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불꽃을 태우리라
희영이는 핸드폰의 울림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찾아든다.
시간을 보니 아직 오전의 이른 시간이다.
“누구지?”
번호를 보니 생소한 번호다.
의아해 하면서 핸드폰을 열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희영이?”
“누구?............”
“내 목소리 잊었소?”
“...............”
기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기억을 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글쎄요?
실례하지만 누구?........
아............“
희영의 심정은 심하게 박동을 시작한다.
“희영!
나...........잊었소?
재민이요.“
“.................”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아니, 말을 할 수가 없다.
어찌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있을 것인가?
항상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불쑥 불쑥 고개를 내미는 사람!
“정말......당신 맞아요?”
“그렇소!
내가 당신을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시오?“
“..............”
“아직도 나를 잊지 않았지?”
“..............보고 싶어!”
희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되어 나온다.
“그렇소!
나도 당신이 죽을 만큼 보고 싶소!
허나, 오늘은 내가 올라갈 수가 없구려!
시간을 만들어 서울 가서 내 다시 전화를 하리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에요?”
“여기 좀 멀리 있소. 마산에.....”
“...........너무 보고 싶어!”
“당신의 모습이 얼마나 변했을지.........
우리 한 십 오년 넘었지?“
“그래요!
그 오랜 세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정말?
날 생각하고 있었소?“
“............한순간도 잊을 수가 없었어요.”
“내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연락하리다.
만나기 전에 전화 통화를 자주 하자고.
내 번호 확인하고 잊지 않도록 해요.“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더 했는지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 나서 희영은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다.
너무나 그리운 사람이었다.
전 남편과의 사별이후 온전히 그 사람의 여자이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가?
그러나 자신의 욕심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전 남편과 사랑보다는 중매로 결혼을 했다.
짧은 세월이었지만 전 남편의 사랑은 매우 극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식도 없이 전 남편은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하고 혼자만 덩그라니 남겨져 있을 때
다가와 자신의 모든 슬픔을 달래주던 사람!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준 사람!
그러나 욕심을 낼 수 없는 남의 남자였다.
이미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러나 모든 슬픔과 고통을 감싸 안아주면서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 여자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
희영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다.
마치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없이 많은 꿈속에서 그를 만나오고 그의 품속에 안겼던 희영이다.
“아!
내가 일을 하면서 꿈을 꾸었나?“
희영은 핸드폰을 열어 통화버튼을 누른다.
있었다.
그 사람의 번호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다시 통화버튼을 누른다.
두어 번의 발신음이 떨어지자 다시 그 사람의 음성이 들린다.
“희영!”
“아!
재민씨!
마치 꿈속에서 당신의 음성을 들은 것 같아서.......“
“그래!
나도 지금 막 다시 확인을 하려던 참이었지.“
“정말 꿈은 아니지요?
당신이 맞지요?“
“응!
당신을 찾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오?
한 번만이라도 꼭 한 번만이라도 당신을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소!“
“아!..........
우리가 이렇게 아직도 서로 사랑하는데......“
“희영!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가 빠른 시일 내로 당신을 만나러 갈 것이오.“
“...............”
희영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린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기쁨의 눈물인지 회한의 눈물인지........
희영은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겨우 집안 청소만을 끝냈을 뿐이다.
며칠 동안 미루었던 빨래가 제법 쌓여 있었지만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희영은 갑자기 몸을 일으켜 장롱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던 하얀 봉투를 꺼낸다.
재민의 모습이 있었다.
재혼을 해서 한 번도 꺼내 보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다.
잊으려 애를 쓰면서...........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
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가끔은 가슴이 아프도록 보고 싶었던 사람!
눈이 아리도록 떠오르는 그리움!
봄이 오면
봄철만 되면 함박 피어나는 하얀 배꽃!
그것은 바로 그의 모습이다.
그 하얀 배꽃 속에 그가 있었다.
진한 그리움을 안고 그가 함박웃음을 짓고 손짓을 한다.
“아!
