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가 되어 방을 보러 가기로 했다. 애들 학교 가면서 나랑 매형,누나랑 나섰다. 학교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 금정산 바로 아래에 아파트가 우뚝 서 있다. 아파트 아래 모양이 똑같이 지어진 2층 주택이 여섯 동 있다. 골목 안 맨 끝 집 2층. 올려다보니 키가 큰 흑인 외국사람 부부가 서 계셨다. 올라갔더니 흑인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한국어로 " 안녕하세요? " 하신다. " 아~ 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다음 질문이 "간판 사장님이시죠?" 하시는 게 아닌가. " 네~ 저를 아세요? " " 서울 신대방동 삼거리에서 간판 하시잖아요 " " 네 그런데 어떻게 저를..." " 네~ 제가 신림동 쪽에 사는데 자주 신대방동을 지나다니면서 사장님을 길에서 자주 보아서 알지요." " 그런데 어떻게 여기사세요? " " 2년 전에 이사를 와서 여기 사는데 바로 저 아래 금교회에 형님이 계셔서 다녀요" "나는 서로 안면이 없으니까 모르지만 저를 자주 보셨군요." 이런 우연이 있을까 흑인 아저씨가 살던 집을 내가 얻었다. 누나네서 먹고 자고 며칠.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날마다 의논했다. 대충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계획을 짜야 하기에. 그 결과 운전면허를 따서 과일장사를 하기로 했다. 시간이 나면 누나와 함께 청과물시장 가서 수박이며 과일들을 알아보았다. 차로 싣고 다니며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생각도 해보고 ... 3월 21일 날 구서2동 1016-25번지로 전입신고를 했다. 2천8백만 원 전세. 이 돈으로 서울에선 꿈도 꿀 수 없는 방이다. 도배도 모든 일들을 일사천리로 했다. 교회 창고에 있던 짐들을 가져와서 집에 들여 놓고보니 이제 부산 사람이 된 거 같다. 2층에 방 두 개에 좁은 집이지만 정말 도와주신 모든 가족들이 고마웠다. 정리를하고보니 급한게 돈이었다. 무일푼에 한 푼이라도 빨리 벌어야겠기에 운전면허에 도전하기로 했다. 몇 십여년 전 새벽에 일어나 서울 문래동 자동차 학원에 다니며 처음 도전했던 시험. 실기에서 한번 떨어지고 시간이 없어 그만 두었던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을해서 하루라도 빨리 하기로 했다. 교회도 어느 교회를 다닐까 알아보고 있었다. 누나는 누나대로 나는 나대로. 그런데 집 맞은편 집에 아주머니와 내가 사는 1층 아주머니가 교회 다니느냐고 물어보신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작아보이는 아주머니들. " 교회 다니세요? " " 네 그런데 지금 어느 교회를 다닐까 알아보고 있어요." " 그럼 우리가 다니는 교회 나오세요" " 어느 교회인데요" " 저 아래 하나인교회예요 " " 아 그 교회 가볼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 근처는 교회들이 모두 작아서..." " 그럼 이번주 교회에서 만나요 애들도 초등학교반에 들어오고... 참 재민이 반은 내가 담임 선생님이니까 됐네요." "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일요일부터 엄마랑 함께 등록을 했다. 집 2층에서 내려다보면 재민이 선생님 집 마당에 전선들이 많았다. 아저씨가 전기공사 하시는가보다. 운전연습을 하고 와서보니 마당에 작업중이었다. 첫 인사를 했다. 이런저런 얘기끝에 시간나면 나보고 전기공사하는데 일당 드릴테니 도와달라고 한다. 고맙다고 하면서 한번 만나자고 했다. 시간이 많이 나서 따라가기로 했다. 새벽 6시 출발. 차에 전선이며 온갖 물건들을 싣고 거제도로 출발한다. 가계 전기공사는 작아서 안하고 큰 건들만 한다고 한다. 사무실이나 대형 식당들. 천정에 들어가 전기선 가설하고 2~5층까지 홈으로 전선 연결. 팔뚝만큼(?) 두꺼운 전선들을 위에서 끌어 당기면 여간 힘드는게 아니다. 하루 임금 칠만원. 간판쟁이 시절 일당 십오만원씩 받았는데 팔만원. 