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25일 화요일
<신랑의 일기>
알람이 울리는 바람에 새벽에 또 깼다...... 아구, 머리 아퍼....
그렇지, 오늘은 한국대 독일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구나......
니나는 예상했듯이 빛의 속도로 침대에서 뛰쳐나가 화다닥 나갈 준비를
마친다.......
평소에는 알람이 무색하도록 그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면서......
월드컵 맨날 했으면 니나는 지금쯤 올림픽도 나갔겠다........
무지 빠르다 .... 완존 육상선수다..... -_-
아니다, 멀티 플레이어다......
한 손으론 아침 먹으면서 한 손으론 머리 빗구 발로는 경기 녹화할 비디오
테이프 고르고 있다......
언제 그렸는지 양 쪽 볼엔 시뻘겋게 줄도 그었다......
인디안같다.... -_-
"녹화 똑바로 해, 알지?"
우씨, 협박이냐..... 부탁을 해도 들어줄까 말까인데......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어두침침한 새벽에 도깨비 그려진 빨간 옷 입은 인디언 모습을 보니
너무 무서워서 가만있었다.....
<니나의 일기>
역시 교회에 모였다......
우선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회 체육관에서 보기로 했는데......
우와~ 새벽 기도에 이렇게 많이 온 거 첨봤다......다들 빨간옷
입었다..... 하나님이 아침부터 놀래시겄다..... -_-
새벽 기도 시간이랑 경기 시간이 겹치는 바람에 오늘만 새벽 기도
시간을 옮겼다.....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울 교회 40년 역사상 새벽 기도를 옮겨보긴
처음이란다...... 정말 대단한 월드컵이다.......
목사님께서 기도하시면서 울 선수들 부디 부상 없이 잘 싸우게 해달라고
하실 땐 가슴이 찡했다......
그동안 너무 강행군을 해서 반쪽이 된 선수들 얼굴이 마구 떠올라서리......
흑흑, 특히 종국군의 쾡하니 튀어나온 광대뼈.......
새벽잠을 설치며 본 게임, 울 교회 40년 역사에 이변을 만든 게임.......
그렇지만................... 이게 뭐여!!!!!! 결과는 너무 슬펐다.......
우씨, 월드컵에서 독일처럼 운좋은 팀은 첨봤다......
대진표도 엄청 좋은데다가 실력도 별로 뛰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찌어찌
얼떨결에 계속 이기다니.....
그래도 울 선수들 정말 잘했다......
김태영의 어이없는 패스미스는 땅을 치고 싶게 억울하지만......
부러진 코뼈로 열심히 뛴 걸 생각하면 업어줘도 시원찮겠다.....
근데 독일 선수들은 왜케 키가 큰거야..... 농구나 할 것이지 웬 축구....?
몸직도 작은 이영표랑 이천수가 그 큰 키에 맞서 열심히 뛰는 모습은
정말 감동이었다.........
독일의 장대같은 멀대들아, 그런 느낌 알어? 알어?
우리가 못해서 진 게 아니라 대등한 경기를 펼쳤는데도 한순간의
실수 땜에 게임을 놓쳤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프지만......
요코하마까지 갈 것 없이 울 나라에서 3, 4위전 하구 끝내주는 축제로
마무리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신랑의 일기>
니나가 시무룩해서 돌아오는 걸 보니 한국이 졌나보다.....
오, 결국 폭풍이 몰아치는 것인가.......
"자갸..... 져, 졌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저 모습...... 양 볼에 그린 인디언이
무색하다......
어이구, 가엾은 우리 강아지 ......
망할넘의 독일 같으니......
미국하구 할 때도 보니까 빌빌대면서 정말 운좋게 이겼던데.....
골키퍼 빼면 정말 망짱 헛건데..... 운도 참 좋다......
니나랑 나란히 앉아 멕시코 방송을 틀었다..... 이젠 말 안해도 경기
끝나면 으례 보는 게 멕시코 방송이다....... -_-
근데 뉴스 스튜디오에 한국 사람들이 북이랑 악기를 들고 앉아 있다......
니나 말이 싸물노리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 네 명이 마구 악기를 두드리며 좋댄다.....
멕시코 방송이 완전히 한국 방송 됐다....... -_-
한국 사람들이 나가고 이번엔 브라질 사람들이 나왔다.......
우와, 브라질은 역시 화끈하다.....
쭉쭉빵빵 아가씨들이 비키니만 입고 나와서 엉덩이춤을 추고 있다.......
