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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조실 '월운 해룡 대강백' 영결식 엄수
'폭우 예보'에도 아랑곳없이
5000여 사부대중 운집 '눈물'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 영결 법문
총무원장 진우스님 “스승님 문자사리
여전히 일천강 밝히며 사바세계 밝혀”
윤 대통령 “대종사 가르침 사회에 울림”
월운대종사의 다비의식. 비구름도 잠시 멎어 큰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월운당 해룡대강백이시여, 여기 모인 대중의 비원(悲願)을 저버리지 마시고 삼계왕래(三界往來)에 자재(自在)한 기용(機用)으로 극락왕생하시고 속환사바하시어 이 땅을 연화장세계로 장엄하소서.” 봉선사 조실 월운대종사 영결식에서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는 영결법어를 통해 이같이 설했다.
‘조계종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조실 화엄종주 월운당 해룡 대강백 봉선문도회 장의위원회’(장의위원장 초격스님)는 6월21일 오전 11시 봉선사 청풍루에서 사부대중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월운대종사의 영결식을 봉행했다.
6월21일 조계종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청풍루에서 화엄종주 월운당 혜룡 대강백 영결식이 봉행됐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월운대종사 영전에서 영결사를 설했다.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의 영결법어를 대흥사 조실 보선스님이 대독했다.
종정예하 성파대종사는 대흥사 조실 보선스님의 대독으로 설한 영결법어를 통해 “대강백께서는 평생 삼장(三藏)을 연찬하시고 역경에 힘쓰셨으며, 후진 양성에 쉼없는 정진을 계속하시다 한 글자도 말한 것이 없는 도리를 체득하시고, 그 모습을 보이셨다”며 “마지막 임종의 순간까지 삼장을 떠나지 않고 정진하셨던 후학들의 모범이시며, 학인의 자세를 잃지 않으신 수행자이셨다”고 말했다.
영결사를 낭독하는 총무원장 진우스님.
이에 앞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영결사에서 은사 백운스님과 동문수학하여 오랜 세월 인연이 깊은 월운대종사를 마음 속 깊이 추도했다. 총무원장 스님은 “사부대중의 큰달이며 스승님의 문자사리인 한글대장경은 여전히 일천강을 비추면서 사바세계를 밝히고 있다”며 “노사께서는 해와 달과 바람과 비가 키운 광릉숲을 대총림삼아 능엄학림과 불경서당에서 후학들의 안목을 열어주기 위해 낮밤을 잊고서 정진한 일평생이었다”고 말했다.
총무원장 스님은 또 “역경 포교 도제양성이라는 종단의 3대 지표를 향한 모범을 보여주신 대선지식의 면모를 어찌 만세의 귀감이라 찬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물으면서 “이제 후학들은 운악산 줄기줄기가 비로자나의 법신이요 북한강 굽이굽이가 팔만대장경의 광장설이며 봉선사 동종이 울릴 때마다 감로법음을 내리시는 줄 알며 또 청풍루에서 맑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선정삼매를 이룰 것”이라고 설했다.
추도사를 설하는 원로회의 원로의장 자광대종사.
동국역경원장 혜거스님과 용문선원장 의정스님, 안국선원장 수불스님 등 중진 스님들이 참석했다.
원로 대덕 스님들이 영결식에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회이 의장 자광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월운대종사의 한평생 걸어온 길을 여법하게 소개하고 “한 시대의 포교와 승가교육을 이끄셨던 스님의 시원하고도 드넓은 그늘이 이제 막 시작되는 여름의 열기 아래 더욱 그리워진다”며 “이제 스님께선 흔적 없는 열반의 자리에 드셨지만 스님께서 이루신 포교와 승가교육으로 남겨진 여운은 이 곳 사부대중의 마음속에 여전히 상속되어 또다른 해탈로 이끄는 도사(導師)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운대종사를 추모하기 위해 정재계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대독한 조전을 통해 “한국불교의 대강백 대종사께서는 평생을 한문으로 된 불교경전을 한글로 옮기는 역경불사의 공덕을 쌓으시며 후학양성에 헌신하셨다”며 “매일같이 부처님 말씀 읽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라던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셨다. 대종사님의 말씀을 받들어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데 정진하여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하고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노력하겠다.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뜻을 기리며 극락왕생을 발원한다”고 말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주경스님이 조사를 하는 모습.
중진 스님과 정계 인사들의 조사가 이어졌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주경스님은 “월운대종사님은 한평생 종단의 숙원, 역경에 헌신한 보살의 삶을 사셨다”며 “우리 후학들은 대종사님이 열어주신 길을 따라 묵묵히 일념정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정도스님도 “이제 남은 후학들은 큰스님께서 평생의 목표이셨던 교육, 포교, 역경사업의 유지를 이어받아 한국불교의 발전에 매진하겠다”며 “다시 사바세계에 화현하시어 화엄종주 대강백으로 우리 시대의 부르나 존자로 역경보살로 우리들의 영원한 큰스승으로 돌아오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1400만 경기도민과 함께 월운 큰스님 입적에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며 “월운대종사의 가르침은 우리 곁에 바람처럼 그늘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스님, 빛으로 돌아오셔서 대종사님의 속환사바를 빈다”고 추모했다.
