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언어와 행동을 정지-생각-선택-STC(Stop-Think-Choose)의 방식
여기 두 척의 돛단배가 있다. 똑같은 방향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두 돛단배가 가고 있는 방향이 서로 다르다. 그것은 두 돛단배의 “선택”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환경(바람)에서도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금만 변하기를 원한다면 행동을 바꾸어라. 획기적으로 변하기를 원한다면 패러다임(paradigm)을 바꾸어라.” 패러다임, 즉 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하는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얻은 결과가 달라진다. 그 결과는 다시 패러다임에 영향을 준다. 어떤 “자극”이 있을 때 인간이 일으키는 “반응”의 양태는 2가지 모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대응적인 반응”으로, 조건반사적인 것이고,
2. 자극에 대하여 선택을 한 뒤에 행동하는 “주도적인 반응”
(1) 대응적인 반응 : (자극) → (반응)
(2) 주도적인 반응 : (자극) → (선택) → (반응)
“대응적인 반응”은, 상대방이 좋게 나오면 나도 좋게 나오고, 상대방이 나쁘게 나오면 나도 나쁘게 나오는 것으로, 상대방의 노예와 같은 반응이고 상대방 탓만을 하는 것이다. “주도적인 반응”은 자극이 있을 때 “선택의 자유”를 행사한 뒤에 반응을 하는 것으로 행복도 고통도 선택이 가능하며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고 남 탓이 아닌 내 탓이라는 생각이다. “나의 동의 없이는 누구도 나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루즈벨트)는 것이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봉급을 받으면서도 한 사람은 사표 내겠다는 말을 자주 하는가 하면, 다른 한 사람은 신나게 일을 한다. 대응적인 사람은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라고 하며, 상대방과의 비교에서 행․불행을 느끼므로 다른 사람에게서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주도적인 사람은 “오늘의 나는 어제 내가 한 선택의 결과이다”라고 하면서, “나는 선택의 자유가 있고, 선택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는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주도적인 반응은 어떤 과정을 거칠까요? 주도적인 반응에서는 자극이 있을 때 바로 반응하지 않고 “STOP-THINK-CHOOSE"의 3단계 과정을 거친다.
(자극) → (Stop-Think-Choose) → (반응). 일단 멈추고(stop), 생각(think)한 뒤에 선택(choose)하는 것. (어느 교훈에? 아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행하는 사람)
화나는 일이 있을 때, 화를 내기 전에 일단 멈추고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건강과 바꿀 만큼 화낼 상황인가?
(2) 후회하지 않을 정당한 분노인가?
(3) 화내는 것이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방법인가?
나의 건강을 해칠 만큼은 아닌 사소한 상황은 아닌지, 오히려 상대방이 불쌍하다고 동정하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의 오해에 기인하거나, 강자에게 욕먹고 약자에게 화풀이 하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보고, 화를 내는 것이 문제 해결에 가장 효과적인지, 또는 어떻게 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유리한 행동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은 중독성과 전염성이 있으며, 마치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끊지 못하듯이 분노중독자는 분노를 끊지 못한다고 한다.
“다른 선택”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현대자동차건물 앞에 택시들이 서 있다고 하자. 그리고 현대자동차사원 한 사람이 택시를 타러나왔다가 맨 앞에 있는 삼성자동차의 SM5택시를 타지 않고, 애사심의 발로로 일부러 두 번째에 있는 쏘나타택시를 탔다고 해보자. 줄지어있는 택시의 차례를 무시한 것이다. 아마 SM5택시기사는 몹시 기분이 나쁠 것이다. 그 현대자동차사원은 그런 선택을 함으로써 어떤 기회를 놓친 것이다. 현대자동차생산품을 SM5택시기사에게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생각을 안겨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SM5 택시기사는 다시는 현대자동차제품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흔히 부인이 364일 밥을 잘 짓다가 단 하루 밥을 태웠을 때 짜증을 내게 된다. 부인이 음식을 맛있게 장만하였을 때나, 자녀의 성적이 좋을 때는 칭찬하지 않고 있다가, 음식이 잘못되거나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면 언짢은 반응을 보인다. 즉, “강점강화”보다는 “약점보완”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사실은 장점이 훨씬 많은데도 약점만을 지적하곤 한다.
