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파에 이런 신실한 사람이 있는가?
조재경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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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만에 하나 날까 말까한 세계적 소프라노 제니스첸들러
● Jenice Chandler 의 선택과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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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어 호프 심포니 홀 무대 위에 음대 졸업 예정인 풋나기 소프라노
"Jenice Chandler"가 노래하기 위해 무대에 나와 섰다.
노래가 시작되자, 홀 가득 울리는 그녀의 노래는 완숙한 대가의 음성 같을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영적인 어떤 존재( 천사? )가 소리를 통해 그 자리에 뚜렷이 임하는 듯한 감동을 주었다.
날개를 달고 솟아오르는 듯한 찬란한 목소리,
사라질 듯한 고음,
빛나는 중간 음역,
매끄러운 저음, ...
그것은 그해 11월 볼티모어 코랄 아트 소사이어티 30주년 기념으로 열린 화려한 콘서트에서였다.
메릴랜드 출신의 30세의 무명 성악가 "Jenice Chandler "를 처음 본 청중들은
일어서려던 몸을 다시 앉히고 말하였다.
“ 왜 우리는 지금까지 이처럼 고귀한 성악가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까?
이 여인은 여태 어디에 숨어있었는가?”
그러자 볼티모어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는 미지램 야르두미안은
" Jenice 는 돈보다 자신의 종교를 우선으로 여깁니다.
그 다음에 음악이지요 그런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Jenice Chandler 는 제칠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었으며, 그것은 안식일에는
종교 음악 외에 오페라 같은 세속 음악을 노래할 수 없다는 뜻이다.
5년전 Jenice Chandler 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꺾지 않기 위해
유명한 클래식 성악가가 될 기회를 포기했다.
자신의 종교에 반하는 행위를 하기보다는 세속의 많은, 아주 많은 것을 포기했으니
곧 빠른 시일 안에 얻을 수 있었던 큰 명예와 많은 돈이었다.
그 명예와 돈은 그녀가 1991년 인디아나 음대 정규 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제시되었다.
이는 그녀가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말하듯,
그녀가 몇 세대 만에, 거의 100 여년 만에도 한번
날까 말까한 가슴에 새겨질 성악가라고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재능의 근원과 인도하는 원칙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잊지 않았던 챈들러는
빛 나는 무대의 문지방을 넘기전 다시 균형을 잡았다.
"이 재능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돈이 그것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분을 첫째로 삼은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분은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알고 계십니다."
● 처음부터 옳바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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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ice Chandler 가 인디아나아 음대에 있을 때 그녀의 교수 중 하나가 그녀의 이름을
룻 지임스키와 알랜 그린에게 말하였다.
그들은 캐쓸린 배틀과 필라시도 도밍고 같은 수퍼스타들로 대표되는
콜럼비아 예술 매니저먼트사의 대리인들이었다.
그리하여 1991년 인디아나대에서 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그녀는 뉴욕의 앨리스 툴리 홀에서
모짜르트의 C단조 미사곡을 연주해 솔로 성악가로 등록하였다.
재능있는 신인을 찾아다녔던 콜럼비아사의 스카우터들은 그녀의 노래를 좋아했고
챈들러에게 계약을 제안했다.
그것은 유명한 교향악단과 오페라단들과 함께 세계를 누비는 즐거움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대다수는 성악가들은 이런 기회를 꿈꾼다.
그러나 그런 일이 대가도 아니요 학교도 아직 졸업하지 않은 그녀 앞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하나님이 첫째였다.
그 때를 돌아보며 챈들러는 안식일에 많은 연주를 해야 할 것으로 인해 고민했다고 말한다.
다행히 첫 연주에서는 문제가 노출되지 않았다.
그녀는 미네소타 교향악단과 헨델의 메시아를 잘 불렀다.
다음 계약은 비발디 돈 칼로스의 천상의 소리 부분을 워싱턴 오페라단과 연주하는 일이었다.
연주 중 한 부분이 금요일 밤 시간이었다.
오페라 공연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므로 일정이 정확히 맞아야 했다.
그녀는 콜럼비아사의 대리인들에게 그 문제를 설명하는 일을 미루었다.