브라질이 독일을 확실하게 깨주기 바라는 맘이 막 생긴다
한편에서는 브라질 사람 몇 명이 로날디노 (한국말로 호나우디뉴) 이름을
외치고 있다......
근데 외치는 모습이 가관이다.....
"로~날디노!! 짝짝 짝 짝짝!!!! ......." -_-
니나가 그걸 보더니 마구 뒤집어지며 웃는다........
으허허허허~ 역시 니나는 단순하다.......
우리 San Fernando 럭비팀 응원도 앞으로 니나가 좋아하는 구호로 해야겠다....
"샌 퍼낸도!!! 짝짝 짝 짝짝!!!"
<니나의 일기>
쓰린 마음을 달래며 인터넷에 앉아 Time 웹사이트에 올라온 축구 전문가
들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는.... 당연히 카페 게시판으로.....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 울집 하루 일정은.....
신랑의 공포 --> 경기 관람 --> 니나의 발악 --> 멕시코 방송 -->
떡잔치 --> 인터넷 --> 카페 게시판............ 이 순서가 되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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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6월 28일 금요일 날씨: 좋아
<신랑의 일기>
독일전 이후 시무룩하던 니나의 모습이 갑자기 살아났다.....
터키전이 마치 결승전인 것처럼 야단이다......
얘기인즉슨 Staples Center 에 간다는 거다
아니, LA 상징 Staples Center에? 우와, 거기 들어가려면 비쌀텐데......
뭐, 공짜라구?
월드컵 진짜 놀라운 경기다.... 월드컵이 뭔지도 모르는 이나라에서
Staples Center를 공짜로 쓰게하다니...... 게다가 진짜 경기도 아니고
텔레비전 중계를 보려구 NBA의 주역 Lakers의 홈을 빌린단 말이지.......
죽었다가 깨나도 이해 못할 일이다.......
경기는 새벽 4시란다...... 당연히 잘 거다........
이제 터키전만 버티면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Staples Center 아니라 백악관이라도 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아, 어서어서 밝은 날이여, 오라......
<니나의 일기>
LA 한인들이 모두 Staples Center 에 가게 됐다!!!!!!!! 으허허허허허~~~~
독일전 때에도 Staples Center 에서 본다는 말이 있어서 어떤 분이
8만불이나 기증했었는데 자원봉사자가 250명이 필요하구 또 임대료만도
15만불이 넘는다나 워쨌다나.......
그래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무산됐다가 드디어 사용할 수 있게 된 거다......
더욱 기쁜 건 Staples Center 사장이 장소와 주차장을 모두 공짜로
빌려주겠단다....... 앗싸!
LA 에서 유래가 없는 일을 한국 사람들이 해낸거다.......
LA 의 상징 이자 Lakers 의 홈인 Staples Center 에서 축구 경기를
응원하게 되다니 이게 꿈인지 생신지.......
Staples Center 사장이 말하길,
이번에 무료로 장소를 임대하게 된 이유는 우선 한국 사람들의 축구 열정에
감동 받았기 때문이란다.......
이번 계기로 이곳에도 축구붐이 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나......
그리구 또 하나는 한국 덕분에 미국이 16강을 올라가서 감사하는 마음도
있댄다....... 거럼, 거럼......
으하핫, 거만해지려는 마음을 추스리기가 힘들다...... ^^
우리가 축구를 쫌 하긴 하지, 허헛~
사실 우승도 어려운 거 아닌데 요쿄하마까지 가기가 성가셔서리......
까짓꺼 담번에 독일가서 하지 뭐......
한인타운 비즈니스의 중심가라 할 수 있는 Wilshire 길의 몇블락을 막아서
한인들이 마치 본국에서 길거리 응원하듯이 자리를 만들어 준다는 얘기도
나왔다........
Staples Center를 빌리는 게 해결되면서 길거리 응원은 취소됐지만 역시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음하하하하하~ 미국 이민자들의 50%에 육박한다는 멕시코, 축구사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멕시코도 못한 일을 한국 이민자들이 이루다니.......
어흑~ 감격도 감격이지만 자꾸 거만해진다......
우리가 뭐 그렇게 잘한 것도 아녀~~
울나라 찾은 손님들 체면 좀 차려주느라 살살했는데 왜 그리 놀라구
그러나 몰러.........
아씨, 우리 축구 왜케 잘한다냐...... 여기저기서 박수 받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너무 많으니까 이젠 성가시구 그러네.......
길에서 마주치는 한국사람보다 속으론 나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에
거만이 차고 넘친다..... 오옷! 저 빳빳한 목들.......
누가 보면 한국에서 왕족들만 온 줄 알겠다......
