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눈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백비비가 웃었다.
난 벌써 남자의 마음을 바싹하게 알고 있거든요. 당신보고 가라고
재촉하면 할수록 당신은 더욱 가지 않으려 했겠죠. 주칠칠, 당신도 내게
이 점은 배워야 할 거에요. 당신이 나의 일할(一割)만 배운다면 이후에는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을 거예요.
주칠칠이 냉소를 쳤다.
내가 왜 너를 배우지? 네가 그렇게 남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면 어째서
심랑이 너를 좋아하지 않지? 내가 보기에는 네가 오히려 날 배워야 할 것
같은데?
백비비는 안색이 변했지만 곧 미소지었다.
넌 심랑이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느냐?
주칠칠이 고개를 쳐들고는 크게 외쳤다.
물론이다.
백비비가 부드럽게 말했다.
좋은 언니야, 잊지 말아요. 죽은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못한 다는 것을.......
주칠칠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두 눈에서 눈물 방울을 하염없이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백비비가 보는 악에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눈물은 언제나 사람 뜻에는 따라 주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을수록 눈물은 더욱 하염없이 흘려내렸다.
쾌락왕은 백비비를 안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심랑이 곧 제거되니 이제 본왕도 편안히 발뻗고 잘 수 있겠구나. 오늘은
정말로.......
웅묘아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발 뻗고 자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것 같군.
응?
당신은 자신의 최대 강적을 잊은 것 같군? 그녀는 심지어 우리보다
당신을 더욱 증오하지. 우리는 단지 당신의 목숨만 취할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당신의 살을 먹고 당신의 가죽을 이불로 삼으려 하고 있을 정도로
당신을 증오하고 있지.
쾌락왕이 미소 지었다.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는가? 누구지?
웅묘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바로 당신 품 속에 있은 사람이오.
쾌락왕은 백비비의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조용히 웃었다.
이 사람을 말하는 거였군.
웅묘아가 크게 외쳤다.
당신은 그녀가 유령궁주라는 것을 알고 있소?
쾌락왕이 크게 웃었다.
너는 본왕이 모를 줄 알았느냐? 본왕이 몰랐다면 그녀는 본왕의 품 속에
안기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유령궁주말고 그 누가 본왕의
아내될 자격이 있겠는가?
심랑은 몸을 한 차례 떨더니 목쉰 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당신은 그녀를 아내로 삼을 생각이오?
쾌락왕이 크게 웃었다.
본왕도 이제는 독신생활을 청산할 때가 됐지.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소? 그녀는 당신의.......
'딸이오’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심랑은 백비비에게 따귀를 맞았다.
백비비는 비수 같은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난 겨우 신랑감을 찾았는데 감히 중상모략할 건가요?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과...... 그는.......
백비비가 매섭게 외쳤다.
더이상 한 마디라도 말한다면 즉시 죽이겠어요.
왕련화가 갑자기 크게 웃었다.
유령궁주와 쾌락왕은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입니다. 심 형은 더이상
그들을 방해하지 마시오. 남의 좋은 혼사를 막는 것은 가장 부도덕한
일이오.
심랑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묵묵히 말을 잃었다.
백비비는 사뿐히 쾌락왕의 곁으로 가서는 매혹스럽게 웃었다.
지금 이 사람들은 모두 대왕의 사람이 됐어요. 대왕께서는 어떻게 그들을
대할 생각이신가요?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빨리 없앨수록 좋지.
대왕께서는 이들을 지금 죽이려는 건가요?
시간을 끌면 끌수록 변이 생길까봐 그렇지.
백비비가 눈동자를 한 번 굴리더니 생긋이 웃었다.
천첩이 대왕께 옛날 애기 하나를 들려 드릴까요?
쾌락왕은 그녀에게 왠 뚱단지 같은 옛날 애기를 하는지를 묻지도 않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
본왕은 네가 하고 싶은 말들은 언제나 듣고 싶다.
