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방화련의 거처에서 빠져 나와 소구가 들린 곳은 매형이 늘 일을 보고 있는 건물 밖의 사람들은 맹주전이라 부르고, 사정을 알고 있는 백초당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옥전이라 부르는 건물이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치고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하 곳곳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러나 소구의 모습을 보면서 신기서생 정옥은 잠시 업무를 멈추고 말을 해줘야만 했다. 안그랬다간 처남이 자신의 시간을 더 방해하게 될 것이고, 그럼 잘 시간도 없어질 것이다.
"처남, 반지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여러 가지를 알아내었지. 운룡회의 시작은 북풍표국이라는 장소에서 시작한 것이 맞아. 그곳 국주로 있던 백철군이라는 자는 가명이고 원래는 이름도 없이 칠호라고만 불리던 자가 운룡회를 만든 자라고 하더군. 바로 그가 자네가 나타나기 전의 천하제일고수이고 운룡회의 천룡이지."
"이미 밝혀진 사실을 가지고 왜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폐허로 변해 있기는 하지만 북풍표국의 건물이 있던 장소에서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었거든."
"무슨 소리죠?"
"그곳에서 칠호와 같이 운룡회를 결성한 자들의 흔적을 찾아냈다고--."
"그래서요?"
소구는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조금만 기다리게. 이제 곧 운룡회의 운룡이 누구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을 걸세. 그 반지를 끼고 있던 자들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하니까, 오대세가의 가주들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네."
둘의 대화는 짧게 끝나고 소구는 그대로 정옥의 집무실에서 밖으로 나왔다. 늘 일에 치어서 바쁘기만 한 매형의 시간을 오래 뺏을 수는 없다는 것을 소구 역시 이해하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간다? 그래 일단 부엌에 가서 배부터 채우고 보자."
소주에서 개봉까지 식사도 거르고 잠도 거른 상태로 단숨에 경공을 발휘해서 온 소구였다.
백초당에는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었고, 당연히 백초당의 부엌도 항상 바쁘게 돌아가는 장소였지만 그 한 구석에는 늘 음식이 놓여 있는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자신의 방에서 식사를 할 수 없게 되면서 부엌에서 식사를 하게된 소구 전용이었다. 그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동안 소구의 머리는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굳이 낙양으로 가서 헛고생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매형이 정보를 가져다 줄 때까지 그냥 집에서 기다려야겠다.'
식사가 끝날 때쯤에서 그렇게 결론을 내린 소구는 일어서서 어디로 가서 잠을 잘까하고 생각했지만 일단 한군데 먼저 들릴 곳이 있었다.
백초당의 지하에 있는 밀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는 상태였고, 굳이 경비를 세우지 않아도 아무도 가까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한기를 내뿜는 장소였다. 계단을 내려가 그 밀실의 문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소구는 뼈 속까지 저려오는 한기를 느껴야 했다. 문이 열리고 사방 벽에 얼음과 성에가 끼어 있는 모습과 그 한 가운데 놓여 있는 수정의 관이 소구의 눈에 들어왔다.
"형, 이제 복수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야. 그들에 대한 것을 하나 알아내었거든. 그들이 차고 있는 운룡이라는 표시의 반지를 내가 이곳에 하나를 가져 올 때마다 그들은 죽어 있을 거야. 형이 희망을 걸고 있는 정각 사부에 대한 소식은 전혀 들어오지 않고---, 형이 언제 깨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 형이 깨어나서 그들이 죽었다는 것과 반지를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하여튼 운룡회의 운룡이 여섯이라는 것을 알아내었어. 그 여섯의 반지를 모두 이곳에 갖다 놓을 거야. 형이 깨어나든 안 깨어나든 일단 그들을 죽이고 그 반지를 얻게 되면 이곳에 가지고 오겠어. 언젠가 우리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말을 마치고 방소구는 투명한 수정관에 누워서 자고 있는 형의 모습을 한참을 내려다보다 뒤돌아 섰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고통스런 표정을 하고 있는 형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는 원한의 불길이 치솟았다.
갇혀 있을 때는 갇혀 있다는 사실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웃을 수 없었고, 밖에 나와서도 결코 웃을 수 없었다. 형은 얼어서 잠들어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예전에 살해되었다는 말을 들은 상태였다. 가족들 중 그나마 조금은 행복한 사람이 몇 달 전 결혼한 누나 방수련이었지만 불안한 행복이었다. 호시탐탐 백초당의 모두를 노리고 있는 자들이 있는 한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날은 멀기만 했다.
