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하고 속편한 대회 준비다.
준비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금, 토 이틀 운동 안하고 쉰 것이 전부다.
금욜 저녁은 또 어쩔 수 없는 모임으로 맥주 3천CC 가량 음주까지 한다. 토욜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물을 마시기 시작하고 탄수화물 섭취 하겠다고 식빵을 뜯어 먹는다.
게다가 야간 당직 근무로 쇼파에서 서너시간 쪽잠으로 떼우니 초읍 성지곡 수원지 가는 전철과 버스 안이 졸립다.
비상수단으로 약물에 의지하려 박카스 한 명 사먹는다.
대회 참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무슨 기록을 내겠나 싶기도 하고,
그보다 기록 경쟁이 산행을 하는 재미를 잃게 만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
어젯밤,
대회 보다는 주말 금정산 속보 산행하는 기분으로 가자고 변심(?)을 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성지곡 수원지 입구에 도착해 그동안 잘 만나지 못했던 여러 지인들을 만나니 대회 참가하는 재미가 더 하다.
선수등록을 하니 기념품으로 등산티와 달리기 싱글렛 이렇게 두개를 준다. 와우 잿수!!! 참가비 뽑았다. ㅎㅎ
09시20분 정각. 100여명 되는 참가자 출발한다.
편하게 가자, 편하게 가자를 되뇌이며 포장된 수원지 둘레길을 천천히 뛴다.
둘레길에서 만남의 장소 가는 콘크리트 포장길의 경사가 가팔라 당연히 걸어서 가야하는 길인데 역시 대회라서 그런지 그렇게 경사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대회는 이렇게 알게 모르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가 보다.
벌써부터 선두권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앞서 갔는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잘가는 사람은 말릴 수 없고, 나보다 늦은 사람은 언젠가 따라 잡겠지...
속 편타!! ㅎㅎ
오르막은 걷고, 평지는 좀 빠르게 뛰고, 내리막은 천천히 뛴다.
훈련이라면 무조건 뛰겠지만 대회니까 가장 효율적인 레이스를 찾아 이런 식으로 한다.
보폭을 길게 해서 뛰면 당장 속도는 빠르지만 근육의 회복 속도가 늦어 결국은 지쳐 퍼지게 된다.
보폭은 짧게, 보속은 빠르게 해야 회복 구간에 제대로 회복이 된다.
그래서 가능하면 내리막 계단에서도 성큼 성큼 내려가는 것을 지양하고 한 칸씩 가려고 노력(?) 한다.
동문을 지나면서부터 봉우리 하나에 한 명씩 추월을 하기 시작한다. 저 멀리 런 허재훈군이 보인다. 늘씬한 기럭지에
20대의 생생한 피가 흐르니 잘도 간다. 의상봉 오르막도 막 뛰어서 간다. 이런 길 뛰어서 가면 지치는데....
나는 걸어 가면서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르막을 뛰어 가면서도 지치지 않는다면 최고의 산악마라토너일 것이다. 그 정도 실력이 되려면 아직 갈 날이 가 많다.
도전할 일이 너무도 많기에 나는 역시 산악마라톤이 좋다. ㅎㅎ
원효봉 지나니 바로 앞 주자가 런~이다. 런아 달려라, 달려... 박이사가 뒤에 있다... 텔레파시 보냈는데 받았을라나?
고당봉 오르막에서 결국 런 추월. ㅋㅋ
오가는 등산객이 10위다. 8위다 하며 등수를 알려준다. 한참 늦은 것 같은데 나도 선두권이네...ㅎㅎ
런을 추월했으니 이제 내가 7위다.
고당봉 이후는 내리막이며 길이 좋아 더이상의 추월은 없을 것이다. 승부는 결정났으니 더이상 무리할 것도 없다.
하지만 또 모르는 것이 승부의 세계.
이제는 짧은 보폭도 필요 없다. 가랑이를 되는 데로 벌리고 경사진 데로 몸을 숙여 내달린다.
