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프로그램 제작사와 자동차 메이커는 ‘PPL(제품을 협찬하면서 홍보하는 간접 광고)’로 통한다. PPL은 자동차 메이커에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 됐다. CF는 물론 드라마, 영화, 연예 프로그램 등에는 현재 판매되는 대부분의 신차가 PPL에 나올 정도다.
PPL은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나 자동차업체들이 신차 첫선 무대로 활용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PPL은 자동차 메이커와 TV 프로그램 제작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활성화되고 있는 ’스타 마케팅’의 대표주자가 됐다.
자동차업체는 TV 광고나 대규모 이벤트보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PPL을 통해 인지도를 쌓아 간다. 스타 배우가 출연하거나 드라마가 인기를 끌거나, 신인 배우가 주목받을 경우 해당 차는 ’○○○의 차’라는 이름으로 포털 인기 검색어에 올라 CF를 능가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김태희와 비 열애 사건처럼 유명인에게 무료로 제공해준 차가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자동차업체들은 모델로 쓴 배우나 유명인들에게 해당 차나 자사 차량을 무료로 대여해주는 일이 많다. 유명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각종 연예 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노출되면서 해당 차를 직간접적으로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사도 자동차업체에서 제작비를 지원받거나 차량을 제공받아 비용을 아낄 수 있기에 PPL에 열성이다.
그렇다고 PPL이 항상 고마운 존재는 아니다.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지 못하거나 차를 제공받은 스타가 문제를 일으키면 덩달아 욕을 먹는다. 돈은 돈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는 설상가상의 상황이 발생한다.
올해 PPL 시청률 때문에 울다가 웃은 자동차 메이커는 폭스바겐이다. 폭스바겐은 KBS 수목드라마 ‘비밀’(9월25일~11월14일)에 페이톤, CC R라인, 골프 카브리올레, 투아렉 등 거의 모든 라인업을 대거 지원했다.
드라마 비밀에 등장한 폭스바겐 페이톤
드라마 내에서 재벌 총수의 후계자로 등장하는 지성은 그의 재력을 과시하듯 골프 카브리올레, CC R-Line, 파사트, 투아렉, 페이톤 등 폭스바겐의 다양한 차종을 운전했다.
조민혁(지성 분)의 정략결혼 상대로 등장하는 이다희는 골프 카브리올레, 검사로 등장하는 배수빈은 투아렉을 타고 나왔다.
드라마 비밀에 등장한 골프 카브리올레
첫 방송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은 전국 기준 5.3%, 수도권 5.5%에 불과했다. 캐스팅이 화려하지 않은데다 작가 이름도 내세울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방송 5회 만에 시청률 1위에 오른 뒤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전국 18.9%, 수도권 20.6%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다. KBS나 폭스바겐 모두에게 ‘기특한’ 드라마가 된 셈이다.
이탈리안 하이퍼포먼스 자동차 브랜드인 마세라티는 ‘폭스바겐 비밀’ 때문에 가슴을 졸였다가 비밀이 종영한 뒤 비로소 미소 짓고 있다. 마세라티는 SBS 수목드라마 `상속자들`(10월9일~)을 협찬하고 있다.
제국 그룹의 상속자이자 주인공인 김탄(이민호 분)은 올뉴 콰트로포르테와 그란카브리오 스포츠, 김탄의 이복형제인 김원(최진혁 분)은 그란투리스모 스포츠, 호텔 제우스의 상속자 최영도(김우빈)는 올뉴 콰트로포르테를 운전한다. 상속자들은 파리의 연인, 온에어,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등 히트작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여서 방영되기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경쟁작인 비밀에 눌려 수목극 정상 자리에 오르지 못하다가 비밀이 종영되자마자 시청률 20%를 넘어섰다. 20일 시청률은 전국 기준 20.6%다.
국산차 메이커 중에서는 기아자동차가 PPL로 재미 좀 봤다. 기아차는 단순히 신차 홍보를 넘어 신차 출시 전 붐을 조성하는 역할로까지 PPL의 범위를 넓혔다. 기아차는 2009년 이병헌과 김태희가 출연한 첩보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K7을 먼저 선보였다. 재미를 본 기아차는 2010년에는 ’신데렐라 언니’에서 스포티지R를, 지난해에는 ’패션왕’에서 K9을 출시 전 사전 공개했다.
올해에는 아이리스 효과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2월부터 방영된 ’아이리스2’에 뉴 K7을 등장시켰다. 또 단순 PPL 범위를 벗어나 온ㆍ오프라인 광고 및 언론 초청 보도발표회 공동 쇼케이스 진행 등 프로모션도 함께했다.
드라마 아이리스2 기아차 The New K7
아이리스2에는 장혁, 이다해, 이범수 등 내노라 하는 스타들이 총출동했지만 전작보다 긴장감이 떨어지고 PPL 노출이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으며 마지막회에 전국 기준 시청률 10.4%로 간신히 두 자리 수 시청률로 종영했다. 기아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뉴 K7 판매실적 개선에는 도움이 됐다.
현대차도 올 상반기 최대 화제작으로 평가받았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주인공 조인성의 차로 제네시스 프라다를,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서 PYL 차량을 중점적으로 노출시켰다. 프로그램에는 싼타페 블루링크 원격 시동, 원격 원도 조절 구동 장면 등 현대차 기술력을 선보이는 내용이 들어가기도 했다.
’1박2일’ 최초로 PPL을 진행한 현대차는 여행 컨셉트에 맞게 PYL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중점적으로 내보냈다. 지난해 말 방영된 ’벨로스터 레이스 특집’은 48분 동안 벨로스터 터보가 노출됐고, 네이버 검색어가 22계단 상승하는 등 눈에 보이는 효과를 불러왔다.
