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풍과 거풍을 즐겼던 우리 옛 선인들,
선운산을 오르며 지금은 사라진 선조들의 옛 풍속을 생각했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오늘날 성행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정상에 오르기만을 위한 산행을 하지 않았다.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거나 기념사진을 찍고 마치 시지프스가 돌을 밀어올리고 나서 허무하게 다시 산을 내려가는 것처럼 산을 내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산의 정상에 오르면 가쁜 숨을 고른 다음에 상투를 틀고 있던 긴 머리를 풀어헤쳤다고 한다. 1년 내내 망건으로 죄고만 있어야 하는 머리를 풀고 바람 부는 방향에 서서 그 머리를 바람에 맘껏 날렸다고 한다.
바람으로 빗질을 하는 이 풍습을 즐풍(櫛風)이라고 했는데, 이 즐풍은 방향을 가려서 하였다. 동풍은 좋지만 서풍이나 북풍에서는 하지 않는 법이라서 그날 풍향을 살펴서 동남풍이 불어야 이 즐풍을 위한 등산을 하였다고 한다. 즐풍 즉 바람으로 머리 빗질을 한 다음 거풍(擧風) 단계로 접어드는데, 바지를 벗어 하체를 노출시킨 다음 햇볕이 내리쬐는 정상에 하늘을 보고 눕는 것이 거풍이다.
이러한 즐풍과 거풍 습속은 인간사회에서 억세게 은폐하고 얽매어 놓았던 생리적 부분을 탈 사회화하여 해방시키는 뜻도 있지만 그 목적은 실리를 취한 것으로서 자연 속에 산재되어 있는, 정을 받는 동작이며 의식이 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산중에서 하체를 노출시켜 태양과 맞대면 시켰던 거풍습속은 양(해), 대 양(성기)의 직접적인 접속으로 양기를 공급받을 것으로 믿었던 유감주술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도 남쪽 지방에서는 거풍재, 거풍암등이 지명으로 남아있고 쓰고 있는 속담에 “벼랑 밭 반 뙈기도 못가는 놈 거풍하러 간다.”라는 말을 보면 거풍습속이나 즐풍습속이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에 오르면서 그 산에 얽힌 내력이나 역사에는 관심도 없이 산으로 오르고 내리는 등산객들에게 우리 옛 전통 산행을 권하는 것은 무망한 일일까?
2024년 칠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