옛날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언제나 하늘 나라의 백조를 먹고
싶어 했었죠. 하지만 진정 하늘 나라의 백조는 아무리 애를 써봐도 얻지를
못했어요.
이 옛날 애기는 전혀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독특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하자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쾌락왕이 크게 웃었다.
이 세상에서 하늘 나라의 백조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은 적지 않을 거야.
하지만 누가 정말로 먹어 봤을까?
하지만 그는 행운이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죠. 한참 동안을
찾다가 드디어 한 조각의 백조 고기를 얻게 됐어요. 그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단숨에 삼켜 버렸지요.
그 사람은 상당히 성미가 급했군.
이후에 사람들은 그가 하늘 나라의 백조 고기를 먹은 것을 알게됐죠.
하지만 누가 그에게 백조의 맛이 어떠했냐고 물으면 그는 한 마디도
답하지 못했어요.
그것을 단숨에 삼켜버렸으니 자연히 맛을 모를 수밖에.
그렇게 힘들여 얻은 것을 단숨에 삼켜 버렸으니 어찌 아깝지 않겠어요?
그래서 나중에 사람들은 그가 백조 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부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바보라고 놀렸죠.
쾌락왕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면서 심랑을 주시했다.
그렇군. 본왕이 이리도 힘들여 너를 잡았는데 만약 단칼에 너를 죽인다면
그것은 너무도 아까운 일이야. 또 남들에게 바보라고 비웃음을 살 테지.
백비비가 조용히 말했다.
하물며 그들 모두에게는 아직 이용할 가치가 남아 있어요. 우리는 아직
저들의 단물도 다 빨지 않았는데 먼저 버릴 필요는 없잖아요?
쾌락왕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렇듯 현명한 내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남자에게는 큰 복이야.
그렇다면 이 네 사람은 어차피 네가 잡았으니 이들을 네가 맡아라.
백비비가 은방울 같은 웃음을 흘리며 교태를 부렸다.
저들은 아마도 죽으면 죽었지 제 손에 들어오기는 싫어할 거예요.......
이제 심랑 등은 석실로 옮겨졌다.
석실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은 관처럼 차가운 돌로 된 땅바닥에
앉아서 거칠은 석벽에 기대었는데 몸은 온통 쑤시고 아팠다.
백비비는 손에 술잔을 들고 입구에 기대어 서서 웃음을 머금고 그들을
바라봤다.
모두들 오늘 밤 여기서 그런대로 주무세요. 내일이면 쾌락왕은 당신들을
데리고 갈 거예요. 나도 비록 그 곳에는 간 적이 없었지만 아마도 좋은
곳임에는 틀림 없을 거예요.
왕련화가 물었다.
쾌락왕이 집으로 돌아간단 말이오?
내일 아침이면 출발할 거예요. 이곳 쾌활림은 별로 미련을 둘 곳이 못
되잖아요?
왕련화가 중얼거렸다.
쾌락왕의 소굴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 다만...... 그는 왜 이
기회에 중원을 공격 안 하지? 왜 반대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백비비가 말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쾌락왕은 매우 조심스런 사람이라는 거예요.
자신없는 싸움은 절대로 하지 않아요. 그는 중원을 공격하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려는 거예요. 게다가.......
그녀는 생긋이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가 이번에 돌아가려는 것은 바로 나와 결혼하기 위해서지요.
심랑은 드디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 정말로 그와 결혼할 거요?
백비비가 깔깔대며 웃었다.
질투하나요?
잊지 마시오. 그는 당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말이오.
백비비의 매력적인 미소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그녀는 한 글자씩 내뱉었다.
그가 바로 내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에게 시집가려는 거예요.
심랑의 표정이 변했다.
당신...... 설마.......
백비비의 선녀 같은 눈길이 갑자기 마귀처럼 악독하게 변했다.
그녀는 악독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제 용의를 모르겠어요?
왕련화가 갑자기 말을 이었다.
난 벌써부터 알았소. 쾌락왕이 자신의 '부인'이 바로 자신의 친 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은 아마도 그를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할 것이오.