주호영 정각회장은 “어려웠던 한문 대장경을 쉬운 한글로 번역하셔서 국민들이 장경의 바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신 큰스님의 필생의 노력은 국민들에게 큰 은혜를 베푸신 것”이라며 “큰스님의 한글대장경은 불멸의 문자 사이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광덕 남양주시장도 “생전에 한글대장경이 한글을 배우고 싶은 누구에게나 삶의 지혜를 얻고 뜻깊은 삶을 찾아 나갈 수 있는 보배창고가 되길 바란다는 큰스님의 유지를 잘 받들고 대중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영결식은 봉선사 합창단의 조가와 종단 원로 중진과 문중 문도 재가신도 순 헌화로 이어졌다. 문도대표 철안스님은 감사 인사를 통해 “50여년간 큰스님을 모시고 살면서 세차례 눈물짓는 모습을 보았다”며 그 세 번은 운허스님 영결식날과 봉선사 청풍루 낙성식날, 37년간 318권의 한글대장경 완역본을 완성하신 날이라고 말했다.
철안스님은 “저희 제자들은 문도 선후배간 화합을 근본으로 봉선교구가 서울-경기 2000만의 정신문화를 이끌고 미래 남북통일을 이끄는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하여 누구나 의지하며 친정집처럼 오고 가고픈 곳으로 만들겠다”며 “그리하여 불심과 평온을 얻어가는 봉선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하며 문도를 대표하여 그 증표의 예를 드린다”고 인사했다.
월운대종사의 법구 이운 모습.
월운대종사의 법구를 이운하는 행렬.
월운대종사의 법구 이운이 시작되자 경내 곳곳에서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염불이 이어졌다.
월운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불자들.
영결식에 이어 다경실에 모셔진 월운대종사의 법구를 이운하여 노제를 지낸 뒤 봉선사 연화대에서 다비의식을 진행했다. 다비식은 조계종 어산 종장 법안스님, 바라지 선훈스님의 집전으로 다비의례, 하화, 장엄예불 순으로 엄수됐다. 장의의원과 문도 스님들이 봉은 높이 들어 큰스님을 연화장 극락세계로 인도할 하화의식을 봉행, 사부대중 모두가 불법승을 외치며 거화에 들어갔다. 참가대중들은 애도의 눈물을 쏟으면서 큰스님의 ‘속환사바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나무아미타불 염불만을 외었다.
봉선사 다비장 연화대에서 월운대종사의 법구가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다.
월운대종사 문도 스님들과 제자 스님들이 눈물을 머금으며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모습.
스님들과 신도들도 큰스님 마지막 가는 길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터트렸다.
월운대종사 영결식에는 전국서 수많은 대중 스님들이 참석하여 큰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총무원장 진우스님, 원로회의 의장 자광스님, 원로회의 부의장 보선스님과 도후스님, 원로회의 의원 철웅, 지명, 암도, 혜승스님과 명예원로의원 송암, 여산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스님, 호계원장 보광스님, 포교원장 범해스님, 동국역경원장 혜거스님, 한산사 용성선원장 월암스님, 안국선원장 수불스님 등이 참석했다. 중앙종회의원으로는 심우, 우석, 오심, 제정, 만당, 정덕, 우봉, 원경, 탄웅, 성로, 향문, 보화, 정제, 보관, 선광, 성원, 성행, 재안, 태진, 대진, 종봉, 성웅, 학암, 혜공, 삼조, 덕운, 정범, 보인, 설암, 도심, 가섭, 탄하, 법성, 무경, 진각. 일화, 현무, 덕현, 석장스님 등 50여명이 대거 참석했다. 전국서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도 자리했다. 법주사 주지 정도스님, 관음사 주지 허운스님, 수덕사 주지 도신스님, 범어사 주지 보운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스님, 금산사 주지 일원스님, 백양사 주지 무공스님,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 선암사 주지 대진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스님, 대흥사 주지 법상스님, 선운사 주지 경우스님, 군종특별교구장 능원스님 등이 참석했다.
중앙종무기관 부실장 스님들과 국회의원, 산하기관장들도 참석했다. 조계종 교육원장 직무대행 지우스님, 사업부장 주혜스님, 재무부장 우하스님, 불교사회연구소장 원철스님, 불학연구소장 덕림스님, 포교부장 선업스님 등이 참석했다.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 영결법어 <전문>
世尊臨入涅槃 告大衆云 始從鹿野苑으로 終至跋提河토록 於是二中間에 未曾說一字니라.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 대중에게 “녹야원으로부터 발제하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한 글자도 말한 것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월운당 해룡대강백이시여!
