야 하는 겁니다. 이 서른 명 아이가 훨씬 어렵고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문학으로 와서 보면, 우리 아동 문학의 의식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입니다. 여기서 해와 바다는 뭡니까. 서구 문명을 뜻하잖아요. 시에서 보면 바다가 소년에게 어서 이를 받아들이고 바다로 나서라고 합니다. 서구 문명 빨리 받아들여서 발전하라는 식민지 아동관입니다. 이렇게 서구의 지식, 서구의 모델을 수입해서 받아들이는 근대사에서부터 우리 문학의 아동관이 형성됐습니다. 굉장히 지식 중심적입니다. 학부모도 마찬가지지요. 아이들을 지식 성장 중심으로 그 외의 문제들은 생각하지 않고, 도구적으로 봅니다. 가정과 나라를 부흥시킬 도구. 그런데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아동청소년 연구는 여기서 한 걸음도 안 벗어나 있습니다. 시스템도 마찬가지예요.
학교나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질적인 변화를 못 따라가고 시스템과 인식의 변화도 없었습니다. 괴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른 사회 구조로부터 억압을 받는데 그렇지 않은 우리 세대의 의식과 딱 다른 건 굉장히 압박으로 느껴질 겁니다. 여기에 적응해야 하니까.
그리고 또 한 번 변화를 놓치게 되는 시기가 구제 금융 IMF입니다. 더욱 악성화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의 몸의 지위가 대단히 높아지고 이성의 지위가 낮아지면 자기 정체성 형성이 우리보다 힘듭니다. 아들의 정체성은 아버지를 모방하며 형성돼요. 아버지라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거지요. 그런데 몸의 욕구가 높고 마음의 중요성은 낮은 아이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 안 합니다.
특히 구제 금융 이후 실업, 비정규직 등으로 아버지의 존재가 격하됩니다. 든든한 롤모델이 될 만한 아버지가 없어집니다. 1인 가족이 많이 생깁니다. 옛날의 국가는 모든 국민을 다 끌어안으려 하는 빅파더였어요. 실업자도 산업예비군이라고 불러 주고, 교도소는 교정 시설이었지요. 범죄자도 사회가 다 끌어안는. 그러나 이제는 일부만 끌어안는 국가입니다. 그러니까 사회적 국가도 아버지의 모델로서는 굉장히 약화되어 버렸습니다.
그 시기에 학교에서 ADHD의 급격한 확산이 보편적으로 나타나요. 이게 하나의 사회적 현상입니다. 아이들의 정체성이 제대로 형성이 안 되니까 굉장히 유동화되는 겁니다. 아침의 이 아이와 저녁의 이 아이가 다릅니다. 마치 다중인격처럼 되고 당연히 부산해질 수밖에 없는 거지요.
정신 분석학에서는 욕구, 요구, 욕망이 다 다른 것이라고 합니다. 욕구는 생물학적인 겁니다. 배고파. 목말라. 그리고 요구는 욕구 이상을 바라는 겁니다. 아기가 욕구를 다 충족시켜 주었을 때도 울면서 엄마를 찾잖아요. 이게 바로 엄마의 사랑을 요구하는 거지요. 욕망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입니다. 그러면서 타인의 욕망을 훔치는 것. 정체성의 형성이라는 건 이 욕망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됩니다.
소비 사회는 이 욕망을 어렵게 하는 사회입니다. 극단적 소비 사회는 모든 물건이 진열되어 있는 편의점 같은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결핍을 느끼지 않고 자라서. 타인에 대한 감각이 없어요.
동화 작가 이중현 선생이 교장으로 있는 초등학교가 있는데, 놀러 가다가 근처 방 전세가 1억에 나와 있는 걸 봤어요. 아니 무슨 시골집에 저렇게 비싸냐고 놀랐더니 그 학교로 전학 가면 ADHD가 육 개월 안에 백 프로 낫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궁금해서 자주 보러 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에 꼬맹이 둘이 투닥거리며 주먹다짐해서 교장실에 불려 왔대요. 한 애는 시골에서 학교 다니던 애고, 한 애는 강남에서 전학 온 ADHD 아이인데, 왜 싸웠냐고 물어보니까 서울 아이가 비 오는 날 개구리가 뛰어다니는 걸 처음 보고 신기해서, 그걸 잡아서 빈 우유병에 넣고 사물함에 착 넣어 놓은 거지요. 시골 아이는 그러면 개구리 죽으니까 풀어 주라고 하고 서울 아이는 내 개구리라고 하면서 싸웠답니다. 개구리를 편의점 상품처럼 생각한 거지요. 시골 아이는 자연을 타자로 인식하고 공생하며 그 시스템을 존중하고요.
