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디 시인>>
<<이우디 시인의 양력>>
* 서울 출생(본명:이명숙)
* 2014년『영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 2014년『시조시학』신인상 등단.
* 2019년『문학청춘』시부문 신인상 수상.
* 시집 : 『수식은 잊어요』
* 시조집 : 『썩을,』
* 제12회『시조시학』젊은시인상 수상.
* 2016년,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주문화예술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이우디 시인의 시>>
옥돔/이명숙(이우디)
지느러미 가시 같은 까칠한 손잔등이
햇살을 뒤척이며 꾸득꾸득 말라간다
함지 속 대여섯 뭉치 하얗게 핀 소금꽃
갈매기 비린 문자도 졸고 있는 오후 세시
굵은 주름 행간마다 서린 미소 너른 여백
때 늦은 국수 한 사발 입술주름 펴진다
식용유 한 스푼에 열 올려 튀겨내면
뼈째 먹는 보약이라나 오일장 할망 입심
바다도 통째 팔겠다 검정 비닐 속 찬거리
《2014년 영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먼나무/이우디
가슴을 열면 가난한 새들 눈알이 붉다
가지에 걸터앉은 높하늬바람이
슬어놓은 알처럼
북극성이 불을 켜면 정박하는 닻별이다
12월의 숨골을 덥히는 삼태성이다
새들의 광장이다
당신은 촛불을 켜는 사람
불그림자 읽는
불을 잉태한 배꼽에서 연기가 난다
스포일러/이우디
허공에 박제된 무당거미가 전생을 끌고 오기도 했다
강요당한 숨
싱싱한 심장 쪽으로
기울어가는 것을
스폿 애니메이션으로 보기도 했던가
짧은 상상은 꿈보다 찬란한 거니
다 못한, 다한 사랑도 없는 계절
1,700년 동안 화산 잿더미 속에서 속닥거리다
얼결에 뛰쳐나온 폼페이 연인들처럼
생사의 경계에서 문득 핀 꽃보다 사랑을 미분하는
왜청빛 비린내는 반송하고도
네가 나를 경영하는 사이
아찔한 나를 주장한 매혹적인 인연까지는,
구설이 싫어 끊은 SNS에서
붉은 눈의 전갈이 튀어나오질 않나
끓어 넘치는 용암의 혓바닥이
중심을 잃고 서툰 관계를 완성하질 않나
우리 사이
태양의 안쪽은 녹슬지 않아
불길한 예감 편애하는 나는, 우연히라도
너를 사랑하지 않겠니
상강(霜降) 무렵/이우디
아침의 꼬리, 말아 쥐고
눈뜨자마자 복용하는 비타민처럼
온다
코피-루왁의 절묘한 향으로
향을 모르는 이에게는 길냥이 초록 눈동자 표절하는
짙은 울음으로
온다
가르릉 가르릉...
운다
나를 모르는
너는
그러니까, 처음인 듯
탐탐 겨드랑이에
눈빛 묻고
탐탐 허벅지 사이
송곳니 박고
탐탐 시간 건너뛰고
덮어쓰고
계절을 간섭하는
시그널처럼
너는
문득, 서늘한 눈빛으로
유리창을 들여다본다
갸르릉 갸르릉, 유리창에
서리 내린다
저녁볕/이우디
무릎 꿇은 자세로
내 안의 드라코는
나를 견디며
동토의 산문을 쓴다
사체 청소부로 연명하며 아슬아슬한 드라마를 연출하는 몇몇
아무르 표범처럼,
온몸 가득 매달린 눈물의 식구 가만히 받아
순장한 그때
태양 언저리에서 자전하는 지구처럼
잎을 떨구는 활엽수처럼
당신 기웃거리며 기울기에 반응하는
내 그림자
본 적 있는 것처럼
어쩌면 너는
나를 찾아 온 별의 씨, 어쩌면 내일이란 무지개
바람 한 됫박쯤 건네는 일
너에게 빛이 되는 일
가장 오래 운 내 눈물로 너는 詩, 가 되기도 할까
문득,
당신 안에서 건들거리고 싶어질 때
북위 50도의 태양은, 당신을 닮았다
소문처럼 붉은 날/이우디
연약한 눈짓 모른 척 상처는 고요하다
덧난 생물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도도록이 의견을 제시한 피의 응고는 밤의 제사장을 모방한 늙은 앵무새의 누설이다
나는 말을 접어 곱씹기 시작한다
오래 씹을수록 흙내에 지배당한 듯 좁아진 식도의 반란이라야 고작 들리지 않는 웅얼거림 뿐 누설은 도륙된다
무저항이 저항이라고 믿는 소극적인 두근거림,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의기양양 동시에 고개 떨구는 꺼림칙함,
동짓날 밤은 끝이 없는 기억만인데 분홍도 죽은 분홍 판치는 흥건한 어둠의 하복부
상처는 상처로 치유되지 않는다
자신 없는 침묵은 방치되는 것처럼 그 시간은 죽은 시간이다
다리 모두 마비된 은여우 눈빛 숨기고 나는 가는 길 위에서 머물지 않는다
기억이거나 예감이거나...