재민.............“
당장이라도 마산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고 싶다.
그 옛날처럼........
희영은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저녁을 준비한다.
남편이 귀가할 시간이 되어가는 것이었다.
단 둘만의 생활이다.
남편의 자식들은 이미 모두 결혼을 해서 제 각기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꾸리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남편과 단 둘만의 생활이었다.
재혼을 한지도 벌써 십여 년이 되어간다.
남편은 희영을 매우 아껴주며 사랑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희영은 무언가 항상 채우지 못한 빈 가슴을 안고 살아간다.
아무리 남편의 사랑이 진하다 해도 희영은 언제나 자신의 가슴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 든다.
빨래는 그대로 방치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기에.........
희영은 빨래 감을 눈에 보이지 않도록 한꺼번에 세탁기 속에 넣어버린다.
다시 떠오르는 재민의 모습!
“아...........”
희영은 거실 소파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다시 핸드폰의 작은 울림이 전해온다.
그에게 다시 문자가 들어온다.
“희영!
그립다. 보고 싶다. 내일 올라갈게!“
“아...........”
심한 떨림으로 희영의 어깨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희영의 어깨에 남편의 손이 얹어진다.
“아!.......
당신이 언제?“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소?
어디 아파?“
희영의 모습을 본 남편은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아니......
아프지 않아요!“
“당신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는데......
어서 병원에 갑시다!“
“아.....아니예요!
이제 차츰 가라앉고 있어요.“
“어디가 아파서 그래? 응?
여보!“
남편은 희영의 모습에서 애가 타들어간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어서 샤워를 하세요.
저녁 준비 다 되었어요.“
희영은 남편을 피해서 주방으로 들어간다.
희영은 남편이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는 거실로 나온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남편과 재혼한 것은 꼭 십 년째이다.
아이들을 다섯이나 데리고 사별을 한 홀아비였다.
희영에게 아이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과 희영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삼 년여 동안을 따라다니며 애타게 구혼을 했던 사람이었다.
희영은 재민을 잊을 수가 있는 길이라면 재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의 남편은 받아 들였다.
재민은 전 남편의 친구다.
전 남편과 재민은 둘도 없는 막역한 친구사이다.
전 남편과 결혼 날짜를 잡고 나서 전 남편은 자신의 친구들 모임에 희영을 데리고 나가기를 좋아했었다.
재민과 둘도 없는 전 남편은 재민과 자주 만나고 어울리면서 세 사람은 자연히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재민은 첫눈에 희영에게 반해버린 희영에게 달려가는 자신의 마음을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희영에게 빠져들곤 하는 자신을 억제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때 재민 또한 결혼하기 전이었다.
희영이 결혼을 하고 신혼생활에 단꿈에 빠져 있을 때 재민은 희영에게 향하는 마음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맞선을 보러 다니곤 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여자를 만나도 자꾸만 희영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이었다.
희영은 그런 재민의 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재민씨!
이번에는 꼭 성사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번번이 딱지를 맞곤 해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모두 재민씨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뭐 내 놓고 보여줄 것이 있는 사람인가요?
아마 보나마나 이번에도 딱지를 맞을 겁니다.“
재민은 선을 보러 나가면서도 희영을 생각하고 있었다.
희영은 그런 재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왔다.
그러나 희영은 시댁에 대해서도 남편에 대해서도 헌신적으로 생활을 한다.
재민이 드러내 놓고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남편과 자주 어울려 자신의 집으로 오는 재민을 볼 때마다 그가 전해오는 느낌만으로도 그의 마음을 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삼년이 지나도 희영은 임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었지만 희영은 임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재민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재민은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신혼여행을 가서 재민은 아내라는 여자를 안을 수 없었다.
희영의 생각으로 다른 여자와 첫날밤을 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희영은 재민의 아내를 볼 때마다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심성이 곱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그들은 넷이서 시간만 나면 자주 어울리곤 하였다.
그리고 재민은 딸과 아들을 얻는다.