그는 다시 크게 웃었다.
어찌됐든 그도 사람임에는 틀림없으니까.
백비비가 잔인한 웃음을 지었다.
날 이해하는 것은 당신이군. 확실히 우리 몸에 흐르는 피는 같은 것이야.
그것은 바로 악마의 피야, 그리고 그 피는 백 가지 독을 담가놓은
것이지.
맞아, 이 지독한 피는 그에게 물려받은 피지. 하지만 결국은 지금 자신을
죽일 줄이야.
웅묘아는 그들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몸서리를 치며 중얼거렸다.
이런 남매가 있을 줄이야...... 또 이런 부자지간이 있을 줄이야......
이들 부자의 몸에 흐르는 피는 정녕 악마의 피란 말인가? 이런 피는
정말로 유전되서는 안 될 거야.
주칠칠이 목메인 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쾌락왕을 미워하면 됐지 왜 우리들을 다치게 하는 거지? 왜지?
우리가 너와 대체 어떤 원한을 맺었단 말이냐?
백비비가 말했다.
내가 왜 그대들을 죽이려 하냐고? 그야 이유가 많지.
말해 봐! 어서 말해 봐!
내가 만약 그대들을 쾌락왕에게 바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겠어? 그대들은 바로 내 출세하는 도구가 된 거야. 이것이
첫번째 이유야.
주칠칠이 참담하게 웃었다.
또다른 이유가 있단 말이냐?
물론 있지. 나는 불행한 사람이야. 내 일생의 운명은 이미 비참한 결과만
남았을 뿐이지. 난 절대로 당신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놔두지 않을
거야.
그녀의 말소리는 느릿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칼처럼 예리한 원한과
증오심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증오했고 그 자신마저도
증오했다.
그녀는 앙천대소하였다.
다만 내 힘이 모자라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지. 그렇지 않고 내게 충분한
힘이 있었다면 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이고 싶었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이고 싶어.
주칠칠이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재미로 살지?
나? 당신은 내가 살아 있는 줄 아나?
그녀는 깔깔대며 웃더니 말을 이었다.
말해주지. 난 철이 들 때부터 이미 '죽음'을 위해 살았어. 생명은 그토록
고통스러운 것이니 난 언제나 죽는 순간의 쾌락만을 상상하고 있었지.
주칠칠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더이상 말을 못했다.
심랑은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 마음 속에는 오로지 원한 밖에 없소?
백비비가 '획’하고 몸을 돌리자 술잔 속의 술이 전부 땅에 쏟아졌다.
그녀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죽음과 원한 뿐이죠. 내 눈에는 이 두 가지만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게 느껴지죠. '죽음'은 나를 살 수있게 지탱해 주고 '원한'은
나로 하여금.......
그녀는 깔깔대며 웃으며 문 밖으로 나가더니 '쿵’하고 석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 석실에서는 아직도 그녀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죽음...... 원한...... 죽음...... 원한.......
쾌락왕은 이튿날 아침에 쾌활림을 떠났다.
이것은 매우 위풍당당한 행렬이었다.
무수히 많은 큰 차량들과 무수히 많은 말들의 행렬이었다.
쾌락왕의 부하가 이토록 많을 줄이야! 이 사람들은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쾌락왕의 부하에 대한 규율의 엄격함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타인이 절대로 따를 수 없는 것이었다.
쾌활림의 주인인 이등용 부부와 초명금은 시종일관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이등용은 비록 죽었다지만 춘교와 초명금은 어디로 간 것일까?
물론 이런 사람들을 찾는 사람도 없었다.
쾌락왕이 거주하던 곳에는 갑자기 몇 사람이 적게 가거나 심지어는 몇십
명이 적게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물며 그 사람들은 매우 미약한
존재들이었다.
위풍당당한 행렬은 서쪽을 향해 갔다.
심랑, 주칠칠, 웅묘아, 왕련화, 네 사람은 한 차량에 꽉 차게 앉았다.