현대·기아차는 국내에도 마니아가 많은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PPL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미국 좀비 드라마 ’워킹데드’ 시리즈에는 투싼 ix가 주인공의 차로 등장했다. “투싼ix가 튼튼하다”는 대사까지 나왔다.
대박 수입차 PPL 사례를 얘기할 때 BMW와 벤츠도 빼놓을 수 없다. BMW는 2010년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PPL의 ‘고진감래’를 맛봤다.
BMW는 다양한 차종을 갖춘 덕분에 오랫동안 PPL을 수없이 진행했지만 비용 대비 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단맛 쓴맛 다 맛본 BMW는 시크릿가든 PPL을 진행할 때는 작가 등 제작진과 함께 억지로 협찬 차를 노출시키는 방식에서 벗어나 스토리에 스며들게 하는 전략을 치밀하게 구사했다.
주인공을 단지 능력 있고 멋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소극적 소품이 아니라 스토리 전개상 자연스럽게 심리 상태 등을 대변해주면서 차와 주인공을 하나로 엮어주는 동시에 주인공 ’덕’도 볼 수 있는 차종을 결정했다. 폐쇄공포증 환자인 주인공 현빈을 위해 겨울인데도 오픈카인 Z4를 선택한 이유다. BMW는 시크릿가든 이후 ’빈도’보다는 작품과 함께 공생할 수 있는 PPL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벤츠 PPL 효자는 ’신사의 품격’이다.
드라마에서 장동건이 타고 나온 벤츠 ML63 AMG는 ’베티 신드롬’을 일으켰다. 벤츠를 타면 신사의 품격을 갖추게 된다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장동건의 애마, 베티, 벤츠 ML63 등의 검색어는 포털에 자주 노출됐다.
[매경닷컴 최기성 기자]
PPL의 장점
PPL의 문제점
PPL의 문제점 및 개선 방안
PPL은 장점이 강하고 효율적이라는 점에서 가능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이기는 하나, 간접 광고의 측면을 띠고 있다는 점은 고려해 보아야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간접 광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가 강하여 현행 방송법에 따라 방송 프로그램 내에서는 특정 업체에 광고 효과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브랜드의 직접적인 노출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 PPL에서는 브랜드의 직접적인 노출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단지 소비자들이 유추할 만한 정도로 PPL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00년도에 약 8개월 동안 방영된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간접 광고로 인한 제재를 살펴보면, 전체 제재 462건 중 45.9%(202건)가 간접 광고로 제재를 받았다.
이와 같이 PPL이 간접 광고로 분류되어 제재를 받는 이유는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광고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자체에 삽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PPL은 광고로 간주되거나 지칭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만적인 촉진 방법으로 여겨지고 일부 비평가들은 PPL이 식역하 수준의 광고(Subliminal Advertising, 사람의 잠재의식에 남도록 되풀이하는 광고)와 유사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비난한다(Nebenzahl & Secunda). 특히 담배나 주류와 같은 상품이 영화 속에 배치될 경우 청소년들에게 광고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PPL의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게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 영화를 자주 관람하는 사람들은 영화 제작사들이 교묘한 수법으로 배치한 제품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호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제품이 가지고 있는 기능적이고 제품 중심적인 속성들은 무시하게 된다(Gupta & Gould)는 점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이와 같은 비난이 증대되면서 자체적인 노력의 결과, PPL의 주요 기관인 대행사와 영화 제작사가 자율적인 규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1990년 미국 13개 담배회사들은 공식적으로 유료의 PPL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었으며(Colford), 영화 제작사들도 청소년 대상의 흡연 마케팅이라는 인식을 주지 않기 위해 자사의 영화에 특정 브랜드가 부각되는 담배의 배치를 거부하기도 했다(Turcotte).
이미 가상 광고(Virtual Advertising)나 인터랙티브 광고(Interactive Advertising) 등의 실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PPL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매체 환경과 소비자의 변화를 감안할 때 PPL은 분명 매력적인 대안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며, 이것이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접근법에 의한 것이라면 더 효율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제작사와 기업의 이해 관계가 서로 맞물릴 뿐만 아니라 실제로 효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제품 및 브랜드를 소구할 수 있다는 측면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 담당자도 단순히 드라마나 영화를 구입하여 단순 배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효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노출시키고, 나아가 구매로까지 유도할 수 있도록 전략적 접근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즉, PPL을 실시함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PPL의 특성인 간접성을 바탕으로 설득력을 최대화하기 위한 노출 빈도와 강도의 조절, 프로그램 내 등장 인물과 배경과의 조화성, 배치 방법, 그리고 이와 연계되는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관점의 전략 등을 고려하여 실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관련 연구자들도 PPL을 보다 엄격한 연구와 조사 등을 통해 소비자나 시청자 주권 보호뿐 아니라 PPL의 효과적 활용을 위한 전략 연구도 활성화해야 할 시점인 것으로 보인다.
PPL이 간접 광고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보다 윤리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 또한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의 현실을 볼 때 비록 관련 규정이 있다고는 하나 TV 드라마 등에서 특정 브랜드의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겨우 모자이크 처리밖에 할 수 없는 정도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여 소비자 보호는 고사하고 시청자의 시청 권리 마저 보장하지 못하는 딱하고 무책임한 실정이다.
PPL에 대한 애매한 가이드라인보다는 보다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연구와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구체적 규정과 규제 방법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PPL과 관련하여 방송사나 제작자, 기업과의 관련 업무를 중개하는 대행사 역시 보다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비용을 산출하여 거래의 관행도 더욱 합리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