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羅貫中) 연보
나관중(羅貫中, 罗贯中, Luo Guanzhong(루오관종), 1330년경 생~1400년 몰; 향년 71세)
세계 최고의 소설가
세계의 대문호
중국인 원말 명초의 소설가•극작가
중국의 위대한 소설가
중국 최초의 장편 역사 소설가
중국 최초의 장편 역사 소설 『삼국지』(三國志,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저자
원대 하급 관리•소금장수•장사성의 모사•유랑인 문사•명대 작가 역임
중국 4대 명저 가운데 2대 명저(『삼국지연의』, 『수호전』)의 저자
중국 구어체 장편 소설의 선구자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소설 작품의 저자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삼국지』의 작가
―동서고금에 걸쳐 절대 잊혀지지 않고 무시되지 않고 존재하는 작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최고의 소설가
중국 원명대 최고의 통속 소설가
중국 산서성 출신 역사 소설가
중국 최고의 걸작 역사 소설의 작가
연의 소설 작가
아시아의 셰익스피어
아시아의 미항 항주(杭州)의 소설가
원나라 당시 하급 관리
명나라 당시 소설 창작
본관 예장(豫章) 예장(豫章) 나(羅) 씨
예장 나 씨 13세손 초명 나본(羅本, 자명 나관중(羅貫中))
중국 산서성(山西城) 여릉(廬陵) 출신
자 관중(貫中)
본명 나본(羅本, 罗本, Luo Ben(러벤))
호 호해산인(湖海散人)
부 나금(羅錦)의 둘째 아들(항원운동에 가담했다고 해서 족보에서 삭제)
조부 후당조 청서현 복야 나중상(羅仲祥)
부 청서현 사리 나금(羅錦, 청서현 사법부 서기관직)
―1314년~1320년 중국 원나라 인종조 비단상•소금상
처 노(盧) 씨
자녀 5남
1남 나학재(羅學財)
2남 나학원(羅學源)
3남 나학무(羅學茂)
4남 나학성(羅學盛)
5남 나학래(羅學來)
1330년경 원(元)나라 문종(文宗) 복위 2년 1세 중국 원나라 산서성 여릉(廬陵)에서 산서성 태원시 청서현 관리 나금(羅錦)의 아들로 출생
1336년 원나라 혜종 4년 7세 사서오경 학습
1340년 원나라 혜종 8년 11세
1343년 원나라 혜종 11년 14세 모친상. 아버지를 따라 소주와 항주 일대에서 비단상과 소금상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상업에 흥미를 잃고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당대 유명 학자인 조보풍의 사사를 받기 위해 자계시(慈溪市)로 이동
1353년 원나라 혜종 21년 24세 소금 운반원 출신 군벌 장사성(張士誠, 1321년 생~1367년 12월 9일 몰)이 원나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고, 군벌 장사성이 나관중 가문과 상업적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유추된다.
1354년 원나라 혜종 22년 25세 군벌 장사성이 대주(大周)를 건국하고 왕으로 자칭하자, 원나라에서 장사성을 진압하기 위해 최영 장군의 고려군 원정
1355년 원나라 혜종 23년 26세 항주에 정착해서 많은 작가들과 교유
1356년~1357년 원나라 혜종 24년 27세~원나라 혜종 25년 28세 원나라 혜종 16년 스승 조보풍을 떠나 농민 봉기군 지도자 장사성의 모사로 근무. 장사성이 나관중의 제의로 주원장의 부하 강모재와 싸웠으나 장사성의 동생이 생포되자 원나라에 투항. 원나라의 몰락으로 장사성이 반란 활동 복귀
1363년 9월 원나라 혜종 31년 34세 원나라로부터 독립해서 오왕(吳王)을 자칭하는 장사성을 떠나 고향으로 낙향해서 중국 산서성 태원시 청서현(淸徐縣)에서 학문 연구
1364년 원나라 혜종 32년 35세 지정(至正) 갑진(甲辰)년 지인 가중명(賈仲明)과 재회(가중명의 『녹귀부속편』(錄鬼簿續編)에 나관중의 본적이 태원(太原)시(현 산서성)이며, 나관중과 가중명이 마지막 재회를 했다고 기록)
1366년 원나라 혜종 34년 37세 항주 복귀
