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력(願力)으로 살아가는 보살(菩薩) / 지하(智霞) 스님
원력소생(願力所生)함이 보살(菩薩)이라면
인연소생(因緣所生)함은 중생(衆生)이다.
이 말 한마디를 명심(銘心)코 받아들여
진실로 깨우친다면 보살의 길이 아득한 것만도 아니요,
먼 길만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보살과 중생의 차이는 원력(願力)과 인연(因緣)에 있는 것이다.
방향이 분명한 어떤 사람이
자기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개척해 나가고자 할 때
무서운 추진력이 소생하는데 이것을 원력이라 한다.
이러한 뜻에 의한 삶이 즉 원력소생(願力所生)이다.
이는 능동적으로 이끌고 가는 삶이다.
반대로 어떤 행위(行爲)가 여러 가지 상황, 조건,
결과에 따르는 것이 인연이라면
이러한 삶은 인연소생(因緣所生)
즉 이끌리는 삶이 되는 것이다.
보살과 중생의 삶의 차이는
이끌고 가는 것과 이끌려가는 차이이다.
생활인중 도시를 원하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산간벽지나 도서지방을 원치 않는 사람이 많아서
순위고사에 따라 원치도 않은 산간이나 도서지방에 간다면
인연 따라 사는 중생으로 고달프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순위고사에 관계없이 스스로 원하는 뜻에 의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벽지에 가서 근무한다면
이는 마음가짐이 다른 것이다.
마치 지장보살이 지옥에서 지옥중생을 제도 하나
괴롭지 않은 것과 같다.
이는 곧 원력에 의한 삶이요 적극적인 보살의 길이다.
직업이 삶의 방편이라면 생의 방편에 어찌 귀천이 있을 것인가.
어찌 말과 글이 심지(心地)에 비교가 될 것이며,
말과 글이 다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면
말과 글과 마음이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방법이야 어떻든 나의 뜻으로 삶의 방향을 정해서
책임 있는 삶을 영위해 나간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불만이나 불안, 공포 없는 즐거운 삶을 향유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보살은 가는 곳이 그대로 정토(淨土)요 낙원이다.
보살이 가 닿은 곳에서 실천하는 모든 것이 다
중생구제를 위한 방편이라면 어찌 귀천과 시비가 따르겠는가.
우리들이 이웃과 더불어 한 생애를 살아감에 있어
보다 발전적이고 능동적인 보살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고
보살의 길을 걷기를 서원해야 한다.
우선 나부터 시작해서 한 길을 걸어야 하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도 함께 걷기를 소리높이 부르짖어야 한다.
이것이 곧 보살화운동이 되지 않을까.
보살화운동(菩薩化運動)의 실천요강을
[옥야경]의 가르침에서 찾아보자.
첫째, 주인의식을 갖고 살아야 하되,
하인처럼 일하는 자만이 주인이 된다.
주인의식이 없는 자는 항상 피동적이요 소극적이다.
그러나 주인처럼 군림하려는 자는 이웃을 잃게 되고
하인 같은 취급을 받는다.
어디에 가나 무엇이 되나 하인처럼 일하면
이웃이 그 사람을 믿고 따르며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모든 삶을 형제처럼 대하자.
형제는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는 혈육으로 맺어진 사이다.
타인이란
의식에서 다툰다거나 외면하고 돌아서는 이웃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형제처럼 이웃해야 한다.
셋째, 이웃을 친구처럼 생각하자.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닌 흉허물이 없는
다정다감한 친구가 되자는 것이다.
서로의 벽이 무너질 일체감 형성에 가장 필요한 요강이다.
넷째, 어버이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자.
어버이에게는 미운 자식 고운자식이 없다.
보살이 중생을 대함에 어찌 밉고 고움이 있겠는가.
하해와 같은 넓은 어버이 마음으로 이웃을 이해하고
포섭함은 보살행의 원융(圓融)함이리라.
이상의 요강을 실천하며 관세음보살을 염(念)하며,
나 스스로 정진할 뿐 아니라 내 이웃이 함께 하면
이 예토(穢土)는 정토화 되는 것이니
이 예토가 정토됨은 보살의 세간청정화 작업의 회향이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고성으로 염불함은
관음이 귀 없고 눈멀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가 관음이 되고자하는 열망의 부르짖음이요
바램 소리이어야 한다.
고성으로 염불하며 기도하는 동안만 지나면 관세음의 원력과
판이한 생각을 계속한다면 어찌 천수천안 관세음원력이 가없다하나
나에게 미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오로지 내가 관음이 되었을 때
관세음의 원력이 나에게 미치는 것이다.
내 가정에서 내가 관음이 되고 이웃에 있어 내가 관음이 되고
또한 이 사회에서 관음이 되어야 한다.
이러할 때 관세음의 원력이 나와 가정과 사회에 미치는 것이요
이 예토가 정토화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작업이 보살의 청정화(淸淨化)작업이며
보살화 운동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배우고
심즉시불(心卽是佛)을 믿는 불자는
누구나 심기일전하여 이 운동에 동참해야 하며
이 보살화 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고자 뭉친 조직이
바로 교단(敎團)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하(智霞) 스님
지하스님은 지난 70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고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졸업했다.
실상사· 쌍계사 주지와 총무원 총무부장,
중앙종회 부의장, 중앙종회 의장 등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