하긴 내가 전기 기술자가 아니지 않은가? 팔만원도 많이 준거라 알고 있다. 새벽에 한시간 빨리 나가면 만원 더 주었다. 일은 일주일에 3일정도 있다. 일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다고 나보고 배워보란다. 나도 전기는 좀 할 줄 알지만 따라다니며 일당 벌어 어찌 살라고. 기술자가 필요하면 기술자 부르고 내가 필요하면 나를 불렀다. 어느날은 창원에 가서 이틀밤을 자고 온 날도 있었다. 교회를 다니니 술을 안 한단다. 술 한번 마시면 집사람이 어찌나 야단하니까 안 마신다고. 저녁에 내려가더니 캔맥주 두어개 사 온다. 3월도 마지막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봄이 언제 왔는지 아파트 울타리에 나무들이 초록빛을 띠기 시작한다. 어제 아침 6시엔 애들 데리고 동네 한바퀴 돌고 왔는데 오늘은 나가기가 싫다. 오후에 의료보험공단에 해결하러 갔다. 담당자를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밀린 의료보험료가 1백8십만원이란다. 돈도 없고 너무 힘들어 낼 수 없으니 어떻게 해 달라 하였더니 무조건 버터보란다. 년말에 한 번씩 우리 같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회의가 있으니 그때 얘기해 보겠노라고 하신다. 고맙다고하고 나왔다. 정말 기분이 이건 아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순희를 만나지 않았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까? 괜시리 순희에게 화풀이 하는거 같아 미안하다. 누나네 집들이 한다고 며칠동안 난리다. 엄마도 애들도 감기들이 걸려 여기저기서 콜록거리고. 약을 먹어도 낮지 않고 걱정이다. 늦은 밤 누나네서 밥 먹고 올라왔다. 5월1일 남산초등학교 운동회 한다고 한다. 나 어릴 적 운동회는 동네 잔치였다. 동네 어른신들이 나와 함께 뛰고 많은 장사꾼들도 운동장 근처를 차지했다. 시간을 내어 누나랑 구경갔다. 부산으로 내려와 처음 하는 운동회. 그래도 애들이 잘 적응해주어 고마웠다. 어린이날이라고 학교가 쉰단다. 공휴일이라 나가자고 한다. 당연히 아들은 자기 혼자 나가고 누나와 매형과 엄마 모시고 희정이랑 임랑 해수욕장에 갔다. 깔자리를 깔고 둥글게 마주앉아 삼겹살 파티다. 이런곳에 나와서 먹는 한 잔의 소주는 환상적이다. 짭쪼름한 바다 냄새를 맡고,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수평선을 향해 소리쳐본다. 낚시대를 드리우고 먼 바다를 바라본다. 내가 태어난 곳 시골도 바다가 가까이 있었지. 학교 끝나면 대나무 낚시대를 가지고 망둥어 낚시하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이렇게 하루가 저물어간다. 빨리 뭐든지 진도가 나가야 되겠기에 면허시험장부터 알아보았다. 먼저 필기시험. 부산시 남구 UN공원 근처에 있는 " 남부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장 "에 등록했다. 1종은 100점 만점에 70점이 합격이라는데 앉아서 컴퓨터로 테스트해본다. 고작 70점 나오는거 있지.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컴퓨터를 켜고 마음의준비를 한다. 50문제 중 70점 안 나오겠어?하고 마음을 다스리는데 감독이 준비하라는 사인이 들어온다. 시작종과 함께 문제를 푸는데 다 풀고보니 20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한번 더 확인하고 종료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니까 82점 합격이라는 도장이 선명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2009년 5월 4일날 첫 시험에 필기 합격을 했다. 감독 두 분이 웃으며 도장을 찍어준다. 5월19일. 오늘은 희정이 생일이다. 누나가 케익을 사 와서 엄마랑 누나랑 재민이랑 나랑 넷이서 촛불을 켜고 축하해주었다. 앞으로 이 애들을 더욱 사랑스럽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애들로 기르자고 맘 속으로 다짐해본다. 