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제의 눈물은
유교문화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우리들은,
친구들끼리라 하더라도 성별이 다른 남녀친구들은 거의 인사말조차 트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 다반 수다.
승제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아버지들께서는 친분을 돈독히 두고 사셨다고 나중에 들어 알았지만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예초사 카페에서 승제를 간접적이나마 자주 만나긴 했으나
직접 얼굴을 본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이다.
다 알다시피 예천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코흘리개 적
우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지 않았던가.
저마다 부푼 기대를 안고 그리움에 찬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렸던 지난 9월 24일.
붉은 저녁노을을 등에 업고 나름대로 흥분된 상태로 영우야, 길영아, 아이고 일현아,
동진이는 왜 안 보이노? 혜옥이는 언제 왔노?
좀 일찍 도착한 친구들은 하마 동동주 기운을 빌어 기분 좋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얼싸 안기도, 서로의 등을 토닥이기도 했다.
저기 저 희탁이의 반가운 얼굴과 취기어린 몸짓이 더 반갑다.
어이구, 조신사님도 기분이 짙푸른 하늘같다.
곧 산더미를 무너뜨려야 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묵묵히 해낼 친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재도, 호철이, 홍한이, 경자, 영호, 용환이~
의숙이는 벌써부터 땅콩접시를 나르는 등 약바르기 그지없다.
명숙이 영숙이 정숙이도 관숙이도 옥희도 영희도 입이 함지박만하다.
몸 관리를 잘 해서 깔끔한 몸매를 항상 유지하는 상열이도 동동주 주전자를 들고
나에게로 온다.
서울지역 늦게 출발한 팀이 막 도착한다.
상일이, 기영이, 경석이다. 먼저 도착한 상현이 동락이 주락이 의숙 순임 성호 등등~
아이구 마카다 반갑고 머리카락이 희끗 하지만 이렇게 좋을 수가~
이웃한 동부초등을 졸업한 친구들도 기꺼이 동참하여 웃음바다가 저녁노을과
함께 넘실거린다.
성국이 창열이 종희 미자 성용이 새박골 용제와도 화이파이브다.
전야제 중앙무대에 유명 가수들이 출연해 흥을 돋우고 있긴 하지만
아무도 그 쪽으로 이동할 생각을 안 한다.
말 안 듣는 애어른들을 통솔하느라 혼쭐이 나는 호철이만 마음이 급해 보인다.
‘호철아 미안! 호철이 니는 그 옛적 3학년 땐가, 4학년 땐가 우리 반 반장 할 때도
그랬어.
우리들은 말 안 듣고 담임선생님은 니만 믿고~’
그 와중에도 감개무량한 표정이 얼굴에서 가실 줄 모르는 각별한 한 사람이
내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승제다.
승제가 한천고수부지에 와 있는 우리 57회 동창생 한사람 한사람 모두에게
유별나게 짓는 반가울 수밖에 없는 표정은, 삼십 오륙년 동안 단 한 번도
예천을 다녀가지 아니한 탓일 것이다.
자리를 옮겨 감천 이지골프 파티프라자다.
다시 우리들만의 오붓한 자리다.
영호와 길영이와 일현이 홍한이 용환이 승해 춘식이 두영이 주창이 익모 등 예천에
거주하는 친구들이 미리 준비한 현수막이나 유인물 등 먹거리로 모든 준비를
해 우리들을 다시 맞아 준다. 원탁테이블에 각 지역별로 둘러앉았다.
프라자 뒤뜰 숯불에서 막 구워 온 삼겹살을 맛나게 먹는다.
호탕한 웃음과 오가는 정담들이 둘 또는 셋의 사이에라면 감히 누구라도 끼어들
수가 없다.
한수와 천석이가 그랬고, 진하와 주락이와 연화와 순임이가 그랬다.
교가제창에서 지역별 친구들 소개, 이 행사를 준비한 리더들의 인사말,
행운권 추첨과 2부 여흥으로 순서가 이어지자 막 밤12를 넘긴다.
