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장. 사랑해요!
아향은 내심 초조하게 가슴을 두근거리며 엎드려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두 눈에서 눈물을 떨구며 몸을 벌떡 일으켰고, 곽소봉은 일순 우수를 들어올린 자세 그대로 멍하니 넋을 잃은 듯 했다.
"나으리!"
아향은 순간 몸을 벌떡 일으켜서 백검운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백검운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를 감싸듯 안아준 다음, 물었다.
"그래, 어디 다치지는 않았느냐?"
"예, 나으리.........."
아향은 너무도 감격하여 두 눈에 눈물을 마구 떨구며 백검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백검운의 얼굴은 항상 보아도 지극히 수려했다.
그리고 그 얼굴에는 항상 은은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바로 지금 이 긴장되고 살벌한 시기에도 그의 얼굴에는 예의 그 미소가 어려 있었다.
아향은 잠시 넋을 잃은 듯이 그 미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의 시녀로 남은 것을 매우 잘했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나는 이분과는 어울릴 수가 없어, 정말이야!'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눈물을 한 방울 뚝 떨구었다.
이때, 갑자기 눈부신 속도로 마치 안개가 뿌려지듯 환영을 그리며 밖으로 날아가는 인영이 있었다.
그녀느 바로 다름 아닌 곽소봉이었다.
우수를 거두고 밖으로 날아가는 그녀의 입에서는 일순 처절한 외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신, 당신은 결코 이 일을 후회하게 될 거예요!"
이어, 그녀의 신형은 창문으로 사라져 종적이 없어졌다.
"언니,"
그 뒤를 곽소유가 급히 신법을 펼쳐 쫓아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곽소유으 신형 역시 곧장 아스라이 창문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허나, 비록 하철수 등은 그것을 보고 있었으나 백검운은 다시 그들을 보지 않았다.
그는 아향을 향해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자, 우리는 이만 돌아갈까?"
아향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품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때, 하철수등이 어기적거리며 백검운의 앞으로 다가왔다.
아향은 즉시 그것을 보고 백검운에게 말했다.
"그들은 나의 생각대로 도와준 것일 뿐이니 너무 탓하지 말아요."
백검운은 이에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이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가 왜 야단을 치겠느냐?"
이에, 내심 크게 경을 칠 줄로만 알았던 파천석과 저수량등은 일시 크게 안심을 하며 얼굴에 웃음을 띄우는 것이었다.
특히, 하철수는 다소 당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난 정말로 고의가 아니었다구? 난 그야말로 하는 대로 했는데, 그게 이상하게 발각이 날 줄이야, 누구라도 그 고문을 당해봤다면 입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거야."
아향은 그 말에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 덕분에 이렇게 오히려 잘되었잖아요."
이어, 그녀는 일순 알 수 없다는 듯 백검운을 향해 물었다.
"헌데 대체 그녀는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백검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너희들의 연극은 비록 치밀했지만 그것은 일반의 강호인에게나 통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극상승의 무예에 도달한 사람이기 때문에 단지 미세하게 숨 쉬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이 지금 중독이 되었는지, 아니면 거짓으로 연극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있게 되지."
"아아........."
아향은 일순 그 말에 탄성을 내질렀다.
그녀는 내심 그 계획이 매우 치밀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한순간 어이없게도 깨져버리자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로 그런 헛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무공고수는 실로 두려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곽 큰언니가 만일 나중에 내게 보복을 하려고 하면 어쩌지?'
따라서, 그녀는 백검운에게 물었다.
"저는 언제쯤 그런 무공을 성취할 수가 있죠?"
백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그런 무공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인연이 닿지 않으면 터득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기약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다만, 그녀가 네게 나쁜 짓을 한다면 내가 말려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향은 일순지간에 자신의 내심을 간파 당하자 은근히 안색이 붉어졌다.
이때, 백검운이 그녀에게 물었다.
"대체 너는 그녀들을 언제 만나게 된 것이냐?"
여기서 그녀들이란 한쪽에 서 있는 남궁소소와 황보수아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향은 다소 두 눈에 웃음기를 띄며 오히려 되물었다.
"그건 나으리께서 한번 맞춰보세요. 어디 얼마나 신통한지."
백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별로 신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건 추측할 수가 있다. 너는 아마 너의 어머니에게서 도망쳐 나올 때 그녀들을 본 것이 아니냐? 그때 모든 계획을 꾸몄겠지?"