1367년 9월 원나라 혜종 35년 38세 장사성이 평강성 함락으로 47세에 자결; 장사성의 죽음을 기화로 나관중이 항주에서 『삼국지연의』 집필(도원결의, 삼고초려, 적벽대전, 등장인물 제갈량 등이 이 당시 소설화됨); 『수호전』의 공동 저자 시내암이 소주에서 흥화로 이동; 중국 하남성(河南城) 학벽시(鶴壁市, 허비시) 허가구촌(許家溝村)에 정착해서 집필 활동
1368년경 원나라 혜종 36년 39세 『삼국지연의』 간.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명나라 건국
1370년 명(明)나라 태조(太祖)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 3년 41세 12권의 저서 집필. 시내암 사망
1371년 명나라 홍무 4년 42세~1377년 명나라 홍무 10년 48세 『수호전』 수정판 및 여러 사서 집필
1380년 명나라 홍무 13년 51세
1390년 명나라 홍무 23년 61세
1398년 명나라 홍무 31년 69세 명나라 홍무제 사망
1400년 명나라 혜종 건문제(建文帝) 2년 71세 중국 항주시(杭州市, 항저우시)에서 서거, 향년 71세
묘역
중국 산서성 태원시 허완촌
배향
중국 산서성 태원시 허완촌 나가사당
1522년
명나라 가정 1년 『삼국지연의』 최초 판본 가정본(嘉靖本, 또는 나본(羅本)) 간
1679년
청나라 때 모종강 부자본 『삼국지연의』 모본(毛本) 간
1973년
이경선 저 「삼국지연의의 정통사상」, 『중국문학』 제1권, 한국중국어문학회(논문)
1983년
홍순효 저 『삼국연의연구』, 국립대만사범대학 국문연구소, 박사학위논문
1986년 6월 중국 청서현 나 씨 22대손 나예종(羅禮中)이 보관하던 『나씨가보』(羅氏家譜)에서 나관중의 족보 발견
1989년
조진걸 저 『나관중전기』(羅貫中傳奇), 농촌독물출판사 간
1990년
나관중 저 『삼국지』, 중국고전문학전집, 어문각 간
1992년
요중걸 저 『나관중신탐』(羅貫中新探), 중국고적 간
1993년
이행도 저 『이행도집공문경집나관중집』(李行道集孔文卿集羅貫中集), 산서인민출판사 간
1995년
김문경 저 「나관중(羅貫中)의 본관(本貫)에 대하여」, 『중국학보』, 제35권, 한국중국학회(논문)
1990년대 중반 나관중의 고향 중국 산서성 태원시 허완촌에서 나가사당이 발견되었고, 사당 주변에서 나관중과 나씨 선조들의 위패, 족보, 나관중이 유년 시절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벼루 그리고 나관중의 무덤 발견
1998년
서중위 저 「제갈량형상급기문화의온(諸葛亮形象及其文化意蘊): 제갈량의 이미지와 그 문화적 의미」, 『연구논총』 제4권, 영동대학교(논문)
민관동 저 「『수호전』의 국내 수용에 관한 연구」, 『중국소설논총』 제8권, 한국중국소설학회(논문)
1999년
정원기 저 「나관중관적(羅貫中貫籍)에 관한 연구동향」, 『중국어문논역총간』, 중국어문논역학회, 제4권
2000년
나관중 외 저, 원종민 역 『신 수호지』, 중국어문화원 간
나관중 저, 왕가령 편역 『삼국연의』, 대만 한문본, 세일문화사업고빈유한공사 간
호세후 저 『삼국연의여나관중』(三國演義與羅貫中), 중주고적 간
2002년
김종철 저 「『삼국지연의』와 『적벽가』」, 『국제학술대회』 제8호, 중한인문과학연구회(논문)
2003년
나관중 저, 김구용 역 『삼국지연의』, 2판, 솔 간
김옥란 저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에 대한 역사적 고찰」, 『한중인문학연구』 제11권, 한중인문학회(논문)
2005년
한승옥 저 「이광수의 <이순신>과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대비 연구」, 『한중인문학연구』 제16호, 한중인문학회, 67~86쪽. PDF <논문>
나관중 저, 나채훈 역 『전략 삼국지』, 삼양미디어 간
이민경 저 「반조조(反曹操)현상 및 그 원인 연구: 《삼국지(三國志)》에서 《삼국연의(三國演義)》에 이르기까지」, 부산대학교 대학원(국내석사논문)
김선창 저 「삼국시대의 정치사상 연구: 조조(曹操)와 유비(劉備)를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국내석사논문)
나관중 저 『삼국지』, 민음사 간
2006년
성영창 저 「《삼국연의》의 유비 형상 연구: 유비 이상화의 원인 및 의의를 중심으로」, 부산대학교(국내석사논문)