백초당의 방씨 가족들 말고도 웃을 수 없는 사람은 또 있었다.
취하와 취앵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두 여자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 속에 그녀들은 슬픈 일을 슬퍼할 수 없고 기쁜 일을 기뻐할 수 없는 무감각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상태였다. 웃고 싶어도 울고 싶어도 표정조차 쉽게 변하지 않는 그런 상태에서 그녀들의 희망은 단 하나 소구였다.
'소구 도련님이 백초당에 와 있어.'
취하의 전음이 취앵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그래, 어디야?'
'종구 도련님이 잠들어 있는 지하실 앞이야.'
'이번에 도망치지 못하게 잘 감시해. 곧 그 앞으로 갈 테니.'
두 여자가 지하의 밀실 앞을 숨어서 지킬 때, 온 몸에 하얀 성에를 뒤집어 쓴 소구가 밖으로 나왔다.
"소구 도련님!"
"도련님, 저희들하고 얘기 좀 해요!"
두 여자가 소리치며 소구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소구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으악! 나타났다!"
"잠시만 서 봐요!"
"저희들하고 말 좀 하자고요!"
"싫어!"
그날부터 백초당의 백면귀가 부활하고 두 여자와 한 남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정보는 언제 들어와요?"
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말을 거는 하얀 얼굴에 놀란 정옥은 손에 쥐고 있던 종이뭉치들을 바닥에 떨구었다.
"흐--억!"
잠시 뒤 그게 누군지 깨달은 정옥이 신경질이 가득 배어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돼!"
허리를 굽히고 떨어트린 종이를 주어서 일어서 정옥은 다음 순간 물어보던 소구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과 밖에서 들려오는 두 여자의 고함을 들을 수 있었다.
"소구 도련님, 거기 서요!"
"그만 도망쳐 다니고 우리말 좀 들어보라고요!"
아련히 멀어져 가는 외침을 들으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정옥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끔찍하군. 아무리 자주 보게 되어도 도대체가 적응이 안되니--, 한시라도 빨리 처남을 집 밖으로 몰아내야 되. 이러다 내가 제명에 못 살지. 전에는 밤에만 모습을 보이더니 이젠 낮이고 밤이고 아무 때나 불쑥 불쑥 모습을 드러내니--.
정옥은 서류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품속에서 한 알의 약을 꺼내들었다. 아직도 놀라서 벌렁거리는 가슴을 한 손으로 쓸어대면서 한 손으로는 약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는 신기서생 정옥이었다.
정신없이 하녀들을 피해 도망쳐 다니던 소구가 쉴 수 있게 된 것은 한 밤중이 되어서였다.
"집에서도 마음 편하게 잠 한번 잘 수 없다니----? 매형이 빨리 정보를 가져다 줘야 할텐데---."
나무 위에 앉아서 밤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소구는 현재의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날마다 하녀들인지 첩인지 구분이 안가는 두 여자에게 방도 뺏겼고 식사도 부엌에서 해야되고 잠도 처량하게 나무 위에서 자야했다.
"마음에 안 들어--."
소구가 달을 바라보며 중얼거릴 때 나무 밑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공자님, 식사 가지고 왔어요."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있는 라리슈카가 나무 밑에 서 있는 광경을 보고 소구는 아래로 뛰어내렸다.
"네가 어쩐 일이냐?"
"수련 마님이 이곳에 있을 거라며 음식을 가져다드리라고 했어요."
광주리를 땅에 내려놓고 보자기를 표고 그 위에 음식을 내려놓는 일을 빠른 속도록 처리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수련 누나가? 웬 일이지? 내 식사도 신경 쓰고---."
"음식을 챙겨서 주시면서 이 말을 전하라고 하던데요."
"무슨 말?"
"매형 좀 그만 괴롭히라고--, 공자님 때문에 매형이 심장병에 걸렸다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어요."
"어쩐지--, 누나가 웬 일인가 했더니--?"
투덜거리면서 자리에 앉은 소구는 밥그릇을 집어들며 물었다.
"넌 식사는 했냐?"
"예, 아까 했습니다."
말하면서 그녀는 소구의 옆에 앉았다.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소구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라리슈카는 여름밤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고향인 쿠차에서나 이곳에서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의 모양은 변함이 없었다. 자신을 첩으로 삼은 남자와 날마다 침실에서 자는 나날을 상상하고 있던 라리슈카였지만 이곳에서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방소구라는 남자는 정말 이상한 남자였다. 욕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조차 의심스러운 남자 - 그게 소구였다. 소주에 있을 때에 한번 그녀와 잠을 잔 것은 정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경험 삼아 해본 것 같았다.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그녀의 귀로 소구의 말이 들려왔다.
