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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을 그칠수만 있다면(1806.2017.6.25)
신32:7
할렐루야
지난주 수요일(21일)이 일 년 중에서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였습니다. 요즘 해 뜨는 시간은 5시 20분이고 해지는 시간은 7시 40분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낮의 길이가 14시간이 넘습니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참으로 고단하고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벽에 나와 함께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성도들을 볼 때 참으로 감사하기도 하고 또 목사인 저는 힘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 반면에 꼭 나와야 할 교회의 중직들이 나태와 게으름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쓰라린 고통을 당했던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1950년 6월 25일은 그날이 마침 주일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우리 기독교에서는 그때의 고난을 되새겨 보면서 다시는 이 나라에 이와 같은 불행이 발생되지 않도록 다짐을 새롭게 하는 6.25상기주일로 지키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짐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삼상17:47절‘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다시는 이와 같은 고난을 당하지 않고 평화와 평안의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려면 먼저 이 민족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5,000만 모두가 다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함당한 사람이 된다면 이 나라는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6월달은 국가 보훈의 달로서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잊을래야 잊을수 없고 또 잊어서도 안될 6,25 사변이 일어났던 뜻깊은 달입니다. 6.25 67주년을 맞이해서 우리 상주시 기독교연합회 이름으로 함께 모여 새벽에 조찬기도회를 6월 20일날 했습니다. 제가 2006년 상주시 기독교연합회회장할 때 상주시에 속한 목회자들과 장로님들 그리고 국회위원, 시장님과 관공서 기관장들과 함께 6.25 조찬구국기도회에서 ‘국가와 상주가 살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맥이 끊겼다가 작년에 다시 부활하여 작지만 함께 모여서 기도회를 했습니다. 올해도 하면서 저에게 특별기도 시간에 ‘다음세대들을 위하여’ 기도제목을 주어서 기도했습니다. 이렇게나마 기도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한국의 5천년 역사 가운데서 크고 작은 전쟁을 비롯하여 끔찍한 고난을 수없이 많이 당하였다고 하지만 사실은 6,25와 같이 우리 민족에게도 처절했던 기억들과 영영 지울수 없는 쓰라린 상처 투성이의 갖가지 사연들을 남긴 사건은 일찌기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전국민의 80% 가까이 되는 6,25 전후세대는 6,25 동란을 격지 않았으니 그렇다 할찌라도 더욱 안타까운 실정은 전쟁을 격은 기성세대까지라도 그 비극적인 사건을 얼마전에 있었던 무서운 전쟁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6,25를 역사속에 뭍혀있는 비사로 여기며 너무 안일하고 나태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시간 저는 동족상쟁의 비극적인 전쟁 6,25를 67돌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와 우리 상주땅이 살길은 무엇인지를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본문 신32:7절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옛날에 이스라엘 선조들이 하나님 역사로 출애굽하고 광야생활을 하며 고생한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물어서라도 반드시 잊지말고 기억하란 말씀입니다. 오늘 6.25 67주년을 맞으면서 몇 가지 교훈을 찾겠습니다.
1.6.25동란의 기독교적 이해를 해 보려고 합니다.
얼마전에 방송국에서 미국의 수도 와싱톤 D.C.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공원을 방영해 준적이 있습니다. 6.25 참전 기념 공원입니다. 이곳에 해마다 평균 320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 가보면 판초 우의를 입은 육, 해, 공군 군인들이 총을 들고 서서 앞을 향해 행군하는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여기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우리 미합중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달려갔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딸과 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 아래 은색 글씨로 선명하게 새겨진 불멸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자유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무수한 젊은이들이 피를 흘린 희생의 댓가로 주어진 값진 것임을 잊지 말자’는 뜻입니다.