윤진현 저 「한국어판 애니메이션 <삼국지>의 종류와 변용」, 『대중서사연구』 제16호, 대중서사학회(논문)
홍상훈 저 「≪삼국연의≫의 정통성에 관한 고찰」, 『중국문학』 제47권, 한국중국어문학회(논문)
2007년
이혜민 저 「조조 산문의 내용연구」, 울산대학교 교육대학원(국내석사논문)
남민수 저 「2007년도(年度) 상반기(上半期) 전국학술대회(全國學術大會) 발표논문(發表論文): 《삼국연의(三國演義)》중의 위진명사(魏晋名士)-옹류반조(擁劉反曹)의 경향을 중심으로-」, 『중국어문학』 제49호, 영남중국어문학회(논문)
정학성, 김진공, 홍상훈, 이영태, 조성면, 윤진현, 권용선, 정호웅, 박상규, 김석회 공저 「삼국지연의 한국어번역과 서사변용」, 한국연구재단(NRF)(연구보고서)
2008년
나관중 저, 박태원 역 『박태원 완역 삼국지』, 깊은샘 간
박재원 저 「『삼국지』의 체제 및 서술의 특징」, 충북대학교(국내석사논문)
2009년
나관중 저, 박종화 역 『월탄 박종화 삼국지』, 달궁 간
김옥란 저 「한∙중 양국의 「삼국지연의」 장르 변모 양상」, 인하대학교 대학원(국내박사논문)
강재인 저 「≪삼국연의≫ 시가 연구: 제갈량(諸葛亮)과 관련된 시가를 중심으로」, 경상대학교 대학원(국내석사논문)
유태규 저 「조조의 인물 성격 고찰: ≪삼국지≫와 ≪삼국연의≫를 중심으로」, 『한국교통대학교 논문집』 제44권, 충주대학교(논문)
이윤경, 신현일, 구자을, 김학용 공저 「소설 삼국지 등장인물 네트워크의 동적 변화 분석」,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9권 제4호, 한국콘텐츠학회(논문)
김옥란 저 「『삼국지연의』의 신화적 모티프 수용」, 『동양학』 제45권,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0년
박지민 저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연의》 비교 분석」, 경희대학교(국내석사논문)
단정, 이우정 저 「유≪삼국연의≫투강행위간나관중적투강관」(由≪三国演义≫投降行为看罗贯中的投降观), 『중국인문과학』 제46호, 중국인문학회(논문)
박재연 저 「논문(論文): 새로 발굴된 조선(朝鮮) 활자본(活字本)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에 대하여」, 『중국어문논총』 제44호, 중국어문연구회(논문)
2011년
나관중 저 『삼국연의』, 한문 및 한글번역, 유페이퍼 간(전자책)
나관중 저, 정소문 역 『(고본완역) 삼국지연의』, 전통문화연구회 간(전자책)
나관중 저, 김재두 역 『수당지 세트』 전 5권, 학고방 간
나관중 원작, 김민수 저, 이현세 그림/만화 『(이현세 그림 처음으로 만나는) 삼국지 세트』 전 5권, 녹색지팡이 간
나관중 저, 김재두 역 『오대지』(원제: 잔당오대사연의), 학고방 간
나관중 저, 이원길 역 『수호전』, 대중화문고 중한대역, 연변인민출판사 간
2012년
이나미 리츠코 저, 이목 역 『중국 문학의 파노라마 2: 나관중에서 루쉰까지』, 문학의 광장 19, 웅진지식하우스 간
권혁찬 저 「Rewriting Three Kingdoms: The Practice by Modern Korean Writers of Translating/Revising a Chinese Classic」, 『중국문화연구』 제20호, 중국문화연구학회
이은봉 저 「역사에서 또 하나의 역사로-한국과 일본에서의 <삼국지연의> 수용」, 한국연구재단(NRF)(연구보고서)
2013년
나관중 저 『나관중의 잔당오대사연의』, 이미지한의원 간(역사 소설, 전자책)
나관중 저, 강성욱 역, 요시카와 에이지 편 『삼국지 세트』 전 10권, 문예춘추사 간
나관중 저 『삼수평요전』, 유페이퍼 간(전자책)
나관중 저 『위촉오 삼국전쟁 120장면』, SINYUL 간(전자책)
나관중 저, 홍성민 저 『수당양조사전』, 유페이퍼 간(전자책)
2014년
나관중 저, 리동혁 역, 예슝 그림/만화, 모종강 엮음 『본삼국지』, 특가판 나관중 정본, 금토 간
나관중 원작, 모종강 개정, 박기봉 역주 『삼국연의』, 비봉출판사 간
홍덕구 저 「총동원체제기 ‘삼국지’ 연구: 번역 양상과 정치성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국내석사논문)