수레의 채 위에서는 네 대한이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을 감시하지 않아도 절대로 도망갈 수 없었다. 그들 은 이미
칠팔 군데의 혈도를 제압당해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맑은 날이었지만 길에는 먼지가 휘날렸다.
회색 먼지가 차창 안으로 들어와 심랑의 얼굴에 날렸다. 그의 얼굴에는
예전과 같은 찬란함은 없지만 그 입가의 미소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비록 이것이 죽음의 여행일지라도, 비록 죽음의 신이 그의 악에 와
있어도, 심랑은 그래도 웃어야 했다. 웃으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우는
얼굴로 맞이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이다.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와 말의 울부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렇게
한 오후를 다 보냈다.
갑자기 연지마 한 필이 달려오면서 백비비의 얼굴이 차창밖에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에 감도는 미소는 너무도 부드러웠고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녀가 손을 흔들자 수레의 채 위에 있던 대한이 즉시 뛰어 내렸다.
왕련화가 물었다.
우리들에게 먹을 음식을 갖고 왔소?
백비비가 부드럽게 말했다.
맞아요. 내가 어찌 당신들을 굶기겠어요?
그녀가 손을 들자 곧 하나의 보자기가 던져졌다.
보자기에는 훈제닭과 노루고기, 그리고 빵과 곱창이 있었다.
왕련화 등은 지난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오자 정말로 입 안에서 군침이 돌았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로 마음씨가 좋군요. 그런데 우리의 혈도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우리보고 어떻게 먹으라는 것이오?
백비비가 생긋 웃었다.
난 음식을 갖다 줬으니 이제 먹는 일은 당신들의 일이에요. 설마 나보고
먹여달라는 것은 아니겠죠? 쾌락왕이 아시면 얼마나 질투하겠어요?
그녀는 채찍을 휘두르고 요염하게 웃으며 말을 몰아갔다.
왕련화 등은 바로 눈 악에 음식을 두고도 먹지를 못하니 이는 세상의 그
어떤 형벌보다도 괴로웠다.
특히 웅묘아는 너무도 분해서 온 몸이 폭발할 듯했다.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눈을 멀뚱멀뚱하며 바라다 볼 뿐, 그는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으니 정말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흘렀을까. 청아하고 은방울 같은 웃음이 다시 창
밖에서 들려왔다. 백비비는 다시 머리를 들이밀더니 눈알을 돌리면서
웃었다.
아이고! 당신들은 정말 소식(小食)하는 군요. 음식들을 전혀 건들지도
않은 듯한데 혹시 맛이 없어서 그런가요?
그녀는 창문으로 손을 들이밀어 음식 보자기를 들고는 멀리 던졌다.
이들은 가는 동안에 계속 이런 괴로움을 받았다. 백비비는 아마도 남들이
고통스러워할수록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다.
이틀도 못 되서 그들은 완전히 엉망이 됐다. 주칠칠은 눈에 뛰게
초췌해졌고 웅묘아는 화가 치밀어 욕을 하고 싶어도 말할 기운이 없었다.
이튿날 황혼 무렵, 석양이 길가의 노란 모래를 비추자 천지는 온통 노란
것이 처량해 보였다. 그리고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처량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옥문관을 나가니 두 눈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웅묘아가 처참하게 웃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바로 이 두 마디의 싯귀를 들었지. 그때 나는
상상했었어. 처량하게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면서 웅장한 옥문관을 지나는
한 고독한 여행객을 비추고 있었고 그 여행객은 석양 아래 느긋하게
서쪽을 향해 말을 몰고 가는 거였지. 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한 폭의 그림이던가! 난 언젠가는 꼭 이곳에 올거라는 상상을 하곤
했었지.
이제 드디어 이곳에 왔군.
왕련화의 말에 웅묘아가 침울하게 말했다.
그래, 드디어 나도 이곳에 왔지. 하지만 이곳에는 처량하게 떨어지는
해도 없잖아! 웅장한 옥문관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난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아. 아마도 영원히 볼 수 없을 거야.
주칠칠이 전력을 다해서 크게 외쳤다.
