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령의 여의사의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의사 한원주 할머니는 92세의 고령이다. 지금도 요양병원 내과 과장으로 의사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녀는 1926년 진주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산부인과 전문의를 딴 뒤 미국으로 건너가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 10년 동안 근무한 뒤 1968년 귀국했다. 당시는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병원을 개원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1979년 여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인생의 의미를 잃었다. 돈도 명예도 무의미했다. 병원 문을 닫고 하나님이 왜 나를 의사의 길로 인도하셨을까 되짚어보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의료선교회를 조직하여 가난하여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의술을 펴는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다. 일제 치하부터 광복 이후까지 그녀의 아버지는 고향인 진주를 중심으로 결핵퇴치운동과 콜레라예방운동에 앞장섰다. 한센병 환자와 형무소 수감 환자들, 두메산골 주민을 위한 무료 진료에도 힘을 쏟았다. 그녀 역시 아버지가 걸어갔던 길을 걸으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의료선교회 봉사를 마무리하고 의사로써의 길도 끝이 나는 듯 했다.
하지만 인생을 마무리할 때 그녀에겐 또 다른 사명이 기다렸다. 요양병원에 노인 환자들을 섬기는 일이다. 한원주 의사는 병원 측과 ‘종신계약’을 맺었다. 그녀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하되 일할 수 없을 때가 오면 이 병원에 입원하고 여기서 임종할 수 있도록 계약했다. 생의 마지막까지 환자들과 더불어 살다가 하늘나라로 떠나겠다는 선언이다.
그녀의 인자한 모습을 보며 혹시 기독교인이 아닐까 했는데 역시 교회의 권사님이셨다. 6대 신앙 가문을 이루고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기독교인인 것이 자랑스럽다. 잠깐 강의하는 내용이 소개되었는데 늙어도 젊어지는 호르몬이 있는데 다이돌핀이라고 한다. 엔돌핀보다 4000배 효능이 있는데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거나 노래하며 즐거울 때 생겨난다고 했다. 그녀는 300만원의 월급을 받아 10여 군데 후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때론 봉급만으로 후원금이 부족할 때도 있다고 했다.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92세가 되어도 건강하고 젊게 사는 비결인 셈이다.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살면 그 혜택은 이웃보다 나 자신에게 더 많이 주어지는 것이다.
한원주 의사 선생님의 삶을 보면서 나도 노년을 누군가에게 작은 섬김을 실천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남을 위해 나의 삶을 드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며 결과적으로 나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