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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햇살튀김. 시원하고 말금한 향, 오이 / Food Essay_들살림 편지
ysoo 추천 0 조회 132 17.07.14 11: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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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Essay_들살림 편지



햇살튀김집 / 성시다.


도마, 볼, 국자, 수저, 찜기,
테이블매트, 이불, 베개, 신발들이
소집되었다.
우수한 튀김 재료다.
잘 달구어진 햇살은 따로 소금을
떨어뜨려
온도를 가늠하지 않아도 된다.
바닥에 댄 발바닥이 따끔거리면
최적의 온도 표시다.
햇살기름이 넉넉해 어지간한 재료를
한꺼번에 튀겨도
온도가 내려가지도 않는다.



햇살튀김


튀김의 최대 적은 수분!
그러나 오늘은 게릴라 비 군단의 진격 계획도 없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다.
손등에 튀거나 얼굴에 튈 염려는 내려놓아도 되니
업주와 고객은 느긋하고 관대해져서 상호간 흡족하다.


파사삭!
한여름의 뜨거운 기록
졸깃한 하모니카, 옥수수


유례없는 가뭄으로 농작물이 힘든 시기를 보냈다. 고랭지 배추가 말라 배틀어지고 고추, 마늘밭에 스프링클러를 돌려야 하던 지난달이었다. 밭에서 자란 숱한 작물 가운데 유난히 가뭄에 약한 녀석이 있으니 바로 옥수수다. 넌출넌출한 잎사귀가 동그랗게 말려들어 걱정했는데 용하게 버텨주었다. 그 생명력이 어디서 기인했을까
생각해보니 어렴풋 알 것도 같다.


취학 전까지 시골 할머니 댁에서 유년을 보냈다. 거개가 그러다시피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셨는데, 당시만 해도 옥수수는 필수 작물로서 밭은 말할 것도 없고 마당에까지 키 큰 옥수수를 심어 가꾸셨다.

할머니의 껌딱지이던 나는 논이든 밭이든, 우물가든 마을의 정자든 할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졸졸 따라다녔는데 옥수수밭이라고 예외일 리가 없다. 특히 옥수수밭에 갈 때는 더 신이 났다. ‘수숫대 사탕’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낫으로 옥수숫대의 아랫도리를 쳐내고 대나무 껍질처럼 딱딱한 줄기를 이로 벗겨내면 폭신폭신한 속살이 나온다. 이것을 자근자근 씹으면 달콤하고 시원한 즙이 나와 입안을 황홀하게 적신다. 나무 기둥 같은 줄기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오는지 신기하고도 오달지기 이를 데 없었다. 껍질을 벗기다 자칫하면 가늘고 거친 줄기가 입술을 찔러 피를 보기도 하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군것질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옥수숫대 사탕 물은 그 궁한 어린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코코넛 열매가 주는 수분과 당도에 비할 수 없는 달콤하고
시원한 기억이다. 이렇듯 몸 전체에 수분을 가득 머금은 작물이어서 타들어가는 가뭄쯤은 끄떡없었나 싶다.


옥수수는 밭과 부엌 사이의 거리가 짧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을 만큼 수확하자마자 쪄먹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양이 많을 땐 한 번에 다 소화하기 어려우니 쪄서 냉동 보관해 한동안 한여름의 뜨거운 기억을 읽는 즐거움도 있다. 껍질을 두어 겹 정도 남기고 벗겼다. 밭에서 금방 딴 옥수수는 자체의 촉촉한 단맛이 고여 있어 소금이나 여타의 것을 가미하지 않아도 다디달다. 수염은 따로 말릴 참이다. 부쩍 방광이 예민해져 곤혹스러웠는데 옥수수수염이 도움이 된다 하니 끓여 마셔볼 참이다.


이 염천에 두 찜 통째로 삶고 있는데 구수한 냄새가 집 안을 장악해 후텁지근한 공기는 참아줄 만하다.

먼저 삶은 것을 호기롭게 뜯었다. 식힐 틈을 기다리기도 조급해 이 손 저 손으로 옮겨가며 한 자루를 게 눈 감추듯 뜯었다. 물론 이걸로 끝이 아니다. 한자리에서 시작하면 너덧 자루를 뜯어야 성이 찰 정도로 옥수수 탐닉이 대단하다.


절반은 통째로 얼려 출출할 때 하나씩 녹여 뜯는 재미를 먹을 것이고, 절반은 알알이 떼어 밥에 카레에 샐러드에 술술 뿌려 쫄깃하게 터지는 즐거움을 얼려둘 것이다.

알알이 떼어낸 옥수수를 본 김에 강정을 버무렸다. 마른 팬에 옥수수, 호두, 호박씨를 볶은 다음 간장과 올리고당을 바글바글 끓여서 볶아둔 옥수수와 견과를 섞어 동글동글 뭉쳤다. 크랜베리 한 줌 넣기를 잘했다. 졸깃하고 고소하고 새콤달콤함이 누가 먼저라고 튀지 않고 고르게 어우러진다.

찐 옥수수가 냉동실에 가득하면 여름이 무르익는다는 표징이다. 그러니 매실청, 양파, 마늘장아찌를 담그는 게 봄김장이라면, 옥수수 갈무리는 여름김장쯤 되겠다. 든든하다.