그녀는 뒤에 스스로 서게 될 때를 기다리며 그 전에 먼저 업적을 쌓기를 원했다.
"저는 계속 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타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그녀는 말했으나, 그녀는 평생 지켜온 종교적 의무를 위반하게 될 일에 죄책감을 느꼈다.
" 저는 편치 않았고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삶이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식일에 노래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허나 사태는 더 악화되었다. 원래 목요일에 잡혀있던 필라델피아 공연의 리허설 일정이
금요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녀가 필라델피아에 가서 금요일 리허설을 할 수 없다고 하자 대리인들은 화가 나서
"돌아가라"
고 했다. 이어서 뒤에 잡혀있던 모든 계약까지 다 취소해 버렸다.
그 회사는 오페라 무대를 통해 좋은 평판을 얻고자 하였고, 돈과 함께 좋은 평판의 성취는
곧 고가의 계약을 의미했지만
Chandler의 종교적 관점과 연예계의 흥행 요구 사이의 갈등이 충돌된 것이었다.
또 1992년 초 그녀는 대리인들에게 자신의 종교적 신조 때문에 금요일 밤과 토요일에
세속 음악을 연주할 수 없다고 숨김없이 말했다.
대리인들은 그녀를 등록 명부에서 빼버렸다.
Chandler 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수고했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멋진 미래의 약속이 그녀의 눈앞에서 증발되는 듯했다.
"처음에 나는 매우 낙담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근본을 무시한다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근본을 인정할 때 나는 더 좋은 예술가이자
더 나은 인간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 * 주 : 그러나 그녀가 안식일을 포기한다면 그 목소리에서 천사가 내려오는듯한
영성은 사라질 것이다.
증언은 신앙은 목소리에도 나타난다 하였으므로 그녀가 다른 이보다
특이한 영적인 음성이 나는 것이지만
안식일을 포기한다면 목소리에 영성도 없어지고 세상에서도 가치 없는 성악가가 될 것이고
믿음도 잃을 것이니 두 토끼를 다 잃게 된다. )
Jenice 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노래는 사업이기 때문에
신학적인 교리가 아닌 시장원리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챈들러가 안식일에 무료로 노래한다던지 수입금을 가난한 자들에게
기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질문에 노라고 대답하였다
Jenice Chandler 가 커온 가정과 교회는 어떠했던가?
● 엄격한 절제와 안식일 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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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ice Chandler는 1965년 12. 28. 프린스 조오지 카운티의 브랜뒤윈에서
복직 상담원인 아버지 찰스 챈들러 재림교 장로와
교사인 어머니 마리 사이에서 막내이자 외동딸로 태어났다.
Charles Chandler 장로 가족은 1956년 제칠안식일예수재림교에 입교했다.
남편은 침례교, 아내는 감리교인이었지만 이웃 여자의 전도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그 후 제칠안식일재림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교회는 그들에게 엄격한 절제와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안식일 준수와,
침례를 요구했다.
그들은 성경이 믿음의 무오한 원칙임을 믿고, 주님 재림이 곧 있을 것, 재림 후
천년기가 있을 것 등과 다니엘,계시록을 통하여 남은 백성됨을 믿고 침레를 받았다.
그 가족은 워싱턴의 듀퐁 파크 재림교회에서 아이들을 양육했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재림교회 학교를 다니게 했다.
그 후 그녀는 알라바마의 재림교회 대학인 오크우드 대학에 등록했다.
그녀는 12살 때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즉시 솔로로 지명되었다.
그 때부터 챈들러는 돋보였다.
공식 석상에서 딸이 노래하는 것을 들은 어머니는 그 음성이 특이함을 느꼈다.
아버지도 오크우드 대학에서 딸이 노래하는 것을 듣고는 음악을 전공하려는
딸의 결정을 지지했지만 그 대신 그 일에서 그녀의 종교적 원칙을 양보하지 말하고 권했다.
"Jenice 의 그 특별한 재능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요구와 배치되는 길로 가야한다면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Chandler 의 안식일 준수를 봐주는 지휘자들, 매니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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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봄 워싱턴 코랄 아트 소사이어티의 지휘자인 스크리브너는
대학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
"아주 압도적이었습니다.
