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od Essay_들살림 편지 햇살튀김집 / 성시다.
햇살튀김 튀김의 최대 적은 수분! 파사삭! 유례없는 가뭄으로 농작물이 힘든 시기를 보냈다. 고랭지 배추가 말라 배틀어지고 고추, 마늘밭에 스프링클러를 돌려야 하던 지난달이었다. 밭에서 자란 숱한 작물 가운데 유난히 가뭄에 약한 녀석이 있으니 바로 옥수수다. 넌출넌출한 잎사귀가 동그랗게 말려들어 걱정했는데 용하게 버텨주었다. 그 생명력이 어디서 기인했을까
할머니의 껌딱지이던 나는 논이든 밭이든, 우물가든 마을의 정자든 할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졸졸 따라다녔는데 옥수수밭이라고 예외일 리가 없다. 특히 옥수수밭에 갈 때는 더 신이 났다. ‘수숫대 사탕’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낫으로 옥수숫대의 아랫도리를 쳐내고 대나무 껍질처럼 딱딱한 줄기를 이로 벗겨내면 폭신폭신한 속살이 나온다. 이것을 자근자근 씹으면 달콤하고 시원한 즙이 나와 입안을 황홀하게 적신다. 나무 기둥 같은 줄기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오는지 신기하고도 오달지기 이를 데 없었다. 껍질을 벗기다 자칫하면 가늘고 거친 줄기가 입술을 찔러 피를 보기도 하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군것질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옥수숫대 사탕 물은 그 궁한 어린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코코넛 열매가 주는 수분과 당도에 비할 수 없는 달콤하고
이 염천에 두 찜 통째로 삶고 있는데 구수한 냄새가 집 안을 장악해 후텁지근한 공기는 참아줄 만하다. 먼저 삶은 것을 호기롭게 뜯었다. 식힐 틈을 기다리기도 조급해 이 손 저 손으로 옮겨가며 한 자루를 게 눈 감추듯 뜯었다. 물론 이걸로 끝이 아니다. 한자리에서 시작하면 너덧 자루를 뜯어야 성이 찰 정도로 옥수수 탐닉이 대단하다.
알알이 떼어낸 옥수수를 본 김에 강정을 버무렸다. 마른 팬에 옥수수, 호두, 호박씨를 볶은 다음 간장과 올리고당을 바글바글 끓여서 볶아둔 옥수수와 견과를 섞어 동글동글 뭉쳤다. 크랜베리 한 줌 넣기를 잘했다. 졸깃하고 고소하고 새콤달콤함이 누가 먼저라고 튀지 않고 고르게 어우러진다. 찐 옥수수가 냉동실에 가득하면 여름이 무르익는다는 표징이다. 그러니 매실청, 양파, 마늘장아찌를 담그는 게 봄김장이라면, 옥수수 갈무리는 여름김장쯤 되겠다. 든든하다.
시원하고 말금한 향, 오이
어제 따둔 오이를 총총 썰고 국수를 알맞게 삶았다. 간장과 매실청으로 간을 맞추고 햇마늘 한 톨 콩콩 찧고(이마저 번거로우면 안 넣어도 되고), 방금 볶은 참깨도 부수어 술술 뿌렸다. 갓 빻은 깨소금에서는 운동회 때 모래주머니의 집중포화를 맞아 쏟아진 조각 종이처럼 고여 있던 참깨의 향이 와그르르 쏟아진다. 들기름도 조르륵 따라 가볍게 들어 올리듯 섞으면 단순하고 간편한 오이채 간장 비빔국수다. 비빔밥이든 비빔국수든 거섶이 주인공이다 싶게 듬뿍 넣는 편인데, 오이 역시 헤프다 싶도록 풍성하게 넣었다.
열무를 듬성듬성 썰어 비비거나 고추장에 비빈 국수도 맛있지만, 요즘은 양념을 줄인 담박한 음식에 입맛이 더 당긴다. 라면 한 개를 다 먹어내지 못할 만큼 면류를 즐기지 않는 편인데, 이 단순하고 뜨거운 결과에 자주 빠져들 것 같은 예감이다. 여름 부엌에선 가능한 한 불을 적게 쓰는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 그 점에서 이 음식은 노동 대비 효율이 높은 편이다.
풋풋하고 착한 빛깔 오이즙을 마시면 더러 나쁜 몸도 온순하고 착해질 것 같다. 걸러낸 오이즙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마셔도 좋고 차게 해 마셔도 좋다. 하지만 오이의 풋내가 달갑지 않을 땐 레몬청과 탄산수를 넣고 민트잎을 넉넉하게 준비해 짓이긴다. 조각 얼음도 넉넉하고 거칠게 부숴 넣고 휘휘 젓는다. 여기에 럼을 에센스처럼 떨어뜨리면 쿠바의 국민 음료 ‘모히토’가 된다. 오이즙이었을 땐 순수하고 착한 음료 같았는데,서양 재료 몇 가지를 보탰더니 도시물 먹은 세련된 아가씨 같다.
소금을 넣는 시늉만 한 듯 엄지와 검지로 집어넣고 버물버물 섞는다. 팬을 따끈하게 달군 다음 기름을 두른다. 기름 소모를 줄이고 부침 반죽의 겉면에만 코팅되듯이 밀착되어 반죽 속까지 기름이 흡수되는 것을 막아준다. 반죽을 얇포름하게 펼쳐 앞뒤로 지진다. 바삭하고 노릇하게 부쳐도 되지만, 오이부침개는 투명하게 익은 연둣빛을 살려 지지면 눈이 즐겁다. 모친의 알뜰한 지혜가 깃든 부침개다. 폐기될 운명에 놓인 오이 건더기의 통쾌한 반전이다. 그러므로 오이의 변신은 무죄다. 올여름, 그 빛깔에 그 청량한 향기에 원 없이 첨벙거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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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