자신의 삶과는 달리 희영은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희영을 바라보는 재민의 마음은 안타깝고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낀다.
희영이 결혼 십여 년이 채 못 되어서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은 세상을 뜨고 만다.
혼자 남겨진 희영의 곁에는 자연스럽게 재민이 머문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한 몸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 이혼할까?”
한바탕의 뜨거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재민은 희영의 알몸을 다시 끌어안는다.
“안 돼요!
당신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요?“
“그야 당신이 키우면 안 되겠어?”
“그러지 말아요!
우리는 지금 죄를 짓고 있는 거예요.
더구나 지선이 엄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당신도 알잖아요?
또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도 잘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돼요.“
“그래도 당신을 이렇게 혼자 있게 놔 둘 수 없어!”
“재민씨!
난 지금의 이 상태로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어요.
이렇게 당신이 가끔씩만 찾아준다 해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어요.“
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나 희영은 더 이상 재민의 가정을 파탄 나게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재민의 아내는 너무나 착하고 심성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당신이 있어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고 큰 충격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되었어요.
이제는 우리 여기서 우리의 관계를 끝내야 해요.“
“안 돼!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어!
당신을 놓치고 내가 어떻게 살 수 있겠어?“
그러나 희영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재민의 곁을 떠났다.
더 이상 재민의 곁에 머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희영은 재혼을 했다.
그러면 재민에 대한 그리움은 잊어져 갈 것으로 믿었다.
아니, 재민을 잊고 싶었다.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서 희영은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서 작은 소리라도 놓치지 않으려 온 신경을 핸드폰의 울림에 신경을 쓴다.
오전 시간이 조금 지나서 재민의 전화가 온다.
“나 지금 당신에게 가는 길이오.
예전에 우리가 만나던 곳으로 정오까지 나올 수 있지?“
“네!”
희영은 외출 준비를 서두른다.
아무리 화장을 한다고 해도 자꾸만 자신의 얼굴에 불만이 생긴다.
이제는 너무나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이었다.
십오 년의 세월이 자신은 중늙은이로 변화시켜 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재민을 만나기가 두려워진다.
“어떻게 하지?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실망을 할 텐데.........“
그러나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
희영은 급하게 집을 나선다.
아!
그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가 눈에 보인다.
재민 역시 희영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희영에게 다가온다.
“보고 싶었어!”
재민은 희영을 끌어안는다.
예전처럼 그의 품안은 참으로 넓고도 포근하다.
둘은 그렇게 잠시 서로를 확인한다.
그리고 재민은 희영의 손을 이끌고 다시 밖으로 나와 자신의 승용차에 희영을 태운다.
그리고 그가 차를 멈춘 것은 한강 고수분지였다.
“희영!
정말 너무 많이 보고 싶었어!“
“재민씨!
나도.........가슴이 아파오도록 당신이 그리웠어!“
“왜 그랬어?
왜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났어?
내가 얼마나 당신을 찾아 헤매었는지 알아?“
“미안해요!
나도 너무나 힘들었어요.
전화 한통화면 당신에게 닿는다는 것을 알면서........“
“기다렸어!
너무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렸어!“
“헌데, 내 핸드폰을 어떻게 알았어요?”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마산에서 당신 막내 동생을 만났어!
바로 어제........
무작정 당신의 소식을 물어봤지. 그리고 알려달라고 했어.“
“그랬군요.
요즘 막내가 마산에 내려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어요.
헌데, 그렇게 만나지기도 하는군요.“
그들은 차에서 내려 강가에 서서 강물을 바라본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쓸쓸한 강가였다.
“잘 살고 있어?
당신이 재혼했다는 것도 어제야 알았어!“
“네!
참으로 좋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고요.
당신은?“
“나야 잘 살고 있지!”
“아이들 잘 컸겠죠?”
“그럼, 집사람이 워낙에 말없이 조용하고 착한 사람이니까!“
“그럴 거예요.
너무 아름답고 좋은 사람이니까!“
재민은 희영을 다시 끌어안는다.
그리고 희영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다.