또 한명의 주자가 걸어 가고 있다. 역시... 아마 무리한 달리기로 다리에 쥐가 내린 듯하다.
한동안 내려가니 또 한명의 선수가 보인다. 천천히 가던 이 선수 나를 힐끗 보더니 화들짝 놀라 달아나기 시작한다.
길이 싱글이라 사실 추월이 불가능하다. 하필 마지막이 이런 길이냐 주로를 원망(?)한다.
지금까진 그냥 속보 산행이었다면 지금은 진짜 등수를 따진 달리기를 한다. 약간의 위험도 감수하며 내달린다.
여차하면 추월할 기세로 달리니 앞선수도 죽으라 달린다. 그러다 보니 그 앞 선수까지 따라 붙게 되었다.
산아래 말소리가 들린다. 결승점이 얼마 안남았구나! 어찌 어찌하여 어렵게 앞선수를 추월했다.
그 앞 선수도 놀라 쌩~ 더 이상 레이스를 펼치기도 전에 학생수련원 도착.
내리막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데 방금 내가 추월했던 선수가 달리기를 잘한다. 골인점 약 70미터를 앞두고 재역전.
에고고 힘들어 뒈 죽것다.
골인. 16km - 1시간54분11초. 5위라고 한다. 3, 4, 5위가 10여초 차이다.
쿨다운으로 그늘을 왔다갔다하면서 만족스런 기분을 만끽한다. 고당봉 이후 무리한 걸 제외하고 대부분의 주로를 평소의 걍 강도 높은 훈련이다 싶은 페이스로만 왔는데도 이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니 말이다. ㅎㅎ
대회용으로 달렸으면 10여분 정도 시간 단축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나는 아마 산악마라톤을 두려워할 것이다. 너무 힘드니까...
그럼 지금은? 내일도 산을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기분이 좋다. ㅎㅎ
오행이 김대철님은 여성 3위 페메를 핑계로 최선을 다 안하고 도착한다. ㅋ
완주했다고 다시 휴대용 수저세트를 기념품으로 준다.
최다단체 출전이라고 캠핑용 의자 한 개와 개인별로 버퍼 하나씩 챙겨준다. 게다가 뒤풀이 하라고 돈도 준다.
2부 행사로 족구에 참가한 사람은 등산티를 하나씩 더 받고...
나는 5위 했다고 배낭을 선물로 받았다.
한산마 여성 2위, 3위 시상 받고, 최연소자 런 허재훈님 선물 받고...
주최측은 막걸리와 도시락 등을 또 막 나눠준다.
세상에 이런 대회도 있나? 이건 경쟁하는 대회가 아니라 그냥 운동회 같다. ㅎㅎ
양손에 선물을 한보따리씩 들고 산성마을로 내려와 산마부산지맹만의 뒤풀이를 다시 한다.
오늘 대회 이야기, 담달 영알 대회 이야기 따위로 히히낙락....
운전해야 하는 나는 맨정신으로 그 모든 대화를 듣고 말해야 했으니....
아! 나도 정신줄 놓고 싶다.....
첫댓글 정말 푸짐한 대회였네요
설렁설렁해도 입상하는 박이사님은 진정 재미로 ㅎㅎ
정말 푸짐해요. 내년에 무조건 갑시다.ㅎㅎ
많이도 주네~~~
살림살이 도운이 되었겠네요
글쎄 말입니다. 참가 신청만 해도 남는 장산데..ㅎㅎ
어! 참가했으면 오행이님 볼 뻔했넹..ㅎㅎ
오라카이.
와우 입상 축하드립니다...이것 저것 많이 챙겨 주는대회군요..예전엔 이렇게 많이 안줫다던데..ㅎㅎ 내년엔 일뜽하이송...ㅎㅎ
예전에도 많이 줬어요. 포쿄님 왔으면 최소 2등은 했을텐데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