'봄은 다시 한번 온다'는 무고한 말이 소문처럼 붉은 날
파두/이우디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고장난 후렴구가 병실 창문 넘어가면
새를 품은 허공은 종종 금이 갔다
새들의 눈물 받아먹은 구름
북쪽으로 흐르다 신호등에 걸리고
노래인지 신음인지 흐늑흐늑
창밖, 은행나무 흔들면
부러진 화살 같은 햇살 속에서
죽은 물고기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병원 뒤뜰에 납작납작 주저앉은 우울한 가락
민들레처럼 채송화처럼
봄, 여름 다 보내고도 시들 줄을 몰랐다
계단에 걸터앉은 앉은뱅이처럼
일어설 줄 모르는 마른 뼈들이
연주하는 두만강,
침묵하는 먼 강바닥으로
아버지 자꾸 미끄러지셨다
님에게, 로 가시는 환승역에서 잠시
젖은 몸 말리는 뱀처럼 마르고 마르다가
푸석푸석 입김만 날리다가
더는 남길 게 없다는 듯
거품만 게우다가,
음의 파도 저어가는 파두처럼
낡은 의자에 앉아 듣던 높낮이 한결같아서
은행잎 떨구는 가을이 시들었을 뿐
그 강은 마르지 않았다
대(竹)/이우디
이렇듯 맑은소리 자라는 것은
한 곳 늘 비어
아무 계절 잠시 쉬어 가기 때문인지
고요조차 물 흐르듯
먼 산 구름 가듯
중얼중얼 지나가기 때문인지
어제도 오늘도 머물지 않는다
비바람이 오면 울음으로 젖은 온몸
무심한 듯 내줄 때
입안 가득 연둣빛 머금은 순간
한 세계 깨지는 소리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백 년, 다시 백 년이 가도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꽃이 필 때까지는 기다릴 것이다
셰인*/이우디
새털구름을 히치하이크하는 사슴이 있다
흘러가다 멈춘 음악처럼, 언젠가 떠날 사람처럼, 그러니까 숙명이라
잠시 머물다가 먼지 속 떠도는 호흡이다가
서부 개척사의 한 페이지에 끼워 놓는 거기까지가 나의 전생 일지 모
른다
목이 말라도 물을 참는 나를 본다
겁없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덤터기 쓰다가 줄거리 없는 생을 소모
하다가
모면할 길 없는 탄피로나 남는 여기까지가 한 치 앞일지 모른다
자막에 남아 있는 검은 활자는 쏠 듯 말 듯 쏘지 못하는 총잡이 사내
꽃은 필까, 궁금해진다
부사 형용사 살진 관념어만 쳐들어오지 않는다면, 국경 언저리 들개
처럼 남아있을 시(詩)를 기다려
오늘 나는, 당신을 쓰는 것이다 당신의 이름으로 나를 쓰는 것이다
* 셰인(Shane) : 미국 영화.
