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닉 네임 박대남(朴大男)에 대한 조사 후기 입니다.
먼저, 인터넷에 자료를 조사하였는데요... 자료가 부족하여 인물조사 일부와
난중일기에서 박대남(朴大男)에 대해 언급한 내역을 발췌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이해 부탁 드리고, 추가 정보가 있으시면 댓글에 달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의 숙제로 인해 답사일정이 조금이나마 당겨지길 기대합니다. 박성필 드림
○인물조사
남해현령 박대남(朴大男) 본관 죽산(竹山): 1554년에 출생하셨고, 이순신과 무과 동기로써 이순신보다 9살어리며,
병과 16위로 합격하였고, 이때가 23세 였다고 합니다.
○난중일기에서 박대남(朴大男)에 대해 언급한 내역
이과정에 두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첫째의문,
인터넷에서 박대남을 검색하면 "박대남묘"에 대해서 검색이 되는 데, 처음에는 내가 조사하고자 하는 인물인줄 알았다가
자료에 보니 조선시대에 안성군수를 지내셨다고 하여, 내가 조사하고자 하는 박대남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
다른방법으로 조사(난중일기 발췌)를 진행하였습니다.
올바른 결정이였는지 확인을 부탁 드립니다.
둘째의문,
난중일기에서 발췌를 하다보니, 박대남에 대하여 남해현감 또는 남해현령 두가지가 병행해서 사용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1596년 6월 23일 [양력 7월 18일] 에 일기에 보면 남해현령과 남해현감 두 인물이 동시에 나오므로
서로 다른 인물을 칭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박대남은 남해현감이 제대로 표기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부분도 의견 부탁 드립니다.
1596년 6월 20일 [양력 7월 15일]<병진> 맑다.
어제 아침 곡포권관 장후완(蔣後琓)이 교서에 숙배한 뒤에 평산 포만호에게 진작 진에 도착하지 않은 까닭을 문책할 적에, 기 일을 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50여 일이나 물리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그 해괴하기 짝이 없어 곤장 서른 대를 쳤다. 바로 이 날 오정에 남해현령이 들어와서 숙배한 뒤에 이야기하고 서 활을 쏘았다. 충청우후도 왔다. 열다섯 순을 쏘고 안으로 들 어가 남해현감 박대남(朴大男)와 자세히 이야기하다가 밤이 깊어 서야 헤어졌다. 임달영(任達英)도 왔는데, 소를 무역한 발기(견적 서)와 제주목사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1596년 6월 22일 [양력 7월 17일]<무오> 맑다.
할머니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남해현령과 종일 이야기했다.
1596년 6월 23일 [양력 7월 18일]<기미> 밤 두시쯤부터 종일 비가 내렸다. 남해현령과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남해현령은 경상수사에게 갔다. 조 방장 및 충청우후• 여도만호• 사도첨사 등을 불러 술과 고기를 먹였다. 곤양군수 이극일(李克一)도 와서 봤다. 저녁에 남해현감이 경상수사에게서 왔다. 술에 취하여 인사불성이다. 하동현감도 왔는데 본현으로 도로 보냈다.
1596년 6월 24일 [양력 7월 19일]<경신> 초복이다. 맑다.
아침에 나가 충청우후와 함께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경상수사 도 와서 같이 쏘았다. 남해현감은 자기 고을로 돌아갔다. 투항 해 온 왜놈 야에몬(也汝文) 등이 그의 또래 신시로(信是老: 信 次郞)를 죽이자고 청했다. 그래서 죽이라고 명령했다. 남원의 김 굉이 군량을 축낸 데 대해 증빙자료를 얻으러 여기 왔다.
1596년6월 29일 [양력 7월 24일]<을축>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는 개었다.주선(周)이 받아갔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공무를 본 뒤에 조방장•충청우후•나주통판과 함께 철전(鐵箭)•편전(片箭)• 활(帿)을 아울러 열여덟 순을 쏘았다. 무더위가 찌는 듯하다. 초저녁에 땀이 줄줄 흘렀다. 남해현감의 편지가 왔다. 야에몬(也汝文)은 돌아갔다.
1597년 6월 12일 [양력 7월 25일]<신미> 맑다.