화엄종주 월운대강백께서는 여래께서 그러하셨듯이 평생 삼장을 연찬하시고 역경에 힘쓰셨으며, 후진 양성에 쉼 없는 정진을 계속하시다 한 글자도 말한 것이 없는 도리를 체득하시고, 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월운대강백께서는 운허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시고 월운이란 당호로 전강을 하셨으며 통도사 강원 강사를 시작으로 불경서당, 불교전문통신강원, 능엄학림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셨고, 동국역경원 역경위원으로 시작하여 동국역경원장 소임을 맡아 고려대장경을 한글대장경으로 완간하시어 불교 중흥의 토대를 마련하셨으며 이 땅에 법사리의 가피가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능엄학림을 개원하여 전통 강맥을 계승하고 이사에 무애한 명안종사를 배출하시어 여법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땅에 구현되도록 하신 이 시대의 원력보살셨습니다.
월운당 해룡대강백이시여!
대강백께서는 마지막 임종의 순간까지 삼장을 떠나지 않고 정진하셨던 후학들의 모범이시며, 학인의 자세를 잃지 않으신 수행자이셨습니다.
이제 스님의 자비로운 모습과 대방무외한 선지와 대기대용의 법력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 모인 대중의 비원을 저버리지 마시고 삼계왕래에 자재한 기용으로 극락왕생하시고 속환사바하시어 이 땅을 연화장세계로 장엄하소서!
불기 2567(2023)년 6월 21일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중봉성파 분향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영결사 <전문>
“스승님의 문자사리 한글대장경은 일천강을 비춥니다”
지난밤에 흰 구름이 홀연히 보름달을 가렸으니 산과 강을 구별할 수가 없고 동쪽과 서편을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운악산의 아침햇살은 여전히 대가람의 창호를 비추는데 다경실 처소에는 인기척이 멈추면서 적요함만 가득합니다. 자비로운 배의 노를 잃어버렸으니 고해를 헤매는 나그네는 무엇에 의지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우왕좌왕할 뿐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설사 달이 진다고 해도 절대로 하늘을 여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사부대중의 큰달이며 스승님의 문자사리인 한글대장경은 여전히 일천강을 비추면서 사바세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다시금 되뇌이면서 헛헛한 마음을 추스릅니다.
서역 구마라집 대사와 중원 현장법사의 역경원력(譯經願力)이 해동에서 다시 화현하시니 두 나라의 역경보살께서 이구동성으로 ‘청출어람’이라고 하면서 환희하셨을 것입니다. 한사람의 잘못된 번역은 만인의 눈을 가린다는 가르침을 항상 명심했고 원전에 있는 말은 절대로 빼지 않았으며 없는 말은 결코 보태지 않았습니다. 보고나면 잊어버리고 잊어버리면 다시 보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행간의 뜻을 읽어가며 제대로 뜻을 드러내고자 노심초사하는 불퇴전의 일상이었습니다.
노사께서는 책상 앞에서 항상 원고지를 메꾸거나 아니면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고 해와 달과 바람과 비가 키운 광릉 숲을 대총림삼아 능엄학림과 불경서당에서 후학들의 안목을 열어주기 위해 낮밤을 잊고서 정진한 일평생이었습니다. 역경 포교 도제양성이라는 종단의 3대지표를 향한 모범을 보여주신 대선지식의 면모를 어찌 만세의 귀감이라 찬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후학들은 운악산 줄기줄기가 비로자나의 법신이요 북한강 굽이굽이가 팔만대장경의 광장설이며 봉선사 동종이 울릴 때마다 감로법음을 내리시는 줄 알며 또 청풍루에서 맑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선정삼매를 이룰 것입니다. 큰법당 용마루 위를 지나가는 흰구름은 만고(萬古)에 유유(悠悠)하고 방적당(放跡堂)의 고노불(古老佛)은 천추(千秋)에 여여(如如)하실 터이니 다시한번 여름 밤하늘의 달을 쳐다봅니다.
명월상괘대허중(明月常掛大虛中)이니
야반불로중차월(夜半不勞重借月)이라.
밝은 달이 언제나 허공에 걸려 있기에
한밤중에도 힘들이지 않고 다시 달을 빌리네.
불기2567(2023)년 6월21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분향
■ 사진과 함께 보는 화엄종주 월운당 해룡 대강백의 발자취
화엄종주 월운당 해룡 대강백은 1929년 음력 11월12일 경기도 장단에서 3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5세 때부터 19세가 되던 1945년까지 향리 유릉서당(柳陵書堂)에서 4서와 3경 및 통감을 마치고, 그 해 남해 화방사 객실에서 유숙하다, 21세가 되던 1948년 단옷날 운허대종사를 은사로 출가, 법명은 해룡(海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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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화엄종주 월운당 해룡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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