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을 살찌우는 100 권의 책과 글(53)
[태백산맥] 조정래 한길사 刊
1948년 부터 1953년 사이에 우리민족은 민족사에 있어 가장 혼란하고 비극적인 참상을 겪게 된다. 6.25라는 전쟁의 아픔을 서서히 잉태하고있던 좌-우익의 대립이 해방공간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1948년의 여순반란사건, 제주4.3 사건으로 표출되어 시간을 끌다가 바로 6.25로 이어지고 만다. 작가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은 바로 이 시기를 다루면서 벌교를 무대로 벌어지는 <투쟁>의 긴 세월을 박력있게 그려가고 있다.
1948년 10월 여수-순천반란사건이 일어나고 토벌군에 밀린 염상진, 하대치 등은 조계산으로 들어가고 율어면을 해방구로 장악한다. 벌교가 국군의 손에 들어오자 이번에는 우익들이 날뛰며 좌익 입산자 가족들을 찿아내어 갖은 만행을 저지른다. 이 때부터 서로의 대립이 심화되고 증오심을 키워가는 도중 농지개혁이 단행되나 소작농들에게는 기대하던 바와는 거리가 먼 그림의 떡이되어 민심은 결정적으로 좌익의 편에 서게 되었다. 이즈음 6.25가 발발하고 순식간에 한반도는 인민군의 손에 들어가며 벌교는 다시 염상진 등이 장악한다. 경찰은 후퇴하기 전 좌익의 혐의가 있거나 입산자 가족들을 모조리 사살한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전세가 역전됨에 따라 인민군들은 북으로 퇴각하게 되고 벌교의 염상진부대도 다시 입산을 결정한다. 그리고 수많은 소작농들도 따라 빨치산이 된다. 입산한 빨치산들은 전염병에 걸려 죽기도 하고 군경과의 전투, 추위, 굶주림 속에서 최후를 맞아 염상진도 퇴로가 막히자 부하 4명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하고 그의 목은 읍내에 내걸린다. 염상진의 분신과도 같았던 하대치는 부하들을 이끌고 염상진의 무덤앞에 나타나 끝없는 투쟁의 의지를 다지고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제 1 부 恨의 모닥불, 제 2부 민중의 불꽃, 제 3-4 부 분단과 전쟁 > 전 10 권에 모두 다 담겨 있다.
"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그믐달이 서편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그믐 달빛은 스산하게 흐렸다. 달빛은 어둠을 제대로 사르지 못했고, 어둠은 달빛을 마음대로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달빛과 어둠은 서로를 반반씩 섞어 묽은 안개가 자욱히 퍼진 것 같은 미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머리에서부터 어두운 장면은 앞으로 일어 날 수많은 죽음과 희생을 예고하고 있다. 270여명이나 많은 등장인물들은 바탕민들의 한(恨)과 그에 결부된 이데올로기를 두 개의 축으로 하여 분노와 회한과 감동을 동시에 우리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한국문학 최고의 걸작중에 빠지지 않는 [태백산맥]은 그 명성에 어울리게 수백만부가 팔려 몇 안되는 밀리언셀러 대열의 선두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민족분단의 원인을 규명하고 민족통일을 위한 실천적 이론을 제시>(송건호), <`수난받는 민중상`에서 `이념을 지닌 역사적 당위성으로서의 민중상`의 부각>(임헌영), <숨겨진 진실의 재확인과 민족적 자기 모럴의 새로운 확립>(권영민)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찬사를 받아 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느끼는 바는 어딘지 모를 어느 한 구석의 찜찜함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자라온 5-60년대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극심하여 좌(左)를 입밖에도 내지 못하도록 쇠뇌의 반공교육을 받은 덕분에 이와 같은 소설을 읽으면서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는 바로 이 작품이 용공성향의 작품이라 하여 당국의 검열과 조사도 많이 받았고 어디까지가 "표현의 자유"인가를 두고 또한 많은 논쟁을 부르기도한 사실과 괘를 같이 하고 있다. 영화화되었을 때 이 영화의 내용이 빨치산의 활동상에 촛점을 맞추고 일면 그들을 미화하였다하여 많은 우익단체들로 하여금 물리적인 데모의 반대에도 부딪쳣다. 좌익보다는 우익을 적대시하고 좌익은 도덕적, 양심적, 피해자로 그리고 우익은 부도덕하고 악랄한. 가해자로 묘사한 소설의 내용은 어느 일면에서는 내용 자체만으로 볼 때 반 국가적, 반 역사적, 반 민족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문학의 예술성과 순수성이 퇴색하고 정치지향에 편향된 소산으로 보기에 족하다. 나 혼자만의 이런 느낌은 아니리라 본다. 80년대말부터 동구의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우리사회에도 이데올로기의 누림이 자유스러워져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刊)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식의 변화에서는 우려스러울 때가 많이 있다. 이데올로기에 촛점을 맞춘 [태백산맥]은 조금은 어느 한 곳으로 기울여져 있다고본다. "인간은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않으면 어느 시대 가릴 것 없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일 수 밖에 없다"는 작가의 말에 그 의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극우를 편들다 국수주의로의 흐름을 경계도 해야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의 현실이 좌편향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 아닌지. [태백산맥]이 던진 물음으로 명료한 해답을 찿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남북정상회담은 회담이고 오늘날에 와서도 기분과 분위기에 휩쓸리는 점을 우리들은 경계해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가 6.25의 실상, 참상 그리고 그여파가 역사를 얼마나 뒷걸음치게 만들었고 그 원인제공자와 악수하며 괴변(?)의 새로움을 보여주는 그 지도자밑에서 5년을 견더온 우리들의 주위에 알게 모르게 빨치산을 미화하는 [전설적인 인물 이현상]같은 평전이 나오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검은색 표지에 붉은색의 제목에다 노사분규현장에 등장하는 걸게판화를 연상시키는 소설 [태백산맥]의 표지그림은 과연 무엇을 우리들에게 시사하고 있을까. 소설의 내용과 더불어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