묘아 오빠, 대체 왜 그렇게 변했어요? 왜 그렇게 자신을 잃었죠? 지난
날의 용기는 다 어디로 갔나요?
왕련화가 탄식을 했다.
당신은 모르고 있었소? 이 세상에 사람의 용기를 가장 많이 소모시키는
것은 바로 배고픔이오.
주칠칠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고 말하지 않았다.
이때 마차들이 갑자기 정지하면서 차창 밖에서 낙타의 방울소리가 들렸다.
몇 명의 대한들이 마차의 문을 열고는 심랑들을 어깨에 매고 내려갔다.
석양이 비치는 황사(黃沙)위에는 낙타행렬이 길게 일렬로 서 있었다. 어느
낙타 위에는 작은 천막이 쳐있는 것도 보였다.
눈에 힘을 주어 자세히 바라보니 악에는 모래바람이 휘날렸는데 이곳이
바로 옥문관을 나서서 만나는 첫번째 사막인 백룡퇴(白籠堆)였다.
여기서부터는 마차들도 한 걸음 나서기가 어려웠다.
대한들은 환호성을 터뜨렸고 곧 두 필의 낙타가 몸을 구부렸다.
웅묘아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건 뭐하는 거지?
그 대한이 냉랭하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사막의 배'라는 거다. 넌 얌전히 올라타 앉으면 된다.
말하는 사이에 웅묘아는 이미 낙타봉의 그 작은 천막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주칠칠은 침울하게 심랑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심랑과 함께 같은 천막에서
마지막 남은 인생길을 간다고 생각하자 대체 기뻐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몰랐다.
이때, 갑자기 백비비가 말을 몰고 오더니 깔깔대면서 웃었다.
이 높은 낙타에 앉아 석양의 사막을 걷는 것도 매우 시적(詩的)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주칠칠, 당신은 누구와 함께 앉고 싶지?
주칠칠은 이를 악물고 말하지 않았다.
백비비가 웃었다.
날 아는 척도 않겠다는 거군. 그렇다면 좋아.
그녀의 안색이 굳어지더니 곧 채찍 끝으로 왕련화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아가씨를 저 자와 함께 한 낙타에 태워라. 왕련화, 난 그래도 너에게
잘 대해 준다고 생각하는데, 그런가?
채찍을 휘두르면서 한껏 크게 웃고는 말을 몰고 갔다.
주칠칠은 억장이 무너졌다. 그녀는 목메인 소리로 외쳤다.
백비비, 부탁이에요. 제발 부탁이에요. 이것은 우리들의 마지막 가는
길인데 저와 심랑을 함께 타게 해주세요. 그럼 전 죽어도 당신께
감사드리겠어요.
하지만 백비비는 고개도 돌리지 애고 벌써 멀리 가버렸다.
왕련화가 조용히 말했다.
그만 하시오.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이 없소. 그리고 나와 심랑은 차이가
별로 없으니 나를 심랑이라고 여기면 아무 상관이 없잖소.
주칠칠은 이미 절망적인 눈길로 심랑을 바라보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불렀다.
심랑...... 심랑...... 심랑.......
이 순간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끊임없이 심랑의 이름만
외칠 뿐이었다.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는 슬픔과
원한이 가득했다. 심지어 옆에 있던 대한들조차도 차마 더이상 들을 수
없었다. 서로 깊게 사랑하는 연인들을, 그것도 죽음을 눈 악에 두고서
갈라놓으니, 이 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주칠칠이 또 어찌 애간장이 끊어지지 않겠으며 통곡을 하지 않겠는가.
심랑은 그녀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안심하시오. 이것은 절대로 우리들의 마지막 길은 아닐 것이오.
주칠칠은 통곡했다.
난 지금 죽고 싶을 따름이에요. 내가 지금 죽는다면 최소한 당신을
보면서 갈 수 있으니까요.
웅묘아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울분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어떠한 말로도 절대로 형용할 수 없는
울분이었다.