그렇다.
아향이 소요루를 떠났다가 돌아온 사이의 시간은 다소 길었다.
그 당시, 아향은 백화루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소요루의 근처에 이르렀을 때, 문득 그 주위를 살피고 있는 남궁소소와 황보수아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녀들은 그때 아향을 보자 일순 태도를 바꾸어서 사정조로 모든 얘기를 했던 것이며, 원래 은근히 곽소봉의 태도에 불만을 품고 있던 아향은 그녀들의 청은 들어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남궁소소가 그녀의 옛정을 들추어내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뒤, 아향은 백검운이 방금 전에 안으로 들어갔었다는 것을 듣고는 소요루의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백검운의 말에, 아향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추리가 어찌 그리 쉬울까 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들의 앞으로 남궁소소와 황보수아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때 황보수아의 표정은 여러번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한가지의 어려운 결정을 쉽게 내릴 수가 없어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백검운에게 다가와 말했다.
"백대협, 저는 이제야 저의 생각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아무래도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래서 저는 이제 당신의 곁을 떠나겠어요."
원래 그녀는 결코 백검운의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니 또한 떠나고 말고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이 매우 하기가 힘들었는지 매우 빠르게 내뱉고는 길고도 처연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을 보고 백검운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그 생각은 옳소. 사실 세상에는 많은 남자들이 있고, 그들 가운데에는 나보다도 훌륭한 사람이 부지기수인 것이오. 굳이 그릇된 생각에 얽매인다는 것은 고통을 자초하는 것일 뿐이니 참으로 잘 생각했소."
황보수아는 그 말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허나, 그녀는 결코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녀는 즉시 처연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 말은 틀렸어요. 당신보다 나은 사람이 어찌 부지기수로 있겠어요?"
이어, 그녀는 신법을 날려 역시 창문 밖으로 떠나갔다.
이제 남은 사람은 오직 남궁소소 뿐이었다.
이 남궁소소는 사실 애틋한 연정보다는 심한 장난기가 있어서 더욱더 백검운에게 다가들게 된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 뭔가 느끼고 깨달은 듯 다소 성숙하고 차분한 느낌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더니 말했다.
"저는....... 저는 너무나도 망나니였어요. 이제부터는 당신은 괴롭히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얼굴을 깊이 숙인 채 그대로 역시 신법을 펼쳐서 사라져 버렸다.
이리하여 주루 안에는 다시 정적을 되찾게 되었다.
이쪽 저쪽에서 백검운 일행을 바라보던 주객들도 이제는 각자가 술과 음식을 들며 자신들의 흥취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백검운은 그들을 한차례 조용히 둘러본 다음에 먼저 아래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제 그만 가자!"
그러자, 아향과 삼살은 두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 *
그 뒤, 곽소봉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일행이 소요루에 왔으나 그녀는 과연 그곳에 오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심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특히 아향은 가장 그 점에 있어서 우려했다.
어쨌든 간에 곽소봉은 백검운의 부인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아무리 걱정을 한다고 해서 그런 사실이 밝혀지거나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아향의 걱정스런 태도와는 달리, 백검운의 태도는 여전히 조용하고 온화하기만 했다.
아마 세상에 그를 격동시킬 수 있는 일이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일행이 대청에서 저녁식사를 마악 하려는 순간에 갑자기 곽소유가 혼자서 돌아왔다.
"곽 둘째 언니, 왜 혼자서 오죠?"
아향이 놀라며 묻자, 곽소유는 다소 씁쓰레하니 웃으며 대답했다.
"언니는 종적을 찾을 수도 없었어요. 아마 나중에 다시 돌아오게 될 거예요."
아향은 그 말에 내심 걱정하던 일이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면 큰 일이 아닌가요? 헌데 어째서 그냥 왔죠? 좀 더 찾아보지 않고?"
아향은 곽소봉보다는 이 곽 둘째언니에게 좀더 많은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곽소유는 다소 쓸쓸하게 웃더니 그녀를 향해 말했다.
"나는 언니의 성격을 알아요. 언니는 일시 감정이 잘 격해져서 그렇지 결코 꿍하게 접어두는 성미가 아니예요. 아마 지금쯤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돌아오려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그 말에, 아향은 일순 눈물을 글썽거렸다.
"사실, 잘못은 내게 있는 건데."
