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문다. 마침 우리 20기 대간도 이제 마무리가 되어 간다. 이래저래 아쉽고 일말의 초조감도 있다. 아직도 하고싶은것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이 있는데 한것은없고 할일만 누적되어 가는 느낌이다. 산행도 욕심이있어 갈곳은 많은데 언제까지 산행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오래 하자면 건강을 유지해야 되는데 게으른 맘이 생길까봐 그것도 걱정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년말이다.
그나저나 매일 송년회네? 으히구~~~ ㅠㅠ
강원도 북부에 대설경보와 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설악산, 오대산 전면 통제! 그리고 한파까지 몰려 온단다. 계획된 오대산구간을 뒤로 미루고 함백산 구간으로 방향을 바꿨다. 2~3일 전부터 공단 cctv를 확인하니 태백산쪽은 비가 온다. 일단 눈은 없으니 함백산 산행은 그리 어려운 구간이 아니라서 편하게 진행할 수 있을꺼라 생각했다.
그러나 . . . .
여기 산행 들머리인 태백에서 영월 넘어가는 화방재라고 불리는 고개.
시작하자마자 잔소리를 좀 해야 겠다. 한동안 논란이 되어 있던 이 고개에 대한 명칭 문제가 아직도 정리가 안되어 있다.
시민 단체들과 산악인들이 오랫동안 이 고개 이름을 어평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국토 지리 정보원도 이를 받아들여 태백시에 화방재로의 개명을 권고하였으나 태백시에서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 주장들을 나열해 보면
1) 태백시 소도동에 위치한 화방재(해발 936m)는
원래 '어평재'라는 이름의 고개였습니다.
그런데 태백산 국립공원 개장 후에도 일본식 지명인
`화방재'로 사용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사고 있습니다.
향토사 연구가 등에 따르면 이 고개는 태백산 산신이 됐다는
단종(端宗)의 혼령이 `이곳부터는 내땅(御坪)'이라고 하여
500여년 전부터 `어평재'라고 불린 지역입니다.
그런데 일본 식물학자였던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이
우리나라의 식물 분포도를 조사하면서 지역의 다수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꿨으며 자신의 연구활동을 지원했던
조선총독부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 공사의 이름을 차용,
어평재를 화방재로 개명시킨 것으로 전해지면서
현재 개명 작업이 추진 중입니다.(강원일보 기사.)
2)국토지리정보원은 화방재가 조선총독부 초대 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의 이름자를 따 작명된 일본식 지명일 것으로 보고 개칭을 촉구 중이다. 그러나 태백시는 화방재 지명이 하나부사 요시타다의 이름자를 따 작명됐다는 증거가 확실치 않다며 지명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지역 주민 등에 따르면 이 고개는 500여년 전 태백산 산신이 됐다던 단종(端宗)의 혼령이 '이곳부터는 내땅(御坪·어평)'이라고 한 데서 지명이 유래됐다. 고개 아래 마을도 어평마을이라고 불리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주민들과 학계의 의견 등을 받아들여 화방재 지명 개칭의 타당성을 인정, 시에 이를 요청했다.
학계에 따르면 일본의 식물학자였던 나카이 다케노신은 우리나라의 식물 분포도를 조사하면서 어평재 지명을 화방재로 왜곡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10년판 조선지지자료 등은 어평치(魚坪峙) 등이라고 한결같이 표기했다.