종 경(京)과 종 인(仁)을 한산도 진으로 보냈다. 전라우수사(이억기)• 충청수사(최호)• 경상수사(배설)• 가리포첨사(이응표)• 녹도만호(송여종)• 여도만호(김인영)• 사도첨사(황세득)• 동지 배흥립 (裵興立)• 조방장 김완(金浣)• 거제현령(안위)• 영등포만호(조계종)• 남해현감(박대남)• 하동현감(신진)• 순천부사(우치적)에게 편지를 했다. 저녁나절에 승장 처영(處英)이 와서 보고 부채와 미투리를 바치 므로, 물건으로써 갚아 보냈다. 또 적의 사정을 말하고 또 원공 (원균)의 일도 말했다. 낮에 중군장(이덕필)이 군사를 거느리고 적에게 갔다고 한다. 어떤 일인지 몰랐는데, 원수(권율)에게 가 보니, 우병사(김응서)의 보고에, "부산의 적은 창원 등지로 떠나려 하고, 서생포의 적은 경주로 진을 옮긴다."고 했다. 복병군 을 보내어 길을 막고 적에게 위세를 뽐내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병사의 우후 김자헌(金自獻)이 일이 있어 원수에게 뵈러 왔다. 나도 원수를 보았다. 새벽 일찌기 돌아왔다.
1597년 7월 13일 [양력 8월 25일]<임진>49) 맑다.
아침에 남해현령이 편지를 보내고, 음식물도 많이 보냈다고 하고, 또 싸움말(戰馬)을 몰고 가라고 하였다. 저녁나절에 이태수(李台壽)․조신옥(趙信玉)․홍대방(洪大邦)이 와서 보고, 또 적을 토벌할 일을 말하였다. 송대립(宋大立)․장득홍(張得洪)도 왔다. 장득홍은 스스로 마련한 것이라고 아뢰었다. 그래서 양식 두 말을 내주었다. 이 날 칡을 캐어 왔다. 이방도 와서 봤다. 남해 아전과 심부름꾼 두 명이 왔다.
1597년 7월 22일 [양력 9월 3일]<신축>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 배설(裵楔)이 와서 보고, 원균(元均)의 패망하던 일을 많이 말했다. 식사를 한 뒤에 남해현감 박대남(朴大男)이 있는 곳에 이르니, 병세가 거의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싸움말을 서로 바꿀 일을 다시 이야기했다. 종 평세(平世)와 군사 한 명을 데리고 왔다고 했다. 오후에 곤양에 이르니, 몸이 불편하므로 잤다.
1597년 7월 25일 [양력 9월 6일]<갑진> 저녁나절에야 맑다.
종사관 황여일(黃汝一)이 편지를 보내어 문안했다. 조방장 김 언공이 와서 보고서는 그 길로 원수부로 갔다. 배수립(裵樹立) 이 와서 보고, 이곳 주인 이홍훈(李弘勛)이 와서 봤다. 남해현 령 박대남(朴大男)이 자기의 종 용산(龍山)을 보내어 내일 들어오겠다고 전했다. 저녁에 가서 백기 배흥립(裵興立)의 병을 보니, 고통이 극도로 심했다. 걱정이다. 송득운(宋得運)을 보내어 황종사관에게 문안했다.
1597년 7월 29일 [양력 9월 10일]<무신> 비가 오락가락 하다.
아침에 이군거(李君擧:薦의 字) 영감과 함께 밥을 먹고 체찰사 앞으로 보냈다. 저녁나절에 냇가로 나가 군사를 점검하고, 말을 달리는데, 원수가 보낸 자들은 모두 말도 없고 또 활과 화살도 없으니, 아무 쓸 데가 없으니, 참으로 탄식할 일이다. 저녁에 돌아올 때 배 동지와 남해현령 박대남(朴大男)에게 들려 봤다. 밤 내내 큰비가 왔다. 찰방 이시경(李蓍慶)에게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1597년 8월 초1일 [양력 9월 11일]<기유> 큰비가 와서 물이 넘쳤다.
저녁나절에 소촌찰방 이시경(李蓍慶)이 와서 봤다. 조신옥(趙 信玉)․홍대방(洪大邦) 등이 와서 봤다. 8월 초2일 [양력 9월 12일]<경술> 잠시 개었다.