우리나라가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처참한 6.25 동란을 겪은 지 6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6.25동란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6.25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5,000년 역사 중에 우리 민족끼리 그렇게 지독하게 싸운 것은 6.25뿐입니다. 사상이 다르다는 것 하나만으로 온 가족을 몰살하였고, 한 동네가 모두 불태워졌습니다. 가장 잔인스러웠고, 가장 비인륜적인 범죄의 행위였습니다. 3년 동안에 전쟁으로 국토는 초토화되었고, 거리에는 부모 잃은 고아와 깡통 든 거지들이 득실거렸습니다. 전쟁처럼 비참한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6.25와 같은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절실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무력의 힘을 무기로 삼고, 동족에게 총 뿌리를 겨누는 일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6.25를 일으킨 전범들은 영원히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평화는 한반도에서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공산주의는 악의 영입니다.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주관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사상은 하나님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칼 막스는 ‘신은 필요 때문에 고안된 정신적 허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는 공산당 선언문에서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다같이 단결하고 자본가의 재산을 빼앗아 공동소유로 만들자’ 라고 하였습니다. 요즘도 이런 말하면 서민층의 사람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공산주의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권을 부정하고, 무자비한 살생과 계급투쟁의 혁명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으면 곧 바로 반동으로 처단합니다. 그래서 투표를 하면 100% 찬성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주장을 비판하면 모두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 북한 체제가 그래서 오늘까지도 오로지 김정일 동지일 뿐입니다. 이것을 남쪽의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평화적 통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한반도의 통일은 마음을 주장하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믿는 크리스천들이 성경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성경대로 살면 공산주의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나와 같이 사랑하고, 인류를 위해 봉사할 때, 민주주의는 자연이 실현되고 꽃피게 됩니다. 신앙인들이 바로 서지 못하면 하나님은 징계한다는 교훈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공동체입니다. 영적으로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이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싸우면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미 6.25때 입증되었습니다. 8.15 해방 후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서로 미워하고 질시하고 싸웠습니다. 싸움의 원인은 누가 더 하나님을 바로 믿었느냐? 하는 것으로 싸웠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신 신학으로 몰아 부쳤고, 이단이란 낙인을 찍어 총회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하나님은 백성이 서로 갈라질 때마다 전쟁으로 저들을 징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악의 영들을 대항하여 싸울 유일한 전초기지 이기도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를 박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 사상은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적대 관계입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영적 싸움입니다. 악령과 성령의 싸움입니다.
2.공산주의의 허구성과 잔인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해마다 유월이 되면 이 민족이 겪은 6.25전쟁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너무도 형식적인 행사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의 아픈 상처를 기억해야 합니다. 1백만 명이 넘는 사망자와 50만 명의 전쟁 과부들이 생겨났고, 10만의 전쟁고아와 천만의 이산가족을 내게 했던 6.25, 그리고 1백 50억불의 전쟁 비용과 4백억 불의 경제손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과 북을 원수지간으로 갈라놓은 그 날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서히 그날의 비극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6.25를 전혀 모르는 저와 여러분 같은 전후세대뿐만이 아니라 기성세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파괴된 녹슨 전차에는 풀이 무성해 그 사건이 오래전 일로 보이지만 아직도 이 민족의 가슴속에 있는 상처와 아픔으로 인해 6.25는 결코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상처들을 바르게 풀지 못한다면 그와 같은 비극은 또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이 전쟁을 진정으로 종식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니고 보니까 6.25의 교훈이 점점 쇠퇴해져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예방주사를 맞은지 오래되면 약효가 없어져 예방 효과가 없는 것과 같이 6.25 사변의 아픔들이 점차 잊어 가고 있습니다. 행안부에서 몇년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중고생과 20대 10명 중 6명은 6. 25 한국 전쟁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즉 젊은이의 60%는 전쟁 안보의식이 적다는 것입니다. 연평도 사건 이후 안보 의식이 높아지기는 하였지만 북한을 경계하고 적대할 대상이라는 응답은 성인 59.9%, 청소년 51.4%였습니다. 