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여행기 – 이호규5 (첨삭 내용)
(히말라야 다녀 온 김 여사!)
1) 히말라야에 다녀왔다. 정확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을 다녀왔다. 네팔 서쪽에 있는 제2의 도시 포카라를 출발하여 7박 8일 동안 히말라야 계곡을 걷는 코스였다. 해발 822m인 포카라를 시작으로 최종 4,130m A.B.C 종점을 찍고 내려오는 여정이었다.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최고의 높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 트레킹 애호가들에게 최고의 인기 코스로 꼽히는 곳이다.
2) 13명이 참여한 트레킹에 부부팀은 우리 밖에 없었다. 남자 10명, 여자 3명이 참여한 것을 보면 여성에게는 부담이 되는 코스임에는 분명했다. 아내는 히말라야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지 않다가 친구의 설득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팔공산 동봉에 다녀올 실력만 되면 충분히 갈 수 있다고 권했다. 고도가 높아 최대한 천천히 걷기 때문에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에 넘어가 얼떨결에 동행하게 되었다.
3) 고도 적응을 위해 우회하는 푼힐 전망대 길을 선택했다. A.B.C 트레킹의 관문인 포카라에서 버스로 해발 1,070m 나야폴까지 이동했다. 산행 첫날, 숙박지인 2,860m 고라파니 롯지까지 올라갔다. 예전에는 이틀 동안 올라가야 할 거리를 산악용 짚차로 상당 부분 이동이 가능해서 하루 만에 도착했다. 1,960m 올레리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계단 길과 흙 길을 반복하며 걸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수목의 형태들도 변하였다. 롯지에 도착하니 식당 겸 프론트에 나무 난로를 피워 놓았다. 해가 떨어지니 산중의 공기가 싸늘했다.
4) 둘째 날, 새벽에 일어나 3,210m 푼힐전망대를 다녀와야 했다. 왕복 2시간 코스의 거리지만 급경사의 계단이 힘들었다. 아내의 첫 고비도 이때 왔다. 혹시나 해서 고산증 예방약을 먹고 출발했지만 처음부터 경사가 가팔라 힘든 눈치였다. 헤드 랜턴을 켜고 앞만 보고 올라가는 산행이라 어디에서 마땅히 쉴 곳도 없었다. 슬며시 걱정되어 속도를 낮추어 천천히 올라갔다. 다행히 360도 전망이 가능한 푼힐 전망대에 도착할 즈음에 동쪽 하늘에서 붉은 기운이 뭉클 올라왔다. 남들보다 늦게 올라왔지만 거대한 산군을 둘러보며 일출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힘들어하던 아내도 눈 덮인 웅장한 산군을 바라보며 잠시 힘들었던 순간을 잊은 듯 했다.
5) 첫 고비를 넘긴 후에는 그런대로 걸었다. 능선 하나를 넘어가는데도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어 길게만 느껴졌다. 나지막한 돌계단으로 만들어놓았으나 워낙 개수가 많으니 한 발, 한 발이 힘들었다. 고개라고 하지만 자그마치 높이가 3,000m를 넘었다. 트레킹 참가자들의 나이를 감안하여 현지 동행 가이드를 추가 배치한 것이 많이 도움 되었다. 잘생긴 가이드가 묵묵히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사진도 찍어주고 영어로 소통하며 힘을 보탰다. 아내보다 더 힘들어하던 울산에서 온 여자 교감선생은 결국 조랑말을 불러서 일부 구간을 이동했다. 히말라야에는 조랑말이 콜택시 역할을 하고 있었다.
6) 트레킹 중 산속 현지 숙소인 롯지에서 7박을 하였다. 처음 며칠은 2인 1실로 방이 배정되었지만 높이 갈수록 방이 부족하여 단체실을 이용해야 했다. 롯지는 산행 중에 간단히 이용할 수 있는 숙소로 가장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었다고 보면 된다. 난방 시설은 전혀 없고 나무 침대에 매트가 전부이다. 간혹 이불을 주기도 하지만 모두 개인 침낭을 이용했다. 밤이 되면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기 때문에 보온이 중요했다. 방에는 전기 콘세트를 꽂을 수 있는 시설도 없었다. 휴대폰 충전과 와이파이 사용은 식당에서 유로로 이용할 수 있었다.
7) 날진 물통이란 것이 있었다. 특수재질인지 플라스틱 재질인데 저녁에 뜨거운 물을 받아 침낭에 넣어놓으면 밤새도록 따뜻하게 유지해 주었다. 아침까지도 미지근하여 세숫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히말라야에서는 일정 높이를 올라가면 샤워도 머리 감는 것도 일체 할 수 없다. 고양이 세수로 대신한다. 선크림을 바른 얼굴도 세면용 티슈로 해결한다. 다행히도 날진 물통이 있어서 산중에서 심한 추위를 모면할 수 있었다. 추위가 심할 때는 롯지 식당에서 추가 요금을 주고 가스난로를 공동으로 이용했다.
