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3일 수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0-26
그때에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걱정 마시오. 걱정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는 법이오.
가끔 아주 멍하게 텔레비전에 빠져서 꼼짝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동물의 왕국이나, 사람들의 놀라운 기네스 도전이나,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세상에 이런 일이, 각종 다큐멘터리, 역사 이야기 등이 그러한 프로그램입니다. 평화방송의 프로그램보다도 더 재미있고, 더 관심을 끌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동물들의 치열한 생존의 법칙이나 살기위한 투쟁은 참으로 볼만합니다. 그들의 신비한 모습들을 보면서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느끼기도 합니다. 동물들에게서 발견하는 놀라운 사실들을 인간과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비교해서 생각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어떤 것들은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재주들을 하느님께서는 안배 하셨다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마존의 원시 밀림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하면, 나는 너무 때가 묻어있고, 겉치장을 많이 하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진답니다. 그들이 느끼는 행복을 나는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작은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온 동네 사람들이 밤새워 춤추고, 기뻐하며 고기 한 점을 행복하게 생각하고 맛있게 나눠 먹으며,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이 춤출 때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보다도 못한 사람처럼 나 자신이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동물들이 먹고 살기위해서 사냥을 하거나 살려고 달아나는 몸짓을 보면서 내 게으름과 안일한 삶이 얼마나 쑥스럽고 부끄러운지 모른답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너무도 가난해서 고구마나 감자 한 소쿠리만 있어도 세상을 모두 가진 것 같았던 때, 지금과 같은 생활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결혼을 하고서도 그 가난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가 둘째를 가졌을 때, 입덧을 심하게 하다가 입덧을 멈추면서 제일 먼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눈치도 없는 나는 어머니에게 그 얘기를 했습니다. 그 때는 어머니가 살림을 주로 하셨고, 동생들과 같이 살았으니 당연히 그렇게 얘기해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미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네요.”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시더니, ‘알았다.’고 하시면서 한 숨을 쉬시고 금방 눈물을 핑 도시는 것입니다. 나는 금방 후회하였지요. 내가 왜 어머니에게 그 얘기를 하였을까? 정말 바보 같고, 눈치도 없는 자신을 원망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고 있는 어머니를 보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전기 같은 충격은 5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내가 잠깐 아내를 데리고 식당에 가서 불고기 백반을 사주면 되는 것을 그렇게 미련하게 처신한 것입니다.
아내는 교사를 하면서 봉급 모두를 집안 살림에 쏟아 넣을 때입니다. 화장품 하나 제대로 사서 쓰지도 못할 때라서 아내는 정말 아주 어렵게 꺼낸 말인데, 나는 그렇게 어머니께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식구가 많았으니 어려운 살림에 어머니도 정말 힘드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더 어렵고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한 것은 ‘나는 그렇게 고기가 먹고 싶었을 때 그런 얘기를 해 준 사람이 없었다.’는 어머니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가난보다도 무관심 때문에 서럽고, 위로와 사랑을 받지 못한 어머니의 눈물을 지금도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생활은 아무도 반가워하지도 않고, 아무도 그 가난을 즐기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가난은 몸서리치도록 싫고, 벗어나려고 무던히 애도 쓰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 팔자라고 체념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존 밀림의 원주민들이나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을 보면서 내 가난은 가난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정말 가난했을 때, 오늘 복음말씀을 들어도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내게는 행복이 있었습니다. 악착같이 공부를 했고, 진심으로 기도 했고, 하느님도 찾으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고 세상의 것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굶주려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우는 사람들은, 주님 때문에 박해를 받고, 세상에서 옳은 일을 하느라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행복하도록 축복해주시며 위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시오.”(성 요한 바오로 2세)
잠 못 드는 이를 위하여 - 정채봉/참 맑고 좋은 생각
그 사람은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채이고 있었다.
귀뚜라미가 찾아와서 찌르르르 찌르르르 잠언을 말했다.
용서하시오. 그 걸림이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지 않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당신 마음의 종기가 될 것이오.
잊으시오. 그가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잠재의식이 되지 않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때때로 당신 마음을 난도질할 것이오.
걱정 마시오. 걱정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는 것이오.
오늘의 수고는 이미 마쳤소. 나머지는 내일 일이오.
쉬시오. 마음에 짐을 잔뜩 짊어지고 자는 사람은 내일이 어두울 것이오.
새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잠들면 기쁜 아침을 맞게 되리니....
그 사람은 잠 속으로 깊이 푹 빠져 들어갔다.