조치성 저 「「임진록」·「유충렬전」과 「삼국지연의」의 창작방법 비교 연구」, 가천대학교 대학원(국내석사논문)
홍윤기 저 「조조(曹操) 간웅(姦雄) 형상(形象)의 기원(起源)과 변천(變遷)」, 『中國學論叢』 제43호, 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논문)
2015년
나관중 저, 리동혁 역, 예슝 그림/만화 『본삼국지』, 나관중 정본, 중국12원전 완역 정통 진본, 금토 간(전자책)
나관중 저, 정비석 역 『삼국지』 전 6권 합본, 은행나무 간(전자책)
주금단 저 「『삼국지연의』의 여성인물 연구」, 국민대학교 대학원(국내석사논문)
2016년
나관중 저, 박을수 역 『역주 삼국연의 성어용례사전』, 보고사 간
2017년
나관중 원저, 박기봉 역주, 모종강 개정 『삼국연의』, 비봉출판사 간(전자책)
나관중 저 『잔당오대사연의전』(殘唐五代史演義傳), 원서로 읽는 중국 고전, 페이퍼문 간(전자책)
나관중 저 『분반루전전』(粉粧樓全傳), 원서로 읽는 중국고전, 페이퍼문 간(전자책)
나관중 저 『평요전(平妖傳)』, 원서로 읽는 중국고전, 페이퍼문 간(전자책)
주영봉 저 「『홍길동전』과 『수호전』의 비교 연구」, 공주대학교 대학원(국내석사논문)
2018년
나관중 저, 조성기 정역 『삼국지 세트』, 카멜레온북스 간(전자책)
나관중 저, 차정식 역, 강병국 감수 『사자성어 삼국지』, 진한엠앤비 간(전자책)
2019년
나관중 저, 송도진 역, 모종강 개정 『삼국지 세트』, 정사 비교 고증 완역판, 글항아리 간(전자책)
나관중 저, 모종강 저, 리동혁 역, 예슝 그림/만화 『본삼국지 세트』, 중국 12판본 아우른 세계최고원본, 최종 원색 완성본, 전 4권, 금토 간
나관중 저 『삼국지』, 중국 한문 원본, 부크크(Bookk) 간(POD)
조현주 저 「<<평요전>> 신마 서사의 형성과 전승」, 고려대학교 대학원(국내박사논문)
2020년
나관중 저, 이문열 평역 『이문열 삼국지 세트』 전 10권, 정문 그림/만화, 알에이치코리아 간
나관중 원작, 요시카와 에이지 편, 바른번역 역 『삼국지 원전 세트』 전 10권, 코너스톤 착한 고전 시리즈 5, 완역판, 코너스톤 간
나관중 저, 황석영 역 『삼국지 세트』 전 6권, 개정판, 창비 간
나관중 저, 모종강 저, 지민준 역, 브레윗 테일러 역 『영한대역 삼국지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큰글자도서, 다산 리더스 원, 비욘드올 간
정지호 저 『진수의 『삼국지』 나관중의 『삼국연의』 읽기』, 세창명저산책 74, 세창출판사 간
김종현 저 「『삼국지연의』의 ‘의로움(義)’이 갖는 복합적 의미」, 『인문사회과학연구』 제21권,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논문)
옥주, 민관동, 「소설 『삼국지』의 회목변화에 대한 고찰」, 『중국학보』 제92권, 한국중국학회(논문)
신정원, 정동 공저 「유비(劉備)와 조조(曹操)의 리더십 비교: “자질과 역량” 분석을 중심으로」, 『인문사회』 제11권 제2호, 인문사회21(논문)
2021년
나관중 저, 차평일 역 『소설 삼국지』, 파주Books 간
김영준 저 「한일 삼국지의 정체성과 영웅성 변용양상: 요시카와(吉川), 요코야마(横山), 고우영 삼국지 비교를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국내석사논문)
2022년
나관중 저, 고정욱 저 『고정욱 삼국지 세트』 전 10권, 애플북스
나관중 저, 오승은 저, 시내암 저 『중국 3대 고전 세트: 삼국지∙서유기∙수호지』 전 3권, 혜민북스 간
왕앵비 저 「중국 고전의 현대적 수용 연구: 『삼국지연의』 영상콘텐츠를 중심으로」, 국민대학교(국내박사논문)
홍윤기 저 「조선 숙종 <대한조충절무안왕찬양명(大漢朝忠節武安王贊揚銘)>에 나타난 관우에 관한 의식의 근원」, 『중국학논총』 제78호, 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논문)
민관동 저 「《삼국연의》의 병법연구」, 『중국소설논총』 제66권, 한국중국소설학회(논문)
2023년
나관중 저 『삼국지연의』 전 6권, 솔과학 간(전자책)
나관중 저 『삼국지 축약본』 전 7권, 부크크(Bookk) 간(전자책)