프롬프터(prompter)/이우디
한 줌 빛으로만 있는 너를,
사방으로 흩어지는 너를,
어두운 화면으로 읽은 적 있다
홀로 존재하는 빛처럼 접속되지 않는 너를,
그림자만 골몰하는 너를,
고장 난 화면처럼 기다린 적 있다
휘어진 빛 뒤쪽의
약속일지 몰라,
돌멩이에 맞은
새가
떨어뜨린 노래처럼
비명도 그 무엇도 아닌 소리로
보내지도 잡지도
못한
사이, 사이, 피어오르는 안개
그리고 침묵
스팟트 뉴스처럼 스쳐 가는 나의 내면을
너에게 들킨 적 있다
열빙어/이우디
그늘을 감각하는 구름이 있다 잊히지 않는 것은 구름 안쪽이 두껍다
는 말,
언니에게 전화를 건다
먼 별에서 보내오는 신호만
뚜뚜뚜
감자 꽃 떨어지는 소리를 낸다
감자보다 감자 꽃을 더 좋아한다며 감자처럼 웃던
옻갓 마을 떠나지 못한
언니,
전화를 걸기 전엔 몰랐다
그녀가 구름의 주민이었다는 것을, 골수암이 깊어져 하늘 너머로 주
소를 옮겼다는 것을, 이승도 저승이요 저승도 이승이었다는 것을, 먼
듯 가까운 별과 별 사이 구름의 주소록 펼쳐 밤마다, 기착지 없는 비행
기를 탄다
내릴 곳은 없고 빈 하늘만
빙빙빙 돈다
몰려오는 구름 속
열빙어 떼가 지나간다
우기(雨期)를 몰고 오는 그늘 아래
시나브로
감자 꽃 진다.
하우스 오브 카드*/이우디
포도는 제가 보랏빛인 걸 알까?
매혹적이고 게다가 멀어 울고 싶지만
울 수 없어서 궁리 중이라지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최선을 다해 울어볼 맘 하나,
이해를 구하는 것도 동의를 구하는 것도 아닌 그저
뙤약볕의 호의와 바람의 진심과
낙서하듯 어루만지는 비와
하얀 눈 껍질 속에서 우화하고 싶었을 뿐
호접몽에 취한 장자처럼
일곱 빛깔 끝머리에서 모든 구별 잊는 거라지
누군가의 포도가 되기 위하여 낡은 시간 지우고
새로운 시간 품어 안아
여섯 가지 빛이 마지막 뭉클 원하듯이
단말을 먼지처럼 뱉으며 탱글탱글 익어간 속말 궁금한 아침,
전설이 된 마스크 벗어 던지고
오늘을 누설한 난간에 턱을 괸 포도송이를 보네
포도의 말을 모르는 내가
포도의 눈빛에 홀린 내가
햇빛 등지고 적당한 거리 두고 혀를 자르는 것은
이달의 포도가 되는 거라네
까닭없이 까다로운 먼 보라가 인생이라지만, 우리…
*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2013년 미국드라마
외로움이 풀리면 허공이 흘러내려요/이우디
당신을 금지한 꿈은 운명이지만
내 무릎은 싱싱해요
허공 사이로 손을 뻗으면 석양볕이 쏟아져요
지상으로 뛰어내린 햇살은 멍든 보라
외로움은 끝이 없어요
소원을 말하고 싶어질 거예요
상상은 기특해요
샛노란 이파리에 숨겨 둔 첫정 늘
서창 너머 풀린 어둠처럼 섭섭하지만
속수무책 깃든 설렘은
수천수만 나비를 반사해요
내일은 영국사에 갈까 봐요
당신이 흘리고 간 그림자를 찾으면
천태산 은행나무 옆에서 하룻밤 자고 올까 봐요
콩트 같은 고백 하나
별들이 뿌려진 나무에 걸어두고 올까 봐요
죽은 물고기 눈동자에 비친 금빛 노을을 풀어