시원하고 말금한 향, 오이


매미가 물푸레나무 멱살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탁구공만 한 몸집을 키운 창 너머 밤나무의 싱싱한 젊음이 눈에 들어오는 점심나절. 배가 고팠다. 아침을 걸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제 따둔 오이를 총총 썰고 국수를 알맞게 삶았다. 간장과 매실청으로 간을 맞추고 햇마늘 한 톨 콩콩 찧고(이마저 번거로우면 안 넣어도 되고), 방금 볶은 참깨도 부수어 술술 뿌렸다.

갓 빻은 깨소금에서는 운동회 때 모래주머니의 집중포화를 맞아 쏟아진 조각 종이처럼 고여 있던 참깨의 향이 와그르르 쏟아진다. 들기름도 조르륵 따라 가볍게 들어 올리듯 섞으면 단순하고 간편한 오이채 간장 비빔국수다. 비빔밥이든 비빔국수든 거섶이 주인공이다 싶게 듬뿍 넣는 편인데, 오이 역시 헤프다 싶도록 풍성하게 넣었다.


아, 시원하다. 오이의 살내가 시원하고 그 성질도 시원하고 찬물에 멱을 감은 면발이 시원하다. 콧속을 장악한 향기는 입안에 진득이 머물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끌미끌 목구멍에 기름을 바른 듯 넘어간다.

열무를 듬성듬성 썰어 비비거나 고추장에 비빈 국수도 맛있지만, 요즘은 양념을 줄인 담박한 음식에 입맛이 더 당긴다. 라면 한 개를 다 먹어내지 못할 만큼 면류를 즐기지 않는 편인데, 이 단순하고 뜨거운 결과에 자주 빠져들 것 같은 예감이다. 여름 부엌에선 가능한 한 불을 적게 쓰는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

그 점에서 이 음식은 노동 대비 효율이 높은 편이다.


아침에 따 먹고 돌아서도 저녁이면 또 그만큼 내어주는 오이의 왕성한 행보 덕분에 된장이나 고추장에 쿡 찍어 먹거나 숭숭 썰어 무쳐 먹고, 말갛게도 볶고, 달걀과 전분을 넣어 끓여도 먹고, 절여서 오이지를 담아도 공급이 넘친다. 아, 이런 즐거운 비명이라니!


오이의 적체 해소를 위해 갈았다. 한두 개를 갈 때는 강판에 갈아 거르지만, 많은 양을 소비하기 위한 작정이어서 믹서에 드르륵 갈아 즙과 건더기를 분리한다. 연둣빛을 극렬히 애호하는 나는 말금하고 순한 빛깔에 무너졌다. 음식의 절반은 역시 시각적 요소가 좌우한다는 사실에 크게 공감한다. 땀을 비 오듯 흘리지 않아도 습기와 열기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여름 몸은 피로하다. 물만 잘 마셔도 보양이 된다는 설에 동의한다.

풋풋하고 착한 빛깔 오이즙을 마시면 더러 나쁜 몸도 온순하고 착해질 것 같다. 걸러낸 오이즙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마셔도 좋고 차게 해 마셔도 좋다. 하지만 오이의 풋내가 달갑지 않을 땐 레몬청과 탄산수를 넣고 민트잎을 넉넉하게 준비해 짓이긴다. 조각 얼음도 넉넉하고 거칠게 부숴 넣고 휘휘 젓는다.

여기에 럼을 에센스처럼 떨어뜨리면 쿠바의 국민 음료 ‘모히토’가 된다. 오이즙이었을 땐 순수하고 착한 음료 같았는데,서양 재료 몇 가지를 보탰더니 도시물 먹은 세련된 아가씨 같다.


사남매가 왕왕 크던 학창 시절의 여름이면 친정엄마는 아침마다 기도처럼 오이즙을 내주셨다. 상큼한 향기와 초록빛 싱그러움 때문에 눈이 먼저 시원해지는 음료였다. 이에 더해 즙을 짜낸 건더기는 밀가루를 버무려 부침개를 부쳐주셨다. 비록 즙을 짜낸 오이 건더기였지만 오이의 연둣빛이 부드럽게 배어났고, 오이 향도 고스란히 유지되었다. 급기야 어느 날부터는 오이즙보다 오이부침개를 더 기다리게 되었다.


오이를 활용하시던 모친의 영향을 받아 오이 건더기를 버리지 못하고 나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오이즙을 거르고 남은 건더기에 접착력이 생기도록 밀가루를 넣는다.

소금을 넣는 시늉만 한 듯 엄지와 검지로 집어넣고 버물버물 섞는다. 팬을 따끈하게 달군 다음 기름을 두른다. 기름 소모를 줄이고 부침 반죽의 겉면에만 코팅되듯이 밀착되어 반죽 속까지 기름이 흡수되는 것을 막아준다. 반죽을 얇포름하게 펼쳐 앞뒤로 지진다. 바삭하고 노릇하게 부쳐도 되지만, 오이부침개는 투명하게 익은 연둣빛을 살려 지지면 눈이 즐겁다. 모친의 알뜰한 지혜가 깃든 부침개다. 폐기될 운명에 놓인 오이 건더기의 통쾌한 반전이다. 그러므로 오이의 변신은 무죄다. 올여름, 그 빛깔에 그 청량한 향기에 원 없이 첨벙거리겠다.



글·사진 양은숙(자연주의 생활 스타일리스트, <들살림 월령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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