곽소유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잘못은 우리 언니에게 있었던 거야. 내가 좀 더 일찍 그와 같은 충고를 해주지 않은 것이 역시 잘못이야. 아마 언니도 지금은 매우 깊게 반성하고 있을 걸?"
그녀는 말끝에 백검운의 얼굴을 힐끗 건너다보았다.
그러나, 백검운은 여전히 조용한 태도 가운데 식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실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곽소유는 잠시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문득 어렵게 입을 열어 물었다.
"형부, 만일 언니가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면 받아주실 건가요?"
백검운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거야 말할 나위가 있겠소? 사실 부부지연을 한때의 장난으로 맺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소?"
곽소유는 그 말에 일순 안색을 활짝 폈다.
"맞아요, 언니와 형부는 이미 부부니까요."
이어, 그녀는 안면을 살짝 붉히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 언니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녀가 말을 길게 끌면서 맺지를 못하는 것을 보고 아향이 궁금해져서 물었다.
"곽 큰언니가 나으리의 부인이 아니었다면 곽 둘째언니는 어쩌려고 했죠?"
그 말에, 곽소유는 일시 크게 흠칫하여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야."
아향은 이것을 보고 더욱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젓는 곽소유의 안색에 문득 창백한 기운이 도는 것이 아닌가?
그 기운은 아까의 불안하던 심리와는 다른, 뭔가 심층의 고통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럼, 이 곽 둘째언니의 마음 속에도 어떤 말못할 고통이 잠재하고 있는 것일까?
하긴, 그녀는 인간의 마음에는 누구나 걱정과 고통이 없을 수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녀 자신만 해도 그렇지 아니한가?
아향은 문득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자 안색이 창백해지고 절로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는 것을 참아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곽소유에게 말했다.
"저어, 언니에게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어요."
곽소유는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부탁이지?"
아향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으리의 시중을 나 대신 좀 들어주십사 하고요."
곽소유는 아미를 가볍게 찌푸렸다.
"그건 이미 네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향은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저는 이제 곽 큰언니가 돌아오면 어떻게 그분을 뵈올 수가 있겠어요. 해서 그만 떠나려고 해요......."
여기까지 말한 뒤, 아향은 문득 두 눈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것을 보고 곽소유는 매우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거야, 내가 나중에 언니에게 잘 말해볼 테니까.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 화해하고 잘 살면 좋지 않겠어?"
허나, 아향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단지 곽 큰언니 때문에 가려는 것은 아니예요, 어차피 가야하기 때문에........ 어차피 가야하는 거라면 지금 떠나려고요."
곽소유는 그 말을 듣자 다소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이 평소에는 아주 천진해 보이고 총명하고 밝은 소녀의 신상에 매우 심상치 않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내심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스스로 심한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니 실로 형부가 좋아할만 하구나!'
그리하여 그녀는 다소 웃으며 물었다.
"그래, 너는 내가 너처럼 형부의 하녀가 되어야 한단 말이지?"
아향은 매우 우울해 있다가 일순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저는 다만, 곽 큰언니가 요리솜씨가 익숙하지 않으니까 곽 둘째언니가 그것을 대신해 주었으면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평생 하라는 것이 아니라, 곽 큰언니가 잘할 수 있을 때까지만........"
곽소유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까짓 거야 뭐가 어렵겠어? 나는 달리 갈 곳도 없는 처지인데 그런 거나 하면서 이곳에 머물러 있지 뭐."
곽소유의 대답에 아향은 일순 매우 기쁜 표정을 했다.
"고마워요, 언니."
이어, 그녀는 발딱 몸을 일으켰다.
백검운이 이미 식사를 마쳤으니 차를 가지러 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곽소유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과연 그녀처럼 그를 잘 시중 들어줄 수가 있을까?'
여기에서 그녀는 문득 스스로 고개를 젓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다소 이상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그녀는 백검운에게 물었다.
"형부, 처음에 형부가 금릉성에 들어올 때 저와 얘기를 나누던 일이 생각나세요?"
이때, 대청 안에는 삼살이 먼저 식사를 마치고 물러가고 단지 백검운과 곽소유만이 남아 있었다.
곽소유는 그런 가운데에 있자 웬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허나, 백검운은 그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그때는 나도 처음이라 어리벙벙했지."
곽소유는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지금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는 말씀이세요?"
백검운은 문득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며 되물었다.