8) 하루의 일정은 6, 7, 8 순서로 진행되었다. 6시 기상, 7시 조식, 8시 출발이다. 아직 어두운 시간, 쿠커팀들이 따뜻한 생강차를 들고 와서 롯지 문을 노크했다. 모닝콜인 셈이다. 눈꼽만 떼고 식당으로 이동하면 거나한 한식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7박 8일간 매일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산행을 했다. 식사 후에는 누룽지까지 챙겨주었다. 힘들게 걸을려면 잘 먹어야 한다고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모양이었다. 여성분들은 내가 준비하지 않은 식사는 모든 것이 맛있다고 했는데 산에서 이른 식사를 접하니 만족도가 매우 높은 듯했다.
9) 산행 5일차, 드디어 마지막 목적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했다. 3,200m 데우랄리를 지나면서 날씨가 흐려지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3,700m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때는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물고기 꼬리 모양의 마차푸차레 봉우리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산행 내내 특색있는 봉우리는 우리들의 시야에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일행 중 한 명은 감기가 심해 결국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남아야 했다.
10) 4,130m 마지막 목적지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거리이지만 고도가 워낙 높아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주변은 금방 하얀 눈으로 덮여 설원으로 변했다. 앞서가던 일행도 가물가물하게 보였다. 아내는 거의 다 왔다는 희망감에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 쏟는 듯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표시가 있는 촬영 포인트에 도착했을 때는 바로 앞에 있는 롯지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렸다.
11) 드디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미리 사진으로만 보던 인증-샷 지점이 어디쯤 있는지 궁금했는데 마지막 롯지 바로 앞에 있었다. 분위기는 완전 안나푸르나 정상에 도달한 듯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완전 복장에 등산용 스틱을 높게 쳐들고 기념사진을 찍으니 전문등산가 포즈였다. 아내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인생 최고의 높이 4,130m에서 촬영을 하니 감개무량한 모양이었다. 롯지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받고 몸을 녹 이려고 식당에 도착하니 여러 나라에서 온 트레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12) 그날 밤을 기념하기 위해 오카리나 연주자인 친구는 무거운 음향기기까지 가져와 산상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밖에 나와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니 모두들 행복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격려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에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어느새 지붕에서 고드름이 길게 내려와 있었다.
13) 다음날 새벽, 이른 아침을 먹고 멋진 일출 장면을 보기 위해 포인트로 이동했다. 밤사이에 어른 무릎까지 잠길 정도로 눈이 내렸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쾌청한 날씨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잠시 후, 마차푸차레 봉우리 쪽에서 힘찬 햇살이 넘어와 안나푸르나 남봉 끝자락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찰나를 놓칠세라 저마다 인증 사진찍기에 바빴다. 남들 사진찍어 주느라 정작 작품 사진 촬영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장엄한 일출 장면을 눈으로 가슴으로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이 짜릿한 순간을 맛보기 위해 그 많은 돌계단을 힘들게 걸어 왔다.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14) 6일 차부터는 내려오는 길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아침 햇살이 새하얀 눈에 반사되어 썬글라스 없이는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눈 결정체에 반사되는 햇빛이 이렇게 아름다운 빛깔인지 처음 접했다. 황금빛 일몰에 비치는 윤슬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너무나 황홀한 정경을 깊숙이 새기며 평생 이런 느낌을 또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15) 내려오는 길에 계곡 위로 헬기가 수시로 올라갔다. 날씨가 좋은 날은 포카라에서 헬기로 A.B.C까지 이동하는 관광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힘들지만 내 발로 뚜벅뚜벅 일주일 동안 걸어서 만나는 감동적인 광경을 헬기 타고 한 시간 만에 도착해서 느끼는 감정하고는 분명히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16) 높은 산은 올라 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길이 더 힘들다. 수많은 돌계단이 사람을 기죽게 한다. 촘롬 지역을 통과할 때는 무려 3,200개 돌계단을 오르고 내려가야 했다. 몇 년 전에 네팔 교육봉사 후 트레킹에 나섰다가 눈사태로 안나푸르나의 별이 된 분들의 지역을 지나올 때는 가슴이 저며지기까지 했다. 아내는 내려오며 다리가 아파 중간중간 자주 쉬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떠났지만 무거운 짐과 식사, 안내를 맡아주신 현지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친절했던 그들의 따스한 미소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17) 비록 주선하던 친구의 꾀임에 훌쩍 따라왔지만 아내는 별탈 없이 마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곳을 다녀올 수 있을 것인가 싶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계획 중이라는 아내의 이야기에 어떻게 갈려고 하느냐는 친구의 걱정에 “나, 히말라야 다녀온 여자야!”라는 아내의 한마디로 주변은 폭소가 터졌다고 했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히말라야를 다녀온 것만으로도 앞으로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살면서 머리로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무모하게 몸으로 부댓겨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아내와 함께 다녀 온 A.B.C 트레킹의 잔잔한 여운이 오래도록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