어느 천년의 주술을 실행해보지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저녁이에요
바람개비는 아름다움과 슬픔을 혼동하지 않는다/이우디
바람이 온다
머리 한올이 돌기 시작한다
발밑에 누워있던 강아지가 돈다
잘린 가슴 한쪽이 회오리 친다
피가 돈다
컹 컹 컹 컹, 깃발처럼 펄럭이는 개 짖는 소리
바람은 엄숙하지 않아
우린 쉽게 돈다
네게로 가는 편서풍에 키스하는 문장,
남은 가슴 한쪽 속달로 보내 놓고
밤비처럼 운다
빈 가슴 가득 울먹이는 물음표를
꼭꼭 씹어 먹는다
엉성하게 증류된 나를 마신다
여기 어딘지
눈시울 붉은 달이 운다
촛불처럼 운다
밤, 비(悲)는 소각한다
이별이 보통인 이 별의 아름다운 날개는 사라지는 중이다
러블리 바오밥나무/이우디
마다카스카르 모론다바에 가면
러블리 바오밥나무가 있다
하필 아프리카,
태양의 눈빛에 바람도 흘러내리는 곳이지만
어디 사는 누가 누군지 알 리 없지만
누가 누굴 알아본다는 것은
아름다운 모의(模擬)
이런 사랑 앞에서 태양인들 뜨겁지 않겠니,
바오밥나무 잎사귀들이 바람의 입술처럼
연서를 주고받는다
사랑은 달다, 벌서듯 증언하는 입술 앞에서
차마 돌아서지 못 하는 나의 사랑은
열매일까 꽃일까,
그늘도 모르면서
나는 언제나 열매를 소망했지,
오지 같은 그늘이 무단횡단하는 오후
그 너른 그늘을 누구에게 분양했는지
바오밥 나무를 추궁한 적 있다
남편의 스마트폰에서 바오밥 향기 난다고
악담 퍼붓는 바람 아니어도
미용실 한쪽 구석에 걸려 있는
‘크림트의 키스’를 볼 때마다 슬픔과 뜨겁게 입 맞추는
나의 전생을 확인한 적 있다
아름다운 연인보다
밥공기 먼저 떠올리는 생각 속
‘크림트의 키스’를 한번쯤 불러내고 싶은
러블리 바오밥나무가 있다
지난 계절이 낙엽처럼 울어도
사랑은, 달다
오늘의 해설은 픽션인가요/이우디
오해를 삼킨 목구멍이 불만을 밷지 못하도록 입술 지지르면서
혀는
꼬리를 말아요
선무당 빨강이 자주를 지나 재탄생 되는 동안
단맛이 습기를 풀어 푸른곰팡이를 키우는 동안
이스트 넣은 반죽처럼 부푼 명치가 비명을 질러 대는 동안
눈알을 빼고... 코뼈를 주저앉히고... 입에 불쏘시개를 쳐넣어요
얼굴과 얼굴 사이 경계 모호해질 때까지
이해가 오는 시간은 언제나 늦어서 농담처럼 남은
재 혹은 죄
배설하지 못한 오해는 너무 표독해서
삶이 그대를 속인 것처럼 그대, 나를 속여요
사소한 세계는 하루가 뚝뚝 져도 문밖의 무슨 일
알아채지 못하면서
생전과 사후가 별거 아니게 된 오해처럼 그대, 나를 삼켜요
벚꽃, 한 잎 함수/이우디
벚꽃이 시야를 점령한다 수천수만의 눈 감은 날개들 활활 타올라 봄볕 갈피갈피 꽃빛이다
시인의 심장이 흘러내린다 꽃비에 젖는다
잊고 있던 봄꿈이 전해오는 안부이리라
봄빛 꽃빛 받아 든 한 겹 아자창에 꽃물이 흘러내린다 눈이 젖는다
기억을 사수 못 한 문장이 바람결에 자맥질하는 연분홍 향기에 울컥,
흔들리다가 공중을 세다가
바닥을 구르다가
뱃가죽이 쓰린지 등허리가 헐었는지
춤꾼처럼
몸을 세우다가 발끝을 세우다가
궁시렁궁시렁
굴렁쇠 습작하다가
풀썩,
하늘을 본다
눈꼬리에 한 방울의 계집애 대롱대롱
흔들리다가,
톡!