홀로 수루의 마루에 앉았으니 그리움을 어찌하랴! 비통할 따름이다. 이날 밤 꿈에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8월 3일 [양력 9월 13일]<신해> 맑다.
이른 아침에 선전관 양호(梁護)가 뜻밖에 교유서를 가지고 왔다. 명령은 곧 겸 삼도수군통제사의 임명이다. 숙배를 한 뒤에 다만 받들어 받았다는 글월을 써서 봉하고, 곧 떠나 두치(豆恥)로 가는 길로 곧 바로 갔다. 초저녁에 행보역(하동군 횡천면 여의리)에 이르러 말을 쉬고, 한밤 12시에 길을 떠나 두치에 이르니, 날이 새려했다. 남해현령 박대남(朴大男)은 길을 잘못 들어 강정(江亭: 하동읍 서해량 홍수통제소 서쪽 섬진강가)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 기다렸다가 불러와서, 쌍계동에 이르니, 길에 돌이 어지러이 솟아있고, 비가 와 물이 넘쳐 흘러 간신히 건넜다. 석주관(구례군 토지면 송정리)에 이르니, 이원춘(李元春)과 류해가 복병하여 지키다가 나를 보고 적을 토벌할 일을 많이 말했다. 저물어서 구례현에 이르니, 일대가 온통 쓸쓸하다. 성 북문(구례 읍 북봉리) 밖에 전날의 주인 집으로 가서 잤는데, 주인은 이미 산골로 피난 갔다고 했다. 손인필(孫仁弼)은 바로 와서 볼겸하여 곡식까지 가져 왔다. 손응남(孫應男)은 올감(早柿)을 바쳤다.
8월 4일 [양력 9월 14일]<임술> 맑다.
다시 들어와 관청을 보았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압록강원(곡성군 오곡면 압록리)에 이르러 점심밥을 짓고 말의 병을 고쳤다. 고산현감 최진강(崔鎭剛)이 군인을 교체 할 일로 와서 수군의 일을 많이 말했다. 낮에 곡성(곡성군 곡성읍 읍내리 713-2번지)에 이르니, 관 청(곡성현감:崔忠儉)과 여염집이 한결같이 비어 있고, 사람사는 기척이 끊어졌다. 이 일대에는 온통 비어있고 말 먹일 풀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 현청에서 잤다. 남해현령 박대남(朴大男)은 곧장 남원으로 갔다.
※이상 허접한 숙제였습니다.
첫댓글 빨리 숙제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난중일기를 다시 읽으니 그 또한 좋습니다. 제 고향도 남해인데 고향에서 현감을 지내셨다니 더 더욱 방갑습니당 .숙제 해방을![축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48.gif)
드립니당![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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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답사를 빨리 가게 될 것 같아서 좋아용
어차피 5월 이후에나 갈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러니 천천히 준비해서 완벽한 답사가 되도록 해야겠죠.
남해에 한번 가보았지만 아름다운 기억이 있네요~~ 감사 ^^
먼저 숙제 하신것 축하드립니다..현령은 종5품, 현감은 종6품인데..7월22일까지는 남해현감 박대남이라 하였고, 그 이후 일기에는 남해현령이라한것을 보면 진급을 한 것 아닐까요? 정답은 격군님께서 해 주셔야 겠는데요?
당시 큰 현의 수장은 현령, 작은 현은 현감이라 불렀죠. 남해현은 큰 현에 속했기 때문에 현령이 맞다고 봅니다. 아마 일기다 보니 현령이나 현감이나 그게 그거라 보고 혼용해서 쓴 것 같군요. 임진장초에는 남해현령이라고 잘 나오고 있습니다.
네..격군님의 의견 접수 합니다.감사 합니다.
멋진 관찰사님~ 관찰사님을 뵈러가면서 왠지 설레였던 것 혹시 아시나요 ㅎㅎ 장군의 후예 분과 악수를 하게되어 영광이였습니다. 1596년 6월 23일 [양력 7월 18일]에는 남해현령과 남해현감이 동시에 나오는 것을 보면 서로 다른 인물인 것 같은데, 나중에 확인이 필요할 것 같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올해에도 답사갈 수 있겠습니다.
격군님 예상 댓글 : 필사즉생님은 숙제 하셔야 갑니다.
요즘 소화되지 않는 것이 이배사 숙제 못해서 임을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필사즉생님은 현재는 답사대상이 아니지만 아직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하세요.