"그대는 어떨 것 같은가?"
곽소유는 음 하고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뜨며 대답했다.
"나는 마치 처음부터 모든 일이 형부의 생각대로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백검운은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세상의 일은 저절로 되어가는 것이지 누구의 힘에 의해 이루어져 가는 것은 아니다."
곽소유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그녀는 문득 생각난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날 형부의 모습이 어땠는지 아세요? 조금은 촌스럽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아주 신비해 보였다구요. 저는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백검운은 웃으며 대꾸했다.
"너는 나를 비웃었던 모양이로구나?"
곽소유는 그 말에 즉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이때, 아향이 다시 차를 드록 들어와서 세잔의 차를 따라서 탁자위에 늘어놓았다.
백검운은 천천히 그 차를 들어서 마셨다.
그리고는 아향을 향해 물었다.
"너는 언제 가려느냐?"
아향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금....... 가야겠어요."
백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매사를 조심하거라. 내가 일러준 구결을 명심하고....... 그리고 만일 필요하다면 삼살을 데려가도 좋다.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나에게 연락하는 것을 잊지 말고."
아향은 백검운이 이렇게 신경을 써주자 일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엉엉 울면서 대답했다.
"예, 나으리."
백검운은 이어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만 가보아라, 이곳의 걱정은 하지 말고."
"예......."
아향은 잠시 주저하다가 이윽고 눈물을 흘리면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백검운은 서서 그녀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아향의 모습이 문 밖으로 사라지자 그년 즉시 신형을 돌려 자신의 서재로 향했다.
* * *
아향은 그 즉시 삼살을 데리고 떠나갔다.
그녀가 삼살을 데리고 간 것은 백검운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삼살 역시 그것이 백검운의 지시라는 것을 알았고, 그리고 은근히 아향을 좋아했기 때문에 두말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그리하여 이제 이 넓은 소요루에는 단지 백검운과 곽소유만이 남게 되었다.
백검운은 서재에 들어가서 묵상을 하는지 나오지를 않았다.
곽소유는 그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면서 탁자위의 그릇들을 치우고 청소를 했다.
이제, 아향이 하던 백검운을 시중드는 일은 그녀의 차지가 된 것이다.
그녀는 먼저 대청을 청소한 다음에 침실까지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그런데, 그녀는 무엇 때문에 굳이 백검운의 눈치를 살피는지 그것을 모를 일이었다.
* * *
백검운은 깊이 묵상을 한 뒤에 서재에서 걸어 나왔다.
때는 이미 밤이 깊었다.
곽소유는 밖의 별채에 나가서 자는지 집안은 매우 고요했다.
백검운은 천천히 대청 안을 둘러 본 뒤에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가 마악 침실의 문을 열었을 때였다.
의외에도 이미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자고 있을 줄 알았던 곽소유가 침상의 머리맡에 앉아 있다가 그를 반기는 것이 아닌가?
백검운은 그것을 보고 일시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니,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이오?"
곽소유는 일순 배시시 웃음을 피워 올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저는 이미 아향에게 형부를 시중드는 일을 인계받았어요. 헌데 어떻게 그냥 나가서 잘 수가 있겠어요?"
백검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청소를 끝냈으면 아향도 제방에 가서 자는데 무슨 시중을 들겠다고 하는 것이지?"
곽소유는 고개를 흔들었다.
"비록 인계를 받았어도 저는 저이지 아향이 아니거든요? 저는 형부를 재워드려야겠어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 명랑하게 웃어보였다.
그 웃음이 밝아보였기 때문에 백검운은 할 수 없이 웃고 말았다.
"그렇다면 시중을 받아볼까?"
이어, 그가 옷을 벗어들자, 과연 곽소유는 빠르게 달려와서 그 겉옷을 받아서 한쪽에 잘 개어놓았다.
그것을 보고 백검운은 침상 바닥에 정좌를 하고 앉으며 말했다.
"나는 항상 이렇게 하다가 자는 습성이 있으니 그대는 먼저 가서 자도록 하시오."
그 말에, 곽소유는 그제야 공손이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형부, 편안히 주무세요."
백검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곽소유가 방문을 닫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야 백검운은 다시 묵상에 들었다.