3)태백시의 주장
현 한자표기된 화방(花房)이 조선총독부 초대공사 요시타다(花房義質)의 요시의 이름을 차용, 개명으로 추정 보도한 내용과는 달리 화방재는 1961.4.22 국무원 고시의 순 우리말로, 고시 이후 전 국토 지명조사에 따른 한자표기는 화방(花芳)재로 조사 기록되어 있어 사실과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 화방재(花芳嶺) 유래 : 고개 위에 조그마한 돌이 있는데 꽃같이 곱다 하여 화방재라 함. (태백의 지명유래는 고개마루 부근에 진달래, 철쭉이 무성하여 화방재로 불리기도 함)국토지리정보원은 언론보도와 관련, 일제 강점기 왜곡된 지명정비에 따른 우리시에 화방재에 대한 일본식지명 여부에 대한 검토와 일본식으로 확인 될 경우 지명변경을 협조 요청한 사항으로, 지명 개칭여부를 두고 국토지리 정보원과 태백시가 찬반 논란을 벌이며 갈등을 빚고 있다는 보도내용은 사실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화방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지지자료 및 조선지형도 에서 확인할 수 없고, 1964년 한글학회에서 편찬한 한국지명총람의 기록 사항으로 현재까지 일본식 지명 근거는 확인이 되지 않은 지명입니다. 반면, 어평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지지자료의 영월군편에 영월군 상동면 어평리(魚坪里)와 영월군 상동면 어평치(魚坪峙)로 표기되어 있고, 일제시대 작성된 조선지형도는 어평(於坪)으로 표기되어 어평에 대한 2가지 한자(魚坪 / 於坪)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 일제 강점기 편찬자료 : 한글지명이 일본식 한자지명으로 바뀌 사례가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화방재와 어평 마을은 약 2km 떨어져 위치하고 있고 영월군과 삼척군이 어평마을을 경계로 인접되어 있어, 사용하는 지명이 통일되지 않은 것으로 사료되며, 태백문화원에서 발간한 태백의 지명유래에서는 화방재 또는 정거리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어평마을 : 단종의 혼령이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와서 태백산 산 신이 되었다는 전설로(현 태백산 능선에 단종비각 건립) 혼령이 어평마을에 다다러 잠시 쉬면서 여기서부터는 내땅이라 하여 어평으로 부르게 됨. 현 어평마을에 단종대왕당이라는 성황당이 있으며 31번 국도 서북쪽으로 당목재를 넘으면 영월 땅의 구래리로 갈 수 있고 동남쪽의 화방재를 넘으면 태백으로 갈수 있음.귀하께서 제안하신 현재의 화방재에서 ⇒ 어평재로의 지명변경 은 어평의 다양한 한자(於坪/ 魚坪/ 御坪)식 표기 방법과 순 우리말 표기인 화방재를, 부락명으로 이미 고시된 어평마을과 연관하여 같은 지명인 어평으로 변경해야 되는지, 단군신화가 존재하는 태백산을 중심으로 전국에 없는 태백 고유의 자연지명을 창의적으로 계승 발전할 것인지 등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며, 지명은 지리적 특성으로 다양한 지명이 있어 병기하는 사례도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
4) 심곡생각
일단 고지도에는 화방재란 표기가 없음. 태백시의 주장은 어떻게든 화방재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이며 그 이유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어평 마을이 영월군 상동읍에 있기에 지명이 영월쪽으로 넘어가는것이 못마땅하여 여러 구실을 만드는것 같음.
그래도 국토부 산하 국토지리 정보원에서 지명위원회를 열어 그 타당함이 있기에 개명을 권고한것인데도 받아들이지 않는것은 이해가 안됨. 우리 산악인들이라도 어평재로 써야되겠다는 심곡 생각. 아니면 공평하게 대동여지도에 있는 고석령(孤石嶺)이라고 하던지. . . . (고석 : 외로운 바위. . . . 단종을 말하는 것인가?)
산행중 나무 부러지는 소리와 무너지는 소리가 여기 저기 지척에서 들린다. 머리위로 어름과 눈덩이 쉴새없이 솓아 진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서 불이 번쩍!!! 뚜두둑 하더니 비수리님과 내 머리위로 부러진 나무가지가 덮쳤다.
“심여사님. 괜찮습니까?”
“ 네. 머리에. . . .”
“네. 저도 머리에, 무릎도 한대 맞았어요. 아이 아파라.”
만항재에 도착했다.
차로 갈 수있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고개다. 두번째로 높은 고개는 오늘 가게될 두문동재(싸리재)
함백산 시비
지은이 : 곡죽 최인수
함백 산하 만첩봉은 여명에
운무 이불 허리 덮고
검푸른 봉 머리 모아 아직도 단잠인데
동트며 솟는 햇님 찬란한 아침 햇살
이곳 먼저 비추시니 이것이 일백이요
한나절 햇님 이고 스르르 낮잠들면 하늘에서 놀던 구름
소리없이 내려와서 잠든 함백 휘감으니
이것이 일백이요
햇님 종일토록 세상만물 생성타가
함지에 드시면서 거룩하신 큰빛노을 다시 함백 밝게
하니 이 아니 일백이며
햇님들고 어스름에 행여 이곳 어둘세라 달님 서둘러서
은하수에 세수하고 맑게 밝게 웃으시며
여기 먼저 오시니, 이 또한 일백인데
억겁토록 세인들은 크고 밝은 이곳 일러
함백산이라 불렀더라
태백산 천제단은 국가의 부흥과 평안을 위해 왕이 천제를 지내던 민족의 성지인 반면 이곳 함백산 기원단은 옛날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민간 신앙의 성지였다고 전해오며. . . . . .라고 쓰여 있다.
