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이경림-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는 켈리포니아에 있어요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는 노스할리우드 공원 뒷문 앞 네거리 모퉁이에 있어요
나의 엔티크 숍 바리엔느의 유리문 안 반대편 벽에는 3rd eye가 마주 보고 있어요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는 이오니아 풍의 무늬가 있는 청동의 티 테이불을 가지고 있고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는 아직도 목에 프릴을 빳빳이 세운 19세기 풍의 웨딩드레스를 가지고 있어요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는 황금 장미로 장식된 찻잔세트와 황금 티스푼을 가지고 있고 시대를 알 수 없는 남자의 정장
한 벌과 우스꽝스런 어릿광대의 모자를 가지고 있어요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는 흙빛으로 삭은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의 초판을 가지고 있고 어느 세기의 누군가 사
용했을 녹슨 무쇠 다리미 하나를 가지고 있어요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는 한 세기 전 아니 한 천년 후의 것일 것도 같은 접시와 포크, 스푼..... 온갖 자질구레한 세간 나
부랭이들을 가지고 있어요
아, 또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는 머리가 둘인 병아리의 박제도 가지고 있어요
무엇보다 나의 엔티크 숍 마리앤느는 한구석에 놓인 테이불 앞에 앉아 버지니아 울프를 읽고 있는 은발의 마리엔느를 가
지고 있어요 그 때 나는
-이것들이 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걸까요?
물으려다 그만
-우리는 어쩌다 더듬더듬 엔틱이 되어 가는 걸까요?
중얼거리고 말았지요 그 때 그녀는
-삿보로에 가 보는 게 꿈이었어요 당신은 일본사람?
여전히 버지니아 울프에 눈을 박은 채 그녀가 물었지요
-거긴 가 보지 못했어요
그때 왜 우리는 금세 못 가본 삿뽀로 때문에 친밀해 진 것 같아
서로 다른 것에 눈을 준 채 언제 본적도 없는 삿보로의 눈 축제에 대해
더듬더듬 이야기 했죠
문득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가 슬픈 목소리로 물었죠
거기까지 가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나요?
주름이 가득한 눈을 동그랗게 뜬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에게 나는
-그럴 리가요?
거짓말을 했죠. 그 때 나는 어쩜 우리가 어느 생에서 저 이오니아 풍의 무늬가 새 겨진 청동의 티 테이블에 마주 앉아 차
를 마시던 사이거나 아님 목에 프릴이 빳빳이 세워진 그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한 사이? 아니 아니 어쩌면 삿뽀로의 눈
꽃처럼 화사하게 헤어진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참 쓰잘 데 없는 생각들의 비좁은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중이었는데
-당신,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나요?
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가 늙은 바람둥이처럼 물었죠. 그리고
나는 마치 사랑에 들뜬 신부처럼 대답했죠
-난 랭보를 좋아 해요
쉿! 이건 비밀이지만 사실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는 노스 할리우드 도서관 뒷문 사거리 모퉁이에 없을지도 몰라요 그
뿐이겠어요? 노스할리우드도 켈리포니아도 없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의 벽에 3rd eye가 걸려
있는 건 사실 이예요
솔직히 말해 노스 할리우드에는 나의 엔티크 숍 마리 엔느가 없고(?) 그 옆 타코 가게도 없고(?) 그 옆 스튜디오 피자집
도 없고 손님 하나 없는 꽃 가게도 없을지도 몰라요
무엇보다 18 세기니 19세기니 그런 거짓의 샛노란 뿌리 같은 시간은 없을 거예요
낮도 없고 밤도 없고 자지러지는 불빛도 없고 무섬무섬 밀어닥치는 어둠도 없을거예요 어두워지면 1분에 한번 씩 정확
하게 윙크를 하는 대형 마리린 먼로의 전자인형도 물론 없을 거지만 사실 거기서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와 나는 마주
보고 웃었지요 이층 기차를 타고 센디에고 오션사이드라는 바닷가 마을로 여행을 가기도 했지요 텅 빈 해변이 캄캄해 질
때까지 파도타기를 하는 징그럽게 큰 갈매기들과, 파도 속에서 야앗호! 소리치는 몇몇의 젊은이들과, 흑인 남녀 한 쌍이
모래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낄낄낄 섹스 하는 것도 보았지요
-제가 판 구덩이에서 저렇게 낄낄 대다가 그 구덩이에 묻혀 죽는 것이 삶일까요?’
나의 엔틱크 숍 마리엔느가 시니컬하게 중얼거렸지요
쉿! 우리끼리 말이지만 사실 나의 엔티크 숍 마리엔느 같은 게 어디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