자, 이제 우리는 패러다임을 바꾸어서, “다른 선택”을 해보자!
인간관계는 메아리를 닮았다고 한다. 내가 하는 행동 방식이 그대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관계는 “널뛰기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한다. 내가 높이 오르려면 상대방을 더 높이 올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모욕하면 내가 잘난 것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선택”과 관련하여, 부부생활에서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첫째 사례로 매일 늦게 들어오던 남편이 어쩌다 일찍 들어왔다고 하자. 부인의 반응을 두 가지로 대비시켜 볼 수 있다.
(반응1)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당신이 일찍 들어오는 날도 있으니.”
(반응2) “오늘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더니 당신이 일찍 들어오시려고 그랬나 봐요.”
둘째 사례로, 어떤 가정에서 남편이 TV를 보다가 이효리가 춤추는 장면을 보면서 부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하자. “여보, 이효리가 나한테 반하면 어쩌지?” 이 말에 대한 부인의 반응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반응1) “이효리가 약 먹었냐? 너한테 반하게!”
(반응2) “맞어 맞어. 이효리가 당신을 못 봐서 다행이지, 당신을 봤다 하면 반할 거야. 그래도 당신은 안 넘어갈 거지? 나한텐 당신밖에 없는 거 알지?”
두 가지 사례의 반응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반응 1”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 배우자를 보고 가슴이 뛰면 그건 심장병이라고 하니까.
“반응1”은 대응적인 행동이고, “반응2”는 주도적인 행동이다.
이제는 우리 주도적인 반응을 선택해 보자. 세상에서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라고 한다. “당신 때문에”보다는 “당신 덕분에”를 선택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를 선택해 보는 거다. 그러면 얻는 결과가 달라진다. 현직 활동을 할 때는 사회생활에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 한분이, 그때 제 아내가 했던 말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진정으로 아끼는 것을 주어야 합니다.”였지요.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제가 가장 아쉽고 소중하게 아끼는 것, 즉 “시간”을 주라는 뜻이었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자기가 진정으로 아끼는 것을 줄 때 감동을 일으킬 수 있다. 바쁜 사람이 시간을 내거나 어려운 사람이 성금을 내거나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남편과 아내를 죽이거나 살리는 말들을 보고 부인과 함께 실습도 하여 보자. 여러분은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STOP - THINK - CHOOSE !!!
가지 않는 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이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라고 했다. 그만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동창 -열명에 불과하지만-모임 중에 두 사람은 바람과 도박으로, 두 사람은 아내의 바람으로, 또 한 사람은 성격차이로 이혼하고 말았다. 그런데 옆에서 가만히 보면 그들 스스로 선택해 놓고 한결 같이 상대방 때문이라고 모두들 말한다.
가위 바위 보를 하면 져 주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온갖 잔머리를 다 굴린다. 스스로 선택한다. 이기거나 지거나. 한 쪽이 0 이면 다른 쪽은 1이다. 중간이 없다. 끊임없이 계속 하다보면, 완전한 승리나, 완전한 패배는 없다.
선택은 자유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선택한 바에 대하여 일생을 두고 책임을 져야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선택한 바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다. 선택을 잘 했으면 축복을 받고 선택을 잘못했을 때는 거기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심판인 것이다.
선택은 두 가지가 있다. 많은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선택이 있고,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는 선택이 있다. 많은 물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물건을 고를 때 쓰는 선택이다. 이것은 상품적 선택이다. 상품은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 그러나 인격적인 선택은 많은 것 중에서 고르는 것이 아니고 일대 일이다. 하나를 고르면 하나를 포기해야 된다. 이것은 결단이다. 이것을 갖기 위해서는 저것을 포기해야 된다.
친구들을 만나면 언제나 그들은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느니 변명을 한다. 또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해 놓고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킨다. 그 후 그들 다섯 사람은 모두 재혼에 다시 실패한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하면서 선택한 결과이다.
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길이 아닌 곳으로 갈 때가 있다. 어떻게 되겠지 하고 내처 가다보면 갈 곳이 없는 곳까지 갈 때가 있다. 그런 경우 빨리 돌아 나오는 것이 상책. 멈추고, 생각하고, 그리고 선택하라고 했다.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