이제 운전을 배울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니 접수 불가. 1종으로 12일날 범어사역 근처 " 현대자동차 운전학원 " 에 등록을 했다. 약 100 여만원. 집에서 약 2 KM. 도보로 30 여분. 버스도 지하철도 타기 어려운 정정쩡한 코스. 무조건 걸어다니기로 했다. 햇볕은 왜그리 강한지 정말 걷는데 더웠다. 그래도 무조건 걸어가서 연습하고 오면서도 걸어오고. 서울에 현수막공장 사장남이 전화가 왔다.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 열관리협회 체육대회 "를 하는데 현수막을 설치한다고 도와달란다. 며칠 후 네온 사장님과 셋이서 내려왔다. 오랜만에 만나 식당에서 한잔씩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운동장 관중석에 현수막과 에드벨룬을 띄우고 설치하고. 하루 한나절정도 소요된 거 같다. 체육대회가 끝나면 철거하면 된다고 했다. 근처 갈비집에서 한잔씩하며 지나온 얘기들로 꽃을 피웠다. 체육대회 하는날 시간이 남아 함께 태종대를 가 보자고 한다. 5월달 날씨에 바람이 아주 많이 불었다. 태종대 계단을 내려가는데 얼마나 바람이 부는지 몸을 가누지 못 할 정도였다. 덩치가 큰 친구도 바람에 몸이 밀릴 정도였으니. 다음날 현수막을 철거하고 집에까지 바레다주어 헤어졌다. 5월 23일 첫 시험에 불합격. 6월 5일에 불합격. 6월13일날 85점 합격을 했다. 이제 도로주행만 남았다. 접수를 할려고보니 이번에도 접수불가. 미리 접수한 사람들이 많아 한 달이상 기다리란다. 난 급해 죽겠는데. 여기저기 전화해도 당장에 접수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서면 산 꼭데기에 있는 학원에 접수. 서면로터리에서 기다리니 통근차량이 왔다. 접수를하고 다음날 전철로 출근. 화물차를 타고 급경사진 내리막 길을 한참 내려가니 여기가 연습 코스란다. 아파트 지으려는 빈 터를 돌아 2차선 시장길을 돌고 개천을 돌고. 그래도 이 학원 차량은 새차에다 그래도 깨끗하다. 더워도 에어콘은 틀 수 있으니까. 속도를 내어 달려보지만 내 맘대로 되지를 않는다. 15시간 도로주행 연습하고 시험을 봤다. 당황하니 자꾸 잊어버려 첫 횡단보도에서 2단으로 기어 안 내려 5점 마이너스. 그리고 첫 도로주행 시험에 79점으로 합격. 2009년 7월 2일 운전면허 1종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매형과 누나와 나랑 계획을 짠다. 하루가 급하게 무엇이든 해야겠기에. 애들은 둘이서 학교에 잘 다니고. 엄마도 건강하시니 모두 기분이 좋다. 건강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하니 계단을 내려가서 수퍼에 가시는 것도 어렵다. 차는 어떤걸로 살까? 과일 장사는 어느 지역 어데에서 할까? 7월5일 일요일 시간을 내어 셋이서 중고매매센터에 갔다. 가격대비 차량노후에서부터 여러가지가 있었다. 매형은 새차를 사자고 하고 누나는 내가 초보니까 우선 돈도 그렇고 하니 적당한 걸로 중고. 젊은 판매사원이 화물 1톤 까스차량을 얘기한다. 1999년식 300만원에 가져가라고. 그러면서 운전사가 함께 타고 동네 한바퀴를 돌아봤다. 차 소리도 괜찮은 거 같고. 무엇에 홀렸나 모두 오케이하고 계약금 걸고 사버렸다. 니제 내 이름으로 차량이 인도 되었다. 15년 전 서울에서 화물차 새걸로 사서 동생이 몰고 다니던 기억. 내 이름으로 두번째 차를 샀다. 집으로 가져가는게 문제였다. 부산시 사상구 엄궁동에서 두실 우리집까지 약 25 KM. 8월의 뜨거운 태양이 온 대지를 비춘다. 힘겹게 흙을 한 포 한 포 담아다 가꾸어 놓은 화분들이 열매를 맺었다. 고추며 빨강 방울 토마토며 노란 파프리카가 익어간다. 휴가라고 모든 가족이 만났다. 서울 누나네며 순천 지연이까지. 좁은 마당에 불판을 놓고 옆에 고추를 따서 삼겹살 파티를 한다. 한 잔 두 잔 취기가 올라와 매형의 노랫가락이 2층 마당을 울린다.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시간들인가. 가진거 풍족하지 않아도 이렇게 이름답게 사는 우리 가족들을보면 가슴뭉클한 무엇인가 올라온다. " 우리 가족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