홍윤기 저 「조선 숙종 <대한조충절무안왕찬양명(大漢朝忠節武安王贊揚銘)> 주석과 번역—나관중의 ≪삼국지통속연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중국어문논총』 제112호, 중국어문연구회(논문)
옥주, 민관동 공저 「『삼국연의』의 삽입구 연구」, 『규장각』 제62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논문)
저서
소설 5종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삼국지연의, 삼국지; 진수(陳壽)의 『삼국지』와 삼국 설화, 삼국희(三國戱) 등을 바탕으로 창작한 삼국에 관한 이야기)
『수당양조사전』(隋唐兩朝志傳)
『잔당오대사연의』(殘唐五代史演義)
『삼수평요전』(三遂平妖傳)
『수호전』(水滸傳, 시내암(施耐庵) 공저) 등
잡극 3종
『조태조용호풍운회』(趙太祖龍虎風雲會, 풍운회(風雲會), 현존)
『연환간』(連環諫)
『비호자』(蜚號子) 등
『소진왕사화』(小秦王詞話)
『분반루전전』(粉粧樓全傳)
기타 희곡, 통속 소설
* 나관중의 생몰 연도: 나관중의 생몰 연도는 미상이다. 생몰 추정 연도는 노신(魯迅)에 따르면, 1330년경~1400년경이라고 하고, 다른 학자들은 1315년~1318년경 출생~1385년~1388년경 몰, 또는 1310년 전후 출생~1380년 전후 사망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어떤 학자는 나관중의 출생 연도를 1334년 3월 30일이라고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나관중」, 『삼국지사전』 참조).
* 나관중의 출생지: 나관중은 1330년경 중국 원나라 산서성 여릉(廬陵)에서 산서성 태원시 청서현 관리 나금(羅錦)의 둘째 아들로 출생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중국 산서성 태원시 청서현(淸徐縣) 출생설도 있다. 청서현은 나관중의 조부와 부친이 관리를 했던 곳이므로 나관중이 유년 시절을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청서현이 나 씨 집성촌으로 청서현 부근에 나 씨 후손 2,6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외 진중 개휴시(介休市) 의안촌, 산동성 덕주시 평원현 소송장 등지가 나 씨 집성촌이다. 한편, 중국 산서성(山西城) 태원시(太原市, 타이위안시) 진중 치현 허완촌(河灣村) 나씨종사(구 중국 산서성 병주(竝州) 태원부 추정) 부근에서 출생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곳은 나관중이 말년을 보낸 곳이라는 설도 있다. 결론적으로, 나관중은 1330년경 중국 산서성 여릉에서 출생했으며, 청소년 시절 산서성 태원시에서 43km 거리에 있는 청서현으로 이동했다. 이 거리는 산서성 치현에서 청서현 사이의 거리로 추정되며, 나관중이 유년 시절을 산서성 치현에서 성장했다고 추정된다. 아버지가 관리로 지낸 산서성 태원시 청서현에서는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청년 시절은 중국 각지를 여행하며 방랑 생활을 했고, 결국 남방 항주에서 성년 시절을 보내게 된다. 말년에는 산서성 태원시 허완촌 나씨종사 부근에서 보냈다는 설도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위대한 소설가 나관중은 자신의 성년 시절을 작가로서 보낸 아시아의 미항 항주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무덤은 중국 산서성 태원시 허완촌에 소재한다.
* 나관중의 호 호해산인(湖海散人): 나관중의 호 호해산인이 방랑객 문사라는 의미에서 떠돌이 방랑 문인 가극 집단에 소속된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릴 만큼 연극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의 셰익스피어 나관중은 아시아의 미항 항주에서 작가로서 정착해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게 되었다.