함백산 咸白山 [다른이름] 대박산(大朴山), 묘범산(妙梵山), 작약봉
태백시의 소도동과 정선군 고한읍』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고도:1,573m). 황지의 진산(鎭
山)이다. 『척주지』에“대박산 서쪽은 정암(淨岩) 육천인
데, 육천의 물은 영월에 이르러 큰 강에 흘러들어 간다.
대박산은 태백산 동쪽에 있는데, 아래 위로 본적(本寂)·
심적(深寂)·묘적(妙寂)·은적(隱寂) 등의 암자가 있다.
대박산에는 만생백(蔓生栢)과 오엽송(五葉松)이 많이 자
란다. 대박산 동쪽은 황지이고, 황지 동쪽에는 연화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에서 대박산의 위치는
물론 그것이 지금의 함백산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
척주부에“근대봉 남쪽에 상함백산(지금의 은대봉)·중
함백산(본적산)·하함백산(지금의 함백산)이 있다.”는 기
록이있어함백산은세산을아우르고있음을알수있다.
또한『삼국유사』에“자장법사는처음오대산에이르러진
신을 보려고 산기슭에 모옥을 짓고 살았으나 7일이 되어
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묘범산(妙梵山)으로 가서 정암
사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의 묘범산은 함백산
을 지칭한다. 이러한 고문헌을 통해서 산 이름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태백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묘범산은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로 대산(大
山)이자 신산(神山)이며 세계의 중심이 되는 산임을 뜻한
다. 그러므로 대박산이‘크게 밝은 산’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대동여지도』『산경표』에도 대박산이라고 표기되어 있
다.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추워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바람도 강하게 불고 기온도 급강하 한다니 부지런히 산행을 해야겠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
1505m 중함백에 도착.
어제까지 내린 비 때문에 나무마다 온통 고드름. 그리고 어름나무가 되어 버렸다.
드디어 두문동재(싸리재)에 도착.
왜 두문동재라고 할까?
두문동은 원래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광덕산(廣德山) 서쪽의 골짜기로
고려 말기의 유신(遺臣)들이 새 조정인 조선에 반대하여 벼슬살이를 거부하고 은거하여 살던 곳으로 유명하다.
조선초 경기도 두문동에살던 고려 망국 유신들 가운데 일부가 삼척땅에 유배온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을 뵈러 왔다가 공양왕이 타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태백의 건의령에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버리고 이 고개를 넘으며 불사이군(不事二君. 두명의 임금을 섬길 수 없다.)정신으로 이 고개 밑에 있는정선에서 두문동이란 이름을 짓고 터전을 잡게 된 것이다.
두문동에 관한 기록은 조선 순조 때 당시 72인의 한 사람인 성사제(成思齊)의 후손이 그의 조상에 관한 일을 기록한 『두문동실기(杜門洞實記)』가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그 당시 많은 선비들이 은거함에 따라 이를 두문동이라고 부르는 곳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이곳도 그중 한곳으로 일부가 산나물 뜯어 먹으며 두문불출 했다고 해서 이곳 지명이 두문동 재가 되었다.
이내 금대봉에 도착한다.
전해오는 이야기
금대봉은 "검대"에서 유래되었는데 "신들이 사는땅"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특히 이곳의 금대봉과 은대봉의 이름은 신라 선덕여왕때 지장율사가 함백산 북서쪽 사면에 정암사를 창건하면서 세운 금탑, 은탑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전해 온다. 또한 두문동재에서 금대봉까지 이어지는 1.2km의 능선을 싸리재 또는 '불바래기 능선'이라 부르는데 예전 화전민들이 산 아래에서 놓은 불을 이 능선에서 맞불을 놓아 진화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검룡소 儉龍沼
태백시의 삼수동에 위치한금대봉북사면에있는샘으로된소(沼)이다. 태백팔경 중 하나이고, 이 소의 물이
남한강의 발원이 되어 500km 이상을 흐른다.