"다 먹었다. 피곤할 테니 어서 들어가서 자도록 해라."
식사를 끝낸 소구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라리슈카에게 말을 걸었다.
"벌써 식사를 끝내셨어요?"
"매형이 심장병에 걸렸다고?"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병까지 걸릴 정도로 심약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누나에게 알았다고 전해 주거라."
말을 끝낸 소구는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방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 근처에는 호위하는 무사들도 없었다. 백초당의 지붕 곳곳마다 모습을 감춘 경비를 서는 자들이 잠복해 있지만 그곳만은 아니었다. 다시 그릇들을 챙겨 광주리에 이고 가는 라리슈카의 등을 바라보다 소구는 자신의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취하와 취앵은 침상에 올라 잠을 청하려고 하다 놀란 얼굴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도련님!"
동시에 둘의 입에서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아직 안자고 있었구나."
"저희들의 말을 좀 들어보라고요."
"도련님이 말도 안 듣고 도망쳐 다니니까--."
"시끄러워! 나중에 너희들의 말을 들어주마. 내가 내 방에서 잠을 못 잔게 하루 이틀이냐? 그 동안은 계속 내가 밖에서 잠을 자면서 백초당을 지켰으니 이번엔 너희들이 지키거라."
말을 하기가 무섭게 침상에 몸을 뉘이고 코까지 골며 잠들어 버리는 소구였다. 잠옷을 입고 있던 두 여자 취하와 취앵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까?"
취하는 침상에 잠들어 있는 소구와 서 있는 취앵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너하고 내 팔자는 왜 이리 사납니?"
대답 대신에 취앵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었다. 취하는 그런 취앵이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잠옷을 입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도련님도 당연히 알겠지. 최근 개봉에 꾀나 무공이 강한 자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것을--?"
"호위 무사들의 수준으로는 감당 할 수 없는 자들이야."
"우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그자들이 이곳을 공격할까봐 계속 망을 보고 있었던 걸까?"
"아직까지 어떤 행동도 취하는 것도 아니고 백초당을 중심으로 사방에 퍼져 있는 자들이니, 이곳에서 움직일 수 없었겠지---."
옷을 갈아입으면서 그녀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오직 몇 몇 무공이 아주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녀들의 수준 또한 낮은 것이 아니었기에 최근 들어 개봉의 이곳 저곳에서 아주 강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잠자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소구 도련님이 벌써 며칠 째 밤을 세웠으니--, 오늘은 봐주자."
"그래, 도련님도 사람인데--. 아무리 무공이 높아도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있었으니 피곤하겠지? 내일 잠에서 깨면 말하자. 언제까지 우리를 피해 도망쳐 다닐 수는 없을 테니--."
"그래, 어서 나가자. 그들이 언제 집에 숨어 들어올지 모르니--. 백초당에 머물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무공 수준으로는 그들을 감당 할 수 없어. 수련 아가씨가 나서면 백초당의 모든 건물이 박살 날거야. 아가씨가 나서는 일이 없게 만들어야 되."
"당연하지. 지붕도 없는 집에서 살기는 싫어."
그녀들은 백초당에 도착하면서 방수련의 무공이 엄청나게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는 것을 알아볼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들이 북해에 가기 전에 보았던 방수련의 성격이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는 것 또한 알게 된 상태였다. 결코 쉽게 화를 내지 않지만 한번 화가 나면 이성을 잃어버리고 보이는 모든 것을 다 때려부수는 방수련의 성격을 아는 이상 그녀들은 방수련이 나서는 일은 절대로 없게 만들어야 했다. 백초당이 무너지면 그녀들이 살집은 지금까지 갇혀 있어야 했던 북해의 그 얼음으로 이루어진 집이 될 것이다. 그 일만은 절대로 막아야 했다. 그곳이 싫어서 소구가 찾아오기를 포기하고 직접 중원으로 나선 그녀들이었다. 말을 하는 사이 옷을 다 갈아입었는지 두 여자는 대화를 멈추고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백초당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지붕위에 올라앉았다.
침상 위에는 꽤 오랜만에 자신의 침상 위에 몸을 누인 소구가 깊이 잠들어 가는 호흡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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