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수필 / 《문학시대》 132호 / 류인혜의 책읽기 10 / 2020년
책을 위한 책
-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독서의 역사》, 세종서적, 2020.
류인혜
《문학시대》 연재수필 ‘류인혜의 책 읽기’ 열 번째 글이다. 독자와의 교감을 위한 준비운동은 충분히 한 셈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습관이고 취향이지만,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책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하여 성향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솔직히 필자로서도 어떤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며, 개인의 독서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까, 궁금하다.
2008년에 출간된 ‘류인혜의 책 읽기’《아름다운 책》은 책에 대한 감상문 오십여 편이 그 내용이다. 2003년 11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책의 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으로 계속되는 연재를 위해서 쉰다섯 권의 책을 읽었다. 책의 소개가 목적이지만, 필자가 살아내던 당시의 상황에 영향을 받은, 독후감이라기보다 수필에 더 가깝다고 그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다. 가상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인터넷의 어느 지점에 띄워두기에는 미심쩍고 아까워서 원고를 수정하여 책으로 만들었다.
책이 나온 지 얼마 후 인터넷에는 《아름다운 책》에 대한 독후감이 올라왔다. 책의 저자가 약력이 뚜렷하지 않은 무명의 사람이라고 혹평하는 그는 존재를 밝히지 않았지만, 책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아끼는 만큼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책에 실망하였다. 시선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충격이 아물 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늦었지만 내가 반성해야 할 것들을 찾아보았다. 먼저 책을 많이 읽고 있다는 오만으로 건성이었던 부분이 있다. 읽고 싶은 수많은 책에 눌려 손에 들어온 책은 어서 읽어 치워야 한다며 마음만 바빴다. 주변을 살펴보니 나보다 더 체계적으로 책을 대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징검다리를 디디며 건너가듯이 차근차근 걸어가야 한다.
마음을 작정하니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먼저 사람이 책을 읽어온 내력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낸 책이 《독서의 역사》이다. 2000년에 출간된 초판은 이미 절판되었고, 2016년과 2020년(152*225mm)에 다시 출간되었다. 우리 집에 있는 책은 2000년 1월 30일에 나온 초판(188*254mm) 1쇄이다.
내가 가진 책을 기준으로 하여 이 글을 쓰지만, 관심이 있는 분은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을 구매하여 읽도록 권한다. 쪽수는 같지만, 책의 크기에 차이가 있다. 심정적으로도 크기가 작고 가벼운 책이 들고 읽기 편하다. 또 책은 개정판을 만들 때, 현재에 사용되는 표현이나 바뀐 문법에 따라 문장을 정리하였을 확률이 높다.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라고 쓰고 싶어서 최근에 발간된 책을 도서관에 예약했는데, 코로나19의 수도권 확산으로 인한 재 휴관이다. 언제 만날지 기다리고 있다.
《독서의 역사》의 표지에는 ‘책과 독서에 관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그 위대한 승리’라는 소개 글이 있다. 위대한 승리를 이룬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은 194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비평가, 번역가, 작가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비롯된 책에 대한 열정으로 ‘세계 최고의 독서가’라고 불릴 만큼 책에 관한 모든 것에 집착했다.
학창 시절(16세)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났다. 노모의 손에 이끌리어 서점에 들어온 보르헤스를 만나게 되는 부분은 책이 사람에게 주는 위안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해 준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세계 여러 곳을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던 망구엘은 1970년대 중반에는 타히티에 있는 한 출판사에서 일했고, 1982년 《상상과 장소에 대한 사전》을 펴낸 후 캐나다로 이주했다. 1985년 캐나다 국적을 얻은 후 캐나다의 신문이나 방송 회사에 투고를 많이 했다.
그는 캐나다 국적으로 프랑스에서 「예술과 문학 기사」의 작위를 받은 후 프랑스 비엔에 거주하면서 파리 루브르 박물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 등 세계 각국의 국립박물관에서 강의하며, 3만 권 정도의 책을 소장한 개인 도서관을 건축했다.
세계 최고의 독서가는 언제 문자를 해독했으며, 어떤 책부터 읽었을까, 책에 집착했던 궁극적인 동기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에서 만화영화를 보면서 반복되는 언어를 자막과 연결해 글자를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그렇게 그림들 아래에 적힌 제목을 되풀이해서 살피며 글을 읽게 되었다.
또 다른 방법은 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에서 언어를 읽어냈다는 점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 놀라운 접근은 일상에서의 읽기, 독서이다. 독서의 시작은 생활 속에서 이루어졌다. 단순히 문자를 해독하여 책을 읽은 행위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삶, 살아가는 활동의 내용을 읽어내는 것이 독서이다. 그리고 습득한 문자를 활용한다.
읽어낸다는 행위는 호기심의 시작이다. 인쇄된 모든 것을 읽기 시작했다. 사소한 종잇조각 하나도 버리지 않고 읽었다. 나도 그랬다. 한글을 읽기 시작하자 글자가 적힌 것이라면 무엇이든 읽어내려고 집착했다. 저자도 그렇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읽어 나갔다. 그가 독서의 확장을 경험하는 내용이 흥미롭다. 필자도 그렇게 닥치는 대로 읽기에 몰두했으니 책을 읽으며 동지를 만난 듯이 친밀감이 높아진다.
책의 앞날개에 적혀있는 《독서의 역사》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독서가로서의 독서 편력에 그치지 않고 인류 전 역사에 걸쳐 문자, 책, 독서 행위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망구엘의 방대한 독서량과 해박한 지식이 돋보이는 이 책은 북미에서 인기도서에 오르며 애서가들의 사람을 받고 있다.”
아무리 애서가들의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이고,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책이라도 개인마다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다. 책 읽기와 밥 먹기가 같은 선상에 있는 사람에게도 읽어내기 버거운 책은 있다. ‘역사’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번 책은 책 제목답게 단번에 읽으며 정신의 양식으로 삼기에는 그 내용이 벅차다. 더구나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의 ‘최고의 독서가’다운 탐구열은 그에게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의 보고를 갖게 했다.
한 가지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종횡무진으로 펼쳐놓는 산해진미 같은 자료의 진위를 해석하며 받아들이기에는 시간과 머릿속이 벅차다. 책을 펼쳐 흥미진진 즐겁다가 한편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벌여놓은 듯 난감해지기도 한다.
《독서의 역사》에는 스물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여섯 번째 글 <찢겨 나간 첫 페이지>는 반갑게도 프란츠 카프카(1883~1924)에 대해서 말한다. 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카프카와 그의 작품을 대하는 것에 주목한다. 카프카가 읽은 책에 관심을 두었고, 작가로서의 카프카를 이해하려고 했다. 필자도 카프카가 쓴 소설 외에 그의 전기 비슷한 몇 권의 책을 읽으며 그가 많은 독서를 했다는 것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카프카를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이른 불볕더위 속에서 책 읽기에 몰두하고 있는데, 텔레비전에서는 매시간 ‘코로나19’에 대한 뉴스특보를 방영한다. 고령자 혹은 기저질환이 있는 노약자는 외출을 삼가고 사람이 많은 곳이나 밀폐된 공간에는 가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계속된다. 휴대전화로도 요란스럽게 경적을 울리며 경계 태세에 돌입하라는 긴급사항을 알린다. 바이러스보다 그 소리가 더 싫고 무섭다.
자가 격리의 생활습관을 다시 배워 집 안에서 오래 머무르며 생산적인 일을 찾아야 하는 때이다. 읽어내기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이 책, 《독서의 역사》는 생각이 확장되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천천히 읽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