몇 순배의 술잔이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진 찍으러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승제는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호일이와 일호와 영홍이 주창이 동진이 등이 숯불에 고기를 굽고
관숙이와 의숙이 갑연이가 분주히 갖다 나른다.
테이블 위 포도송이를 이리저리 굴리며 뒤로 깔깔 넘어가는 남숙이는
뭐가 저리 좋은고?
명숙이 영신이가 다정하고,
부산팀 혜숙이 외 친구들은 굳은 우정을 과시라도 하는 듯 동일한 색깔의 복장으로
아름답다.
건물 밖 뒤뜰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밤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는 승제가 보인다.
얼른 의자를 하나 들고 승제 옆에 갖다놓고 앉았다.
그 때 승제의 눈은 벌겋게 충혈이 되었고 물기도 돌았다.
“승제야, 뭐하노 왜 이리 혼자 쓸쓸해 보이노?”
“그래? 내가 쓸쓸해 보여? 아닌데!”
말과는 다르게 또 눈물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평소에는 잘 안 하는 술인데, 오늘은 좀 많이 했더니 취한다 야~”
한참을 앉아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 봐 주는 것으로 무언지는 모르지만
승제의 심경변화나 눈물이 날 수밖에 없는 그 요인을 이해해 주고 공감이라도 하고 싶었다.
안에서는 시끌벅적 질펀한 대화들이 오가고 여전히 숯불 위에는 고기 굽는 연기가 맵고~
잠시의 시간이 흘렀고, 승제는 낮은 음성으로 많은 말들을 했다.
나는 마치 마음 넉넉한 승제의 이모로 앉아 말끝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
사람은, 아니 사람이니까!
고향을 자주 찾을 수 없었던 애끓이는 자신만의 고유한 잣대를 얼마나 마음속에
갖다 대어보고 또, 그리움의 산실인 고향의 기운을 뒤로 한 체 더 충실한 삶을 살아내느라
또 얼마나 전력질주 했을까.
덩달아 혼란스러움이 몰려와 이모 역할에 충실하려 애썼다.
달리 생각하면, 마치 학가산 어진봉이 구름 밖에 솟아나는 교가의 이미지처럼,
어릴 적 심신을 튼실하게 해준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고향이라는 서정은,
적어도 승제에게는 아버지의 강직함과도 같아 삶의 활력소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더 크낙한 에너지를 느껴 승제는, 이제 고향 예천을
자주 다녀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천친구들이 마련한 이 숙소에서 내일 운동회가 끝나면 다 헤어질 친구들과
더불어 밤을 지새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연로하신 엄마와 함께하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다.
승제의 눈물을 뒤로 하고 엄마한테로 떠나왔던 것이 못내 미안하다.
다음 날 모교 운동장에 승제는 없었다.
사업상 바쁜 일로 새벽에 자리를 뜬 탓이다.
‘승제야, 이제 예천에서도 더러 만나 남산에도,
왕신 냇가에도 상동 들판에도 가보고 흑응산도 학가산도 한번 올라가 보자!’
승제는 취기를 빌었으니 내가 언제 울었냐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승제의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왔을 눈물의 의미를 나 혼자 정의해 본다.
승제의 눈물은,
이러 저러한 연유로 고향 예천을 멀리하고,
아니 어쩌면 고향 예천을 등지고 숨 가쁘게 살아 왔던 지난날들을 기억해 낸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가정을 구성해 사회적으로도 적당히 성공한 자리에 우뚝하지만,
돌이켜 본 삶에 대한 회한과 감회가 스르르 술기운을 빌려 밀려 온 탓 아닐까.