숙제 언능하시고... 함께 답사갔으면 좋겠네요 ㅎㅎ 필사즉생님 화이팅!
가입하신 후 최단 기간 내에 숙제를 하신 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난중일기에 나오는 박대남 관련 자료를 망라하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인데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숙제를 하신 46번째 회원으로 등록되셨습니다. 이제는 답사를 해야하고 답사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숙제를 하지 않으신 분도 답사실시까지는 몇개월 남았으니 천천히 하셔서 많은 회원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요 ^^* 격려해주시고 칭찬해주시니 아이들처럼 신이나네요..좀더 열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올해는 임진년,이배사호가 순항 할것같은 행복한 예감이 듭니다.이 기세를 몰아![대한민국](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13.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말씀하신데로 이배사호의 항해속도에 가속이 붙어 거침이 없네요 ㅎㅎ
역시 성실의 대명사다우십니다~~ 이렇게 신속하면서 겸손하고 진솔하게 글을 올리신것을 보며 제가 숙제한것 마냥 기쁩니다. 저도 같이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늘 격려해주셔서 감사~~ 역시 제 후견인 입니다. 숙제를 한것도 아니고 안한것도 아니고....기반이 약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는 ㅠㅠ
수고많으셨습니다, 난중일기를 여러번 읽으셨나봅니다~~ 열성에 경의를 보냅니다~
어란포님을 뵙게되어 정말 반가왔습니다.... 멀리서 참여하신 것을 보면 어란포님은 정말로 이배사를 엄청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따스한 정성도 감사합니다
참 어쩌면 그렇게 짧은 일기속에 세세하게 어찌보면 시시콜콜 기록을 하셨을까요. 게다가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1,050여명, 박대남에 관한 내용만도 23일나 된답니다. 난중일기! 역시 참 대단한 기록입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진님의 답글을 보니... 난중일기를 완전 마스터하신듯 *^^* 역시 대단하십니다. ㅎㅎ
난중일기를 완석 세세하게 분석하여 분류별 정리를 하셨나 봐요. 대단하십니다. 아~~본받아야 되는데... 머리 수그려집니다. ^^
아~~싸!! 난중일기 등장인물 외우면서 출첵하고 갑니다.
박대남에 관한내용은 후에 방진님께 별도로 설명을 듣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숙제가 너무 허술해서 죄송합니다^^;;
서술이 안되는 저같은 사람은 난중일기를 보면서 많이 느낍니다. 하지만 머리와 가슴이 따로놀아~~~ㅎ
수고하셨습니다^^
감사~~ 허접해서 부끄럽네요~~^^
일찍 숙제를 해결하시니 홀가분 하시겠습니다. 저도 덕분에 또 공부 잘 하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숙제를 해결해서 홀가분 하기는 하나... 내용이 허접하여...쑥스럽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산 답사에 오시는거죠?
예^^ 물론이지요~~ 아주아주 특별한 일만 없다면 당근 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입학동기 입대동기 입사동기 ... 시작을 같이 하였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정이 묻어있지요. 격군께서 올린 "그냥"이라고 올리신 표 보고 부랴부랴 늦게나마 꼬리를 붙입니다 서운해 마셔요 ㅎ~
충무공과 박대남 장군이 동기라는 것을 알고 난중일기를 읽다보니...저도 두분사이에 특별한 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서운하긴요~~ ㅎㅎ 감사합니다
미남께서 올리신 글을 이제사 봤습니다 ^.~ 사진보느라 하하하 또 공부하고갑니다.제머리속에서 기억을 해줄지 ㅋ
ㅎㅎ 격려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숙제하시면서 더욱더 자신에 닉에 대해 자부심이 생길듯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원균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저의 닉네임인 박대남 장군께서 충무공과 무과 동기라고 하여 사실 뿌듯합니다 ~~ 감사합니다~
이 글은 전번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읽었습니다. 저는 뭣보담도 박대남 님이 잘 생겼다는 것이 자꾸 떠 오르네요.ㅎㅎ.
백의종근님께서 오프모임때 반갑게 맞아주셔서 쑥스러움이 덜했습니다. 가입한지 얼마안되었고,또 늦어서 죄송했거든요.. 늘 행복한 날되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