이번 월드컵은 4강 진출이라는 성과 외에도 이렇게 대내외적으로
한국을 알리구, 한국 사람들이 한번 맘먹으면 한 감동 시켜준다는 걸
보여준 쾌거다.
화장대 앞에 사진을 붙혀놓구 맨날 쳐다보느라 가끔 꿈속에도 등장하는
홍명보 선수가 골든볼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도 들었다......
허허, 정말 큰일이세...... 겸손할라구 노력하는 사람을 왜케 못살게
군담.......
아씨, 홍명보는 멋있으면 됐지 뭔 골든볼까지........
성가시게시리 또 국제적으로 축하받겠네.....
이놈의 인기는 언제 수그러들라나...... -_-
<신랑의 일기>
니나가 오래간만에 밥을 하겠단다..... 드디어!
독일전에서는 졌지만 스테이플스 센터가 니나를 다시 행복하게 했나보다.....
그러나 좋아하기는 아직 일렀던 걸까.....
밥만 하겠단다..... 밥.... Rice..... -_-
그까짓거 하면서 뭔 생색을 내려고 하는지 부엌에도 들어오지 말란다......
밥한다면서 가위 어디 갔냐고 찾아다니기도 한다..... 아무래도 다시
열을 재봐야겠다.....
쨔잔.......!!!!
다른 건 없고 밥만 있는 식탁을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니나...... -_-
엥? 이게 뭐냐......
밥이 이상하다..... 일일이 주먹밥으로 동글동글 뭉쳐서 오각형으로
짜른 김을 붙였다....
허걱~ 축구공이다.....!!!!!
오오~ 저 신들린 눈빛을 보라.... 여태 밥으로 축구공을 만들고 난 뒤
마치 일생 최고의 대작을 완성하기라도 한 듯 감격해하는 저 모습......
무,무, 무, 써와라......
얌전히 다 먹지 않음 평생 후회할 부상입겠다......
<니나의 일기>
축구공 주먹밥을 먹였더니 군소리 안하고 깨끗이 다 먹었다....
맛있나보다, 자주 만들어야지.....
ESPN에 들어가봤더니 포르투갈의 올리비에라 감독이
쫓겨났단다.......
2004년에 계약이 끝나는데 더 이상 연장 안 한다나 보다.......
올리비에라 감독은 어디 갔는지 포르투갈에 없을 때라서
팩스로 계약 끝내자는 소식을 보냈다는........
뭐가 그리 바뻐서 팩스까지 보냈을까..... -_-
올리비에라 감독은 포르투갈 국가 대표팀의 최다 게임 출전과
최다 승리 기록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라던데 월드컵 땜에
그냥 가다니.......
울나라만 이러는 줄 알았는데..... 포르투갈 애들 성질도
장난 아니다...... 뭐, 프랑스에서는 청문회도 한다지만.....-_-
스페인 축구 협회 회장인 Angel Maria Villar는 FIFA 심판
committee 에서 탈퇴했단다.......
심판 오심에 대한 시위라나......
그래 빠져라, 너 같은 인간 있어봤자 시끄럽기만 하다....... -_-
휴~ 하여간 월드컵인지 전쟁인지,
공 하나에 울고 웃고 인생 바뀌고.......
4천 7백만 국민 생활 리듬 깨지고......
수백만 재외동포가 감사를 받는가 하면......
어떤 동포는 갑자기 목숨도 위태로와지구.......
경제가 마비되는가 하더니 빨간 옷 장사는 때돈 벌구........
정신 없다...... -_-
그래도 월드컵이 좋은건........
싸랑하는 울 선수들 너무 잘 싸워줘서......
싸랑하는 울 민족 하나로 묶어줘서......
월드컵인지 뭔지....... 독립 운동 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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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29일 토요일 새벽 날씨: 캄캄한 밤이라 몰러
<신랑의 일기>
새벽 2시에 깨워달라고 니나가 그래서 할 수 없이 DVD를 보며 새벽까지
버텼다......
근데 1시도 안되서 니나찾는 전화통이 불났다..... 빨리 오란다......
덕분에 멀티 플레이어 니나도 미처 준비를 못하고 어수선하게 뛰쳐나갔다.....
우씨~ 난 왜 여태까지 잠 안자고 억지로 DVD 본 거지...... -_-
-니나
니나랑 폴이랑 cafe.daum.net/ninapaul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일등
싸물노리............ <-
너무 재밌음. ㅋㅋ
자주 만들어야지 ㅋㅋㅋㅋ
짝 짝짝 짝짝 ~!! ㅋㅋㅋ
ㅌ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간나면 읽어드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