귀뚜라미는 잠들지 못한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났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여러분 안에 있는 것들을 죽이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11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6 이것들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7 여러분도 전에 이러한 것들에 빠져 지낼 때에는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8 그러나 이제는 분노, 격분, 악의, 중상, 또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수치스러운 말 따위는 모두 버리십시오.
9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10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11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축일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John Chrysostom)
신분 : 총대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 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 연도 : 344/354?-407년
같은 이름 : 금구, 얀, 요안네스, 요한 금구, 요한금구,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크리소스똠, 크리소스또모, 크리소스또무스, 크리소스토무스, 크리소스톰, 한스, 후안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또는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아버지 세쿤두스(Secundus)와 어머니 안투사(Antusa) 사이에 태어났는데, 출생 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고 344-354년 사이로 추정된다. 아버지 세쿤두스는 어머니 안투사가 20세 되던 해에 사망했기 때문에, 요한은 젊은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세속적인 출세를 위해 이교도 수사학자인 리바니오로부터 수사학을 배웠으나, 이런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친구로 후에 타르수스(Tarsus)의 주교가 된 디오도루스(Diodurus)와 함께 성서 연구와 수덕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371년 안티오키아의 멜리티우스(Melitius) 주교는 그에게 독서직을 주고 자기 곁에서 일하게 하였다. 그러나 평소부터 수도생활을 갈망하던 그는 인근 광야에 가서 노(老) 은수자의 지도를 받으며 4년간 생활하였으며, 더 적극적인 수덕 생활을 열망하여 동굴에 들어가 2년간 고행과 성서 독서의 생활을 하였다. 지나친 고행으로 건강을 크게 해치자, 어머니 안투사의 눈물어린 간청 때문에 그는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그는 381년 멜리티우스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았으며, 386년에는 플라비아누스(Flavianus)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12년간 안티오키아의 설교 사제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명강론을 하였다. 그의 강론이 너무 유명해서 크리소스토무스(Chrisostomus), 즉 ‘금구(金口)’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390년부터는 신약성서에 관한 연속 강론을 실시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넥타리우스(Nectarius)가 사망하자 황제는 성 요한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임명하려 하였다. 그는 이를 거절하였지만 황제의 뜻이 워낙 완강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하였다. 그래서 398년 2월 26일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테오필루스(Theophilus)로부터 주교품을 받았다. 수도의 총대주교가 된 그는 궁중생활과 너무나 밀착되어 부패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화려한 생활을 질타하고, 신자들이 생활을 윤리적으로 쇄신할 것을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구호사업을 시작함으로써 교회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에페수스(Ephesus)에서 주교회의를 개최하여 성직매매를 한 6명의 주교를 면직시켰다.
그러자 총대주교의 개혁에 불만을 품고 있던 적대자들이 연대하여 요한을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가장 극렬한 적대자는 그에게 주교품을 준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루스 총대주교였다. 한편 처음에는 황실과의 관계가 좋았으나 황후의 지나친 사치와 탐욕을 비난하여 악화되었다. 그는 403년 콘스탄티노플 근교인 퀘르치아(Quercia)에서 개최된 주교회의에서 적대자들의 근거 없는 모략으로 고발되어 면직되었으며, 소심증이 있던 아르카디우스(Arcadius) 황제는 이 결정을 받아들여 그를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로 유배시켰다.
그러나 신자들이 이 결정에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키자 이에 놀란 에우독시아(Eudoxia) 황후는 그의 유배를 취소하였다. 이 첫 번째 유배는 오래가지 않았으며, 성 요한은 군중의 환호를 받으면서 귀환하였다. 그 후 404년에 황제는 그를 다시 쿠쿠수스(Cucusus, 지금의 알바니아)로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려는 신자들의 순례행렬이 계속되자 황제는 다시 흑해 동편의 피티우스(Pityus)라는 험한 숲속으로 유배지를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성 요한은 새로운 유배지로 가던 중 407년 9월 14일 코마나(Comana)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요한은 금구라는 별명에 걸맞게 수많은 명강론과 저서를 남겼다. 그의 강론에는 사도 바오로(Paulus)의 서한들이 많이 인용되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세(Innocentius I)는 412년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며, 그의 유해는 1626년 5월 1일 이후 로마(Roma)의 베드로 대성전 성가대 경당에 안치되어 있다. 1568년 교황 비오 5세(Pius V)는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면서 ‘동방의 네 명의 위대한 교회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한 크리소스토모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