처음에 전학 온 애들은 풀밭과 채소밭 구분을 못 한대요. 그게 3개월 지나면 된다고 합니다. 전학 온 애는 자연을 타자로 보지 않고 편의점 진열장으로 보며 내 욕구만 충족시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개구리를 가지니까 결국 죽고, 메뚜기도 잡아 두니까 결국 죽어 버리는, 그런 결핍의 경험이 생기는 거지요. 자연이라는 게 나랑 다른 어떤 게 있구나 하고 타자로서 인식할 수 있는 겁니다.
시골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다 다른 존재로 보고 개별 교육을 합니다. 무지 힘든 일이지요. 한 학급에 20명을 넘지 않게 한대요. 그러다 보니 정체성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자연히 ADHD도 해결되는 겁니다.
지식 전수의 문제 이전에 굉장히 심각한 차원의 문제가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2000년대에 복직했을 때, 난감한 게 가족 해체 속도가 워낙에 빠르니까 학교에 가면 3분의 1이 편부모 가정이에요. 삶에 의욕이 없는 아이들입니다. 그런 애들한테 국어 점수 몇 점 더 맞으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아이들의 정체성이 유동화 되어 있고 이것이 ADHD로 나타나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걸 일반적인 문제로 인식조차 안 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가 진행됩니다.
근래 우리 사회의 주제가 구별 짓기입니다. 왕따의 이유를 들어 보면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찌질한 브랜드를 입는다.’, ‘매너가 찌질하다.’ 같은 것입니다. 어른들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심각한 폭력을 저지른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들 합니다. 그러면 나는 정말로 이해 안 가냐고 물어봐요. 어머니는 정말로 학벌, 지역으로 차별 안하셨습니까. 어른들이야 말로 구별 짓기에 목숨 걸고 있는데 애들이 구별 짓는다고 난리법석 칩니까. 부동산 투기도 다 구별 짓기 때문 아닙니까. 아이들은 어른의 그림자일 뿐이에요.
가족 형태 변화의 연장선상으로 보면 이해가 잘 갑니다. 저는 60년대 어린이고 그때만 해도 대가족이 일반적이었어요. 6남 1녀였고 아버지는 먹고살기 바빠 보기 힘든 사람이었지만, 형제들과 동네 형들이 있기 때문에 그 동네 사회 안에서 보호교육 기능이 있었습니다. 배움은 학교가 아니라 동네에 있었지요. 점차 이 대가족이 해체되는데, 이때 대개 장남을 대학에, 딸들을 공장에 보내요.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7, 80년대까지 이런 게 남아 있었습니다. 이 당시의 민주화 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는 부채 의식입니다. 누이를 공장에 보내고 대학 졸업한 오빠의 민중에 대한 부채 의식. 그런데 90년대 들어서며 달라집니다. 대학에 간 아들들이 결혼하고 중산층이 돼요. 90년대부터 문화가 달라지면서 대가족 유대감이 없어지고 소통이 안 됩니다. 유대가 사라진다는 게 구별 짓기의 문화입니다. 나 때문에 희생한 누이가 아니라 이제는 나와는 다른 계층의 사람인 거지요.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격동적으로 움직이던 게 이 구별 짓기의 문화고 암묵적 구별이 형성됩니다. 이를테면, 상류층에 속하려면 스카이 대학에는 속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사교육비를 때려 박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밑에서 안 따라갈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조기 유학 붐이 일어납니다. 자연히 조기 유학이 자동으로 스카이와 좋은 직장으로 연결되면 얼마나 좋겠냐는 상류층의 요구가 생기겠지요. 또 외국의 명문 학교가 아예 우리나라에도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두 가지 요구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겠습니까? 이명박 정부 때 오렌지니 어륀지니 하는 영어발음 이슈가 괜히 생긴 게 아닙니다. (좌중 웃음) 미국 본토 발음 영어가 스카이와 같은 것처럼 취급받기 시작한 거지요. 그 이후에 이게 제도적으로도 시행이 됩니다. 스카이에서 이제 입학 사정관제로 60퍼센트 이상 뽑는데, 이건 곧 외고와 조기 유학 다녀오면 바로 우선 선발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외국 명문 학교들은 국제 학교로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국내에 국제 학교 학생 수가 5만 명입니다. 대치동에서 철수하는 학원들이 비인가 국제 학교 설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어요. 