황지연못(黃池蓮-)
태백시 황지동에 있는 못이다. 낙동강의 발원지로도 알려져 있다.
황지연못의 물도 금대봉에서 흘러들어 갔으니 금대봉이 양강의 발원지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비단봉을 올라가야 하는데 그 경사가 만만치 않다. 나도 힘들지만 다리가 온전치 않은 무한괘도님이 더 걱정이다. 많이 힘들어 하신다. 이름만 비단봉이지 오늘은 걸래봉 같다.ㅋㅋ
지난번 자병산을 지날때 백두대간이 어떻게 회손되고 있는지 분명히 보았고, 그외 여러군데 있다고 얘기 하면서 이곳 매봉산 고냉지 채소밭을 예로 들었다. 이곳 대간의 일부가 사유지로 경작되고 있고 출입조차 못해 울타리를 우회해야되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 뿐인가. 일부 지역은 풍력 발전기가 점령해서 주변을 평탄화하고 포장을 해놔서 산길이라고 볼 수 없는 곳들이 있다.
아~~ 이젠 그만~~~~
그리고 여기서부터 피재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나 오늘 최악의 산행이 시작된다.
바람을 사진으로 찍을 수만 있다면 이곳은 그냥 셧터 누르는대로 돌풍이고 폭풍이다.
한겨울 삭풍에 산행은 산행이 아니다. 구도자의 고행길이다.
매봉산 鷹峰山 [다른이름] 천의봉(天儀峯)
태백시의 삼수동에 있는 산이다(고도:1,303m). 예전에는 천
의봉(天儀峯)이라 부르던 산이다. 이 산은 백두대간에 놓
여 있으며, 영남의 낙동정맥을 따라 산을 거슬러 올라와
황지로 접어들면 북쪽에 가장 높이 솟은 산이 천의봉이
다. 또 삼척시 하장면 쪽에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오면
제일 높은 산이 천의봉이다. 그래서 과거 하장(下長)과
상장(上長)을 나눌 때 이 산이 기준이 되었다. 그런데『태
백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이 산봉은 남쪽 산록의 연일 정
씨 묘에서 바라보면 매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닭이
알을 품을 때 수리가 명당을 노려보고 있어야 한다는 풍
수이치때문에매봉으로불렀다는것이다. 말하자면정씨
가에 의해서 천의봉이 작위적으로 매봉이라는 지명으로
바뀌었음을엿볼 수 있다.
이렇게 쉽다고 생각한 코스가 역대급으로 기억에 남는 산행이 되었다.
그놈의 바람. 흐이구~~
다행히 아무도 낙오자 없이 산행을 끝내서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었다.
5월 또는 6월 봄 야생화가 만발할때나 만항재 야생화축재때 다시한번 올것을 기약해 본다. 금대봉 일대에도 야생화 천국이라는데. . . .
그리고 뒷풀이때 조촐하게나마 송년의 의미를 담아 작은 케익에 촛불도 키고 다같이 돌아가며 건배사(덕담)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두에 말했듯이 다른때보다 조금은 더 아쉬운 년말인것 같았다.
또 보면 되지. 그리고 계속 같이 산에 가면 되지.
모두 건강하길 바라고 이젠 내년을 기약하며 인사를 해야 겠다.
“연말 즐겁게 보내시고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길 빕니다.”
첫댓글 심곡님 그렇게 추운데 사진을 많이 남기신 거 우선 위대하고 존경합니다 제 인생중 손에 꼽을 만큼 악천후를 경험한거 같습니다 또 그만큼 보기드문 광경을 본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20기의 역사를 빠짐없이 기록해 주신 거 감사드립니다
오래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네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두문불출이 거기서 나온 얘기인지 지금에야 알았네요~
추워서 휴대폰꺼내기도 싫은데
꼼꼼하게 기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산행의 역대급을 경험하게되어 힘들었지만 보람도 많았습니다
귀달이 모자썼는데도 불구하고
귀가 동상걸려 물집잡혔네요
그래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