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용 서 (容 恕)
밤 주우러 갔다가 *오빠시 쏘여
퉁퉁 부어오른 눈텡이에
된장 발라주시던 어머니 한테
새로 사준 꺼먹고무신
나무 꼬챙이에 찢어먹고
마루밑에 감춰 두었다는 말
끝내 하지 못하고,
썰매 타다 얼음이 꺼져 젖은 솜바지
말린답시구 엉덩이 태워 먹고
굴뚝 뒤에 떨고섰는 나에게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게 그러고
섰느냐" 시며 피식 웃으시던
아버지 얼굴이 자꾸만 생각난다.
* 오빠시: 땅벌의 방언
(2) 누나의 작은 지혜
어릴적 나는 *술-조사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인줄만 알았다
붉은 완장을 찬 이들이 나타나면 온 동네가
벌벌떨고 마을 이장까지 설설 기었으니 말이다.
어느날 우리 누나는 좋은 생각이 있다면서
황급히 집으로 달려와 헝클어진 긴 머리에
물 뿌려 대임으로 이마를 동여매고
고쟁이에 속적삼만 입은 상태로
이불(술독)에 기대 웅크리고 있을테니
내 방을 얼씬거리는 사람이 있거든
"딸애가 많이 아파 몸져 누워 있다"고만
이르라 했다.
부엌 안광 나뭇간 심지어 짚가리까지
쇠꼬챙이를 쑤셔대며 술-조사는 계속되었다.
이들은 안방을 지나 윗방문을 얼어 제치다 말고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도망치듯 서둘러 갔다.
* 술-조사 : 쌀이 귀하던 시절 몰래 담근 술(밀주)를 단속하던
세무서 직원 (발각시 무거운 벌금 부과)
(3) 아버지의 눈깔사탕
눈이 무릅까지 푹푹 빠지는
할미당 고개 넘던 아버지
토끼털 귀마개도 칼바람을
이겨 내지 못했나 봅니다.
낮술 두어잔에 들레다 말고
양회 포대에 싼 고둥어 한 손이랑
양잿물 한덩이 지겟발에 대롱대롱
흔들려도 막내아들 줄 눈깔사탕
*괴침에 챙겼으니 미끄러운 눈길에
얼어 터지는줄 몰랐습니다.
* 괴침 : 바지나 치마를 입은 상태에서
허리 부분을 접어 여민 사이
(4) 춘 궁 기 (春窮期)
됫박으로 쌀독 밑바닥 긁는
소리를 들은 할아버지
*곱장려쌀도 빌려 먹기
어려운 시절이라 하셨다.
어머닌 쑥개떡 한 볼텡이에
찬물 한 사발로 끼니를 잇는둥 마는둥
나물 팔러 장에가고 없는데
술찌게미 훔쳐먹은 아이놈 술취해 잠들고
화산교회에서 어르신들 점심 한끼
대접 한다는 확성기 소리에
허리 굽은 긴-줄 섰다.
* 곱장려(長利) 쌀 : 동네 살만한 집에서 쌀 한가마니를
빌려 먹고 가을에 곱으로 두가마니를
갚는제도
(5) 그리운 여름밤
바지랑대에 매단 남포불 아래
불나방을 피해 온 식구가 달그락 달그락
수제비를 먹고 뽐뿌물 한 대접 들이키는
나에게 어머닌 찬물 많이 먹으면
밤에 오줌싼다며 걱정하셨다.
마당엔 모깃불 연기 내리깔리고
별똥별이 길게 줄굿고 떨어질 때
궤짝 라디오 속 수백명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엄익채 한국남 박사가
단골로 나오는 재치문답 시간이 돌아오고
장소팔 고춘자 가짜부부 만담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랠 때
살살이 서영춘 아저씨의 빈대떡 신사 콧노래가
배꼽을 잡게하던 여름밤
나는 *각성바지 누나들 틈에끼여 따라 웃다가
깜빡 깜빡 짐짓 잠이 들었습니다.
* 각성바지 : 성이 서로 다른 사람
(6) 주 요 경 력
( 성 명 )
홍 기 연 호, 상 리 ( 橡 里 )
( 사 진 )
hky4026@hanmail.net
( 약 력 )
- 월간 『문학세계』 등단 (시인)
- 중앙공무원 (중앙병무청,항만청,교통부)
- (주) 코리아 트래블즈 상임이사
- 서울특별시 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 전무이사
- 한국문인협회 회원, 목란문학회 이사
- 광화문사랑방 시낭송회 운영위원및 감사(현)
- 한국 서예협회 군포지부 감사 (현)
- 안양시 서예대전 우수상 (초대작가))
- 안양시민 휘호대회 우수상 (초대작가)
- NHP TECH Co., Ltd 감사 (현)
- 시 집 : 제1시집 상수리가 익어가는 마을
제2시집 다랭이 마을 외