여기에 제주도에 세우고 있는 1만 5천 명 규모의 국제 학교가 완공되면 아마 조만간 학생 수가 10만을 넘어갈 겁니다. 이 정도 규모면 이제 통제가 안 됩니다. 어떻게 보면 교육에 로열 코스가 생기는 거지요. 국제 학교 학비가 3, 4천만 원 됩니다. 비인가 국제 학교는 연 2천만 원 정도 될 거예요. 그런데 이 국제 학교는 우리나라 교육 과정의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국어, 국사 안 배워도 돼요. 그러니까 이 구별 짓기 문화가 학교 시스템에서 엄청나게 폭력적으로 실현이 된 거지요.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3천만 원 없으면 이 길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이 속에서 아이들이 안 미치고 배기겠어요? 똑같은 구별 짓기의 방식으로 억압을 해소시키는 것입니다.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중압을 해소합니다. 시스템이 주는 중압이 클수록 왕따나 학교 폭력도 더 보편화되고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부터가 아무도 모르는 얘기입니다. 이상이 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제도화된 건데, 그게 노무현 정부 말기에 제가 비서관 할 때, 씨앗이 뿌려졌거든요.
제주자유구역경제특별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국가교육과정 예외 국제 학교, 영어 이 네 개 세트가 같이 왔거든요. 이걸 경제 관료들이 밀어붙입니다.
정부 시스템에서 경제부처는 슈퍼 부처입니다. 예산을 쥐고 있으니까. 더구나 우리나라 경제 관료들은 4급쯤 되면 다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옵니다. 미국-삼성경제연구소-재벌 네트워크인 거지요. 정부가 이 경제부처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시스템이 너무나 강고해요. 노무현 정부하에서도 이 정도였는데 이명박 정부 때는 어디까지 갔는지 모를 일이지요. 한일군사협정 보는데 정말 끔찍하더라고요.
우리나라의 역사적 분기점들은 늘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부딪힐 때였습니다. 식민 시대, 임진왜란처럼요. 지금도 그런 시기입니다. 중국이 강해지면서 미국과 권력이 교체되고 있지요. 여기서 균형을 잡으면서 잘해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내부 사정이 이렇게 되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국민 의식을 미국의 첨병으로 만든다는 얘기지요. 앞으로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지도층이 된다면, 균형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주류 사회에 한국 문학이라는 것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구별 짓기가 하도 심해지니까 짜증나서 이제는 애 안 낳아 버리지 않습니까. (웃음) 출산 파업으로 인구가 팍팍 줄어드는데…… 주류 말고 일반 학교 다니는 애들한테 한국 문학 가르치면 된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삼성경제연구소의 2010년 저출산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2030년에는 노동 인구 감소가 심각할 거라는 거예요. 외국 인력을 1,000~1,500만 명을 수입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주류가 지향하는 사회가 이런 것이고, 이 흐름에서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는 게 아동 문학입니다. 영어 산업이 아동 문학 시장을 잡아먹어 버립니다. 이 시스템으로 가면 어떤 부모가 바쁜 시간에 문학을 읽히겠어요? 당장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읽히려고 몸부림치게 되어 있는 거지고요. 그래서 지금은 이 큰 방향이 달라질 수 있나 없나 알아볼 때인 것 같습니다. 이 대로 가면 아동 문학이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어요.
식민지 근대 아동청소년관을 극복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 거지요. 아동과 청소년이 서구의 신지식을 흡수하여 가족과 경제를 부흥시키는, 굉장히 도구적인 아동관은 오늘날 주류의 방향성과 일치하는 거예요. 상호가 함께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뭐 여기에 대해 한마디 해야 될 역할이 아동 문학에 있다고 봅니다. 만약 이번에 정권 성격이 바뀐다면 이거 정말 바꿔야 하거든요. 이명박 성격 그대로 가는 건 말도 안 되거든요.