두 사람은 뜨거운 입맞춤을 나눈다.
아니, 그들의 혀는 서로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 뜨겁고도 진한 키스를 한다.
“아!
재민씨!“
“희영!
사랑해!
온 세상이 끝난다 해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할 수가 없어!
당신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재민씨!
잊을 수가 없어요.
당신을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었어요.
가슴이 아프도록 당신이 그립고 보고 싶었어요.“
“고마워!
이렇게 만날 수 있게 살아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나도 당신에게 너무 고마워요.
변하지 않아서........
그리고 아직도 나를 사랑해 줘서..........“
그들은 다시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서로가 서로의 체온을 확인한다.
그렇게 그들은 한 몸을 이루었던 사이었다.
“당신 가슴이 아직도 넓고 포근해요.
이 느낌!
그리고 당신의 이 냄새!
너무 그리웠어요.“
“희영!
아직도 나에 대한 체취를 기억해?“
“그럼요!
내 두 눈이 감긴다 해도.......
내 두 코를 누가 막는다 해도 당신의 느낌과 체취를 잊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오랫동안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무엇으로 그동안의 세월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으로 수많은 그리움의 세월을 대변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때 어떤 식으로도 난 이혼을 했어야만 했어!
당신을 그렇게 떠나도록 만들지 말았어야만 했어!“
”아니에요!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에요.
내가 갈 길과 당신이 가야할 길이 처음부터 달랐어요.
우린 서로 함께 갈 수없는 그런 운명이었어요.“
“아!
희영!
우린 어떻게 해야 하니?“
재민은 머리를 감싸 자신의 괴로움을 나타낸다.
“재민씨!
우리 이대로 그냥 각자의 길을 가면 되는 거예요.
가끔, 아주 가끔 이렇게 얼굴을 보기만 하면 나머지 세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아니,
또 다시 당신을 보면서 그리움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더 고통스러울 뿐이야!
우리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과 나 어디라도 숨어 버리면 안 될까?“
“이제 우리는 다 살아온 사람들이에요.
다 살아온 우리의 인생 때문에 당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요?
당신 아내는 그렇다 치고라도 아이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면 어떻게 해요?“
“............................”
“이렇게 당신은 만난 것만으로도 남은 세월 힘이 될 것만 같아요.
때론 너무나 보고파서 가슴에 심한 통증이 밀려오곤 했었어요.
단 한 번만이라도 볼 수만 있다면 내 목숨까지라도 내 놓고 싶은 생각이었거든요.
허나 이제 그 어떤 소원도 그리움도 없을 것만 같아요.“
“희영!
우리 가끔 만나면 안 될까?
아니, 가끔은 서로 만나서 얼굴이라도 보자!“
“...................”
“당신 남편에게 죄스럽겠지?”
“그렇겠지요!
나를 믿고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죄스럽겠지요.
허지만, 그것보다도 또 다시 지선이 엄마에게 죄를 짓는다는 생각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요.
너무나 좋은 사람이고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인데..........“
“그래!
사실 나도 그것이 더 두렵고 미안한 마음이야!
허지만 지금까지 난 집사람을 제대로 사랑한다는 마음을 가져 보지 못했어!
당신이 내 마음속에 들어 차 있는 한은 아무리 내 아내라 할지라도 내 가슴에 들어올 자리가 없거든!“
희영은 재민을 바라본다.
참으로 중후한 멋이 있게 변모한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은 모습이다.
“재민씨!
지금 마산에 살고 있는 거예요?“
“아니!
마산에 정리할 일이 있어서.........“
재민은 육 개월 뒤에 카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어 있었다.
재민의 딸과 아들은 벌써 육칠 년 전부터 카나다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사업을 정리해서 카나다로 들어가기로 계획을 세우고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카나다와 이곳을 오가면서 바쁘게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처럼 남편을 기러기 아빠로 남겨둘 수 없는 그의 아내였다.
그렇다고 아이들만 남겨 놓고 마음 편히 남편 곁에만 있을 수도 없는 성격이다.