*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는 중국 명나라 때 나관중이 지은 역사 소설의 원제목이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나관중의 『삼국연의』(三國演義)』의 조선어 번역본의 제목이기도 하다. 흔히, 소설 『삼국지』라고 하며, 그 외 『삼국연의』, 『삼국대전』, 『삼국지전』이라고도 불리었다. 나관중이 쓴 『삼국연의』는 원본이 남아 있지 않으며, 가정 연간 간행 가정본(嘉靖本), 가정 연간 이후 지전본(志傳本), 문인 모종강(1632년경~1709년경) 작 모종강본(毛宗崗本) 등이 남아 있다. 모종강본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모본(毛本)은 나관중의 원본에 비해 역사 기술이나 평가에서 완화되고 유연한 입장이 가미되었다고 한다. 한편, 진수의 사서 『삼국지』를 문학적으로 재해석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역사적 사실성에서 60%의 신뢰도를 보이며, 그 밖의 역사적 전거들을 덧붙인 내용들을 포함하면 전체적으로 70%의 역사적 사실성을 보유했다고 학계에서 평가하기도 했다.
1569년 조선 시대 선조 2년 『삼국연의』가 『삼국지통속연의』로 국역되어 조선에 처음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200여 종의 이본이 필사본, 방각본, 활자본 등으로 전래되고 있으며, 그 외 『적벽가』(赤壁歌)와 『화용도』(華容道) 등의 번역본과 번안본도 있다(「삼국지통속연의」, 『민족백과』 참조).
『삼국연의』는 서기 184년 후한 영제 중평 원년 황건적의 난부터 280년 진나라 무제 태강 원년 사이 3세기 중국 삼국 시대(위나라, 촉나라, 오나라 시대) 97년간에 걸친 중국 고대 역사 이야기이자 고전 역사 소설이다. 진수(陳壽)의 사서 『삼국지』(三國志)를 토대로, 중국의 민담과 설화를 가미하여 중국 고대인의 역사를 이야기로 쓴 중국과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걸작 소설이다. 총 1,798명에 달하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생생한 고대사의 역사적 재현물로서 중국인의 “인민성”(人民性)을 총체적으로 재현한 중국 최고의 걸작 소설이라고 평가된다(나관중과 “삼국지연의,” China Radio International, CRI, <https://korean.cri.cn/1620/2014/ 09/16/1s217793.htm> 참조). 본래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라는 제목으로 총 24권이 완성되었으며, 후에 『삼국연의』(三國演義)로 알려졌고, 영어 번역본은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라고 한다. 나관중은 강담의 이야기책을 기본 소재로 해서 구어체 형식의 장편 소설로 확장시킨 중국 최초의 역사 소설가라고 알려져 있다. 군담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후세의 비평가들에게는 중국 최초의 장편 역사 소설이자 중국 연의 소설의 “본보기”라고 한다(「나관중」, 『삼국지사전』 참조).
* 연의(演義) 소설의 “본보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중국 연의 소설의 “본보기”라고 한다. 289년 진수의 사서 『삼국지』는 기전체 역사 기록이다. 사서 『삼국지』와 달리,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사서 『삼국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술을 구어체 형식으로 소설화해서 역사적 사실과 역사 기술을 문학 형식으로 알기 쉽고 재미있게 부연해서 설명한 소설이다.
*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이와는 상대를 하지 말라”: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상대하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으면, 세상사에 도통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으면,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니 상대할 필요조차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으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도 한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으면,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삼국지』가 보여주는 세계가 깊고 심오한 세상의 진리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삼국 간의 전쟁으로 인구가 급감하던 난세의 전쟁사임에도 세상사의 처세와 인생을 위해 배울 것이 매우 많다는 의미이다. 아무튼,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자와는 상대하지도 말고, 이야기하지도 말고, 인생을 논하지도 말라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니, 다시금 『삼국지』의 가치를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는 성경을 제외한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서 끊임없이 읽히고 회자(膾炙)되고 있다.
* 『수호전』(水滸傳): 나관중의 『수호전』(水滸傳)은 중국 4대 명저의 하나로서, 시내암(施耐庵)과 공저로 알려져 있다. 청년 나관중은 평소에 중국 민간전설의 수집에 열중해 총 36가지 전설을 모아 『수호전』을 72줄거리고 늘리는 데 기여했다. 그는 중국 전역을 떠돌며 민간전설을 수집했고, 각처에서 이야기꾼으로 노잣돈을 벌어 하북성과 강소성 북부까지 여행을 했다. 그러다가 강소성에서 벗 시내암(施耐庵)을 만났고, 그의 추천으로 원나라 말엽 군벌 수령 장사성(張士誠, 1321년 생~1367년 12월 9일 몰)의 휘하에서 참모역 모사(謀士)로 근무했다. 전당(錢唐)에서는 시내암과 『수호전』(水滸傳)을 공동 저술하기도 했다.