공산주의의 잔인성을 잊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전쟁에서 남북한 군인사상자는 모두 약 300만 명, 민간인 사상자도 모두 약 300만 명, 합계 약600만 명이 죽고 다친 전쟁이 6.25였고, 전쟁미망인만 약 20만 명, 전쟁고아가 약 10만 명, 파괴된 가옥이 60만 채, 북한 월남민이 약 300만 명, 이산가족이 약 1천만 명, (현재 700만 명)/그리고 산업 생산력의 약 80%가 파괴되고 공산군 점령지에서 그 어떤 계층보다 핍박받고 투옥되고 고문당한 사람들이 기독교 지도자들과 기독교인들이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실로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비극적 전쟁이 바로 한반도의 6.25전쟁이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옛 소련을 비롯한 온 세계 공산국가들이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알고 다 폐기 처분하였는데 유독 북한만큼은 철저하게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철의 장막보다 더한 억압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예외 없이 망했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1990년 붕괴되면서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공산주의는 선을 가장한 악한 사상임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북한 체코슬로 바키아, 헝가리, 동독, 폴란드, 등 공산주의 국가는 모두 비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이것은 공산주의 사상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경제체제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경제 사상입니다. 공산주의 경제 이론은 노동자, 농민, 무산대중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지식 계급이나 유산 계급의 재산을 빼앗아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일 뿐입니다. 아무리 노력해 봐도 ‘내 것’이 되지 않는데 누가 열심히 노력하고 창의력을 발휘합니까? 공산주의 경제 이론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선을 가장한 악한 사상에 속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잔인무도한 사상입니다. 공산주의는 영혼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고 정신의 가치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하나의 물질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죽이는 것을 짐승 죽이듯 거침없이 살인 만행을 일삼습니다. 소련의 스탈린이 4,500만 명을 죽였고, 모택동은 6,500만 명을 죽였습니다. 공산주의는 폭력주의 테러리즘(Terrorism)입니다. 지금도 세계의 많은 나라가 북한에 가서 테러하는 법을 배워 간다고 합니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전쟁은 인간이 범하는 죄 가운데 가장 큰 죄악이다’라고 했습니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이며 교회말살주의입니다. 공산주의는 물질의 존재만 인정하는 유물론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이며 교회 말살론 입니다. 북한에 그 많던 교회가 다 파괴되었고 많은 크리스찬들을 죽이고 투옥하고 집단 수용소에 보내어 죽는 것보다 더 심한 고통을 줍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찬들에게 공산화 통일은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가 어떻다는 것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제 2의 6.25를 막을 수가 있습니다.
3. 6.25 동란을 통하여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 공산군이 소련과 중공의 힘을 의지하여 남한을 파죽지세로 내려와 부산까지 밀어붙였지만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급파되어 북괴군은 패배했고 마침내 휴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버리신 여러 분들에게 감사드려야 합니다.
이 전쟁에서 ‘아이젠하우어’ 대통령도 아들을 잃었고, ‘벤프리트’ 장군도 아들을 잃었으며,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도 아들을 잃었고, ‘워커’ 중장은 자식과 함께 참전했다가 전사했고, 24사단 ‘윌리엄 F. 딘’ 장군을 비롯한 상당수의 미군들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터어키, 벨기에, 필리핀, 태국 이디오피아 등 UN 산하 16개국이 한국전에 참여 하였고 수만 명이 전사하였습니다.
미국은 연인원 1,789,000명 참가에 36,940명이 전사했습니다. 영국은 56,000명이 참전하여 1,078명이 전사 했습니다. 터어키는 14,936명을 파병하였고, 724명이 전사했습니다. 시간 관계상 다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유엔군을 파병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정할 때 회원국 5개 나라 중 한 나라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파병을 못하는데, 그날 거부권을 행사할 소련 대표가 자동차 고장으로 불참하는 바람에 만장일치로 가결되어 한국이 공산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전쟁 때나 종전 후나, 우리가 헐벗고 굶주릴 때 얼마나 많은 옷과 담요와 식량을 갖다 주었습니까? 옥수수가루, 밀가루 원조, 각 우유 등 양식을 보내와 그것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구호양곡을 보내왔고, 고아들을 입양해 주었습니다. 만약 미국의 구호물자가 아니었다면 굶어죽었거나 얼어 죽었을 사람들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망각하고 미군 철수하라고 외치고, 사드설치 반대를 하고, 밤낮없이 반미운동을 하고 있으니 이런 배은망덕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도 안 되고, 사람의 은혜도 잊으면 안 됩니다. 배은망덕하면 복을 받겠습니까? 신32:7절‘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이 모든 역사적인 사실을 부모는 자식들에게,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주고 기억시켜주어야 그런 비극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요즘은 6.25 세대도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다음세대들은 6.25가 무엇인지도 모를 때가 오고 말 것입니다. 6.25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전쟁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이 바로서지 못하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 6.25의 처참한 비극은 한국 교회의 죄 때문에 왔다고 봅니다. 특히 한국 교회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신사참배와 궁성요배에 동참하는 것은 국민의례이지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합리화시켰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떼를 지어 가서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주의 종들이 총회에서 결의하여 떼를 지어 가서 우상숭배를 했는데 그것이 1937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인들이 바로 서지 못하면 하나님은 징계한다는 교훈을 알아야 합니다. 8.15 해방 후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서로 미워하고 질시하고 싸웠습니다. 싸움의 원인은 누가 더 하나님을 바로 믿었느냐? 하는 것으로 싸웠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서로 갈라질 때마다 전쟁으로 저들을 징계하지 않았습니까?