냉이꽃 엔딩 멘트/이우디
거기 어디든 가 닿으면 버는 꽃잎은
기적의 DNA 증언하려는데
할 말을 잊어버렸다
첫눈에 가 닿은 듯 오는 떨림은
어느 먼 별 증명 하려는데
당연하지 않았다
바람의 창 몰래 엿본 기억은 불구
별빛 달빛 고백하려는데
그리움을 다 써버렸다
사라지는 게 일상인 구름의 몸말 같은
'나의모든것을드립니다'*
리허설은 끝났다 마법이 풀렸다
*냉이꽃 꽃말
마리노 라벤더의 속삭임/이우디
고민보다 먼저 온 것을 고민해요
유도하지 않아도 유도화는 피어
그 터널 속으로 나를 유도하는 것처럼
세상이 우리 반사하기를
대답해줄래요?
프로방스 세낭크 수도원은 말이 없는데
수도원에 흩어진 달빛은 누구의 속말인가요
하루 이틀… 세는 걸 놓치고도 달빛에 흩어진 별빛을 주워요
군더더기 말을 팔아
나를 사는 건지 오늘을 사는 건지
회색빛 뒷모습 두둔하는 사이 재만 남은 우리 쉬게 하기를
침묵해줄래요?
보랏빛 상처 번식할수록 위로는 흔들리지 않고
꿈에 본 엄마의 약방문처럼
고민보다 먼저 온 것을 고민할래요
숨죽여 흐느끼는 이 계절
피 묻은 추억들 쓸데없이 또 선명하고
잠긴 비명이 심장을 찢어도 우리
살아야 할 이유 충분해요
동트지 않은 세상, 별빛 더 찬란한 것은 희디흰 증언
광장은 울지 않아요
푸른 혁명은 언제나 돌아오거든요
영원을 찾아 나선 詩의 전말/이우디
너는 자그마하고 흰 노트
갈피마다
너의 볼우물 깊어지는 밤이 오면
적막은
세상에 없는 자유를 쓴다
아름다운 과녁을 응시하는 사막을 애무하는 별빛들
위에
수줍은 눈웃음 편애하는 서툰 나는
달빛을 좋아하는 미어캣
사적인 이유가 되어 나를 쓴다
사막이 바다가 되는 이기적인 상상 위에 우리를 쓴다
껴묻은 거품을 뱉어내는 전갈의 새벽
사구마다 피어오르는 물꽃은
싱싱한 증거
피와 땀이 밴 기도 또 필사하는
내게 깃든 모든 사라짐을 목도하는 것은 따뜻한 시작
실패일 리 없다
너로 가득한 문장의 항로 오직
나를
따라오니까
우린 하나, 이니까
숨빛, 공유하다/이우디
슬픔은 무연고,
허가받지 못한 꿈에 초대 받지 못한
무허가 그늘은
뼛속까지 무안하고 당황스럽지만
동창에
몸으로 써 내려간 성에처럼 종교적이다
어둠 속에도 의견을 말하고 싶은 고요가 있어
418년 만에 빛을 본 순장된 원이 엄마 편지처럼
술술 풀려나오는 울음을 영접하고 이 밤
시간 여행자가 된다
눈 속 가득 안개꽃이 핀다
천년의 미로 속에 갇힌 이터널
영원한 것의 홈페이지 접속은 에러의 연속
머릿속 말라붙은 피딱지 제거하는 동안
폐쇄된 공간을 다운로드하는 새벽
눈물로 써 내려간 그리움이
월영교의 부드럽고 따스한 안개를 연주한다
가장 깊은 슬픔은 떨림…
인더섬*/이우디
오늘의 서랍이 불행하다 _ 키워드는 행복
금단의 무렵 당도한 단 한 번의 설렘은 이슬 맛
뜻밖의 붉은 와인
경계 없이 따뜻한 너를 닮은
하루의 이름은 영원
행간마다 질투가 난무하지만
다정한 구름 한 점 없이 흔들리는 고장난 허공
우연은 무슨 맛일까
사과하지 않은 채 몸을 날린 사과 맛일까