그는 갑자기 목메인 소리로 크게 외쳤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제발 저를 살게 해주십시오. 저는 이렇게
억울하게 줄을 수 없습니다.
모래 바람이 일어나면서 창공을 가득 채웠다.
그의 비통한 외침은 휘몰아치는 광풍 속으로 힘없이 사라졌다.
한 개의 나무판자가 교묘하게 낙타봉 사이에 걸쳐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천막은 바로 이 나무판자 위에 쳐 있었다. 낙타행렬은 모래 바람 속에서
행진했고 천막도 따라서 흔들렸다.
심랑과 웅묘아는 마치 풍랑 속에서 일엽편주를 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낙타 방울소리는 광풍 속에서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이 때 주칠칠은, 주칠칠은 더더욱 하늘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웅묘아는 아무 말도 없었다. 심지어 그는 심랑을 감히 쳐다볼 용기도
없었다. 그는 심랑을 보게되면 눈물을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심랑은 오히려 그를 조용히 쳐다봤다. 그들의 얼굴 사이는 한 척(尺)도
되지 않았다. 낙타봉 위에 친 천막이니 오죽 좁았을까.
밤은 이미 깊었다. 코 악 가까이 있는 얼굴도 점차 흐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쾌락왕은 돌아갈 마음이 급했는지 모래 바람을 무릅쓰고 밤길을
단행했다.
얼마 동안을 갔을까. 웅묘아가 드디어 얼굴을 들었다.
희미하게 나마 보이는 심랑의 안색이 매우 편안했다. 이 불가사의한
인내력은 거의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경지였다.
웅묘아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네는 뭘 생각하고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길이네.
하지만...... 하지만 자네는 우리에게 탈출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심랑이 약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있을 것이네.
웅묘아는 목이 메었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더 살 수 있겠나?
이 상황으로 볼 때, 백비비는 결코 우리들을 죽일 생각은 없는 것 같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결코 쾌락왕을 막지는 않았을 것이야. 어쩌면
그녀는 우리가 고통을 덜 받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야 고통을 안겨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녀는 결코 우리들을 죽이지
않을 걸세.
웅묘아가 비참하게 말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죽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나?
차이가 있네. 살 수만 있다면 죽음과는 결코 다르지. 그래서 우리들은
절대로 자포자기(自暴自棄)해서는 안 되네. 우리들은 반드시 백비비에게
괴롭힘을 당할 가치가 있도록 느끼게 해야 살 수 있을 것이네.
그는 잠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감을 갖는 것이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 하네. 살아 있어야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네.
웅묘아는 그를 바라봤다. 심랑은 온화했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는 눈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시련 속에서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그의
미소를 봤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인간들이 자랑으로 삼을 가치가 있는 전형적인
모범이었다.
웅묘아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부터 미소가 우러나왔다. 그는 탄식을
했다.
자네와 백비비는 정말로 너무도 다른 두 유형의 사람들이군. 그녀의 삶은
죽음과 원한을 위한 것이고 자네는 비록 죽어서도 역시 남들의 생사를
위해서.......
바깥에는 광풍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더욱 처참하게 들려왔다. 마치
요괴들의 고함소리 같았고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듯, 사람들의
영혼을 찢으려는 듯했다.
갑자기 악에서 우렁찬 외침소리가 들렸다.
서라! 천막을 쳐라! 서라! 천막을 쳐라!
외침소리는 계속 이어져서 울려퍼졌다. 광풍 속에서도 맨 악에서 맨
뒷줄로 전달됐다. 위풍당당한 낙타행렬은 드디어 완전히 멈춰섰다.
하지만 심랑과 웅묘아는 여전히 그 작은 천막에 남아 있었다. 밥 한 끼를
먹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와서 그들을 밖으로 옮겼다.
이 기간 동안에 그들은 아무소리도 듣지 못했다. 시끌시끌한 사람소리도
없었고 물건을 옮기는 소리도 없었다. 그리고 북치는 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바로 이 때,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큰 사구(砂丘)뒤에 쾌락왕의
호화로운 천막이 지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사오 개의 작은 천막이
그 양 옆으로 지어져 있었다.