더구나 그의 친정가족 모두가 카다나에 이민을 가서 성공을 하고 보란 듯이 멋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육 개월 후면 자신 또한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이제 희영을 다시 만난 것이다.
재민은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희영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재민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도 못한다.
그것은 지금 희영이 가정이 있는 것을 알고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희영!
우리 어디 가서 점심이라도 먹을까?
그리고 이제 이곳은 너무 추워서 어디 따뜻한 곳이라도 들어가자!“
재민은 강가를 벗어나 희영을 데리고 조용한 일식집으로 들어간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후라서 그런지 식당 안은 조용했다.
그들은 간단한 점심을 마치고 다시 조용한 찻집에 자리를 잡는다.
아무리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지만 그들이 결정해야 할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둘은 그렇게 서로 헤어져 간다.
각자의 삶속으로...........
희영은 잠이 든 남편의 모습을 내려다본다.
이 남자의 아내로 살면서 여자로서의 행복은 포기한지 오래 되었다.
희영이 오기 전부터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 만나서도 남자로서의 별다른 매력이나 정력은 없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처음 이삼 년간은 한 달에 한 두 번은 남자로서 부부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워낙 오래된 당뇨병으로 인해서 남성으로서의 기능은 점차로 약화되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미안한 마음으로 온갖 노력을 다해 보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희영은 그런 남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서 남편의 요구들을 거절하곤 했었다.
“여보!
그렇게 신경을 쓰지 마세요.
이제 당신이나 나는 육체적인 쾌락보다는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요?“
“그래도 당신은 아직 한창 나이인데 내가 너무나 미안하지!”
“그럴 것 없어요.
그냥 이렇게 당신 곁에서 당신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해요.“
희영은 그렇게 남편의 마음을 다독이면서 안심을 시킨다.
얼마동안은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아내를 애무하던 남편이 그나마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이 벌써 이년이 넘은 세월이다.
그동안 희영은 남편의 손길이 전혀 자신의 몸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나 희영 자신도 그것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제 남편은 그저 희영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안심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희영 또한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여자로서의 기쁨과 기대를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민을 만나고 나서 희영은 자신의 몸이 여자로서 뜨거워져 온다는 것을 느낀다.
아!
단 한 번만이라도 그의 뜨거운 품안에 안기고 싶다는 강한 유혹이 희영을 괴롭힌다.
그의 육체가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다.
희영은 한 동안 재민의 전화조차 회피한다.
더 이상 그를 만나면 자신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어차피 그를 또 다시 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와의 인연 또한 더 이상 만들어 나갈 수는 없었다.
그저 한번 만나 본 것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폰은 계속 울어댄다.
울지 마!
그만.........이제 그만!
그러나 재민은 희영의 핸드폰을 계속 울리고 있었다.
한참만에야 희영을 핸드폰을 열어 전화를 받는다.
“희영!
나를 피하고 있는 거요?“
“................그러고 싶어요!
당신을 만나면 나 자신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서.......“
“그러지 말아요!
당신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만 하겠소?“
“우리 더 이상 모른 척 살아가요.”
“어떻게?
당신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오?“
“...................”
“지금 만납시다!”
“아니요!
이제 더 이상은 우린 만나서는 안 돼요.
그것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는 길이에요.
어차피 당신과 난 이번 생애에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들이에요.
억지로 자꾸 인연을 만들려고 하지 말아요.“
“우리 인연은 그 옛날 이미 시작된 것이오.
이제 우리가 외면을 한다고 당신 가슴 속에나 내 가슴 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는 말이오?
당신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소!“
“어떤 말이든 듣지 않겠어요.
그리고 이제 당신 전화도 받지 않겠어요.“
희영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밧데리를 빼 놓는다.
그러나 희영은 제대로 생활을 해 나갈 수가 없었다.
“여보!
무슨 일이 있소?“
남편의 물음에 희영은 흠찟 놀란다.
“아니요!
일은 무슨 일이 있겠어요?“
“요즘 당신 가만히 보니 잠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 말해 주면 안 되겠소?”