전에 아무 성악가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을 그녀에게 했습니다."
그 스크리브씨가 발티모어 코랄 아트 소사이어티의
그 다음 지휘자였던 탐 홀에게 Jenice 를 소개하엿다
또 Chandler 는 하로린 블랙월이 몸이 아파 연주를 취소했을 때
야르두미안의 부름을 받고 로버트 쇼우와 함께 연주하게 되었다.
쇼우는 이 뜻밖의 만남 이후 그녀와 다음 시즌에 있을 몇 번의 연주회 계약을 하였다.
그의 지도 아래 그녀는 애틀랜타와 미네소타 교향악단과 연주하게 되었다.
그들은 Jenice 가 안식일 연주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지휘자들이었다
그녀를 소프라노로 택한 로렌스 바써만도 안식일에 세속 음악을 노래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결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음악계에서 그녀가 부상하는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순수한 소리와 연습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음악에 대한 특별한
천부적인 무엇이 있습니다. 그녀는 종교 음악에 맞는 영적인 친화력이 지니고 있습니다.
Chandler 는 그녀가 지금 참여하는 성공을 즐기는 반면,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따라온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하는 신념은 어떤 변화도 없다.
그녀는
" 나는 내 자신과 내 음악에 진실 되고자 합니다. 그것은 명성도, 돈도 아닙니다.
만일 내가 공평한 사람이고 신앙에 충실한 선량한 음악가라는 평판을 얻을 수 있다면
내 목표는 이루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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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조 재경님은 아직 세째천사기별이 가져다 줄 진정한 개혁정신을
모르는 분이군요
안식일날 세상음악이나 돈벌이 안하는것이 대단한 모범이
아닐것입니다
그런것도 물론 당연히 그런 계층에서는
신실한 분의 신앙모본인것은 맞습니다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음악적 목소리 더 잘내고 안내거나 좋고 안좋고가
중요한것이 아니고 이시대의 중요한것은
자신의 죄을 깨닫고 내적 본질적 회개를 통한 마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자신들의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의 내적개혁을 시작 수행하는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이 화잇선지자가 생전에 그토록 바라던 개혁의 본질입니다
저희 개혁운동은 이것이 교회의 기초적 가르침 인것입니다
외적인것들보다 내적인것 개혁에 더 동기와 가치를 부여하십시오
그런정신이 바른 토대의 정신입니다
참고로 좀 부끄럽지만
마침 오늘 저의 카페의 어느 회원이 질문한것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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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지만 운영자님께 질문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나요? 궁금해서 어쭤 봅니다. 어떤 체험이 있었는지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받아드렸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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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여기서 말하려면 깁니다
오래전에 내인생은 과거 180도 다른 인생을 산다고만 아시면 됩니다
세상의 모든것을 버리고 깊은 시골에 들어가서 작은집짖고 약10년간
다시 성경책과 예언의 신책으로만 살다가 기쁘게 읽으면서 눈물과 감사로
살았지요 육신은 인내가 힘들고 괴로울때가 많았지만 모두 참아 졌습니다
지금은 예언에 무지한 개신교의 여러분들에게 이시대의
현대진리를 전하려고 도시로 다시 나온 사람입니다
어릴 때 안식일교 맛보고 다니다가 한때 다시 세상에 나갔다가
다시 정신차리고 시골로 들어가 세상친구 다 끊고 좋은 직장
직책 모두 스스로 사표내고.
조용한 시골생활들어가 내 품성 개조하라는 듯,,
인내를 배우게 하고, 먹는것바뀌고 입는것바뀌고 취미생활과 생각과
직업이 완전히 바낀사람입니다
가족형제나 친척이 비웃거나 저를 떠나도 그것으로
마음약해지지 않습니다
옛날에 좋든것 싫어졌고 다른것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소위 인간개조를 위해,,,그렇게 성령의 은혜아래 살았습니다
지금도 더 변화되어야하고 물론 아직도 부족하지만 ,,,,,말입니다
그 정도로만 알아 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