두 대한이 그들을 가장 왼쪽의 천막 안으로 옮겼다. 천막 안은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구석에는 한 사람이 몸을 구부리고 있었는데 바로
주칠칠이었다.
주칠칠은 벌써부터 심랑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다시 심랑을
만나게 되자 그녀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찼고 동시에 갈망도 가득했다.
그녀는 심랑의 품 속에 들어가기를 갈망했다. 그녀는 심랑과 포옹하기를
갈망했다.
비록 이 한 번의 포옹이 그녀의 뼈를 가루로 만든다해도 그녀는 그것을
원했다.
그러나 심랑은 다른 구석에 옮겨졌다. 그들은 비록 한 척도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마치 하늘 끝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죽을 힘을 다했지만 심랑 쪽으로 한 치도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은 도저히 그의 긴 손과 단단한 그의 가슴에 닿을 수 없었다.
그녀가 그와 유일하게 닿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부드러운
눈길이었다.
그녀의 눈길은 이미 그와 하나로 융화됐다. 그것은 눈길만의 융화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생명의 융화이고 영혼의 결합이다. 이것들은 그 어떤
힘으로도 떨어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서로의 마음을 표시하려는 언어는 더이상 필요 없었다.
왕련화가 탄식을 했다.
심랑, 나를 탓하지 마시오. 그것은 내 뜻이 아니었소.
심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당신을 탓하지 않소.
왕련화가 쓴웃음을 지었다.
난 비록 그녀와 함께 같은 천막에 있었지만 정말로 괴로운 시간이었소.
그녀는 시종일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마치 내 목을 한
입에 물어 뜯으려는 듯했소.
그는 길게 탄식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난 사람의 원한이 그렇게 큰 위력을 갖게 될 줄은 몰랐소. 그녀는 단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노려 봤을 뿐인데도 나는 이미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소."
웅묘아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네가 그녀를 두려워한다고?
결코 그녀가 두려운 것이 아니오. 나는 다만 그녀의 눈길이 무섭다는
것이오. 그녀의 원망(怨望)어린 눈길은 그 어느 누가 봐도 무서워 할
것이오.
웅묘아는 잠시 침묵하더니 곧 한숨을 지었다.
맞아. 원한의 힘은 확실히 무섭지.
세상에서 '사랑'보다 더욱 무섭고 두려운 것은 바로 이 '원한'이라고
듣기만 했는데 이제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할 것 같소.
이 때 갑자기 천막 밖에서 한 사람이 큰소리로 말을 받았다.
그래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원한이죠.
말하는 사이에 백비비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금박을 한 두껍고 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금빛 끈으로 그녀의 산발된 검은 머리를 묶었는데
사막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 같았다.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부드럽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는 한 가닥의 냉혹하고 괴이한 빛이 흘렀다.
그녀의 눈길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 쓸고 지나갔다.
이제 여러분도 원한이 어떤 심정인지 체험했겠죠?
아무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칠칠은 증오심으로 인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백비비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이렇게 당신들을 대하는 것은 바로 당신들에게 원한을 품은 심정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에요. 지금껏 당신들은 진정으로 한 사람을 증오한
적이 있었나요?
그녀는 사뿐히 주칠칠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제 당신도 나를 증오하겠지, 그렇지?
주칠칠은 이를 악물고 그녀를 노려봤다.
백비비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난 단지 당신과 심랑이 한 낙타에 타지 못하게 했을 뿐이야. 이것은
남들의 눈에는 별 것이 아닌 일이지만 당신은 이미 나를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고 있어.
주칠칠이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넌.... 넌 뻔히 알면서.....
백비비가 말허리를 자르며 웃었다.
난 알고 있었지. 당연히 알고 있었지. 많은 사람들에게는 별것도 아닌
일들이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그 의미가 상당히 깊다는 것을 말이야.
주칠칠이 갑자기 목메인 소리로 크게 외쳤다.