제가 노무현 정부 때 고립무원 안에서 혼자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바깥에서 발언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해요. 만약 정부가 바뀐다고 해도 바깥에서 여기에 대해 발언이 없으면 그냥 잊고 지나가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아동 문학이나 교육 차원을 넘어서서 이명박 정부 5년간의 방향은 막아 내야 하는 겁니다. 시민 사회에서 그런 발언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 거지요. 시스템 안에서 이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뒤에서 이런 힘들을 받아야. 그런 의미에서 작가들도 개인 작가의 창작 차원에서 머무르는 게 아니라 함께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이 흐름에서 아동 문학이 설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가는 거야말로 철저하게 식민지 근대 아동청소년관이잖아요. 이명박 정권의 성공 이데올로기가 바로 이겁니다.
우리 사회는 교육 사회 시스템의 아동관이 단 한 번도 이 도구적 관점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요. 아이들의 의식은 그야말로 후기 자본주의에 맞게 비대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얘네가 ‘해에게서 소년에게’에 적응해야 하거든요. 아이들도 미치는 거지요. 분열되어 있는 겁니다. 이제 이런 중요한 시기를 맞아 우리 아동 문학도 창작에서든 공동으로 창작을 넘어서 하는 행동이든 좀 관심을 갖고 힘 있게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방일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입학 사정관제를 폐지하고, 국제 학교를 폐지하는 식으로 제도 몇 가지를 바꾸는 거겠지만, 이 사회가 구별 짓기의 근대적인 사고를 계속 갖고 나아가는 한 미봉책이 되지 않을까요? 사실 지금 작가들도 근대적인 사고에 갇혀 있는 게 많이 보이는데, 과연 이 부분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연합니다.
강경아: 같은 연장선상의 질문인데요. 수업을 듣는데 4, 50대 중반 아저씨들이 질문하면서 사교육비 얘기하다 서울대 폐지론까지 나왔었어요. 과연 서울대가 폐지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그런 게 궁금했었습니다.
김진경: 구별 짓기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학교와 공교육의 힘이 이 구별 짓기를 완화하며 균형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해 줘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교육이 오히려 거꾸로 가니까 문제인 거죠. 구별 짓기를 완전히 제로화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얘기입니다.
이 문제를 풀어 가는 데 있어서 섬세한 것들이 많아요. 서울대 통폐합 문제를 민주당이 터뜨렸을 때 아무 상관 없는 제가 가서 말렸거든요. 현재 상태에서는 그나마 서울대가 영어를 덜 좇아요. 그러니까 서울대를 깨 버리면 방파제가 무너지는 겁니다. 서울대를 국공립대 전체랑 통폐합하는 것은 한참 뒤의 이야기지요. 경쟁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합니다. 사회란 균형의 문제, 어떻게 공정성을 최대한 확보하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게 입학 시스템만의 문제는 아니고 우리 사회가 계층화되면서 출발선이 달라져 버리는 거지요.
그리고 시스템의 변화와 함께 의식의 변화도 함께 가 주어야죠. 시스템에 대한 노력과 마찬가지로 창작적인 변화도 중요한 것이고 이런 노력을 아동 문학도 해야 하는 거지요. 시기시기에 조그만 방향 차이를 주는 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물꼬가 다른 쪽으로 조금씩 흐르게, 그런 노력은 다양하게 많이 있을 수 있는 거지요.
김하늘: 우리 아동관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아동문학가들은 예술가가 시대와 대결해야 한다는 것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한 번도 아동문학가들이 정치 사회적 이슈에 같은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번 용산 참사 때 공동입장성명 발표한 것 빼고는 그 이전에 그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합니다. 물론 선배 작가 선생님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웃음) 대부분의 작가들이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는 좋은 작품을 쓰는 것으로 세상에 말하겠다 생각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지난 5년간 많은 문제가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조직적 지속해서 말할 생각을 못 했었나. 띠를 두르고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런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진경: 작가들이 용산참사 같은 시민 사회 일반의 문제에 대해 시민으로서 발언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런 문제에 매달리라고 하는 것은 문제일 수 있어요. 다만 아동 문학 작가들에게 당장 제 코가 석 자인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할 말도 없나 싶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존재와 아동 문학,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핵심적 방향이 어디로 가는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발언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작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작가들이 고유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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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시인, 동화작가. 교육운동가. 「미래로부터의 반란」,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연작 판타지 동화 「고양이 학교」, 「그림자 전쟁」 시리즈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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