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의 정형은 하나라야 한다.
이봉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현대시조는 무엇인가? 정형시인가? 자유시인가? 아니면 자유시도 아니고 정형시도 아닌 제 3의 글인가?
1894년 갑오개혁과 일제 강점기, 민족의 수난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모든 예술과 문화는 ‘고전’과 ‘현대’라는 접두어를 붙여 구별하게 되었다. 고전음악과 현대가요, 고미술과 현대미술, 고전무용과 현대무용, 고시조와 현대시조 등으로 즉 조선한복을 모두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20C초 시조는 거대한 자유시의 파도에 밀려 창(唱)이 탈락된 순수문학으로 ‘현대시조’라는 이름을 달고 다시 태어났지만 자유시를 압도할 정형시의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가사(歌辭)가 아닌 현대시조는 각인각색 중구난방으로 정의되면서 1세기를 보냈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시조라고 하면서 사설시조, 엇시조, 단장시조, 양장시조, 4장시조, 옴니버스시조..,등등 많은 이름과 형식이 명멸했지만 하나도 고착(固着)되지 못하였고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 평시조마저 자유시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형을 잃어 어디까지가 시조인지? 시조의 자리가 위태롭게 되었다.
서점에서도 시조전문지는 거의 팔리지 않고, 개별시조집은 얼굴도 내밀지 못한 채 시조시인들끼리만 무료로 주고받는 책으로 전락하였다. 현대의 급변하는 도시생활에서 자유시와 차별화된 똑 소리 나는 정형시라야 일반인의 눈에 뜨이는데 현재의 시조는 애매한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시조시인, 평론가, 학자들까지 현존하는 모든 고시조에 관통하는 하나의 정형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논자마다 다른 10여개의 정형이 출현하여 서로 다투고 있다. 정형이 여러 개면 이미 정형이 아니다.
일찍이 시조시인 이병기는 ‘整形詩’, 이은상은 ‘定型而非定型 非定型而定型(정형시이면서 정형시가 아니며 정형시가 아닌듯하면서 정형시이다)’이라고 하며 시조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3 형태의 글인 양 정의하였는데, 이 역시 고시조의 울타리 안에서 하나의 정형을 찾으려고 하다가 찾아내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문학의 장르에서는 자유시 외에 ‘정형이 없는 시’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재까지 전해오는 고시조에서 가장 많은 형 3434 344(3)4 3543 을 찾아내어 현대시조의 정형으로 삼고 있다. 비록 이 형에 꼭 맞는 고시조는 “전체 3,335수의 2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김제현저 시조문학론 P58)고 하지만 다른 어떤 형보다 많기 때문에 현대 교과서의 정격시조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다만 엄격한 ‘자수정형’을 지키기 어려움을 이유로 아직까지는 ‘음보정형’이 통용되고 있으나 하루속히 하나로 굳혀져야 할 것이다.
혹자는 시조형식론을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부하고 “서로를 용납하는 방향으로 가자”고 하지만(‘현대시조의 위상’-유승식-계간 현대시조 2012 봄호 P75), 정형론은 단순한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현대시조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이와 같은 정형의 의미를 모르고 편법으로 시조는 정형을 무시해도 된다는 ‘비논리적인’ 억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 안타깝다.
“시조시인들에게 시조가 지닌 형식의 제약성 따위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 거추장스럽다기보다 그냥 정형이라는 형식을 즐기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격조 있는 시조미학’-김연동-월간문학 2012.1월호 P168)는 글을 보았다.
‘정형은 필요 없는 것인데 시조시인들이 그냥 재미로 정형을 찾는다‘는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 차라리 현대시조는 정형시가 아니라고 하든지, 정격시조는 어려우니까 못쓰겠다고 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고무신
눈보라/ 비껴 나는/
전-/군-/가-/도(全群街道)/
퍼뜩/ 차창(車窓)에 스쳐가는/ 인정아!/
외딴집/ 섬돌에 놓인/
하나/
둘/
세 켤레/
(백색부, 1968)
위와 같이 고시조의 어떤 형에도 없고 전혀 시조의 운율과 모습이 아닌 자유시를 시조라고 우기며 “이 시가 자유시인가? 그 동안 잠잠하던 시조단에 요새 부쩍 시조의 형식론을 들고 나와 시조단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있기에 묻는 말이다. 이런 시조를 놓고 똑똑한 체를 해보시라”(위 ‘현대시조의 위상’-유승식-계간 현대시조 2012 봄호 P69)는 글도 보았다.
이런 기막힌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있는가? 이 작품이 ‘현대시조의 전범’으로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는데 오늘날의 시조가 본래의 모습을 잃고 몹시 왜곡되어 자유시처럼 된 원인을 이제야 알겠다.
출처: 시조시인 함세린 시조문학회 [청풍명월 연가] 원문보기 글쓴이: 맑은물 함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