한국은 말세에 선교하는 민족으로 쓰시는 사명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사랑의 채찍으로 징계하는 것입니다. 히12:5-6절에‘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죄가 관영하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민족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했을 때 앗수르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하만의 계략을 깨뜨리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고, 우리나라를 힘 있게 해 주십니다.
몇 년 전 인천에서 자유공원에서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를 시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마치 맥아더가 전쟁광이요. 살인광인 것처럼 오도된 선전 시도를 했습니다. 맥아더가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해서 통일이 지연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맥아더’가 얼마나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아는 사람은 드믑니다. 맥아더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후 그가 일본에 대하여 가진 가장 큰 관심은 일본의 복음화였습니다. 1947년 당시 일본 내 선교사의 총수가 315명이었는데 맥아더 장군이 미국 교계에 직접 호소한 결과로 1950년 일본 선교사 총수는 2,500명이 되었고, 그는 록펠러 재단에 직접 연락하여 일본에 기독교 대학을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약 1,000만권의 일본어 번역 성경이 일본에 전해지도록 역할을 했습니다. 맥아더가 한국전 참전을 결심하면서 그는 이런 기도를 남깁니다. ‘하나님, 저는 또 하나의 전쟁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 작은 한반도 땅에 하나님의 의를 전할 수 있다면 기꺼이 저를 써 주소서’ 그는 1950.9.29 수도 서울을 회복한 후 환도 행사에서 ‘이 행사에 요구하실 것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주기도문을 함께 드릴 것을 제안합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이 민족이 살길은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는 길’이 살길입니다.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서 정치인들과 온 백성들 모두가 회개하는 길이 살길입니다. 즉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대통령도 예수믿고 구원받고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으로부터 우리 상주를 다스리는 상주시장을 비롯해서 도의원, 시원 모두가 우상을 버리고, 예수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이 상주가 잘 살수가 있습니다. 상주가 침체되었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상주를 살려내기 위하여 위정자로 선택 받았다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이 이 상주땅을 잘 다스릴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권세도 주셔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우셔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상주가 잘 사는 상주 땅이 될 것입니다.
삼상7:3절‘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려거든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아 이 민족이, 우리 상주가 살길은 어느 특정인 어느 한 사람의 회개보다는 거교회적, 거민족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운동과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사무엘이 전개한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운동의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3절 중반절‘우상을 제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상을 척결하라고 촉구 하십니다. 그러면 우상은 무엇입니까? 골3:5절‘탐심은 곧 우상 숭배니라’하신대로 하나님과 나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모든 세상욕심이 바로 우상이요 따라서 이것을 구약 성경에서는 영적 간음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로 방향을 고정 시키는 것입니다. 3절 하반절에 보면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 향하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향한다는 말씀은 곧 ‘고정시킨다’는 뜻입니다. 즉 성도는 모든 중심을 여호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 그에게만 시선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만 섬기는 것입니다. 4절말씀을 보면 회개자의 참모습은 오직 여호와만 , 우리 주님만 바로 섬기는 것입니다, 수24:14-15절은 보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두가 다 이방신을 섬긴다 하여도 ‘오직 자신과 자신의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선언합니다. 바로 이 신앙이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암5:4절이하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호6:1-3‘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의를 세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예수믿는 나라와 민족이 되도록 기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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