탈색한 머리 핑크 보라로 물들인 딸기 맛일까
아름다운 무대 그리운 기억은 일곱 빛깔 무지개를 가졌다
부담의 그늘 공유한 예술은 독한 맛
보드카 스피리투스(SPIRYTUS)보다 독한 입술 맛
바다 요정 세이렌의 억울을 고민하다 침몰한
일찍이 초기화된 아카이빙 거기, 오직 사람이 사는 곳
양떼구름 콘서트 하는 그 섬에 가고 싶다 _ 바람의 브릿지와 훅 파고드는 파도 짜릿한
조난도 좋고
어제의 친구들과 하나 되는 건 행운
행복은 덤
우울은 안녕
보라 고래가 물 축포 쏘아 올리는 것은
2막을 시작하는 우리만의 방식
꿀 보다 사랑이 흐르는 섬, 그곳에 간다
* BTS 모바일게임
사고 싶은 빛이 있다/이우디
심술 난 갱지처럼 풋잠이 눈시울 친다
꿀 먹은 혀처럼 상냥한 표정으로
말은 혀 밑에 말아 넣고 눈물의 간지 속으로 숨어들 듯
숨의 갈피 못 잡고 생시(生詩)의 크레바스에 갇힌 적 있다
금가는 벼랑 거기
피다 말고 진 얼붙은 꽃의 안부 사실
첫사랑처럼 궁금하지만
노을을 조율하는 사람의 끝머리
빚이 빛 불러보는 빚 첩첩 4월이 또 온다
시커먼 바이러스에 감염된 오늘
몸 부풀리는 하루치 허기
또 하루 털리지만
굴절되는 빛 살짝 볼 붉히지만
삶은 우리 편 아닌 것을
신은 벌써 죽은 것을
사고 싶은 한 평 빛이 있다
어리둥절 어린 새 깃털 같은
기억 잊은 숫눈 위 유서 같은
안개/이우디
살 속으로 스며드는 이슬이 있다
물색없이 수줍은 울음의
뒤 켠
흩어지는 꽃잎들
포클레인으로 파헤친, 단지 낡아 더 슬픈 것들
찰나의 접속으로 푸른 허공 깨문 듯이
바람의 눈빛 지나간 자리
눈물은 수치
희푸릇 번지는 어둠의 무렵
흘러내리는 살빛 너머 영원으로 가는
낱섬들
마주하지 못할 순간들이 소복하고 소복하다
실시간 듣는 꿈의 지도/이우디
숲은 음악이다
흔들리는 초록과 도망가는 바람과 팔랑거리는 노루귀와
밤새 운 듯 젖은 눈의 토끼와 바닥을 집착하는 이끼와
너무 먼 진실과 흐린 눈을 한 나머지 생명들과
숲속의 섬이 되는 달빛의 무렵 아무튼
사람은 사랑
서로, 가 서로의 가치다
햇볕에 그을린 토끼는 빨간 눈으로 달빛을 줍고
별이 흩어놓은 향기 흐르는 동안 음악은 이슥토록 숲이 된다
두서없이 순서 따위 버리고 해가 달이 되고 달이 해가 되는 사이
가면 쓴
하루가 깃털처럼 가벼운 그때
담박한 이유 하나로
오늘도 무사히
나는,
초기화된다
스콜/이우디
나의 열대에 당도한 비의 랩소디는 음청빛
수 세기 동안 흘러내리고도 한순간 손등으로 훔치면 사라질
한 점 얼룩으로나 남을
종갓집 맏며느리 눈빛만 같은 회색 바다보다
차갑거나 뜨겁거나
변할 리 없는 도시의 밤
물오른 꽃구름 꽃잎 벌자 왈칵 쏟아지는 설움에
눈물로 손사래 치는 사운드 포에트리
고민하지 않는다
영원의 강을 창작하는 그 사랑
그리운 것이 말라가는 사이
사막의 플레이리스트가 주술처럼 풀리는 오늘
물길이 불길보다 거센 밤
꽃잎은 사구에 지고
눈물은 참지 않는다
변함없이 너를 쓰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