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영화가 있다. 약속 없이 만나는 우연도 잦지만 볼 때마다 새롭고 좋은 친구 같은 영화가. <쇼생크 탈출>이 나에게는 그런 영화다. 영화관에서만 두 번 봤다. 그 처음은 1995년 개봉관에서다. 조조할인으로 500원 동전을 거스름 받던 시절이었다. 그해 아카데미에 작품상을 비롯한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펄프 픽션> <가을의 전설> 그리고 6개의 상을 탄 <포레스트 검프>에 밀려 무관 왕이 된, 당시로는 비운의 영화였다. 내가 이끌린 것은 포스터였다. 젊은 주인공은 낯설었지만, 팔 벌려 온몸으로 장대비를 맞고 있는 그가 내뿜는 해방감, 그 환희와 카타르시스는 강렬했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모건 프리먼도 나왔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두 번째 만남은 2016년, ‘아카데미가 놓친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를 받으며 재개봉할 때였다. 이번에는 시니어 할인을 받았다.
자주 꾸는 꿈도 꾸다 보면 길을 아는 법인데, 이 영화는 비디오테이프로, 케이블 TV로 하도 많이 봐서 줄거리는 가르맛길처럼 환하다. 그런데도 질리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보기 시작하건 설레는 장면, 귀 기울이게 하는 대사를 좇아 끝까지 본다. 남편은 나에게 영화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본다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이런 영화다. 가끔 이 영화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탈옥 영화 그 이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애초에 탈옥을 주동하거나 모의하는 일은 없다. 상영시간 142분 동안 수감 생활 19년 차 주인공의 탈출을 보여주는 장면은 5분 정도다. 원제목만 보아도 탈출(escape)이 아니라 구원(redemption)이고, 영화의 원작인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도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리뎀션>이다.
영화적 상상력도 뛰어나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치밀하고 정교한 연출로 메시지를 재미있게 녹여냈다. 반전의 묘수를 곳곳에 두어서 상관없어 보이던 일들이 뜻밖의 곳에서 퍼즐처럼 맞춰진다. 영리한 연출이다. 여기에 팀 로빈스(앤디 역)와 모건 프리먼(레드)이 명연기로 생명을 불어넣는다. 적재적소에 배치한 배우들 역시 이야기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책이라면 밑줄 긋고 싶은 보석 같은 대사도 많다. 매력은 또 있다. 레드의 내레이션이다. 그가 관찰자 혹은 응시자가 되어 1인층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볼수록 멋지다.
앤디는 아내와 그의 정부를 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악명 높은 쇼생크로 들어온 은행원이다. 레드는 그의 첫인상을 “교도소 안을 자유인처럼 거니는 사람”이라 했고, 그가 사라진 다음에는 “새장에 가둬둘 수 없는 새”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 여럿도 이 자유인 앤디가 동료들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일들에서 온다. 그중에 압권은 노래 소동이다. 6년 동안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줄기차게 주 정부에 편지를 쓴 끝에 기증 받은 헌책 더미에서 레코드 한 장을 뽑아 들고 방송실 문을 잠글 때는 큰일 났구나, 싶다. 난데없는 노랫소리에 놀란 간수장이 달려오고 소장이 와서 음악을 끄고 문 열라고 소리치지만 그는 끄떡 않고 볼륨만 더 높인다. 나는 이때의 일을 운동장에 있던 레드의 목소리로 듣는 걸 좋아한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가 갇힌 새장에 날아 들어와 그 벽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한순간, 쇼생크의 모든 사람은 자유를 느꼈다.” 이 천상의 노래가 듣고 싶어서 ‘피가로의 결혼’ DVD를 틀어놓고 보던 날이 생각난다. 막상 기다리던 이중창 아리아, ‘저녁 바람은 부드럽게 불고’는 놓쳤다가 중간쯤에야 알아채고는 되돌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는 역시 쇼생크에서 들어야 해!
그 일로 독방에 2주나 갇혔다 나온 앤디의 희망 이야기도 좋아한다. 모차르트와 함께 지냈다며 음악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그에게 레드가 이곳에서는 음악은 쓸모없고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고 말했을 때다. “이곳이니까 더욱, 잊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희망이에요. 희망은 이 세상 어딘가에 삭막하지만은 않은 곳이 있다는 것, 우리 내부엔 아무도 건드리거나 빼앗을 수 없는 게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에요. 희망은 좋은 거예요. 어쩌면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요.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자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풀려날 희망이 무참히 깨진 순간에도 꿈을 이야기한다. 지와타네오! 그가 여생을 보내고 싶은 태평양 연안 멕시코에 있는 작은 섬이다. 이때도 레드는 희망은 망상일 뿐 현실은 이곳 감옥이라고 하지만, 그는 레드에게 출소하면 꼭 찾아가 보라며 어떤 장소에 대해 말해준다. 미션을 준 셈이다. 그는 천둥번개 치는 날 사라지고 그를 그리워하는 레드 앞으로 발신인 없는 엽서 한 장이 날아든다.
앤디의 희망 대척점에 섰던 레드의 변화를 보는 일은 즐겁다. 그 얼마 후 그는 가석방으로 출소하지만, 준비 없이 40년 만에 맞닥뜨린 바깥세상은 두렵기만 하고, 허락 없이는 오줌 한 방울 눌 수 없는 세상에 길들여진 그에게 자유는 버겁고 낯설다. 집(교도소)으로 돌아갈 수도 목숨을 끊을 수도 없어 고뇌하던 그때, 그는 지켜야 할 약속을 기억해내고 나침반을 산다. 그 일은 앤디의 희망 초대를 수락하는 일이고, 레드의 꿈이 발화하는 지점이다. 그가 그토록 억눌러 가두었던 희망이 기도처럼 터져 나온다. 마침내 그가 이른 곳은 지와타네오, 앤디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나는 이 영화를 희망에 관한 은유, 자유와 구원에 관한 이야기로 읽는다. 교도소란 공간을 빌린 것은 희망을 더 고통스럽게, 간절하게, 찬란하게 만드는 장치인지 모른다. 교도소 담장을 거둬낸다 해도 우리 사는 세상이 이미 거대한 쇼생크다. 자유를 잃은 채 두려움의 수인(囚人)이 되어 쉽고 익숙한 세상에 길들여진 사람으로 가득한 세상! 희망수업이 필요해서 지금도 나는 앤디와 레드를 친구처럼 만나고 싶은지 모른다. 꿈꾸는 세상이 저쪽에 있다고 이쪽의 삶을 낭비하지도 않고 자유로운 세상 지와타네오를 향해 묵묵히 가는 사람, 그리고 그 희망에 물들어 꿈꾸기 시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그린 에세이 2022 7~8, 특집: 예술에 감동하다>
첫댓글 그저 먹먹한 감동으로만 남아있는 거를 이렇게 풀어주시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