대체 그가 이런 묵상을 자주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 그 이외에는 아무도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백검운은 아주 오랫동안 묵상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그는 마치 그대로 앉아서 석상이 되어버린 듯 전혀 미동도 없이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마치 그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묵상에 드는 습관이 붙어서 그대로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어느새 창밖으로 날이 새었고 뿌연 여명의 빛이 스며들어왔다.
백검운은 그것을 보고서야 천천히 눈을 뜨더니 몸을 일으켰다.
밤새도록 묵상에 잠겨 있었으면 꽤나 쇠약해졌을 법도 하건만 그의 몸은 그와는 반대로 아주 쾌적하고 활기에 넘쳐 있었다.
백검운은 천천히 일어나서 몇번 몸을 가볍게 움직여본 다음에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가 대청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 나타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의 내심은 이미 그것을 예측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곽소봉,
그녀가 대청의 한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이다.
백검운은 일시 가볍게 멈칫하는 듯 하더니 곧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들어오지 않았소?"
곽소봉은 그 말을 듣고 일시 크게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나요?"
백검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의 동생이 이미 왔는데 당신이라고 해서 오지 않을 수가 있겠소?"
그렇다.
사실 그것은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는 일이었다.
곽소유는 그녀의 언니를 따라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녀 혼자서 다시 이 소요루에 되돌아왔었겠는가?
사실, 곽소봉은 그 당시 극도의 격한 심정으로 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으나 잠시 생각해보고는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녀는 바로 그러한 여인이었다.
성격이 강한만큼 남자처럼 화통한 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고서 다시 태연하게 돌아갈 수는 없었는지라, 곧 자신의 뒤를 쫓아온 곽소유를 찾아서 그 대책을 물었다.
그러자, 일명 꾀주머니라는 별명이 붙은 곽소유는 즉시 한 가지의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즉, 그녀들 두 사람이 모두 다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백검운과의 인연을 끊자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쑥 다시 둘이서 함께 들어갈 수는 없으니, 일단 곽소유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서 정세를 살핀 다음에 슬그머니 곽소봉을 침실로 유도하기로 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실로 적절한 것이어서 곽소봉은 즉시 그 방법대로 따랐다.
곽소유가 처음에 들어왔을 때에는 곽소봉은 이미 소요루의 근처에 머물고 있었고, 백검운이 나중에 침실로 돌아갔을 때에는 그녀는 몰래 대청의 밖에 이르러 있었다.
그때, 그녀는 이미 곽소유가 몰래 가져다준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후였다.
그리고 잠시 후, 대청에서 기다리며 백검운이 잠자리에 들면 그때는 기척없이 침실로 스며들어가서 그의 곁에 누우려고 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전혀 얼굴을 붉히지 않고 다음날 거의 태연하게 백검운을 대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백검운이 밤새도록 침상위에 오르지 않음으로 인해 깨어지고 말았다.
곽소봉은 낯이 붉어져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밖으로 다시 나갈 수도 없고 해서 그대로 대청 안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노라니, 사실 그녀는 밤새도록 무진 고생을 했다고 할 수가 있었다.
비록 무예가 극상승의 경지에 올라 있었어도, 그녀는 다소 성격이 급하기 때문에 밤새도록 조마조마하게 기다린다는 것은 심한 곤욕이었다.
어쨌든, 이제 그것이 끝나게 되자 그녀는 다소 홀가분하면서도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사실 평소에는 별로 부끄러움을 느껴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백검운이라는 이 남자를 만나고 난 이후에는 간혹 그러한 것을 느껴왔고, 지금은 가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나, 다행히 백검운은 내색하지 않고 대해 주었기에 곽소봉은 내심 감격하는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소 울먹이며 말했다.
"다시는 질투를 일으키지 않겠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당신의 말에 순종할 것이고, 당신의 하시는 일에 순순히 따르겠어요. 그러니 이번 한번만은 용서해주세요."
그녀의 처음의 말은 비록 나직해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격한 감정이 들어서 음성에 힘이 들어갔다.
이 곽소봉은 사실 한번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성미였다.
그것을 보고 백검운은 은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부부간에 용서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소? 당신도 나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가 왜 당신을 미워하겠소?"
그 말에, 곽소봉은 그만 격한 감정이 솟구쳐서 왁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백검운의 품속으로 날아와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운랑...... 사랑해요..........!"
"............"
백검운은 그저 조용히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때, 대청의 문밖에서 곽소유가 문을 조금 열고 안의 이러한 광경을 훔쳐보며 명랑하게 웃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