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시절 성경퀴즈를 할 때
노아의 방주는 무엇으로 만들었습니까 문제를 내면
정답은 잣나무였습니다.
요즘 잣나무라고 말하면 "땡"입니다.
고상하게 코페르 나무라고해야 합니다.
노아 방주에 사용되었던 코페르 나무는
성경에 노아 방주 외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또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 무슨 열매가 열였습니까라고 문제를 내면
성경에 따라서 살구, 감복숭아, 아몬드라고 답할 것입니다.
감복숭아나 아몬드라고 답해도
정답으로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개역과 개정은 살구라고 번역하였고
공동번역은 그 구절이 없고 표준새번역은 감복숭아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또 성막의 언약궤는 무슨 나무로 만들었습까 문제를 내면
성경에 따라서 조각목, 아카시아, 싯딤나무라고 답할 것입니다.
아카시아 라고 답한다고 해서 틀렸다고 할 수 없고
싯딤나무라고 말해도 정답으로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개역한글과 개정개역은 조각목으로 번역하였고
공동번역과 표준 새번역은 아카시아 나무, 그리고 한글 kjv는 싯딤나무라고 번역하였으며
대부분의 영역본은 아카시아 나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조각목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언약궤는 조각목으로 만들었는데
조각목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조각난 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이니
쉽게 말해서 여러 개의 판자로 얽기섥기 만든 사과 궤짝 같은 개념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어이상실입니다.
조각목을 조각난 나무로 이해하는 것은
아마도 유치원 수준일 것입니다.
이런 유치원 수준의 "조각목 인생"이라는 설교는
어이상실의 도를 넘는 구속사적 알레고리 설교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성경의 싯딤은
싯딤나무 곧 조각목이 많이 자생하는 지역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시골에 가면
밤나무골, 참나무 골, 감나무 골과 같은 자생하는 나무의 이름을 따서 지명을 붙였습니다.
싯딤 나무는 대부분의 영역본에 학명을 따라서 아카시아라고 번역하였는데
우리 나라의 아카시아와는 다르고 광야의 아카시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아카시아 나무는
잘 쪼개지고 결이 갈라지기 떄문에 목재로는 전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에서 성경의 싯딤나무를 학명에도 없는 조각목이라고 번역한 것은
조각목(早角木)이라는 한문의 글자가 말해주듯
중국어 성경의 조각자(早角刺) 나무의 음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야의 아카시아와 중국의 조각자 나무가 비슷해서
중국어 성경에 조각자 나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을 조각목이라고 음역하였습니다.
조각목이라는 말은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의 성경 말고는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는 용어입니다.
그래서인지 조각목에 대한 알레고리는
괴벨스의 후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조각목 인생과 같은 거짓 선동의 설교로 도배되었습니다.
조각목을 조각난 나무로 이해하는 수준이나
조각목 인생이라는 설교나 엇비슷합니다.
조각목으로 성소의 언약궤를 만들었다는 유추는
죄인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거처 곧 성령의 전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으로 적용하였습니다.
결국 조각목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전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씀 같고....
강물처럼 밀려드는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조각목은
말라비틀어졌다. 가시가 많다, 천하다, 잘 쪼개진다는 등등의 속성으로
소위 말하는 영성의 옷을 입혀 생수를 주입하고 가시의 저주를 언약으로 복되게 하고,
천한 인생을 높여 존귀한 인생이 되게 하고 죄악의 가시로 다른 사람을 찌르는 인생이 다듬어지고
쪼개어져서 쓸모 없는 것을 다듬어 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옷입히면 조각목 인생은
성령의 전이 되어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누립니다.
할렐루야 아멘입니까?
그렇다면 사이비 설교를 듣고 소위 괴벨스의 거짓 선동에 미혹되었습니다.
조각목의 조각은 이미 글자 그 자체에 예술적 뉘앙스를 주는 말이어서
조각목은 다듬어진 재목이라는 비전의 동력이 더하여진 오해를 낳았습니다.
마치 조각난 널판지를 얽기 섥기 해서 궤작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성소의 언약궤라는 걸작으로 탄생되었다는 모형의 가치를 부여하였습니다.
구약의 성막이나 성소와 관련된 해석이나 설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내용이 성경의 정석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말을 믿지 말라고 세 번이나 외치면서
하나님께서 도적의 소굴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선포하였고
불레셋에게 파괴된 실로의 성소를 어떻게 하였는지 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이런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조각목 인생"을 설교하면.......
두 손들고 오! 할렐루야! 아멘! 하면서 은혜를 받을까요?
요즘 대형 교회 사역자의 설교를 들어보면......
조각목 인생으로 대변되는 구속사적 알레고리의 옷을 입힌 인본주의 설교가 대부분입니다.
방송과 언론이 거짓 선동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듯이
설교의 앞선 주자들이 괴벨스의 선동 교회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은혜의 옷을 입힌 인본주의 설교는
대중의 기호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왜곡되고 호도되고 날조되었습니다.
먼 훗날 오늘날의 설교로 성경을 이해하는 날이 온다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구덩이에 함께 빠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천국문을 가로막는 지옥의 메세지가 될 것입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15:13-20)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여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행14:1)
복음을 전하는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척박합니다.
온실 안에서 할렐루야 아멘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밝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사역의 본질이 아닙니다.
사역의 현장은 철옹성이 아니라'
백병전의 전투 현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쉽게 할렐루야 아멘이 되는 말씀은
거의 대부분 대중적인 기호에 맞는 인본주의 설교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마음의 감동이 되는 은혜의 말씀은
개인의 종교적 감성과 융합되어 용비어천가가 될 공산이 많습니다.
말씀의 은혜가 밀려올 때......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아니라 사탄의 미혹이라고 생각하면
설교자의 모습이 뱀으로 변하고 뱀의 혀가 날름거리는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진리를 옳게 분변한다는 것은
결코 식은 죽먹기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조각목 인생으로 말씀의 은혜를 받는다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영혼의 사냥꾼에게 낚인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일찌기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사냥꾼에 대한 경고와 경계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 너 인자야 너의 백성 중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에게 경고하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려고 손목마다 부적을 꿰어 매고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수건을 만드는 여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은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는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새를 사냥하듯 영혼들을 사냥하는 그 부적을 내가 너희 팔에서 떼어 버리고
너희가 새처럼 사냥한 그 영혼들을 놓아주며
또 너희 수건을 찢고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지고
다시는 너희 손에 사냥물이 되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슬프게 하지 아니한 의인의 마음을 너희가 거짓말로 근심하게 하며
너희가 또 악인의 손을 굳게 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삶을 얻지 못하게 하였은즉
너희가 다시는 허탄한 묵시를 보지 못하고 점복도 못할지라
내가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져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라(겔13:17-23)
영혼의 사냥꾼에 대한 에스겔 선지자의 경고는
종말론적인 경계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종교적인 피폐는 또한 정치적인 황폐로 이어져
작금의 대한민국은 참 목자를 잃고 사나운 맹수와 이리에게 사냥당하는 유리방황하는 양떼가 되었습니다.
어리석게 메이저 언론과 방송의 괴벨스 수준의 거짓 선동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대중적인 지지를 받아 대권을 잡아도 , 그것은 합법을 가장한 권력 찬탈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