“그런 일 없어요.
아마 봄이 되니까 나른해져서 그런 모양이에요.“
“그러지 말고 어디 바람이라도 쐬고 오지 그래!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아이들 집이라도 한 바퀴 순회를 하든지 아님 어디 여행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마음대로 여행이라도 하든지 하구려!“
“...........생각해 볼게요!”
희영은 여행을 생각해 본다.
어디라도 조용한 곳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희영은 무작정 집을 나선다.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어디라고 작정한 것도 없이 운전을 한다.
고속도로를 올라서자 다시 핸드폰이 울린다.
남편의 전화였다.
잘 다녀오라는 남편의 음성이다.
그리고 다시 울리는 핸드폰이다.
재민이다.
“어디야?”
“여기가 어딘지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무작정 집을 나왔어요.
어디론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요.“
“그러지 말고 어딘지 알려주오.”
“...................”
“희영!
이곳이 지금 어딘지 알아?
당신과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내 친구의 별장이오.
우리들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오늘부터 당분간 이곳을 빌렸소.
이곳으로 와! 응?
당신이 올 때까지 난 이곳에서 당신을 기다릴 것이오.
열흘 후면 난 이곳을 아주 떠나오.
이미 내 가족은 모두 카나다로 보내고 이제 나만 남았소.
마지막으로 당신을 보고 나서 떠나고 싶소.“
“..............................”
그리고 전화는 끊어진다.
희영은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다.
그가 떠나고 나면 이제는 영원한 이별인 것이다.
희영은 가까운 곳에 보이는 호텔에 들어간다.
그리고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재민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마음을 억제한다.
“가면 절대 안 돼!”
그러나 새벽이 되자 희영은 자신도 모르게 차를 그쪽으로 몰고 간다.
재민 또한 밤새 잠을 자지도 못하고 희영을 기다린다.
틀림없이 올 것이라고 재민은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가족들을 위한 모든 준비는 완벽하게 해 놓았다.
자신이 없어도 가족들은 고생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재민은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씻을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자신으로서도 어찌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밖의 동정에 온 신경을 쓴다.
아침이 되어오는 시간에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재민은 별장의 현관문을 열고 나선다.
희영이 차에서 내린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 끌어안고 오랜 시간을 그렇게 서 있었다.
“희영아!”
“재민씨!”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들은 서로 알몸이 되어간다.
그리고 서서히 두 사람의 입에서는 짙은 신음소리들이 새어 나온다.
“아!
사랑해요!“
희영은 자신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재민의 손길에 따라서 여자로서 포기했던 자신의 몸이 살아서 꿈틀댄다.
뜨겁고 커다란 불덩어리가 희영의 아랫도리를 뚫고 희영의 몸 속 깊숙이 파고든다.
“아!
재민씨!“
희영은 여자로서의 희열의 들뜬다.
그들이 토해내는 뜨거운 열기는 방안의 온도를 더해간다.
그렇게 한동안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던 그들은 갑자기 모든 동작을 중지한다.
잠시 가쁜 숨을 고르던 재민은 희영의 배위에서 미끄러지듯 떨어져 희영의 옆에 눕는다.
“아!
너무나 좋다.
당신은 어땠어?“
“이제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어요.”
희영은 재민의 품속을 파고든다.
“우리 이곳에서 오일 동안만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이렇게 함께 지내자.
오직 당신과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
“네!
나도 그러고 싶어요.
이렇게 당신과의 시간을 아무것에도 방해받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희영은 두 사람만을 위한 식탁을 준비하고 그들은 마주 보며 행복한 모습으로 식사를 즐기곤 하면서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음악을 틀어놓고 와인을 마시면서 서로 꼭 안고서 음악을 감상한다.
“재민씨!
나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요?“
“그래!
이 시간이 영원히 여기에서 멈추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당신과 단 둘이 있으니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도 없어!“
“그래요!
이대로 그냥 이대로 세상이 끝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영아!