그래, 난 너를 증오한다. 너를 증오해. 너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한다.
난 다만 심랑과 잠시 떨어져 있게 했을 뿐인데도 당신은 그토록 나를
증오하는군. 그러면 만약 당신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고 그 헤어져야 한 이유가 바로 다른 사람에게 몸을 더럽혔기
때문이며 나중에는 그녀를 더럽힌 사람에게조차 버림을 받게 됐다면.....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격해지면서 더욱 처참하고 매섭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녀가 순결을 빼앗길 때 태어난 아이였고 그
어머니는 자신의 순결을 빼앗은 사람을 너무나 증오했기 때문에 그
증오심은 자연히 그 아이에게 옮겨졌지.
그녀는 목이 메인 채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증오의 대상이 됐지. 그 아이는 사는
동안에는 다만 증오심만 있을 뿐, 사랑의 세계는 있을 수 없었지. 바로 그
아이의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조차도 그 아이를 증오하고 있었으니까, 그
아이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그녀는 주칠칠의 옷깃을 잡고 크게 외쳤다.
만약 네가 그렇게 자랐다면 너는 어떻게 했겠어?
주칠칠은 표정이 바뀌면서 말을 하지 못했다.
난.... 난.....
백비비는 애처롭게 웃었다.
너 같이 귀여움만 받고 자란 사람은 그런 일을 상상도 못할 것이다. 넌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낙타에 타지 못하게 했다고 해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에게 그렇게 한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지 못해 안달을 했어.
주칠칠은 고개를 숙이고는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
백비비는 손가락을 하나씩 피고는 몸을 곧게 세우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그 부드럽고 사랑스런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심랑에게 눈길을 옮겨 웃어 보이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녀가 그런 뜻이 없다니 내일도 역시 그녀와 왕련화를 함께 한 낙타에
태우죠.
그녀는 몸을 '홱’하고 돌려서는 사뿐히 걸어 나갔다.
천막 안에서는 한참 동안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한 사람이 먹을
음식과 물을 가져와서 그들에게 먹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할 말이
없었다.
또 한참 시간이 흐르자 웅묘아가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정말로 예측할 수 없는 여자야. 아직도 그녀를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그녀를 증오해야 할지를 모르겠으니. 아마도 그녀를 불쌍히 여겨야 할 것
같군.
이때 천막 밖에는 갑자기 불화살 한 개가 날아왔다.
불화살은 곧장 어두운 하늘로 치솟았는데 빨간 불꽃이 광풍에 의해
흩어지자 마치 하늘 가득한 유성 같았다. 다시 두번째 불화살이 쏘아져
올라갔다.
천막 안에 있는 심랑 등은 물론 바깥의 아름다운 장관(壯觀)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칙칙'하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멀리서 희미하게 나마 호통치는 소리도 간간히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왕련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웅묘아가 말했다.
혹시 누가 공격해 왔을까?
누가 감히 쾌락왕의 수염을 건드린단 말이오?
심랑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말은 그렇지만 이곳 관외의 사람들은 사나운 기질이 있고 또 대부분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오. 쾌락왕의 행렬이 이토록 호화로운 것을 보고
어쩌면 이곳을 덮칠 생각도 할 수 있었을 것이오.
웅묘아가 웃었다.
어찌됐든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군.
왕련화가 냉소를 치며 말했다.
그렇지는 않을 거요. 그들 야만인들은 무슨 일이든지 다 하는 사람들인데
어쩌면.
갑자기 한 사람이 들어왔다. 훤칠한 키에 눈빛이 반짝이는, 바로 노련하고
용맹한 급풍일 호였다.
웅묘아는 눈을 부라렸다.
뭣하러 왔지?
급풍일 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왕께서 여러분들을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심랑이 웃으며 물었다.
이 깊은 밤에 무슨 일이오?
바깥에서는 곧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 구경을
놓친다면 너무도 아까울 것입니다. 동시에 대왕께서는 심 공자에게 대왕의 수단을 보여주고 싶어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