1367년 나관중이 항주에서 『삼국지연의』를 집필할 당시, 『수호전』의 공동 저자인 시내암이 소주에서 흥화로 이동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370년에 시내암이 사망했고, 1371년 명나라 홍무 4년 나관중 나이 42세에서 1377년 명나라 홍무 10년 48세 사이에 나관중이 여러 사서와 함께 자신의 공저 『수호전』 수정판을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관중과 그의 벗 시내암이 공동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수호전』은 나관중의 청년 시절 전당에서 공동 저술했으며, 『수호전』 72가지 이야기의 절반인 36가지 전설을 나관중이 덧붙였다. 기존에 알려져 있는 『수호전』의 저술은 시내암이 저술한 것을 나관중이 시내암 사망 후에 수정판으로 재집필했다는 설이 있고, 전당에서 『수호전』을 공동 집필하면서 시내암이 70장을 저술하고, 나관중이 30장을 저술했다는 설도 있다.
결론적으로, 『수호전』의 저술은 나관중이 전체 72가지 전설 가운데 나관중 자신이 수집한 36가지 전설을 덧붙여 절반의 기여로 공동 집필했으며, 시내암 사망 후에 나관중이 독자적으로 수정판을 재집필해서 간행한 나관중의 창작물이다.
* 나관중의 생애: 중국 원나라 여릉(廬陵, 현 강서성 길안(吉安))에서 출생해서 어려서부터 항원 의식이 강해서 아버지가 나관중을 산서성 치현에서 43km 떨어진 태원시 청서현으로 피신시켜 그곳에서 학업을 하게 했다고 한다. 나관중의 아버지가 원나라에 불만을 품은 나관중을 숨기기 위한 목적이었고, 원나라의 정치적 규제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나관중은 고향 집에서 멀리 떨어진 태원시에서 학업과 일을 겸하게 되었다.
산서성 태원부에서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내며 친구이자 먼 친척인 주서(周敍)와 과거 동기였지만, 주서는 합격하고 나관중은 과거에 계속 떨어지자, 아버지의 소금장수 일을 돕거나 마을 찻집에서 원대(元代) 삼국희(三國戱)를 보고 들으며 시간을 소일하고 삼국 희곡을 거의 암송했다고 한다. 그러나 청년 나관중은 아버지의 직업인 소금장수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중국 민간전설의 수집에 열중해 총 36가지 전설을 모아 『수호전』을 72줄거리로 늘리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나관중은 중국 전역을 떠돌며 민간전설을 수집했고, 각처에서 이야기꾼으로 노잣돈을 벌어 하북성과 강소성 북부까지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강소성에서 벗 시내암(施耐庵)을 만났고, 그의 추천으로 원나라 말엽 군벌 수령 장사성(張士誠, 1321년 생~1367년 12월 9일 몰)의 휘하에서 참모역 모사(謀士)로 근무했다. 중국 원말 군벌∙대주국 대공(大公) 장사성의 모사로 항원운동(抗元運動)을 본격화한 것이다. 전당(錢唐)에서는 시내암과 『수호전』(水滸傳) 공동 저술하기도 했다.
나관중이 성장해서 성인이 되고 정치의식이 날로 더해감에 따라 나관중의 아버지는 나관중을 타향으로 은신시키기로 결정하고, 남방 지역 숙부에게 보냈다. 고향에서 떨어진 태원시에 머물러도 나관중의 항원 활동과 원나라의 감시가 가라앉지 않았던 것이고, 결국 아버지 나금(羅錦)의 결정으로 미래의 작가 나관중은 아시아의 미항 베니스라고 알려진 타향 항주(杭州)의 숙부댁으로 가게 된다. 나관중은 성년 시절과 그 이후의 인생을 항주에 정착해서 보냈다.
나관중은 원말 군벌 장사성의 참모로 활동했지만 크게 뜻을 펴지는 못한 듯하며, 장사성이 원나라에 투항하자, 나관중은 다시 강서성 항주로 피신해 정치적 은거 생활을 했다.
원나라 멸 후에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유기(劉基)를 보내 나관중을 초빙했지만, 그는 간곡히 거절하고 창작에만 몰두했다. 명나라 초 이후로 나관중은 여러 작가들이 활동하던 미항 항주에 정착해서 본격적인 작가로서 『삼국지연의』의 창작을 완성하게 된다. 한편, 그가 정착해서 『삼국지연의』를 창작한 곳이 중국 하남성(河南城) 학벽시(鶴壁市, 허비시) 허가구촌(許家溝村)이라는 설도 있고, 중국 산서성 태원시 허완촌은 나 씨 집성촌이라는 설도 있다.