우리 이대로 영원히 함께 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
“희영아!
난 이제 절대로 당신을 놓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우리 이제 서로 떨어져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
처음 당신 소식을 듣고는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했었지.
허지만 당신을 만나고 나서 견딜 수 없이 당신에게로 향하는 내 마음을 억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당신을 더 이상 놓치지 않기로 결심했어!“
희영은 재민의 품을 밀어내고 재민을 바라본다.
“어떻게?
그런 방법이 어디 있어요?“
“희영아!
이곳이 우리에게는 마지막 장소야!
우리의 추억이 쌓여 있는 이곳을 난 마지막 장소로 선택했다.
물론 당신의 의견을 묻지 않았지만 당신도 내 생각하고 같을 것으로 믿어!“
“............................”
희영은 재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당신 가족들은 어떻게 하고?............”
“내 아내는 나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어!
이미 한 달 전에 카나다로 떠나고 지금 이곳에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그곳으로 보내고 이제는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이 해 놓았지!
물론 당신과 내 마지막을 화장해 달라는 유서와 경비정도만 남겨 놓았지만...........“
“정말 나를 위해서 그럴 수 있어요?”
“당신과 나를 위해서지!”
희영은 더욱 재민의 품속을 파고든다.
“사랑해요!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해요!“
“당신 없이는 이제 숨을 쉰다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
우리 이대로 남아 있는 시간을 충실히 그리고 행복하게 보내자.“
그들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서로를 확인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즐긴다.
재민은 너무나 완벽하게 모든 것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지막 모든 열정을 불사르듯이 그들은 육체의 향연을 끝없이 펼쳐간다.
불꽃은 재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 활활 타오른다.
한 줌의 재도 남기지 않으려는 그들의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재민은 준비해 가지고 온 옷을 희영에게 내 준다.
“당신에게 맞을지 모르지만 오늘을 위해서 준비했다.”
재민이 준비한 희영의 옷은 하얀 웨딩드레스였다.
“아!
너무 아름다워요!“
“당신에게 이런 옷을 입혀 영원히 내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은 심정이었어!
우리 이렇게 나란히 아주 정답게 다른 곳으로 손잡고 가서 영원히 살자!“
“재민씨!
난 너무 행복해요!
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사랑하는 당신하고 함께 떠날 수 있다고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지금 세상에서 나처럼 행복한 여자는 없을 거예요.“
그들은 모든 준비를 서두르지 않고 진행한다.
희영은 그동안 사용했던 별장의 모든 물건들을 깨끗하게 닦아서 제자리에 놓고 모든 것들을 말끔하게 정리를 한다.
잠시 남편에게 무언가를 쓸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쓸 수가 없을 것만 같다.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대로 그냥 떠나는 것이 그를 위한 마지막 배려인 듯싶었다.
저녁때가 되어 그들은 빨간 색을 띄우고 있는 레드와인을 나누어 마신다.
그리고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로 성장한 그들을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꼭 끌어안는다.
약기운이 퍼진다고 느끼자 재민은 전화를 들어 번호를 누른다.
전화의 발신음이 떨어진다.
“부탁하네!
내일 아침에 와 주었으면 좋겠네!“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재민의 친구가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행복한 모습을 하고 둘만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잠시 단편 하나를 써 보았습니다.
심심하실 때 그냥 읽어주세요. ㅎㅎ
선생님 쉬시지않고 단편을 올리셨네요 선생님 머리속에는 모궁무진한 얘기가 들어있나봐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럼 또 좋은글 구상 하시자면 푹 쉬셔야죠
아..진실한 사랑 부부의 인연은 아니였군요...다음세상을 선택한 가슴아픈 사랑 이네요.....
짜~안 하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읍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리워 하는 마음만 안고 살아가기는 너무 힘들었을가요?
감사..
즐 독 합니다
즐감요
다시봐도 감동 입니다....^^♡
고운글 감사합니다.
즐감요~~~ ! 감사합니다.
이런 사랑도 있군요~감사히 잘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