첫댓글 정호가 내마음속을 다알았구나 술기운은 아니고 그냥 고향과 친구들과 함께라는것에대한 반가움 고마움-- 명절때면 얼큰한 술기운에 머나먼 고향을 불러본시간 마음속에 웅어리져있는 미움 이모든것을 용서하지못한 자신 홀로 많이도 가슴아파했던 지난시간들-- 많은 얘기는 접어두고 이젠 화이팅이다 용서의 아름다움을 실천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지만 하나씩 풀어 갈련다 -- 정호야 고맙고 고맙데이---
모임의 후기까지 올리는 정호의 열정에 감동이다 전속사진사로서 책임도 완수하고 뒷얘기까지 마무리하는 정호가 좋다 아는 이름 모르는 이름이 어울려 100주년의 행사가 뿌듯한 예천초57회들이여,,건강해보여서 좋습니다 저도 <예동재부21회> 월모임 끝내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열고 댓글~!!!ㅋㅋ
승제는 술낌에 감정이 들켰구나,,
눈물은 사람만 흘리는 거라지..감정의 정화가 되었으리라~ 용서도 미움도 풀릴 날이 있겠지요
이모역할 톡톡히 한 정호,,눈물의 승제와의 우정이 부럽데이~ 우정이여 영원하라
그래 우리들의 우정이 요새 신났다.
다 들켜버렸네-ㅋㅋ 그래도 기분이 좋다 -- 술낌에 감정이 들킨게 아니라 내속맘이 술에게 잠시 물어본기라---
조심스레 '승제의 눈물' 에대한 글을 올렸는데 반갑게 맞아주어 오히려 고맙다 승제야~
속내를 들킨 대인배 승제의 면모를 보는듯 해서 더욱~
희대의 로맨스나, 역대의 굵은 획을 그을만한 그 어떤 결정도 다 알콜의 기운을 받은 다음에 일어난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적당하게만 마시면 정신건강에 참 이로운 게 술인데 그자~~~~~~~~~~~~~~~~~~,
아침부텀 사람 마음 울리고 그러노?
ㅎㅎ~ 순이야~
언벨런스는 순이도 마찬가지야 호철아~ 아이고 생각만 해도 웃음이~ 순이 노래솜씨는 ㅎㅎ~``````````
못 들어본 사람 순이 만나거든 꼭 들어보소~
그랬구나...
나는 승제가 콧물을 흘리는 것 같기에 감기인줄 알고...
감격과 회한의 기쁜 눈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예천 자주 못 가면 서울에서 예천 친구들 만나면 되지 뭐...
알콩달콩하게 이야기를 옮긴 정호가 너무 섬세하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ㅋ
ㅋ~ 세상 자체가 언벨런스다~ 고마워!
모임의 후기 감사 합니다 ~~~ ㄳ ㄳ
콧물 눈물이 앞을 가리네 ! ㅎㅎ ㅋㅋ
정호야 미안한 얘긴데 난 승제 잘 몰라 누구지~~~~~
명숙아, 야가 승제데이~ 해장국집 아들 황승제!
가수임창제 마이 달마따~
나도 그 눈물을 보면서 당시 감회를 마음껏 느낄 수 있도록 방해되지 않으려 했었다.
정호야~! 후기 즐겁고 재미있게 읽으며 다시 한 번 즐거운 시간 떠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고맙다.
또 한번 모든 친구들을 엮어서 참으로
만나봐야 알겠는데? 정호글은 언제나 맛깔스러워 소설같기도 하고 수필같기도 하고 이런글은 어느장르에 속하는지 알고싶다 가르켜줘
그 날 써 놓고 오늘 다시 읽어 봤음,
오자가 많았는데도 친구들이 잘 읽어줘서 고맙네.
아무 생각 없이 썼는데, 꼭 말하라면 '콩트'~ 아이고,, 콩트라고도 할 수 없지만 그에 가깝지 뭐~ 누구나 쓸 수 있으니 담엔 명숙이 니가 써서 올려줘봐!
정호가 아주 재미 있고도 눈물나는 이야기 올려 놨구나... 멀리 있어도, 글 속으로 그때가 보인다...
그런저런 생각에 흘리는 사나이눈물.. 안흘려본 사람은 모르징..~~!
정호야! 고마버~ 그날의 즐거움이 배가 되네. 자주 만나서 또다른 야기 만들어 보자!!!
정호야 감동의글 이제봤어 ㅋㅋㅋ넌 역시 예초의 보물이다...고마워 *^^*나도 승제 눈물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했단다~~~
너가 승제 맘을 꿰뚤은것같아......사랑해 정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