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9일(월)
창세기 25:19-34
장자권에 대한 두 아들의 상반된 태도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가 등장합니다. 이는 창세기에 나오는 여덟 번째 족보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이 40세에 리브가를 아내로 삼은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밧단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고,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다는 설명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밧단아람’은 이곳에서 처음 등장하는 지명입니다.
이삭의 족보에는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 이야기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삭에게는 자녀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이삭은 아내의 임신을 위해 여호와께 간구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의 임신과 관련하여 새로운 갈등요소가 등장합니다. 리브가의 태속에 있던 두 아들이 서로 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리브가는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하고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고,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 나누이리라.”고 리브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도 자녀들이 많다보니 때로는 자녀들 간에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성도들 간에도 부주의한 말 한마디로 다툼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아빠로서, 목회자로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몰라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저도 리브가처럼 “하나님, 이런 경우에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나님께 묻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겠습니다.
리브가는 해산할 기한이 차서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그의 이름을 에서라고 불렀습니다.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습니다. 때문에 그 부모는 아우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때 이삭의 나이는 60세였습니다.
아이들이 장성하자,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었고, 이삭은 조용한 사람이었음으로 장막에 거주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에서를 좋아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야곱이 죽을 쑤었는데, 에서가 들에서 사냥하고 돌아와서 매우 피곤했습니다. 에서는 그 붉은 것을 자신이 먹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자신에게 팔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32절)라고 말하고, 동생의 요구대로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에서가 떡과 팥죽을 먹고 장자의 명분을 동생에게 팔았던 이유는 그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34절).
야곱은 형으로부터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집요함은 그가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손으로 형의 발꿈치를 잡았던 것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27절)이었습니다. 여기서 “조용한”(히, 탐)은 도적 적으로 완벽한 사람을 뜻합니다(생명의 삶 플러스, 2022년 9월호, 183).
물론 이 단어가 본문에서는 “들사람” 에서와 비교해서 장막에 거주하는 ‘조용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야곱은 도덕적으로도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도덕적인 야곱이 선천적으로 형 에서에게 주어졌던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 집요하리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이유는 그가 장자의 명분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 형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가볍게 여김이었더라”(히, 이베즈)는 의미는 “경멸하다.” “경시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위의 책 183).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던”(심지어 “경멸하기까지 했던”) 에서의 영적인 우둔함이 문제였습니다.
만약 누군가 비난을 받아야만 한다면, 형에게 팥죽을 주는 대가로 장자의 명분을 얻고자 했던 동생 야곱이 아니라,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넘긴 형 에서가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 묵상을 마치면서 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직분과 은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가? 나에게는 신령한 것들에 대한 영적인 갈망이 있는가? 나도 에서처럼 신령한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세상의 물질과 쾌락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