나관중의 인간적 면모에 대한 평은 명나라 때 왕기(王圻)가 『패사휘편』(稗史彙編)에서 “왕업을 도모할 뜻이 있는 자”(有志圖王者)라고 간단히 기술했다. 나관중은 항원 군벌 장사성의 참모로 일하면서 대주 공신 장사성이 원으로부터 독립해서 왕을 자칭할 때 장사성과 결별하고 낙향했으며, 장사성은 끝내 원나라에 패하고 자결하는 비극적 결말에 이르렀다. 이 당시, 나관중은 젊은 혈기로 군벌과 같이 뜻을 펴고자 했지만, 시대적 한계를 느껴야 했을 것으로 후세의 비평가들은 평가했다.
나관중이 청년 시절부터 과거에 실패하고 원의 하급 관리에 머물거나 끊임없는 원의 감시와 간섭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한 정치적 갈등은 그가 태원시 치현에서 청서현으로 그리고 전국 기행을 거쳐 항주로 이주하기까지 계속되었다. 나관중의 정치적 신중성은 원대가 멸하고 명대가 시작되어 태조 주원장이 맹위를 떨치던 때에도 주원장이 유기(劉基)를 보내 나관중을 명조에 초빙했지만, 그는 간곡히 사양하고 묵묵히 작가의 길을 갔다고 한다. 결국, 나관중은 명대의 작가로서 명 태조 홍무제 주원장이 사망하고 2년이 지난 후에 향년 71세로 생을 마감했다.
* 나관중의 고향 허완촌: 나씨사당이 소재한 중국 산서성 허완촌은 나 씨 집성촌으로 현재는 1,400여 명의 나 씨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 입구는 옥수수밭이 길게 나 있고, 집성촌 주민들은 대부분 나 씨라고도 한다.
나씨사당은 명칭이 나가사당(羅家祠堂)이라고 하며, 2003년 1월 15일 중국 진중시 인민 정부에서 진중시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했다. 나가사당의 천당 대들보에 나관중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으며, 허완촌 여유국에는 천에 그려진 나씨 가계도와 나관중 집안의 족보 『신기』(神祇)가 보관되어 있었다. 족보에는 “왕조(명나라) 초기에 우리 선조 위 나본 자 나관중이 타향으로 가서 걸작을 남겼다”(本祖初, 吾祖諱本, 字貫中, 流他鄕, 有鉅作)는 기록이 있다. 유년 시절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벼루 뒷면에는 호해라는 나관중의 호가 적혀 있다고도 한다(“湖海置, 時年十六”)(홍우리 기자, 「<걸어서 삼국지기행-산시성편> 베일에 가려진 나관중 上-진중 치(祈)현 나씨사당」, 아주경제, 2012-02-06, <https://www.ajunews. com/view/20111024000022> 참조).
* 나관중 가문―청서현의 명문가: 조부 나중상(羅仲祥)이 사천성에서 태원시 청서현으로 이주해 복야를 역임했으며, 부 나금(羅錦)은 청서현 사법 서기관 사리를 역임했다. 나관중 가문은 대대로 독서인(讀書人)으로 유명했고 대대로 벼슬을 역임한 명문가였다. 청서현의 6개의 패루(牌樓) 가운데 4개가 나 씨 가문의 패루이며, 청서현에서 나 씨 성을 취한 지명만도 나가항(羅家巷), 나가장(羅家場), 나가장(羅家莊), 나가사(羅家詞) 등이 있을 정도로 태원시 청서현의 명문가임이 입증된다. 나관중의 아버지 나금은 관직 외에도 당시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이었던 소금과 비단을 거래하는 상업을 해서 많은 재산을 축적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지금도 중국 태원시 청서현 부근에는 수천 수만 명의 나 씨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 나관중고거(羅貫中故居): 나관중고거(羅貫中故居, 나관중고택)는 중국 산서성 태원시 동평현(東平縣) 나장촌(羅庄村)에 소재한다.
* 나관중 기념물: 중국 청서현에 삼국연의성(三國演義城)을 건립하는 등 나관중 기념관과 나관중 전시관이 건립되었고, 중국 TV사가 강소성 무석시에 삼국연의성 세트를 건립했다. 그 외에도 중국 각지에 나관중 동상, 나관중 석상, 나관중 패루 등의 나관중 기념물들이 있다. <끝> <나종혁 글>
* 참고 자료: 「나관중」, 『위키백과』; 홍우리 기자, 「<걸어서 삼국지기행-산시성편> 베일에 가려진 나관중 上-진중 치(祈)현 나씨사당」, 아주경제, 2012-02-06, <https://www.ajunews. com/view/20111024000022>; 「나관중」, 『삼국지사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